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낮고 음울하지만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에 전장에 모인 모두가 깜짝 놀라 귀를 기울였다.
제아무리 밉고 죽일 놈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신이 아닌가.
그런 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이니 범상치 않을 것이 분명했고, 이것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 뭐?!”
황제의 당황한 모습에 천사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이 전장에서 몇몇의 사람만이 목소리의 정체를 유추해 낼 수 있었다.
“…… 역시 대단한 놈이야. 쿨리크. 세상 다시 없을 위선자이기는 하지만 빛의 용사라고 불릴 만하다.”
마크의 중얼거림에 세 명의 영웅들이 눈을 마주쳤다.
쿨리크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들은 바가 있었고, 황제의 상태를 보았을 때, 이미 봉인을 적출당해 죽었음이 확실한 상황.
그런데 그런 그의 목소리가 황제의 내부에서 울린 것이니 사태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봉인에 자신의 의지를 옮겨놓고 때를 기다렸다고? 그런 도박을 했다는 것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부르바스의 모습에 마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도박 정도는 할 만하지. 마룡을 토벌하러 갔을 때는 더 미친 짓도 했으니까. 무엇보다.”
마크의 시선이 저 멀리 허공에 떠 있는 아렌에게로 향했다.
“확실한 보험이 있잖아.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 분명한.”
마룡을 토벌하러 간 108영웅의 길 앞에는 고난과 좌절이 가득했다.
완전히 마계화가 이루어진 땅에서는 끊임없이 마물이 솟아올랐고, 때에 따라서는 악마도 소환되었으니 보보마다 죽음의 함정이 즐비했다.
거기에 108영웅들 역시 똘똘 뭉치지 못하고 서로를 견제하기 바빴으니 몰릴 대로 몰릴 영웅들은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마룡을 봉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경험을 최선두에서 헤쳐 나온 쿨리크에게 있어서 아렌이라는 존재는 무엇보다 확실한 보험이었고, 지금 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박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흐흐흐흐. 네놈들이 내 몸에 해 놓은 수작질에 영감을 얻었지.
틱.
“크헉!”
황제의 신성에 미세한 금이 그어졌고, 끔찍하기 그지없는 고통이 황제의 영육을 달렸다.
“쿨리크!”
그제야 어찌 된 것인지 짐작한 비욘이 비명을 질렀고, 천사들과 황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완전히 소멸되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쿨리크의 의지가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저 의지가 쿨리크 자신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것까지 꼼꼼하게 확인했고, 무려 신을 위한 제물을 만드는 것이니 비욘과 마법사들은 확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쿨리크는 봉인에 자신의 의지를 옮겨놓는데 성공했고, 지금 그것인 치명적인 비수가 되어서 황제의 내부를 헤집고 있는 것이다.
티딕.
“끄아아아!”
황제의 비명 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고, 신이 진정으로 고통스러워 외치는 비명 소리에 세상이 떨었다.
“컥!”
“끄으으으.”
이능을 다루지 못하는 일반 병사들이 그 영향을 받아 가슴을 쥐어뜯거나 입에 거품을 물었고, 화들짝 놀란 신관들이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 아렌 드 그라인드.
희미한 형체가 황제의 몸에서 솟아올랐고, 그것은 생전의 쿨리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으니 아렌은 창백한 안색으로 쿨리크와 눈을 마주쳤다.
– 꼴좋군.
“너는 괜찮아 보이는구나.”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쿨리크의 말에 아렌이 피식 웃었다.
쿨리크가 어떤 상태인지는 보자마자 파악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의지.
온전한 영혼도 아니고 오직 강렬한 탐욕을 기반 삼아 봉인에 남겨놓은 한 가닥 의지뿐이었으니 시간이 지난다면 쿨리크의 안배는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쿨리크는 영육을 건 도박에 성공했고, 아렌은 눈앞의 사실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비록 머지않아 사라질 한 가닥 사념일 뿐이지만 아렌은 그 결과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크흐흐흐흐. 네놈한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니. 도박이 성공한 것보다 그게 더 마음에 드는군.
티디딕.
“억!”
