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86)
제86화
그렇다.
아리아가 교본을 통해 이종의 힘을 익힌, 흑사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면.
블라디미르는, 지금껏 잡아먹어온, 수없이 많은 마법사들의 피를 통해 방법을 익혀온 것이다.
게다가 이종의 힘과 달리 마법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능력이었으니.
제아무리 천재인 아리아라 하더라도, ‘경험’ 면에서는 블라디미르의 상대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블라디미르의 입가가 한층 더 섬뜩하게 쭉 찢어졌다.
“내가 잘라냈던 팔은, 어디로 갔을까요?”
“!”
아리아의 눈이 반사적으로 블라디미르의 팔이 잘려 떨어졌던 곳을 향했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쉬이이익!
“아아아아악! 내, 내 몸이!”
아리아의 우측에서 피안개가 올라와 방진을 형성하고 있던 수행 마법사들을 덮쳤다.
설마 팔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능력이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파이어 볼!”
아리아가 다급하게 마법사들이 있는 피안개를 향해 마법을 전개했으나.
어느새 사라진 피안개가 있던 자리에는, 미라처럼 바짝 말라버린 마법사의 시신만 남아 있었다.
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괴이한 힘이란 말인가!
꾸물, 꾸물!
마법사들의 피를 빨아먹은 블라디미르의 피안개는 어느새 블라디미르의 잘렸던 왼팔을 다시금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이…!”
눈 뜨고 충성스러운 마법사들을 잃어버린 상황.
분노한 아리아의 마법이 블라디미르를 덮쳤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매직 애로우….
수많은 마법의 향연 속에서, 블라디미르는 피안개로 방어하며 웃었다.
‘금방 끝나겠군.’
아리아는 가문의 마법사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미처 보지 못했다.
블라디미르의 왼쪽 약지 하나가,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음을 말이다.
“그럼, 이만 끝내자. 제법 재밌었다.”
딱!
블라디미르가 장난스럽게 제스처를 취하자, 아리아는 자신의 뒤에서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힘의 파동을 느꼈다.
“이런!”
아리아가 재빨리 뒤돌았지만, 그보다 블라디미르가 빨랐다.
아리아의 뒤를 점한 블라디미르의 남은 손가락이 피안개로 변해 그녀를 기습한 것이다.
“늦었어.”
블라디미르의 말처럼, 아리아가 방어 마법을 펼치는 것보다 피안개가 그녀를 감싸는 것이 더 빨랐다.
아리아는 억울했다.
대화로 유추해 보건대, 저 남자는 지금껏 저 위험한 힘을 멋대로 휘두르며 살아왔을 것이다.
대륙 명문가의 자녀로서 질서를 지켜야 했건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이라니.
‘분해.’
아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입술을 짓씹고 있던 그때.
그녀와 피안개 사이에, 바위 같은 남자가 난입했다.
부아아악!
공기를 가르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퍼어엉!
불길한 기운을 담은 채 아리아에게 다가오던 피안개가 터져 나갔다.
후두두둑!
터져 나간 피안개가 미르온의 몸에 닿자,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르온의 신체 중 일부가 타들어가듯 검게 변했다.
“!”
피안개의 독을 확인한 미르온은 당황하지 않고 아리아의 허리를 감싼 채 재빨리 물러섰다.
그 과정에서 수행 마법사 한 명이 더 죽었지만, 그건 미르온이 알 바는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백작가의 귀한 손님. 그런 그녀에게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괜찮으십니까?”
미르온이 보기에 아리아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특별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전 괜찮아요. 한데, 경이….”
아리아가 미르온의 상처를 바라보자, 자연스럽게 미르온의 시선도 상처로 향했다.
아까보다 조금 더 검게 짙어진 상처. 블라디미르의 피가 닿았던 부분의 피부가 검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피부가 괴사하는 부분이 번지다니.
블라디미르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쯧, 귀찮은 마법사를 한 번에 다 먹어치울 수 있는 기회였건만. 번견(番犬) 주제에 일을 번거롭게 만드네.”
느긋하게 말을 했지만, 그의 기습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완벽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팔을 자르는 것부터, 피안개를 짙게 뿜어내어 바닥에 떨어진 팔의 모습을 감추는 것.
그리고 주변부터 정리하여 자연스럽게 모든 기습이 ‘끝났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까지.
