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92
제92화
일주일이 지났다.
수도 투리엄에 발생한 게이트 아웃브레이크는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다.
게이트는 모두 소멸되었고 쏟아져 나온 몬스터도 대부분 제압되었다.
집계된 주민의 피해는 5만 명 이상. 라울과 퍼스트 길드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완벽하게 막아 내는 건 불가능했다.
전생에 비하면 양호한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처참하게 희생된 주민들을 목격한 라울의 속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조금만 더 잘 준비했더라면….’
반쯤 무너져 내린 건물들과 가족들의 시신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을 바라보며 라울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래도 마스터가 아니었다면 훨씬 피해가 컸을 겁니다.”
왕궁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필립이 라울을 위로했다.
“중앙군 놈들이 우리 말을 듣기만 했어도 희생자가 절반은 줄었겠죠.”
제이크도 창밖의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지 불만을 터뜨렸다.
현재 라울과 기사단 간부들은 왕의 호출을 받고 왕성으로 향하는 도중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왕족들을 구해 낸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게이트 사태 이후 수도 시민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게 된 라울이었으니, 왕실의 입장에서도 언제까지 포상을 미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큰 희생이 발생했으니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을 정상화하려면 이슈가 필요했을 테니까.’
라울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민들의 눈을 돌린 사이에, 피해를 복구하고 왕실의 건재함을 보여 주고 싶을 것이다.
‘내 입장에선 잘된 일이긴 하지만….’
혼란을 수습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수도의 게이트야 정리가 끝났지만 당장 성벽 밖에는 몬스터들이 출몰하고 있었고, 아직 보고가 들어오지 않은 지방 영지들의 상황은 이곳보다 훨씬 심각할 테니.
게다가 라울을 찝찝하게 만든 것은 임페리얼 하운드를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기대했던 플랭크 자작에게선 많은 정보를 얻어 내지 못했다.
케인의 고문을 거쳐 그레이의 마탑에서 마법으로 기억까지 열어 봤지만, 건진 것이라곤 매수된 하수인들 몇 명밖에 없었다.
그의 저택에서 입수한 서류에서도 대략적인 정보만 알아냈을 뿐, 명확하게 놈들의 정체를 밝혀낼 순 없었다.
영악하게도 그들은 간부 사이에서도 서로의 정체를 알 수 없도록 철저히 신분을 감췄다.
전원의 정체를 아는 것은 오직 한 명, 지부장인 ‘실버 제로’뿐.
‘잡아낸 건 간부 열 명 중에 겨우 둘….’
상급 근위 기사였던 호세와 재무부장인 플랭크 자작.
그 말은 아직도 정체를 숨긴 놈들이 왕국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왕성을 점거했던 적들도 마병을 제외한 요원들은 상당수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마지막까지 남아서 놈들과 싸웠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당시 라울은 레그나토르의 부작용으로 전투를 이어가기 힘든 상태였다.
그리고 지켜야 할 왕족들도 있었으니 적의 본대와 맞붙기엔 무리였다.
어쨌든 간부 둘과 적의 수도 내 본거지를 처리했다. 이제 수도의 주민을 납치해 마병을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고, 병력도 많이 잃었으니 놈들의 기세도 한풀 꺾일 것이다.
덜컹.
마차가 어느덧 왕성에 도착했다.
성문을 지나 본성으로 걸어가는데 불에 그을리고 짓밟힌 정원과 무너진 벽들이 그날의 전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잠시 객실에서 대기하다 안내를 받고 대전 앞에 도착하자 시종이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애쉬튼 백작가 3남 라울 드 애쉬튼 공자와 수행 기사 3인 입실이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넓은 대전 양옆으로 수백 명의 귀족들이 늘어서 라울이 입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대전의 안쪽 화려한 단상 위에 놓인 왕좌에는 약간 초췌한 인상의 왕 타데우스 2세가 앉아 있었고, 한 단 아래에 살아남은 5명의 왕자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대전 중앙에는 라울 일행 외에도 포상을 받을 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그 가운데 중앙군 군단장의 모습도 보였다. 제이크가 욱했지만, 필립이 그를 말렸다.
사실 객관적으로 군단장이 잘못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라울이 그의 상관도 아니고 조언을 듣고 말고는 그의 선택이었으니까.
게다가 초동 대처가 어찌 되었든 몬스터 잔당을 처리한 것은 중앙군이었으니 그 대장에게 공이 없다고 할 순 없었다.
포상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마침내 라울의 순서가 왔다.
“…하여 라울 드 애쉬튼에게 자작의 작위와 영지, 수도의 저택을 하사한다.”
박수갈채 속에서 라울은 작위를 상징하는 훈장과 백지 상태의 영지 및 땅문서를 하사받았다.
그를 질시하는 일부 귀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의 공을 인정하고 축하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 먼 곳의 전장에서 세운 공훈이 아니라, 당장 그들의 눈앞에서 몬스터들을 막아 내고 활약했기 때문에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라울에게 주어질 영지와 저택은 추후에 따로 ‘협의’하기로 했다.
꼬리가 잡힌 플랭크 자작과 관련된 재무대신 라인의 귀족들, 배신한 근위 기사 호세와 그 관련자들이 현재 포박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높은 확률로 그들의 재산이 회수될 것이고, 라울은 그중 원하는 곳을 차지할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포상식이 끝나고 약소한 무도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재난이 끝난 직후라 생략할 법도 했지만, 왕실의 체면과 귀족들을 다독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개최된 듯했다.
제대로 된 무도회 자리는 처음 참석하는 라울이었지만, 어차피 오늘의 주인공은 그였기에 마음은 편안했다.
문제는 그와 안면을 트기 위해 다가오는 귀족들로 인해 식사조차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다는 사실이었지만,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며 라울은 귀찮음을 감수했다.