일렁이는 쿨리크의 환영이 크게 웃으며 출렁거렸고, 황제의 얼굴이 더욱더 크게 일그러졌다.
– 마음 같아서는 네놈을 한없이 비웃어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
쿨리크의 환영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황제의 앞에 나타났다.
– 흐흐흐. 비참한 모습이구나.
“…… 이 비천한 놈이 감히! 어억!”
티틱!
– 크흐흐. 비천과 존귀를 누가 정한다는 말이냐. 그렇게 따지면 한없이 비천한 태생을 가진 것이 너 자신일 텐데.
신성은 그야말로 모든 것.
그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쿨리크는 황제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 태생마저도 알 수 있었으니 진심으로 비웃을 수 있었다.
그런 쿨리크의 환영을 무섭게 노려보는 황제의 얼굴을 보면서 쿨리크는 비릿하게 웃었다.
– 운과 시대에 맞지 못해 너 따위에게 먹혀버렸지만 그래도 내 탐욕이 너에게 질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쿨리크의 얼굴에 광기와도 같은 탐욕이 번들거렸다.
– 감히 너 따위가 탐욕의 신이라는 진명을 쓰는 것도 불쾌하고.
쩍!
“끄악!”
신성의 균열이 커지면서 그 안에 내용물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도 탐욕의 마음일지니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너의 탐욕을 탐하겠다.
뭉클.
고통스런 와중에도 신성을 주시하던 황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완전무결해야 할 신성의 표면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고, 그 사이로 불길하기 짝이 없는 뭔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 이제 나는 사라지지만 후회는 없다. 세상 제일의 욕심쟁이에게 한 방 먹였으니 이 어찌 기껍지 않을까.
흐려진 쿨리크의 환영이 아렌을 바라보았다.
– 그렇지 않은가?
“그래. 훌륭하다.”
안색이 조금은 나아진 아렌이 감탄했고, 쿨리크의 환영이 환하게 웃으며 출렁거렸다.
– 그거 기분 좋은 말이군.
말과 함께 쿨리크의 환영이 사라졌고, 한 줄기 강대한 사념이 천상으로 치솟아 올랐다.
비록 한 조각 의지라고 하지만 쿨리크가 보여준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망과 아집의 극한.
크게 감탄한 만신전의 누군가가 사라질 사념을 붙들어 올린 것이니 어쩌면 쿨리크는 천상에서 새로운 존재로 탄생할지도 몰랐다.
하늘을 담담히 보던 아렌이 시선을 황제에게로 돌렸다.
가슴이 뻥 뚫리고 양 손목이 날아간 황제가 창백한 안색으로 몸을 덜덜 떨고 있었고, 그 앞을 드라고와 루드비히가 막아서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아렌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고 어느덧 전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으니 그들이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황제마저도 정상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며 경계하는 드라고와 루드비히르 보면서 아렌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방향이 잘못되었구나.”
“…… 무슨 수작이냐.”
황제에 대한 광신으로 뭉쳐서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를 넘어 황제의 모습을 본 아렌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인과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군. 신이 함부로 세계를 거닐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
“…… 그게 무슨 소리지?”
뜬구름 같은 아렌의 말에 드라고와 루드비히가 아연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콰지지직!
“끄아아아아!”
끔찍한 소리와 함께 들린 비명 소리와 저도 모르게 둘은 뒤를 돌아봤고, 그 순간 거대한 어둠이 둘의 몸을 삼켰다.
* * *
신혈이 뚝뚝 떨어지는 상처에서 검은색의 뭔가가 꿈틀거리더니만 이내 무섭게 증식하기 시작했다.
신의 육체라는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 최고의 재료를 바탕으로 삼았으니 그 속도는 세인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고, 황제의 가슴과 양팔에서 시작된 검은 살덩이는 순식간에 주변의 천사들을 덮쳐 그들을 자신의 안으로 끌어당겼다.
“…… 이익!”
“황제 폐하!”
“…… 어림없다.”
비욘과 마법사들이 황제를 외치며 절망에 빠져있는 사이, 드라고와 루드비히는 강렬하게 저항했다.
황제의 안에서 솟아나왔지만 황제와는 다른 것.