실전 경험이 적은 마법사들을 단 번에 사냥하기 위한 필살의 기습이었다.
두 번은 통하지 않기에, 분노한 것부터 철저하게 설계한 기습이었다. 그런데.
계획에도 없던 집 지키는 개 한 마리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되었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번견이라.”
다른 위협이 있는지 잠시 주변을 살핀 미르온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 말대로다. 나는 카르비어트 백작가의 기사. 제롬 공자님을 위한 충복.”
사람의 머리통보다 거대한 해머가 천천히 블라디미르를 겨누었다.
“그분의 일에 방해가 되는 놈들은, 누가 되었든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오러를 다루지 못함에도, 엑스퍼트 중급 기사 이상의 기세를 뿜어내는 미르온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야기 속의 거신상 같았다.
그러나.
블라디미르는 조금의 위협도 느끼지 못하는 듯 코웃음을 쳤다.
“흥! 웃기는군. 기습 한 번 막았다고, 네깟 개 한 마리 때문에 일을 그르칠 성싶으냐?”
저 번견이 전음(全音)을 쓰는 것으로 볼 때, 저자 역시 이종의 힘을 쓰는 흑사자이겠지만.
블라디미르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그의 행동과는 달리, 그는 지극히 냉철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저 해머, 그리고 극한으로 단련한 육체… 놈이 익힌 이종의 힘은 틀림없는 단련 계열이다. 나 같은 차력(借力) 계열이 아니야.’
워낙 별의별 능력이 다 존재하는 이종의 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육체, 정신 등을 강화해서 자신의 능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단련(鍛鍊)의 계열.
그리고 온갖 신비한 현상을 불러와 주 무기로 삼는 차력(借力)의 계열.
일반적인 전장이라면 신체 능력이 강한 단련 계열이 돋보이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지금처럼, 흑사자들 간의 대결에서는 차력 계열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단련 계열은, 결국에는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끝난 블라디미르는 결론을 내렸다.
저 덩치의 위협적인 해머는 생긴 것과 달리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물리적인 충격이 아무리 강하면 뭐 하는가. 어차피 피안개로 화해버리면 그만인데.
‘쯧, 그러니 저 웬디널 공작가의 계집부터 처리했어야 하는 건데.’
어쩔 수 없었다.
조금 귀찮지만, 목표가 도착하기 전에 정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까.
파앗!
미르온은 블라디미르의 생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내부는 진탕되고, 몸은 독에 중독된 지금.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미르온이었으니까.
해머를 든 미르온은 무식하리만큼 단조롭게 해머를 휘둘렀다.
지극히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한 대라도 제대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릴 공격.
대지를 부술 것 같은 미르온의 공격에도 블라디미르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러를 담은 기사의 일격이 아니고서야, 자신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었으니까.
그것이, 대륙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였다.
흑사자들이 괜히 경외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다.
고도의 수련을 쌓은 보통의 인간들을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힘. 이종의 힘이란 그런 힘이었으니까.
‘제법 성취가 있어 보이긴 하다만, 그뿐이다.’
스각!
블라디미르는 단도로 자신의 복구된 왼손을 그어 피를 냈다.
잘린 손목의 단면이 미르온을 향해 뻗자.
슈르르르르르-
바닥에 떨어진 손목이, 핏빛의 거대한 방패로 화했다.
‘어디 한번 내려쳐 봐라. 네놈이 내 반경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피안개로 네놈의 몸을 삼켜주마.’
그럼 끝이다.
저 덩치의 온몸에는 피안개가 스며들 것이고, 마침내 이종의 힘을 익힌 ‘동족’의 맛을 처음으로 음미할 수 있게 되겠지.
‘후후후, 기대되는군. 과연 네놈은 무슨 맛이 날지…?!’
하지만 블라디미르의 예상이 우습게.
퍼어어엉!
그가 만들어낸 피방패는, 너무도 쉽게 부서졌다.
게다가.
“크아아아아아아악!”
피방패가 조각조각 박살이 남과 동시에, 블라디미르는 혈종(血宗)을 얻고 난 이후로 처음 느껴지는 신체적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내, 내 손목! 내 손목이!!”
낯선 감각에 비척비척 뒷걸음질 친 블라디미르가 피가 줄줄 흐르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쌌다.
“어, 어떻게…! 오러가 깃든 무기가 아니고서는, 내게 상처를 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블라디미르가 스스로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 내는 것은, 일종의 눈속임이었다.
