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13
제313화
끼기기기긱, 쿵.
제이크와 피어스가 거대한 문을 열어젖혔다.
구오오오.
문이 열린 신전 통로에선 음산한 흑마기가 휘몰아치며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휘유, 지독하구만.”
숨이 턱 막히는 지독한 탁기에 제이크가 손사래를 쳤다.
이 정도 흑마기라면, 마스터에 오르지 못한 이들은 단번에 마나가 꼬여 버릴지도 몰랐다.
“가자.”
하지만 일행은 고작 짙은 흑마기에 영향을 받을 수준은 진즉에 넘어섰다.
라울을 중심으로 뭉친 다섯 기사가 당당하게 신전 통로를 걸어 나갔다.
‘이거 어째…?’
라울은 데자뷔를 느꼈다.
거대한 신전 통로 곳곳에 뭉쳐 있는 피 웅덩이.
여기저기 흘러내리는 찐득한 핏물들은 분명 기억에 익숙했다.
‘설마, 아니겠지.’
라울은 고개를 갸웃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긴 신전의 통로 끝에 도착한 라울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신전의 끝자락.
올려다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단상 위의 옥좌에는 익숙한 실루엣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겁도 없는 인간 놈들 같으니.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면 될 것을… 쯧쯧.”
단상 아래 분수대에선 핏물이 솟구치고 있었고, 옥좌에 앉은 마족은 다리를 꼰 채 핏물로 채워진 와인 잔을 홀짝이고 있었으니.
‘분명 마계 백작 포르시스라 했던가?’
장벽에 나타난 마신전에서 라울이 상대했었던 마족.
라울, 카르데나스, 라벨의 협공으로 놈을 묶어둔 사이 용사 애셔의 검에 반쪽으로 쪼개졌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런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마족들이 분신을 통해 현신한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군.’
그리고 그건 아바타를 통해 커넥트에 접속하던 플레이어를 연상케 했다.
목숨에 위험이 없으니 두려움 없이 제멋대로 활개를 칠 수 있다는 뜻.
침공당하는 입장에선 이보다 불합리한 일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방법도 없었다.
「라울, 저 녀석 뿔을 봐. 분명 저번보다 작아지지 않았어?」
라벨이 건넨 통신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미세하긴 해도 분명 예전보다 짧아진 게 느껴졌다.
마족의 권능을 상징하는 뿔이 손상되었다는 건, 그만큼 힘이 손실되었다는 얘기.
몇 년 전에 있었던 그 전투가 무의미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겠는데? 느껴지는 기운이 그때와는 차원이 달라.」
라울은 웃음을 거두며 몸의 긴장을 끌어올렸다.
당시 놈을 상대할 때는 지금처럼 흑마기의 기운이 강하지 않았다.
흑마기가 강해질수록 마계의 기운과 흡사해 본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보일 게 분명했다.
게다가 지금 이곳에 있는 건 포르시스만이 아니었다.
그의 옥좌 아래에 기립해 있는 이십여 명의 마족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첫 손님이니 피의 축제를 허락한다. 한 놈만 남겨놓고 알아서 즐기도록.”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크르르, 이게 얼마만의 신선한 피란 말인가!”
포르시스가 라울 일행을 쳐다보지도 않고 손짓하자, 마족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울 일행은 그 누구도 위축되지 않았다.
“대장은 내가 처리하지. 나머지는 맡기겠다.”
“네, 마스터.”
필립이 긴 롱소드 두 자루를 꺼내 들며 입술에 침을 묻혔다.
‘간만에 손맛 좀 보겠군.’
“크크크. 말로만 들었던 마족 놈들 실력이 어떤지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
제이크가 3m에 가까운 그의 양손 대검을 붕붕 휘두르며 마주 달려 나갔다.
피어스는 어느새 커다란 대궁을 꺼내 철시 세 개를 걸고 있었고, 케인은 기둥을 타고 올라 적들의 머리 위를 잡고 있었다.
콰과광!
콰직!
신전 내부가 노란 오러 블레이드와 붉은 마기의 충돌로 뒤흔들렸다.
“스승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잔챙이들은 신경 쓰지 말거라.”
라울의 뒤쪽에 스르륵 솟아난 세 개의 갑옷 인형.
푸른빛을 띤 파워아머 세 기는 똑같은 모양의 롱소드를 들고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 나간 갑옷 기사 셋이 펼치는 검술은 분명 라울의 스승 카르데나스의 그것이었으니.