영적으로 연결된 그들은 대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일단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촤자자작!
각기 무기를 휘두르고 검붉은 신성력을 발해서 검은 살덩이를 최대한 밀어붙였지만, 전혀 물러서지 않는 육괴의 물결은 그 둘의 저항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 크르르르르.
황제의 가슴에서 튀어나온 살덩이가 어느덧 황제의 상반신을 다 삼켜버리더니만 이내 짐승의 얼굴로 변해서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안 돼!”
한 소리 비명과 함께 육괴에 삼켜 져버린 드라고와 루드비히의 모습을 아렌은 냉정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용의 눈으로 저 끔찍하게 부풀어 오르는 살덩이 너머의 본질을 보려 했고, 어느덧 아렌의 시선은 황제의 신성을 엿보고 있었다.
“……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야.”
아렌은 새삼 쿨리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의지를 새겨 넣어서 황제의 발목을 잡은 것도 대단한데, 소멸하기 직전 황제가 삼킨 봉인을 건드려서 마룡을 깨워버렸다.
정상적인 상태의 황제라면 이러한 사소한 반란 따위 가볍게 제압했을 것이다.
진명을 가진 신이 아닌가.
그 진명의 특성상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니 더욱더 쉽게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고, 쿨리크의 발버둥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렌에 의해서 막대한 타격을 받은 지금.
반란을 제압할 여력이 있을 리가 없었고, 쿨리크의 책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 맙소사.”
“…… 저게 마룡인가? 자네들은 저런 것 하고 싸운 건가?”
“…… 조금 분위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맞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군.”
부르바스의 물음에 답한 마크가 인상을 찡그렸고, 그것은 나머지 세 영웅들도 다르지 않았다.
봉인을 떼어냈다고는 하지만 잔재는 영혼과 동화되어 남아있으니 육체만을 놓고 본다면 마크를 비롯한 영웅들은 마계의 존재들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마계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는 마룡이 다신 현신했으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고, 그 끔찍한 모습을 다시 보니 트라우마가 떠오른 것이다.
“…… 황제가 흡수한 봉인은 세 개다. 그 정도라면 완전한 부활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문제는 부활의 매개체야.”
“…… 그렇군. 신의 육체를 매개체로 삼았으니까. 위험성은 더하군.”
마크의 말에 부르바스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08영웅들이 상대했던 마룡은 힘과 지혜, 연륜을 겸비한 교활하기 짝이 없는 강대한 적이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았고, 마물과 악마들을 투입해서 영웅들의 전력을 착실하게 깎아나갔고, 필요하다면 내분을 일으키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최악의 적.
다행히 완전한 부활은 아니어서 본능만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하필이면 부활의 기반이 된 것이 신의 육체가 아닌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모습만 하더라도 마기로 이루어진 마계의 존재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신과 마기가 이루어진 새로운 종이라고 할 수 있는 초월체.
어쩌면 황제나 마룡보다 지금의 저것이 더 상대하기 까다로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크오오오오오!
열두 장의 날개와 세 개의 머리, 여섯 쌍의 다리를 가진 그것의 몸체는 하나의 성을 방불케 하는 크기였고, 그러한 괴수가 자신의 탄생을 기뻐하며 지른 함성을 결코 세상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모두가 그 끔찍한 소리에 몸을 떨고 있을 때, 아렌의 시선은 괴수의 몸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
상반신의 일부만 남은 황제가 살덩이에 파묻힌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고, 검붉은 신성을 발하며 그 힘을 사방으로 흘리고 있었다.
– 크르르르르.
황제의 신체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과시하듯, 세 개의 머리가 짙은 탐욕을 흘리는 모습에 아렌이 인상을 찡그렸다.
“시끄럽다.”
나직하지만 묵직한 위엄이 가득한 음성에 세 개의 머리가 일제히 아렌을 바라보았고, 아렌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빨리 끝내자꾸나.”
혼돈에서 생겨난 요괴와 마물을 퇴치하고 물리치는 것은 용의 업이다.
신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러한 괴수들을 퇴치하는 것은 용이 된 아렌의 운명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세상에서 가장 강대해 보이는 괴수를 앞에 두고도 아렌은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용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