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털썩.
피투성이가 된 윅의 몸이 땅에 떨어지고, 아렌의 손에 들린 봉인이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을 때, 바인드가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쯧.”
아렌의 눈치를 슬쩍 살핀 바인드가 윅의 모습을 보더니만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전신에 마기를 두르고 있었고,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었지만, 재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흘러내린 피가 대지를 흥건하게 적셨고, 과돠출혈로 인해 하얗게 질려 버린 얼굴과 전신의 상처는 윅에게 가망이 없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쿨럭.”
큰 기침과 함께 입에서 선혈을 한 움큼 토해낸 윅이 눈을 떴다.
그 모습에 바인드가 긴장했지만, 이내 윅의 눈빛을 보고 표정을 풀었다.
한없이 차분한 눈빛.
냉정한 느낌까지 드는 그 눈빛은 바인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암살자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세를 졌군.”
“무슨 말이지?”
윅의 중얼거림에 아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아렌의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은 윅이 봉인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봉인을 말하는 거다. 몸에서 떨어지니 알겠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을 몸에 품고 있었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암살자로 돌아온 윅이 지난 시간을 반추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는 느낌이야. 자신을 잃는다는 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지.”
“그렇군.”
사람의 성격이 변할 수 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살아온 삶의 궤적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다.
외부의 개입에 의해서 한순간에 사람이 변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일 터.
뜬금없지만 아렌은 알코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드디어 죽을 수 있겠군.”
“……선대.”
피투성이의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는 윅의 말에 바인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 나름대로 느낀 것을 정리한 내용이 서고에 있을 거요. 마스터. 별건 아니지만 요긴하게 써준다면 고맙겠군.”
“……큰 힘이 될 겁니다. 선대.”
초인에 도달해서 심상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경지에까지 오른 윅의 기술이라면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보물일 것이다.
비록 제국을 파멸시키려는 생각에 미쳐있었지만 윅은 자신이 나고 자란 정보길드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던 것이고, 그러한 생각에 바인드는 가슴이 저렸다.
“봉인을 잘 부탁한다. 뭐 너라면 어떻게든 할 거 같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아렌을 본 윅이 눈을 감았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군. 그동안 힘들었어.”
윅의 일생은 그리 행복하다고 할 수 없었다.
어린 고아가 암살자가 되었고, 전설적인 경지에 이르러 세상을 구한 영웅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그 끝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수십 년간의 고통이었으니까.
그라인드가 관련되지 않았더라면 아렌도 손을 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12영웅 각각은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하아…….”
가벼운 한숨과 함께 윅의 입이 닫혔고, 다시 열리지 않았다.
“……선대.”
바인드가 자세를 바로하고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어찌되었든 윅은 정보길드의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강자였고, 대륙이 인정하는 영웅이었으니 이 정도의 예우는 당연하다고 바인드는 생각했다.
“물러나라.”
“예.”
아렌의 말에 따라 윅의 시체에서 물러난 바인드를 슬쩍 본 아렌은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먹구름에 한 가닥 의지를 쏘아 보냈다.
콰릉!
아렌의 의지에 호응한 낙뢰가 윅의 시체에 떨어졌고, 무진장의 힘은 윅의 시신을 순식간에 불태우며 정화했다.
봉인을 떼어냈다고는 하지만 윅의 신체는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오염되어 있는 상황이다.
섣불리 매장했다가는 주변의 대지를 오염시킬 것이 분명했고, 어설프게 봉인해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으니 아예 정화시켜 버린 것이다.
완전히 정화되어 재가 되어 버린 윅의 시신을 바인드가 가라앉은 눈으로 보고 있는 사이 아렌은 자신의 손에 들린 봉인을 바라보았다.
불길하게 번들거리며 마기를 두른 채 꿈틀거리는 봉인은 하나의 생명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고약하군.”
아렌의 영역에 갇혀있어서 바인드가 못 느끼는 것뿐이지만 봉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강력한 정신파를 사방으로 방출하고 있었다.
일반인이 파편에 스치기만 해도 광기에 사로잡힐 것이고, 마나를 사역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오래 버티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영웅이라 불릴만하다.”
이런 봉인을 몸 안에 품고서 버티었으니 아렌은 윅의 시신이 있던 자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그 봉인을 어떻게 하시려는지요?”
그런 아렌의 인정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던 바인드가 이내 봉인을 보면서 침을 삼켰다.
파괴가 가능한 물건이라면 진작 파괴했을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니 봉인했던 마룡의 파편이다.
물론 당시 영웅들의 상황이 열악했으니 봉인이라는 수를 썼겠지만, 그럼에도 절대 만만치 않은 물건인 것이다.
“정화할거다.”
“가능하겠습니까?”
봉인을 분리해낸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정화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회적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지난 40년 동안 어떻게든 되었겠지 싶었던 것이다.
“보면 알겠지.”
말과 함께 봉인이 둥실 떠오르더니 아렌의 손을 벗어나 허공에 안착했다.
치지지직!
허공에서 꿈틀거리는 봉인이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움직였지만, 봉인의 주위에서 번뜩이는 뇌전은 그런 봉인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은 의지에 따라 갈리기 마련.”
나직하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에 바인드가 절로 긴장했다.
쿠르르릉!
거대한 의지가 영역을 가득 채우고, 하늘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그에 호응해 거칠게 꿈틀거렸다.
어느덧 비가 멈추고, 산을 두들겨 대던 벼락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니만 이내 사그라졌다.
쿠구궁!
이제는 끝났구나 싶어서 안심하던 영지민들의 표정이 다시금 심각해졌다.