서걱! 촤르륵!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검의 궤적은 달려드는 마족들의 신체를 간단히 베어버렸다.
‘걱정할 건 없겠군.’
검은 모루 드워프 부족의 대족장 타르오의 손길을 거친 레그나토르는 봉인이 한 단계 더 풀려났다.
덕분에 새롭게 추가된 기능과 더불어 기존의 특수 기능들도 성능이 업그레이드되었다.
그 결과 카르데나스는 이제 동시에 세 기의 파워아머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라울의 적들에겐 절망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라울은 뒷짐을 진 채로 가볍게 단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신전 내부였지만, 산책하듯 걸어 나가는 라울의 몸에는 그 어떤 공격도 닿지 않았다.
마치 그 혼자만 다른 차원을 걷고 있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으니.
염동력을 통한 공간 장악 능력은 이제 라울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의 몸을 지켜내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라울이 다가가고 있음에도 포르시스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부하로 보이는 남작급 이상의 마족들이 밀리고 있음에도 별 상관없다는 태도.
본신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이상, 인간계에 그의 상대는 없다는 광오함이 느껴졌다.
‘웃기고 있군.’
한 번 당했음에도 여전히 오만한 건 종족 특성인가 싶었다.
오랜만에 봤으니 인사 정도는 해줘야겠다 싶었던 라울이 무기를 빼 들었다.
촤라라락.
수십, 수백, 수천에 달하는 무기 군단이 쏟아져 나가며 포르시스를 향해 돌진했다.
콰과과과광!
거대한 충격이 옥좌를 휩쓸었다.
무기 군단이 폭포수같이 쏟아지자 포르시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딱.
라울이 손가락을 튕기자 무기 군단이 뒤로 물러서며 대전의 천장을 가득 채웠다.
“오랜만이군.”
“…너는?”
무기 군단의 격렬한 공격에도 자세조차 바꾸지 않았던 포르시스가 눈썹을 꿈틀했다.
“크, 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
쨍그랑.
들고 있던 잔을 던져버린 포르시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네 녀석, 어지간히도 마신님께 미움받고 있는 모양이구나, 크하하!”
웃고 있는 그의 표정과 다르게 그의 몸 주변으론 붉은 핏물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안 그래도 결계가 풀리면, 네놈부터 찾아서 갈기갈기 찢어버리려 했거늘!’
포르시스의 머릿속에 그날의 치욕이 다시금 떠올랐다.
고작 마스터 중급에 불과한 인간.
기묘한 힘을 사용한다 해도 마계에선 남작 위를 얻기도 부족한 설익은 애송이였다.
조력자들이 있었다 해도 그런 애송이에게 당했다는 건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비웃음만 당했으면 모를까, 분신을 잃는 바람에 힘의 손실도 상당했으니.
서열 33위로 더 위를 노리던 포르시스는 대번에 40위까지 밀려버렸다.
지난 4년간 부상을 회복하며 얼마나 이를 갈았던가?
그런데 다시 인간계에 내려오자마자 놈을 만나게 되었으니, 포르시스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놈, 아주 뼈마디 하나하나를 모두 분질러 마지막 핏물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 먹어주마!”
그는 자신 있었다.
그때는 각종 제약에 걸려 본래 힘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넘쳐나는 흑마기는 그의 힘을 발휘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마계만큼은 아니겠지만.
‘네 놈을 상대론 80% 정도면 분에 넘치지!’
보아하니 그동안 인간 놈의 실력도 조금은 늘어난 듯했지만,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
고작 4년의 시간 동안 강해져봤자 얼마나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포르시스는 다 잡아놓은 먹잇감을 바라보는 배부른 포식자의 표정으로 슬쩍 손짓했다.
“뒈져라.”
꽈드드득, 촤라락!
그의 주변을 맴돌던 피의 격류가 날카로운 수백 개의 가시창으로 바뀌며 라울을 향해 뻗어 나갔다.
쾅! 타다다당!
무기의 군단이 라울의 앞에 장벽을 세워 가시창을 막아섰다.
‘흥. 쓸데없는 짓을.’
포르시스가 손바닥을 움켜쥐며 좀 더 힘을 보태자, 가시창이 폭발적으로 증식하며 무기 장벽을 순식간에 밀어붙였다.
마침내 장벽에 빈틈이 생기자, 가시창이 번개처럼 뻗어 나가 라울의 심장을 정확하게 찔렀다.
