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46)
제346화
척! 척! 척!
카밀의 선전포고가 전장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신성제국의 정예 부대가 멈췄던 전진을 재개한다.
완벽하게 일체화된 구보.
저 대군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마치 한 사람이 걷는 것처럼 일정하게 들려온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구보만으로도 카밀과 함께 반텐으로 남하한 제국군이 얼마나 정예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반텐의 병력 또한 왕국 최정예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반텐의 병사들은 그 숫자에 질렸을지언정, 두려움에 벌벌 떠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스윽!
“부인?”
굳건한 표정으로 전면을 바라보는 바쿠스를 제치고, 엘레나가 앞으로 나선다.
“당신은 뒤로 물러서 있어요. 지금부터 잠시 동안만 제가 지휘할게요.”
아무리 영지의 안주인이라 해도, 전시 상황에 갑자기 군권에 손을 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지 않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바쿠스는 아무 말 없이 엘레나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자신의 아내는 반텐의 안주인이기 이전에 왕국 마탑이 애지중지하는, 이데아에 다다른 지고한 마법사였으니까.
“고마워요.”
바쿠스의 배려에 짧게 고마움을 표한 엘레나가 카미트, 그리고 멀린에게 나직이 말했다.
“전원, 술식을 외우라고 해요.”
엘레나의 담담한 말에 카미트와 멀린이 대기하고 있던 마법 병단을 향해 외친다.
“마법 병단, 전원 마법을 운용해라!”
“저 미친 광신도들에게 한 방 크게 먹여주는 거다!”
처어억!
제국군에 질세라 일제히 성벽 위로 올라온 마법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
우우우우웅!
수많은 마법사들의 지팡이가 동시에 빛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하나, 그 많은 마법사들의 마나가 모인 결과물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르르르릉!
청명하던 하늘의 대기축이 흔들리며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반텐과 부딪쳐온 카밀의 제국군이 엄정한 군기를 가지고 있는 최고의 정예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선물’을 준비해왔던 것이고 말이다.
요동치는 마나가, 천천히 하늘에 구멍을 만들어낸다.
반짝!
구멍 사이로 비치는 작은 반짝임들.
쿠구구구구구구!
작은 반짝임은 이내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한 줄기의 유성이 되어 제국군의 중심부를 노렸다.
“어디 한번, 막아봐.”
제롬의 이야기를 듣고, 아주 오랫동안 너흴 위해 준비해온 선물이니까.
————–!!
엄청난 바람과 충격파가 반텐의 병사들에게까지 몰아친다.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인간의 청각이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탓에, 단지 이 먼 거리에 있는 병사들조차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것으로 그 충격을 상상할 뿐이다.
마치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요동치던 대기가 천천히 가라앉고, 서서히 눈앞의 광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적들의 심장부를 노리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온 엘레나의 일격.
그 위력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이 한 번으로 모든 것이 정리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분명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힐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충격파가 사라진 자리에는 파멸적인 피해를 본 제국군의 모습 대신, 반투명한 구체가 하얗게 반짝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물론 구체 역시 반파되어 너덜너덜했지만.
“저건…?”
엘레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전의 일격은, 남하하는 제국군을 막기 위해 엘레나와 반텐의 마법사들이 술식을 만든 궁극의 일격.
메테오 스트라이크였다.
제대로 직격당한다면, 하늘의 방패라 불리는 남편 바쿠스조차 목숨을 장담하지 못할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물론 주변에 쓰러진 제국군들은 엄청나게 많았고, 진형은 흐트러지다 못해 대혼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엘레나가 상정했던 예상치보다 훨씬 더 양호한 수준이었다.
원인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만한 방어 마법을 펼 수 있는 자는, 이 대륙 위에 단 한 명뿐일 테니까.
“…교황…!!”
비장의 한 수가 막힌 엘레나가, 고운 입술을 짓씹으며 제국 진형을 노려보았다.
“쿨럭, 쿨럭!”
날아온 돌조각에 배가 뚫린 채 핏물을 토하는 병사.
“이, 이봐! 정신 차려! 어이!! 사제님을 모셔와!!”
제국군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우성.
놀란 것은 제국 측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막아냈다고 해도, 저런 무지막지한 마법에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저 마법을 막아낸 이가 피해가 가장 큰 것은 당연지사였다.
왈칵!
존귀한 성복에 붉은 피가 낭자한다.
“교, 교황 성하!!”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당장 주교들을 불러오겠습니다!”
“되었습니다. 나보다 내 몸을 잘 치료할 사람은 없음이니.”