한 무리의 귀족들과 대화를 마치고 물 한잔을 마시며 겨우 숨을 돌리려던 그때, 시종 하나가 다가와 라울에게 말했다.
“3왕자님께서 자작님을 뵈었으면 하십니다. 이쪽으로….”
안내를 받아 향한 곳은 무도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서재.
3왕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와인을 홀짝이며 거만한 자세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3왕자님.”
라울이 고개를 숙이자, 3왕자가 말없이 앉으라는 듯 턱짓을 했다.
30대 초반의 3왕자는 열심히 수련을 해 왔는지 몸이 탄탄했고 살짝 각진 얼굴에 턱이 삐죽 튀어나와 고집이 있어 보였다.
“어린 나이에 큰 공을 세웠군. 왕족을 대표해 감사를 표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울의 대답에 3왕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불만스런 기색을 드러냈다.
“그래, 당연한 일이지. 신하라면 당연히 주인의 명을 따르고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걸 망각하고 제 잇속만 챙기는 놈들이 넘쳐난단 말이지….”
라울은 권위주의적인 3왕자의 말을 들으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무표정을 가장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수긍하는 척했다.
“알다시피 아버님의 병세가 위중하시다.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하실 거야. 그리고 안타깝지만 두 형님도 목숨을 잃으셨지.”
그는 아마도 차기 왕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던 왕세자가 전사했으니 욕심을 내지 않을 리 없었다.
“내가 왕위에 오르고 나면 지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썩어빠진 늙은이들을 치워 내고 젊은 인재를 중용할 생각이다. 때가 되면 부를 테니 미리 준비하고 있도록.”
그러고는 라울의 말은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와인을 다시 들이켰다.
이만 나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라울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이가 없네.’
3왕자는 이미 본인이 왕좌에 오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라울의 의견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할 말만 하고 내보낸 건 그가 라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줬다.
‘어리다고 얕보는 건가. 그게 아니면 정말 식견이 저 정도에 불과한 것인가?’
3왕자의 한심한 작태에 라울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환생 전, 커넥트의 시나리오에서도 차기 왕은 3왕자의 차지였다. 그때는 3왕자와 8왕자만 살아남았기에 10대인 8왕자를 쉽게 누르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안하무인 귀족들을 함부로 대하며 권력을 휘두르려다 역으로 명문 귀족가에 실권을 빼앗긴 허수아비 왕으로 전락했다.
카르데나스라는 왕실의 숨겨진 검이자 기둥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스터들이 순순히 왕의 말에 복종할 리가 없었다.
‘권위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권을 약속하며 귀족들을 다독여 제 편을 만들었어야지.’
게다가 이번에는 왕자가 무려 다섯이나 살아남았다. 나이가 조금 더 많다고 무조건 왕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솔직히 라울은 3왕자가 자신을 불러 어떤 식으로든 회유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저런 밑도 끝도 없는 말이나 내뱉다니….
웬만하면 원 시나리오의 흐름대로 흘러가길 바랐지만, 저놈이 왕이 된다면 정말 피곤해질 것 같았다.
‘아직은 시간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고민해 보자.’
골골대는 왕이긴 하지만 아직 1년 이상은 버틸 것이다. 당장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지는 않을 테니, 이후의 일은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다시 무도회장으로 돌아간 라울은 4왕자와 6왕자를 비롯한 다른 왕족들과도 대화를 나누고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라울은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아담한 관사에 와 있었다.
이곳은 수도에 저택이 없는 초빙 교수들을 위해 마련된 곳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인인 현자 그레이가 머물고 있었다.
“소식은 전해 들었어요. 아주 대단한 활약을 했더군요, 라울 군. 아니 라울 자작이라 불러야 할까요?”
“아닙니다, 교수님. 라울 군으로 충분합니다.”
라울이 거듭 사양하자 그레이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라울 군. 그럼 자세히 얘기를 들어 볼까요?”
이미 서면과 사용인을 통해 소식을 전하긴 했지만, 그레이는 라울에게 직접 그간의 일을 전해 듣길 원했다.
라울도 서신으로만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많았기에 임페리얼 하운드, 게이트, 수호자에 관한 것들을 차분하게 말했다.
“흐음. 과연 그렇게 된 일이었군요.”
라울의 이야기를 들은 그레이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왕궁이 습격당한 건 루벤 왕국뿐만이 아니에요. 4대 왕국 모두 습격을 당했고, 마찬가지로 그들이 지키던 봉인이 풀려 버렸지요.”
애초에 제국의 가장 큰 목적은 봉인을 푸는 것이 틀림없었다. 게이트가 발생한 후, 그레이도 그것을 우려해 각국 왕실에 경고했지만, 결론적으론 막아 내지 못했다.
아무리 현자라 한들 정치적인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대신 그레이는 그동안 마탑주들과 함께 놀라운 물건을 만들어냈다.
“이게 바로?”
“그래요. [게이트 생성 방지 결계석], 일명 차원 보호 결계석이지요.”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돌에는 미세한 마법진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꺼끌꺼끌한 돌멩이에 불과했지만, 그 실체는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들다는 결계석이었다.
이걸 활성화하면 일정 범위 안에는 새로운 게이트가 생성되지 않게 된다.
현재 마탑 지부가 설치된 모든 도시에 이 결계석이 설치되고 있었다.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나석이 꾸준히 소모된다고 하지만, 그깟 마나석이 문제겠는가.
그리고 그레이는 그 귀중한 차원보호 결계석을 무려 다섯 개나 라울에게 선물했다.
라울의 활약에 대한 보상이자 그가 넘겨준 포로들과 정보에 대한 값이기도 했다.
‘대박.’
라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