먹잇감들에게 혼란과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방책 말이다.
어차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상처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이어붙일 수 있었으니 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방금 받은 손목의 상처는 달랐다.
일말의 복구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게 으스러졌다.
이건 혈종으로도 고칠 수 없다. 오로지 치료를 통해서만 고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치료가 될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도 박살 난 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나는 그저, 공자님의 적을 전력으로 배제할 뿐이다.”
블라디미르가 당황하든 말든, 미르온은 그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단지 그의 할 일은 하나뿐이라는 듯이, 블라디미르를 향해 다시금 돌진하며 해머를 연속으로 휘두를 뿐이었다.
“크윽!”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블라디미르는 혀를 깨물어 피를 내 미르온을 향해 뿜어냈다.
블라디미르의 입에서 방울방울 뿜어진 피는 이내 그 형태를 바꾸어 미르온의 급소를 노렸다.
검, 창, 도끼, 화살… 핏방울들은 미르온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한 무기가 되어 미르온을 탐했다.
피에 담긴 독과 불길한 기운 때문에 미르온도 감히 경시하지 못하였고.
그 짧은 순간, 시간이 지체된 사이. 블라디미르는 가까스로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패닉 상태였다.
“…네놈! 차력(借力) 계열 사용자였나!”
저만한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차력 계열이라니.
그렇다면 더더욱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의 확신에 가득 찬 경계에도 불구하고.
미르온은 볼을 긁적일 뿐이었다.
블라디미르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으니까.
“차력…? 그런 건 모른다. 단지, 네놈이 희희낙락하는 것이 꼴 보기 싫었을 뿐!”
부아아악!
미르온의 해머가 블라디미르의 머리 위에서 일직선으로 내려쳐졌다.
“썅!”
거친 욕설과 함께 블라디미르의 몸 전체가 피안개로 화했다.
‘아직 놈의 능력이 뭔지 모르는 이상, 일단 놈의 공격을 무력화시킨다.’
한 줌 핏물로 화한 블라디미르의 몸이 절반으로 나뉘며 미르온의 해머를 피했다.
콰아아앙!
지면을 강타한 미르온의 해머는 살벌한 기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슈르르르르르!
도끼를 피하고 원래대로 돌아온 블라디미르는 또다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이, 이 개… 같은 새끼가!”
지면을 내리치던 미르온의 해머에 스친 걸까.
돌아온 블라디미르는 추가로 으스러진 왼발을 부여잡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블라디미르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 분명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놈이 차력 계열의 이종의 힘을 몰래 펼친 줄 알았건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오러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지금껏 블라디미르가 잡아먹어온 기사들의 수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미르온이 오러를 썼다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결론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저 해머인가!’
“끝이다!”
어느새 독이 퍼져 숨소리가 다소 거칠어진 미르온이 마무리를 짓기 위해 블라디미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때, 블라디미르가 강하게 지면을 내려쳤다.
그러자.
몽글몽글.
주변에 흩뿌려졌던 블라디미르의 피들이 작은 구슬처럼 뭉치더니.
쭈와아아악!
미르온의 몸을 향해 쏘아졌다.
미르온은 아까의 공격처럼 피의 무기들을 뿌리는 줄 알고 해머로 막으려 했지만.
촤라락!
“?!”
피구슬들은 엿가락처럼 늘어나더니 미르온의 해머를 휘감은 채 단단하게 굳었다.
타고난 힘을 가진 미르온이었지만, 블라디미르의 피로 만들어진 속박을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 틈을 타 재차 블라디미르가 접근하여 피안개를 흩뿌리려 하자.
미르온은 속박된 해머를 고정한 채 놈을 향해 힘껏 돌려 찼다.
퍼엉!
역시나 터져 나가는 블라디미르였지만.
치이익!
맨 처음 피안개에 닿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미르온의 다리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흐, 흐하하하하! 이제 알겠다, 네놈! 그 해머였구나!”
블라디미르가 광소를 터뜨렸다.
오러도 아니고, 이종의 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무기에 장난질을 쳐놨단 뜻이지.’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에 의기양양해진 블라디미르가 외쳤다.
“흐흐흐, 잠시 놀라긴 했다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블라디미르가 미르온의 해머를 속박한 채 재차 피안개를 흩뿌릴 때.