우우우웅!
주변 신관들을 만류한 교황, 리비아가 신성력을 끌어 올려 자신의 몸을 치료하려 했다.
“커헉!”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르지 않는 바다와도 같던 신성력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교황 성하!!!”
주변의 사제들이 천천히 리비아를 자리에 앉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이저가 고개를 흔들었다.
“…개전하자마자 한 방 먹었군. 설마 이런 장난질을 준비했을 줄이야.”
자신들이 오랜 시간 성전을 준비한 것처럼, 반텐과 이교도들 역시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메테오 스트라이크라니.
저만한 초고위 마법을, 그것도 이만한 위력으로 구현해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엘레나 폰 카르비어트. 과연 이데아에 다다른 마법사… 그 명성이 헛것은 아니었구나.’
“…아무래도, 저는 당분간 전장에 나서기 어려울 것 같군요.”
몸 상태를 확인한 리비아가 차분하게 말했다.
“저만한 마법을 단신으로 막아섰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고생하셨습니다, 성하.”
공적인 자리이니만큼 한참 어린 리비아에게 존대하며 대답했다.
제국의 군대를 불사에 가깝게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보유한 교황, 리비아가 전쟁 초기부터 이탈하게 되다니.
생각지도 못한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엘레나는 제국의 피해가 적다 여겼지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무려’ 이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것이다.
교황, 리비아가 전력을 다해 펼친 디바인 실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지간한 고위 마법 따위는 리비아의 실드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소멸했을 터.
설사 꿰뚫는다 하더라도 제국군 기사 이상의 전력에는 손톱만큼의 피해조차 입히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라.
리비아의 실드를 박살 낸 것도 모자라, 피를 흘리며 널브러진 아군 ‘기사’와 병사들이 곳곳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제국군이 비밀리에 준비하던 대마법 갑옷.
연맹에 비해 제국이 부족한 전력인 마법 방면의 전세를 단번에 역전하기 위한 비밀 병기.
마법사들을 단지 허약한 학자로 만들어 버리는, 제국이 준비한 또 하나의 칼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예상하고 있었던가.”
그래.
명색이 이케니아의 방패다.
넋 놓고 바보처럼 놀고만 있었을 리가 없지.
“그러나, 우리의 승리는 변치 않는 사실이다.”
처음 전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카밀과 함께 반텐을 향해 의도적으로 기운을 뿌렸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태양인 황제 폐하께서 비밀리에 붙여주신 병기.
그 병기의 존재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라면 모를까, 아무리 바쿠스라 하더라도 이 거리에서 그것들의 기운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리비아가 당분간 참전하지 못하더라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피해를 천천히 수습하는 아군의 모습을 바라보며, 카이저가 차갑게 눈을 빛냈다.
* * *
-크아아아아아아아!!!
하나뿐인 눈이 탁하게 물든 키클롭스가 주먹을 휘두른다.
커다란 체구에 갑옷까지 덧대진 주먹의 위력은 공성 병기를 방불케 했다.
콰아아아앙!
무지막지한 주먹질에 성벽이 뒤흔들린다.
“으아아아아아!!”
“기름!! 기름을 뿌려!!”
촤아아악!
기름이 묻은 키클롭스가 불쾌한 감각에 더더욱 날뛰려 하자, 병사들이 미리 준비한 불화살을 쏘아낸다.
화르르르르륵!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던가.
몬스터라고는 노예시장에서나 보던, 생전 본 적 없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공포에 빠졌던 병사들은 어느새 반격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치이이이이익!
-캬아아아아아!
타오르는 불길에 피부가 빨갛게 익어가자 키클롭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불꽃이 피부를 타고 눈까지 영향을 끼친 탓일까.
시야가 암전되자 더더욱 날뛰는 키클롭스였지만.
퍼석!
키클롭스의 난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날카로운 물에 휩싸인 화살이, 키클롭스의 머리를 마치 수박처럼 터뜨려 버렸으니까.
쿠우우우웅!
키클롭스의 거대한 몸이 옆으로 쓰러진다.
몬스터 부대에서도 몇 개체 되지 않는 키클롭스를 잡았으니 기뻐할 법도 하건만.
화살을 쏜 주인공인 엘프는 기뻐할 틈조차 누리지 못한 채 곧장 활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카아아앙!
“크으윽!”
가녀린 팔을 짓누르는 롱소드의 압박감은 상상이었다.
점차 가까워지는 검날에, 화살을 쏘았던 엘프 레인저가 인상을 찌푸린다.
