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89
089화
“창조라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은 마일리가 중얼거렸고, 부르바스는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확신할 수 있겠나?”
아렌이 가만히 부르바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의견을 구하고는 확신을 원하는군.”
부르바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안하군.”
가만히 찻잔을 들어 올린 아렌이 향을 음미하며 입을 열었다.
“답변은 충분한 거 같군.”
“알겠네. 고맙군.”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마일리가 고개를 홱 돌렸다.
“말도 안 됩니다! 창조라니! 간단한 마법생물을 말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흥분한 마일리의 모습에 부르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적인 생물체나 골렘, 간단한 호문클루스 정도는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제국의 마법이다.
하지만 생명체, 그것도 지성체를 창조하는 것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고, 금기를 밥 먹듯이 어기는 흑마법사들도 무수히 많은 시도를 했지만, 기껏해야 망자를 모욕하거나 생물체를 합성시키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신전에서는 창조를 하는 행위를 신이 금지시켰다고 믿고 있었다.
마법사는 세상의 법칙을 비트는 자들이다.
신전의 믿음에 오기가 생긴 마법사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창조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겠지만, 아직까지 그 길은 멀고도 멀었다.
“몸뚱이야 어떻게 되겠지.”
그런 현 마법 체계에 대해서 한참 토로하던 마일리와 부르바스의 고개가 홱 돌았다.
“······뭐라고 말했지?”
마일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광기가 서린 그의 모습에 피식 웃은 아렌이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다. 몸뚱이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다른 곳이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나.”
부르바스마저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렌이 눈을 반개했다.
“무인은 육체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지.”
찻물을 한 모금 마신 아렌이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신체에 대해 파악하게 마련이다.”
아렌의 시선이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있는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어지간한 돌팔이는 저리 가라 할 정도지.”
아렌의 시선이 다시금 두 마법사에게로 향했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신체에 대해서 더욱 깊게 파악하게 되고, 종극에는 인체의 말단까지 파고들게 된다.”
상상도 못해본 심오한 이야기에 두 마법사는 물론 드웨인과 기사단, 베로라와 벡스터 역시 귀를 기울였다.
“인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 물질이야 세세하게 나눠도 몇 개 안되지. 그렇다면 조건은 갖춰지지 않나?”
부르바스가 탄식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자네의 말이 틀리지 않겠지. 인체의 말단까지 파악한 자에게 재료만 쥐어주면 몸을 빚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겠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 역시 아니다. 그래서 몸뚱이라면 어떻게든 된다고 한 거야.”
마일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거기에 마법사의 조력이 있으면 일은 더 쉬워지겠지요. 공자가 무슨 의미로 말을 했는지 알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인체연성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된 두 마법사는 주위를 잊은 듯 보였다.
그런 두 마법사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렌의 눈빛이 깊어졌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지.”
“음?”
“무슨 말이오. 아렌 공자?”
엄숙한 얼굴을 한 아렌이 말을 이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이니까.”
말에 실린 무게에 두 마법사가 일순 말을 잊었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아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아무리 몸이 있어도 영혼이 없다면 그저 고깃덩이나 마찬가지. 다른 영혼을 가져다 씌운다면 그건 창조가 아니지.”
잠시 숨을 고른 아렌이 말했다.
“그래서 실패작이라고 한 거다.”
아렌이 마일리의 손에 있는 큐빅을 슬쩍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건 영혼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으니까.”
모두의 시선이 마일리의 손에 들린 큐빅에게로 모였고, 묵직한 분위기가 장내를 장악했다.
* * *
“자.”
아렌의 한 마디가 모두의 심령을 자극했고, 그제야 모두가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
부르바스가 고개를 숙이자 가볍게 손을 저은 아렌이 말했다.
“됐다. 화두를 던진 내 잘못이라고 치지. 그것보다.”
아렌의 시선이 아직도 안타이오스 내부를 비추고 있는 커다란 화면으로 향했다.
세 개로 나눠진 커다란 화면이 남아 있는 학생들의 상황을 비춰 주고 있었고, 그중에는 아렌의 모습도 있었다.
“이만 광대 짓을 끝낼까 한다.”
모처럼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해서일지는 몰라도 아렌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마법적인 지식은 없다고 하지만 아렌이 쌓아 온 경험과 경지는 일반인의 시선을 아득히 벗어나는 고절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렌은 대화 상대를 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아렌의 입장에서는 여상하다고 생각해서 던진 말도 상대는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이다.
때문에 아렌의 말수는 점점 적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원래 아렌은 이런 식의 토론을 꽤나 즐기는 편이었다.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듣는 두 마법사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알아차리기는 힘들겠지만 아렌의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다.
베로아는 그것 알아채고 표정이 부드러워졌지만, 마일리의 대답에 이내 얼굴을 굳혔다.
“······미안하지만 마무리를 해 주지 않겠나.”
곤혹스러운 마일리의 말에 아렌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마일리!”
부르바스도 놀란 것인지 마일리를 바라보며 소리쳤지만, 마일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마일리의 두 눈에 괴로운 빛이 떠올랐다.
“아카데미는 오늘 이후로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마일리의 말에 그를 추궁하려던 부르바스가 흠칫거렸다.
“저도 알건 압니다. 총학생회지요?”
“······그렇네.”
