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날카로운 예기를 풍기며 검이 허공을 갈랐다.
캉!
“크윽!”
요원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다렌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힘이 모자라십니다.”
“알고 있어!”
냉정한 목소리로 움직임을 지적하는 루갈의 목소리에 다렌이 이를 악물고 재차 검을 휘둘렀다.
마구잡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힘과 절도가 있어 명문의 검술이 분명해 보이는 움직임이다.
검날에 희미하게 오러마저 일렁이고 있었으니, 다렌의 나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성취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누구도 그의 성취를 칭찬하지 않았고, 다렌 역시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지 않았다.
“이놈들!”
한쪽 구석에 제압되어 있던 요원들이 격렬히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내 벡스터의 검이 움직였다.
썩!
“커억!”
가벼운 검놀림처럼 보였지만, 순식간에 관절을 끊어놓는 솜씨에 일부는 감탄을, 일부는 악독한 시선을 보냈다.
차차차창!
다렌과 요원의 전투는 종막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지금은 좋았습니다. 조금 더 집중하십시오.”
냉정하기 그지없는 루갈의 말에 다렌이 이를 악물고 요원을 몰아붙였고, 애초에 몸 이곳저곳에 제약이 가해져 있던 요원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푹!
인간의 살갗을 가르고 파고드는 느낌이 검을 타고 그대로 다렌에게로 전해졌고, 순간 욕기지가 올라올 것 같았지만, 다렌은 이를 악물었다.
콰득!
검날을 비틀어 마무리를 한 다렌이 조심스레 시체에서 검을 빼들고는 물러섰다.
꽤나 지쳤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모습에 루갈과 벡스터를 비롯한 기사들이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전투의 흥분에 잔뜩 고양된 다렌에게 벡스터가 수건을 건네며 어깨를 두들겼다.
상급자에게 할 태도가 아니었지만 지금의 다렌은 그라인드의 혈족보다는 한 명의 기사였으니 벡스터의 행동을 타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훌륭하셨습니다!”
“아직 힘이 모자란 것 같지만 그거야 아직 도련님 나이가 어리니 어쩔 수 없지요. 열심히 먹고 수련하면 좋아질 겁니다.”
저마다 다렌에게 덕담을 건네는 기사들의 모습에 루갈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각자 비참한 모습으로 무릎 꿇려진 요원들은 얼굴을 크게 일그러트리며 비틀린 음성을 내뱉었다.
“이 잔인한 놈들! 기사라는 놈들이 이런 비겁한 짓을 하다니!”
다렌을 습격한 요원들은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본격적으로 기사 수업을 시작한 다렌에게 붙어있었던 것은 1기사단의 단장인 루갈과 벡스터를 비롯한 정예 기사들.
드웨인의 성취에 크게 자극받고, 아렌의 조언이 더해진 루갈은 알게 모르게 마스터에 진입했고, 아렌에게 직접 사사받은 벡스터는 최상급의 문턱에 발을 디뎠으니, 제아무리 정예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넘어설 수 없었다.
외려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제압당한 그들을 적절한 조치를 취한 후에 다렌의 실전을 위한 교보재로 던져주었으니 요원의 입장에서는 이토록 잔인한 자들이 없었던 것이다.
“암살자들에게 기사도를 적용해줄 것 같으냐.”
루갈이 콧방귀를 뀌며 요원을 비웃었다.
“암살자의 처우가 어떤지에 대해서 몰랐다고는 말 하지 못 할 거고, 거기에 너희와 우리는 전쟁 중이지.”
냉정하기 그지없는 눈빛에 요원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꽤나 재미있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기대해라.”
잔인하기 그지없는 대답과 태도에 요원들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요원들을 비웃은 루갈이 이내 몸을 돌려 다렌에게로 향했다.
실전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다렌은 어린 나이.
직접적으로 이렇게 마무리까지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알고 있으니, 어린 기사의 정신을 바로 잡아주는 것도 그의 의무다.