폭우와 벼락은 멈췄지만, 먹구름은 흩어지지 않았고, 상 정상에 머물러 있는 구름내부에서 끊임없이 전하가 번쩍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던 바인드가 질린 표정으로 공동의 구석으로 물러나 방호태세에 들어섰다.
아티펙트를 발동시키고, 마법진을 이용한 결계까지 친 바인드였지만, 안심하지 못하고 온 몸에 오러를 단단히 두를 정도.
그 정도로 아렌의 심상이 집중된 힘은 그 여파만으로도 세상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파지지지직!
봉인도 그 기색을 알아차린 것인지 움직임이 격렬해졌지만, 더욱 촘촘해진 뇌전의 그물이 단단히 봉인을 붙잡았다.
이제는 헤르메스의 하늘에 먹구름만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모두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마치 태풍의 핵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모두들 몸을 숨기며 두려운 눈으로 산 정상만을 바라보던 그때.
쩡!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또 다른 태양이 지상에 강림한 것처럼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 * *
원숙한 마스터에 이러르 오러를 자유자재로 사역하는 바인드였지만, 순간적로 터진 광량은 그런 바인드로서도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바인드는 상황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은 바인드가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었다.
빛.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던 먹구름의 모든 힘이 하나의 점에 집중되었고, 그 점에서 쏘아진 빛은 뇌전과는 다른 형태의 빛으로 화해 일직선으로 봉인에 꽂혔다.
– 끼아아아아악!
세상의 모든 악의를 담은 것 같은 비명이 울려 퍼졌고, 일순간 바인드의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지만, 비명은 공동을 벗어나지 못했다.
“죽어라.”
엄숙하기 짝이 없는 아렌의 말에 실린 의지가 봉인을 옥죄었고, 봉인의 뒤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쾌한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드래곤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이형의 그림자.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될 것 같은 모습에 바인드가 이빨을 꽉 물었지만, 아렌은 여전한 눈으로 그림자를 노려보았고, 강대하기 짝이 없는 빛의 집중은 서서히 그림자의 크기를 줄여나갔다.
-……까아아아아.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아렌의 이마에 땀방울이 솟아날 무렵, 봉인을 감싸고 꿈틀거리던 그림자가 마지막 단말마와 함께 사그라지더니만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팅.
봉인이 바닥에 떨어지고 먹구름이 흩어지며 가려져있던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 햇빛을 대지에 비췄다.
바인드가 질린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느릿하게 걸어간 아렌이 봉인을 집어 들었다.
이제는 그냥 손바닥 안에 들어올 만한 크기의 구슬이 되어 버린 봉인의 모습은 그다지 특색이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아렌의 눈은 다시금 힘을 발휘해 봉인의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끝났군.”
“……대단하십니다. 도련님.”
아렌의 선언에 바인드가 탄복했다는 표정을 짓더니만 정중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세상사람 그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아렌은 지금 대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이었고, 그것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일인 것이다.
아렌이 봉인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에 가져다대자 거짓말처럼 봉인이 아렌의 가슴속으로 사라졌다.
두근!
마기가 사라지며 대부분의 힘이 사라진 봉인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의 잔재는 여의주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아렌은 여의주가 성장했다는 느낌에 미소를 지었다.
경외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바인드를 슬쩍 본 아렌이 발길을 돌렸다.
“영약과 정보를 준비해 놓거라.”
“걱정 마십시오.”
확고한 의지가 실린 바인드의 대답을 들은 아렌이 통로로 향했고, 통로 저 너머에서 달려오는 벡스터와 산 정상에서 떨어져 내린 드웨인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 * *
“음?”
영혼 깊숙한 곳을 울리는 고동에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만 이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랍군. 이런 일이 있을 가능했나? 봉인 하나가 완전히 소멸했다.”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소멸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함이 정상이지만 사내는 심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러면 계획이 어그러지는데 ……. 확인을 해 봐야겠군.”
심각한 표정의 사내가 서성거리며 생각을 거듭하다가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네가 제일 미친놈이라는 생각뿐이다.”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사내, 쿨리크가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다 같이 미쳐 있지 않았나?”
“그래도 너만큼은 아니야! 봉인을 유지하는 것은 미쳐 있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이유다!”
커다란 마법진에 둘러싸여 구속되어 있는 미하일이 피를 토하며 외쳤다.
쫙 벌려진 사지 곳곳에는 보기에도 불길해 보이는 대못이 박혀서 미하일을 단단히 구속하고 있었고, 흉흉한 빛을 뿜어내는 마법진의 빛은 미하일의 가슴에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고 있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미하일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마기가 그를 죽지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나는 고민했네. 미하일.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으며 죽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이야.”
그런 미하일의 외침을 무시한 쿨리크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룡을 봉인했지만 빌어먹을 황제는 우리를 가뒀지. 그렇다는 건 마룡보다는 황제가 더한 악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쿨리크의 이야기에는 두서가 없었지만 본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악을 없애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려서는 안 돼. 하지만 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는 강하기 그지없지.”
심각한 표정으로 고뇌하는 쿨리크의 모습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용사의 그것과 같았지만, 미하일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쓸 수 있는 건 다 써야겠지. 겸사겸사 자네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니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거야.”
“그렇다고 마룡을 부활시키겠다는 거냐!”
미하일의 외침에 쿨리크가 환하게 웃었다.
“걱정 말게나. 결국 힘을 다루는 것은 강인한 의지가 있으면 되는 것. 이 쿨리크의 의지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네.”
12영웅 중 최강이며, 빛의 용사라고까지 불리던 쿨리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그러니 이만 쉬게나. 자네의 봉인은 내가 유용하게 쓰겠네.
“쿨리크!”
미하일의 가슴이 들썩거리며 봉인이 빠져나왔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쿨리크의 두 눈에 광기가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