화아악!
블라디미르의 옆에서 뜨거운 기운이 밀려왔다.
아리아와 웬디널 가문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블라디미르를 향해 불꽃과 전격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는 장식인 줄 알아?!”
미르온이 몰아붙이는 것 같아 개입할 기회만 보고 있었는데, 상황이 바뀌는 듯하자 바로 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이 빌어먹을 년이!”
블라디미르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나씩 상대했다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 합세하니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오냐,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라면 먼저 죽여주마!”
블라디미르는 미르온의 해머를 계속해서 속박한 채 아리아를 향해 움직였다.
“이런! 영애, 피하십시오!”
미르온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블라디미르는 더 이상 미르온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무식하게 큰 기사 놈은 저 해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속박을 풀어낼 가능성도 없으니, 설사 움직인다 하더라도 해머를 포기해야만 가능할 터.
그렇다면, 저 기사는 더 이상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아리아와 수행 마법사들이 다시금 라이트닝과 파이어 볼을 펼쳤다.
아마 피가 열기에 약하다 여기고 대처한 거겠지만.
“소용없다!”
맞지 않는 마법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변칙적이지도 않은, 정직하게 직선으로 날아오는 불꽃 따위.
그 불꽃의 모양에 맞추어서 몸의 형질을 바꾸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손목과 발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냉정하게 거리를 좁히고 있던 블라디미르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급작스러운 살기에 다급히 몸을 피했다.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몸을 피한 블라디미르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해머를 속박당했던 기사였다.
“내 피의 속박을 풀어낸 건가? 어떻게?”
속박으로 경도를 높인 피는 강철보다도 단단하다. 쉽게 뜯어낼 수 없을 텐데.
게다가 뜯어낼 수 있었다면 진작 뜯어내지, 왜 지금껏 가만히 있었단 말인가?
블라디미르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크르르르르….”
산 것을 잡아먹는, 광폭한 최상위 포식자들에게서나 나올 법한 섬뜩한 소리.
해머가 닿은 부분은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움푹 크리에이터가 파여 있었다.
그 위협적인 광경은 블라디미르조차 모골이 송연하게 만들었다.
“영…애를, 지…킨다….”
살기는 훨씬 더 강해졌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미르온의 모습에 블라디미르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렇군. 그게 네놈이 가진 이종의 힘인가.”
격통이 느껴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만찬을 기대하던 블라디미르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보아하니, 정신과 힘을 바꾸는 힘인 것 같은데… 쯧, 재미없군. 내 몸에 상처를 입힌 자가, 겨우 저런 저질스러운 부류의 힘을 사용할 줄이야. 입조차 대기 싫군.”
블라디미르는 탁류(濁流)의 지류 중에서도 상당한 위치를 가진 이였다.
그만큼, 다루는 힘이 우수하다는 뜻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 미르온이 펼치는 광란(狂亂)은 블라디미르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였다.
인간인지, 짐승인지 모를 천박하기 그지없는 부류.
“…이제, 질렸다. 네놈도, 이 마법사 년도.”
그그그그그긍!
블라디미르의 손이 하늘로 향하자, 바닥에 흩뿌려졌던 피들이 허공에 모여 거대한 구(球)를 형성했다.
“가급적이면 온전한 미식을 즐기고자, 상처 없이 처리하려 했지만… 이제는 다 필요 없다.”
저급한 힘을 다루는 놈은 물론이거니와, 웬디널의 영애에게도 흥미가 떨어졌다.
게다가 더 지체했다가는, 목표물인 카르비어트 백작가의 공자도 합류하게 될지 몰랐다. 그럼, 더더욱 처리하기 귀찮아질 터.
“…아름답지 않아서 선호하지 않지만.”
블라디미르의 손이 아래로 향했다.
“귀찮으니 한 번에 먹어치워 주마.”
콰우우우우우!
지금까지는 유희였다는 듯이, 강력한 기운을 품은 핏빛 공이 미르온과 아리아를 집어삼키려 할 때.
“누구 마음대로.”
퍼어어어엉!
핏빛 공은 얼마 뻗어 나가지 못하고 산산조각으로 터져 나갔다.
터져 나간 핏빛의 공 뒤에서.
“네깟 변태의 저질스러운 식사거리가 되게 내버려둘 것 같나?”
서늘하고 묵직한, 하지만 기품과 의지가 담겨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