“호흡을 깊게 하십시오. 별 거 아닙니다.”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말하는 벡스터의 목소리는 훌륭하게 다렌을 진정시키고 있었고, 루갈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용병 출신이어서 자신들에 비해 온갖 경험을 거쳐 온 벡스터는 확실히 정통적인 기사인 자신과는 다르게 보는 시야가 넓었고 루갈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도련님하고 술이라도 한 잔 해야겠군요.”
루갈의 너스레에 하얗게 질려서 굳어있던 다렌의 얼굴에도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로렌과 다렌, 그리고 아렌.
어쩌면 처절하게 골육상쟁을 벌였을지도 모르는 형제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 * *
그라인드 백작가의 습격 소식은 삽시간에 전 대륙을 강타했다.
중요 요인들을 보호하는데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백작가의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소식을 듣고 무섭게 분노한 알코르가 황금이 가득 쌓여있는 창고 하나를 더 개방하라고 명령하니 온갖 재화가 귀족군으로 흘러들었다.
제국의 이 내전은 전 대륙의 이목이 쏠려 있는 상황이다.
국경에서의 국지전을 일체 멈출 만큼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도 그럴 것이 이 내전의 결과에 따라서 대외 정책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팽창을 고집하는 황제와 내실을 추구하는 황태자의 성향은 유명한 것이었고, 전쟁의 결과에 따라서는 남동부와 남부가 제국에서 독립할 수도 있었다.
이렇듯 온 대륙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후방 테러는 이용하기 좋은 소재였고, 리헐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실에 살을 붙여서 교묘하게 각색한 내용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황제와 공안은 악의 축이 되어버렸다.
제도를 포위하고 통신을 막아버린 시점이니 황제와 공안이 여론전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습격사건에 더해서 각종 비방과 비난을 황제군에게 선포하니 그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일정도였다.
원래 전쟁이라는 것은 수당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후방에 테러를 가하는 것 정도는 애교였고, 필요하다면 더 한 일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들키고 저지당한다는 것은 아예 다른 일이 아닌가.
기회가 이때라는 듯 황제를 향한 비난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슬그머니 간을 보던 귀족들도 귀족군에 합류하기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제국과 국지전을 벌이고 있던 왕국들은 의용병까지 보내준다고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으니, 리헐트는 각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어깨춤을 출 정도였다.
그렇게 황제군의 사기를 떨어트린 채 전쟁이 재개 되었고.
황금보다 비싼 골렘이 또 다시 수십 기 투입된 전역에서 귀족군은 성채도시 하나를 넘어설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황금의 모습에 아인이 뒷목을 잡았지만 자식들이 습격당한 알코르의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고, 그렇게 무자비한 물량의 폭격으로 최종 저지선이라는 성채도시를 함락시켜버린 것이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본격적인 제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위성도시들.
각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제도의 한 축을 지탱하는 도시들이니 이제야 귀족군의 제도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위치까지 다가섰다.
* * *
군대의 움직임은 신속하고 절도가 있어야 하지만 귀족군 정도의 체급이 되면 그것도 쉽지 않았다.
병력만 수십만에 그 뒤를 지탱하는 인원이 그 수만큼 있고, 실시간으로 병력이 불어나는 상황이니 귀족군의 진형은 혼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리헐트를 비롯한 수뇌부가 뜻을 하나로 모아 지휘권을 확립시켰기에 망정이지 귀족들이 제각각 목소리를 냈다면 귀족군은 아직까지 전쟁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성채를 함락시켰으니 진중을 옮기는 것은 당연하다.
관문도시의 건물을 징발해서 진중을 옮긴 귀족군은 방비를 단단히 하고 거점으로 삼았다.
귀족군이 쓰던 막사로 관문도시의 백성들을 모조리 소개해 내부의 위협을 막았고, 오로지 귀족군의 병력만으로 도시를 채웠다.