“끝났… 응?”
포르시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가시창은 같은 등급의 오러 블레이드도 뚫어버릴 정도로 날카롭고 독특한 공격이었다.
단순히 창처럼 생겼지만, 그 안에서 입자화한 핏물이 톱날처럼 회전하며 상대방의 오러를 순식간에 갉아먹었으니.
마계에 있는 같은 백작급 마족들도 그의 가시창을 정면으로 막아내는 이들은 없었다.
헌데 어째서 인간의 몸에 닿은 가시창이 헛도는 듯한 느낌이 든단 말인가?
“뭐, 일단 너한테는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군.”
라울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핏빛 가시창이 그의 가슴 앞에 닿아 있음에도 라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무슨 소리냐?”
포르시스가 황당하다는 듯 되묻자 라울이 피식 웃었다.
“네 기술을 보고 여러 가지 영감을 받았거든. 그리고 깨닫게 된 것도 있지.”
드르르륵!
라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울의 가슴에 닿아 있던 핏물의 창이 끝부분부터 갈려 나갔다.
‘아니… 어떻게?’
포르시스가 놀라 눈을 치켜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서컹, 스각!
푸화학.
평범해 보이는 다섯 자루의 검이 무기 군단을 밀어붙이던 핏물 가시창의 줄기를 조각조각 잘라냈다.
잘려 나간 가시창들은 맥없이 핏물로 환원되어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이, 이게 무슨?”
포르시스가 황급히 쏟아져 내린 핏물을 다시 불러들이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핏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라울은 당황하는 놈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권능이든 뭐든 결국 원리는 단순하지. 사물에 자신의 힘을 부여해서 부리는 것.’
놈의 경우엔 자신의 흑마기를 핏물에 부여해 수족처럼 부리는 게 권능일 터였다.
아마도 다른 물체보다 핏물이 그의 흑마기에 더 잘 어울리는 그릇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만약 똑같이 핏물에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결국 누가 더 강한 지배력을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지.’
포르시스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라울은 염동력을 통해 핏물 주변에 흐르는 흑마기를 밀어내 버렸다.
그리고 신성력이 담긴 무기를 통해 그 허리를 끊어버렸고, 통제를 잃은 핏물 위에 얇은 막을 쳐 다시 흑마기가 주입되는 것을 막아버렸으니.
결국 이런 식의 싸움은 누가 더 정밀하고 강력하게 자신의 권역을 지배하느냐가 중요하단 뜻이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내가 중점적으로 단련한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고.’
그리고 그에 관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 라울은 마침내 또 하나의 벽을 넘어설 수 있었으니.
“이게 끝이라면 실망인데. 좀 더 밑천을 보여줬으면 좋겠군.”
“뭣이? 건방진 인간 놈이 감히 누구한테 주둥이를 놀리느냐!”
촤라라락!
포르시스의 등 뒤로 핏빛 날개가 펼쳐지며 그의 손에 피로 만들어진 채찍이 들렸다.
‘이제야 제대로 싸울 맘이 들었나 보군. 좋은 시험 상대가 되겠어.’
놈도 대충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 주변의 공간을 라울이 확실히 장악해 버렸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확실하게 지배하고 있는 자신의 피를 꺼내든 것이 아니겠는가?
촤라락.
라울은 오히려 허공에 떠 있는 무기 군단을 모두 불러들였다.
남은 것은 롱소드 다섯 자루뿐.
하지만 포르시스는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숫자가 줄어들자 롱소드에 압축되어 있는 거대한 힘의 편린을 깨달은 것이다.
“자, 한번 놀아보자!”
라울이 손짓하자 다섯 자루의 검이 눈부신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를 내뿜으며 포르시스를 덮쳐갔다.
“웃기지 마라! 내가 바로 마계 백작 포르시스! 고작 이따위 검에 쓰러질 것 같으냐!”
쩌정!
황금빛 오러가 붉은 핏물을 허공에 녹여냈다.
* * *
커넥트의 허공을 가로지르던 붉은 빛줄기 하나가 사그라들었다.
‘앞으로 열네 개.’
라울은 신기루처럼 흐릿해지는 마신전을 바라보다 길드 통신창을 열었다.
「각 마신전의 상황을 보고하도록. 특히 파이오니어 연합과 지구 연합정부 측은 더 자세히!」
아무래도 좀 더 바삐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