고개를 들어 올린 마일리가 눈을 감더니만 이내 신념이 어린 눈동자로 아렌을 쳐다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렌 공자.”
몸가짐을 바로 한 마일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서 아카데미의 행사가 도중에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오늘 이후로 아카데미가 문을 닫는다고 해도!”
“마일리······.”
부르바스가 눈을 감았다.
생각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마일리는 아카데미라는 공간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었던 인물임을 다시금 떠올린 것이다.
부르바스의 얼굴에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이 떠올리고 아렌을 바라보았다.
단단한 표정의 부르바스가 아렌을 바라보며 입을 열려는 그때.
“알았다.”
나직한 아렌의 목소리가 두 마법사의 귀로 파고들었다.
“화려한 마무리를 원한다면 그것도 좋겠지.”
여전히 감정 없는 얼굴과 목소리였지만, 부르바스는 아렌의 기분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 *
관 안에 앉은 아렌이 눈을 감았고, 드웨인을 비롯한 7기사단이 철통같이 주변을 에워싼 그 때, 아렌의 의식은 안타이오스에 있었다.
애초에 아렌은 안타이오스에서 접속을 해제하지 않았다.
마음을 분리해서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하는 것쯤은 아렌에게 어렵지 않았고, 현실과 안타이오스 두 곳에서 동시에 자유롭게 움직인 것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사고를 나눌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로 합쳐진 의지를 이길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지금 아렌의 의식은 안타이오스에 집중하고 있었다.
“신기하긴 신기하군.”
온통 불타는 안타오이스의 거리를 둘러본 아렌이 중얼거렸다.
실제 같은 환영도 겪었고, 무의식에 갇혀서 영겁의 미로를 헤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이오스처럼 가볍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없었으니, 마법이라는 학문의 깊이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런 아렌의 시선이 불타오르는 폐허의 한쪽으로 향했고, 마치 종이가 벗겨지는 것처럼 공간이 갈라지더니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너는?”
말과 함께 아렌이 시선을 돌리자 폐허의 다른 쪽에서 미끄러지듯 또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별전쟁에서 안타이오스에 남은 최후의 삼인.
그 세 명이 이 자리에 모였다.
“큐빅은 많이 모았느냐?”
경계어린 눈으로 아렌을 살피는 둘과 달리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렌의 모습에 두 학생은 더욱 긴장을 끌어올렸다.
“모을 만큼은 모았지.”
폐허에서 걸어 나온 학생이 눈을 빛냈다.
“너 같은 괴물을 감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동시에 무시무시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며, 90이 넘는 숫자가 각인된 큐빅이 휘황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힘의 총량만을 생각한다면 마스터를 훌쩍 넘어서는 힘에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상이라는 공간에서 큐빅은 본래의 성능을 넘어서는 힘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알베르토가 가만히 손을 들었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니다.”
“호오?”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아렌의 눈이 좁혀졌다.
“마도의 길을 걷는 자로서 이 큐빅의 본질을 확인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우연이지만 큐빅과의 적성이 최상을 달리는 알베르토는 꽤나 큐빅의 진실에 접근한 상태였다.
“이제 한 발자국 정도 남은 거 같은데 마지막 조각을 찾을 수가 없더군.”
아렌의 시선이 폐허의 한가운데에 아직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시청 건물로 향했다.
“······저곳에 있는 건가?”
눈을 빛내는 알베르토의 물음에 아렌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글쎄?”
큐빅을 찾기 위해서 안타이오스 전체를 기감으로 감쌌던 아렌이다.
그런 아렌의 기감에 걸린 이질적인 기운이 시청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물건이었고, 지금 이 순간 아렌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군.”
현실에서 본 큐빅의 구성, 부르바스와 마일리와의 대화, 안타이오스에서 처음 큐빅을 봤을 때와 이질적인 기운 등등.
그 모든 것이 아렌의 머릿속에서 조립되면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내며, 하나의 깨달음을 아렌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렇게 아렌이 생각에 잠겨있는 그 잠깐의 틈.
“죽어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강자답게 학생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미 예열이 끝난 기운이 뭐라 말하기 힘든 압력이 되어서 아렌을 찍어 눌렀다.
두두두둥!
불과 얼음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삭풍이 모든 것을 잘라 버리려는 듯 몰아쳤으며, 대지가 솟아올라 아렌을 삼키려 들었다.
주변에 어지러이 일렁이는 공간은 도주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정신을 날카롭게 찔러오는 기운은 일반적인 사람이었으면 그 여파만으로 백치가 되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군.”
가볍게 한숨을 내쉰 알베르토의 큐빅이 휘황하게 빛나며 힘을 쏟아내자 아렌이 서 있는 공간이 마치 유리처럼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조각의 행방을 알아낸 지금, 알베르토에게도 아렌은 배제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쿠쿠쿠쿠쿵!
90번 대를 훌쩍 넘은 큐빅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두 학생의 공격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수준.
미리 말을 맞추지 않았지만 노련한 학생들답게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절묘하게 보완하면서 공세를 더하니, 제아무리 대단한 아렌이라도 이번 공격에서는 무사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허어!”
“대단하군!”
관객들의 탄성과 감탄이 지금 이 순간 아렌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았고, 그 누구도 아렌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던 그때였다.
와지직!
무언가가 구겨지는 소리가 안타이오스에 커다랗게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