가장 높은 성에 전쟁본부가 자리하고 각 군단의 사령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니 리헐트는 그제야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콧대 높은 귀족들이 관문도시의 저택들을 징발해서 자신의 거처로 삼았고, 은연중 더 화려한 저택을 자신의 거처로 삼는 것으로 명예를 드높이려고 했으니, 그러한 눈치 싸움이 심상치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귀족들도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두 채의 저택은 건들지 못했다.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저책은 알코르가 차지했다.
알코르 자신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귀족군의 머리 중의 하나인 알코르에게 가장 좋은 거처를 제공하는 것은 귀족군을 이루고 있는 귀족들의 체면과도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귀족들은 자진해서 가장 좋은 저택을 알코르에게 내준 것이다.
두 번째로 훌륭한 저택 역시 감히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렌.
인세에 나타난 초인의 거처를 감히 탐낼 수 있는 간 큰 귀족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아렌은 당연하다는 듯이 저택의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디어뮈드를 비롯한 붉은 가지 용병단의 기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저택의 곳곳에 포진했고, 원래 근위기사였던 그들의 모습은 칼 같은 정예함을 사방으로 보이고 있었으니, 감히 아렌에게 접근하는 간 큰 귀족은 없었다.
간간히 알코르나 리헐트만이 아렌의 저택을 방문할 뿐, 홀로 전쟁에서 떨어진 것 같은 고요한 장소였지만 귀족들은 일체의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황제를 견제하고 있었으니 그 사실을 모르는 귀족은 없었고, 철없는 자식들을 단속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귀족들과 기사들은 물론 일반 병사들마저 아렌의 저택 앞을 지날 때면 몸가짐을 단정히 하였으니 아렌의 거처는 전쟁본부 이상으로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 * *
“상태가 좋지는 않구나.”
“정원사까지 도시 밖으로 소개했으니까요. 원하신다면 솜씨를 조금 부려보겠습니다.”
자신에게 배정된 저택에 딸려있는 정원을 보며 작게 투덜거린 아렌에게 디어뮈드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고, 아렌은 손을 털었다.
“기사에게 그런 짓을 시킬 수는 없지. 어차피 오래 있을 곳은 아니니 괜찮다.”
잘 정돈되고 가꾸어진 정원은 손님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고, 숙련된 정원사의 몸값은 비쌌다.
아렌 역시 정원을 보며 차를 마시는 취미가 있었는데, 거처로 받은 정원이 손을 타지 않아서 황폐해진 모습에 언짢은 기분이 든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렌의 말에 공손히 대답한 디어뮈드였지만 속으로 정원사를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모시는 주인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마치 정원을 사생결단을 낼 것 같은 표정으로 노려본 디어뮈드의 모습에 아렌은 피식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괜찮군.”
“미겔의 솜씨가 괜찮지요.”
아렌의 칭찬에 디어뮈드가 뿌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차를 즐기는 주인을 위해서 특훈을 거듭한 휘하의 기사를 생각하며 디어뮈드는 크게 치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기울이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해가 떨어지려하고 있었고, 전쟁터의 한 복판이지만 평온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에서 아렌이 입을 열었다.
“나와라.”
“…… 누군가 있습니까?”
밑도 끝도 없는 한 마디였지만, 디어뮈드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지며 몸이 슬쩍 숙여졌다.
늘어트린 손은 가볍게 흔들거리고 있었고, 적절하게 굽힌 관절들은 목표가 정해지는 순간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 적을 분쇄할 것이 뻔했다.
원숙한 소드마스터에 도달해서 그 너머를 넘보고 있는 자신의 감각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지만, 아렌이 그렇다면 그런 것.
디어뮈드가 완전 경계 태세로 진입해 사방을 자신의 감각으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주변의 변화는 없었고, 디어뮈드의 눈에도 의문이 떠오를 무렵.
“말을 안 듣는군.”
파직!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아렌이 손을 튕기자 정원의 한쪽 구석이 일렁거렸고, 동시에 디어뮈드가 빛살처럼 튕겨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