“제법이구나. 하지만 이 정도 실력으로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어.”
서걱!
공허함이 담긴 목소리와 함께, 엘프의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촤아아아!
엘프의 목이 잘린 단면에서 분수처럼 흘러나온 핏물이 얼굴을 적셨음에도, 남자의 표정은 그저 공허할 뿐이었다.
“괴, 괴물….”
방금 목이 잘린 엘프는 엘룬하임에서 차출된 정예 엘프였다.
그런 엘프의 목을 나뭇가지 꺾듯 간단히 날려버리자, 공포에 빠진 연맹의 병사들이 주춤주춤 거리를 벌린다.
“괴물이라….”
병사들의 말을 되새김한 남자, 룩크 후작의 얼굴에 자조적인 미소가 떠오른다.
“틀렸다. 괴물은, 내가 아니라 저쪽이겠지.”
룩크 후작의 시선이 전선 한복판으로 향한다.
병사들의 기습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감히 자신에게 달려들 용기를 가진 이도 없었을뿐더러, 설사 달려들어 봐야 자신의 몸에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할 테니까.
후작의 시선이 향한 전장. 그곳은, 벌써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는 중부 전선의 공방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이 일어나는 장소였다.
쐐애애애애액!
하늘 높이 떠오른 화살들이 일제히 지상으로 강림한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마녀의 화살이 떨어진다!! 피해! 얼른 피… 커헉!”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이 기겁하여 피하려 했지만, 헛된 노력일 뿐이었다.
마녀의 화살을 눈으로 보았을 때는 이미 늦었으니까.
이미 지난 일주일 동안, 그녀의 화살을 견식해온 제국군에게는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저들의 전장에 끼어드는 순간, 아니 근처에만 있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제국군이 마녀라 부르는 숲의 여왕, 파울로 미네르바는 정작 제국군들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이런 잔챙이들에게 신경을 쓰기에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괴물들이 너무나 성가셨기 때문이다.
‘…아니. 단순히 성가신 수준이 아니지.’
처음에는 그저 조금 강한 몬스터일 뿐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하나하나는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았지만.
셋이 단단히 뭉치자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보라.
타타탓!
거대한 드래곤 터틀의 다리, 등껍질, 목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 괴물이 양손의 작은 검을 날카로이 세운 채 팽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카라라라라라라락!
쾅, 쾅, 쾅!
콩 볶는 소리와 함께 파울로가 쏘아낸 정령시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때문에 일반 병사들의 피해는 더욱 커졌지만, 그들의 생사 따위는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들은 단지, 파울로의 ‘말살’을 명받았을 뿐. 그렇기에, 오직 그 목적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후우우….”
파울로가 숨을 고르는 사이, 하늘 높이 치솟았던 고블린이 지상으로 유유히 떨어져 내렸다.
고블린 따위가 어떻게 자신의 화살을 막을 수 있겠나 싶겠지만, 고블린도 고블린 나름이다.
제노스가 선택한 고블린은 단순한 고블린이 아니었다.
평범한 트롤들은 가뿐히 찍어 누르는 고블린의 진화종, 홉고블린이었다.
그리고 지금, 파울로를 가장 성가시게 하는 원흉이기도 했다.
-케르르르르르!
바닥에 착지한 홉고블린이 나직이 울음소리를 흘린다.
그 소리가 파울로의 귀에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들려왔다.
“…정말이지, 짜증 나는 놈들이네.”
인상을 찌푸린 와중에도 파울로의 눈은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이 생각지도 못했던 괴물들에 발목을 잡힌 탓에, 동족들의 피해가 예상보다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제국군 가운데 자신의 기감을 건드릴 정도의 강자였던 두 남자.
그중 할버드를 들고 있는 대머리는 레나와 애쉬가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지만, 다른 한 명을 막을 수 있는 이가 없었던 탓이다.
더 이상의 피해는 곤란했다.
그녀의 딸인 밀리아가, 동족들의 죽음을 슬퍼할 테니까.
…꾸득!
아랫입술을 짓씹은 그녀가 세 괴물과 거리를 벌린다.
“…바쿠스와 다시 한번 겨룰 때를 위해 익힌 비기를, 고작해야 너희 같은 잡것들에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네.”
우우우우우웅!
파울로의 등 뒤에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 바람은 반쯤 미쳐 있는 바람 같았고.
또한 봄처럼 따뜻하기도 했으며.
거세고, 맑은 것 같기도 했다.
온갖 속성을 갖춘 바람들이 한데 모여, 천천히 여인의 모습이 형상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