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93
제93화
그레이는 차원보호 결계석 외에도 자그마한 마법 통신구를 선물했다.
라울의 행보를 짐작한 그레이의 배려였다.
게이트 아웃브레이크가 터지고 각 영지들은 모두 비상사태였다. 아카데미 재학생들 다수가 고향의 소식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
이대로 학업을 이어 가는 것은 무리라는 총장 이하 교수들의 판단하에 아카데미는 무기한 휴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라울도 그레이도 수도를 벗어날 일이 많을 테니, 통신구는 필수였다.
“아무쪼록 무리는 하지 마세요. 라울 군은 이제 임페리얼 하운드에 노출되었으니 조금 더 신중히 움직여야 할 겁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감사합니다. 놈들에 대한 단서를 잡게 되면 가장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그레이와의 면담을 끝내니 라울은 저택으로 돌아와 앞으로의 일을 고민했다.
‘수도의 일은 대충 마무리가 되었으니까….’
이제 슬슬 수도 투리엄의 울타리 밖에서 활동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조만간 굵직한 소식들이 들려올 것이다. 그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다면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플레이어 길드.
그중에서도 탑을 찍을 거대 길드와 상대하려면 아무리 준비해도 부족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히 플레이어들의 집단이 아니었으니까.
기업, 정치인, 거기에 정부까지.
일반인으로선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놈들과 상대하려면 이쪽도 그에 상응하는 배경과 세력이 필요했다.
‘이번에도 너희 마음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라울은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굳게 다짐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라울은 기다리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해질 무렵, 라울의 집무실을 찾은 케인이 보고했다.
“왕실과 각 귀족가에 들어온 정보를 취합했습니다.”
루벤 왕국의 총 영지 수는 대략 170여 개.
그 영지들에 대한 정보가 오늘에서야 대부분 파악되었다.
“일단 자작가 이상의 세력은 이번 게이트 아웃브레이크를 자력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 지원 요청을 해 온 가문은 없습니다.”
“그렇겠지. 썩어도 준치라고, 자작 가문에는 적어도 기사단이 없는 곳은 없을 테니.”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이번에 등장한 게이트는 인구 밀도에 따라 등급과 개수가 정해진 듯했다.
인구 100만이 몰린 수도에는 60개의 게이트가 D등급까지 출몰했지만,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남작 가문 영주성에는 게이트가 아예 나타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일단 E등급 게이트까지는 기사가 아닌 병사들로도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기사단까지 존재하는 자작가 정도면 피해가 있을지언정 처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문제는 남작가인데, 120개의 남작가 영지 중 절반 가까이가 왕실 혹은 유력 가문에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20여 곳은 영지를 포기하고 포탈을 통해 도주해 왔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소식이 끊어진 영지도 열 곳이 넘는데 아무래도….”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은 남작가 수준의 작은 영지들 입장에선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상비병이 천도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기사라고 해 봐야 열 명도 없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나마 성 외부에 게이트가 나타난 경우엔 성벽을 끼고 버티기라도 하겠지만, 내부에 게이트가 출몰한 곳은 대처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왕실의 반응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병력을 외부로 돌리기는 무리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도시 내부의 정리는 끝났지만, 성벽 밖에 나타난 게이트는 거의 손도 대지 못한 상황이니까요.”
왕실뿐만 아니라 유력 가문들도 지금으로선 여유가 없을 것이다.
게이트를 완전히 정리했다면 모를까 공략하지 못한 게이트는 고착화되어 던전으로 변하게 된다.
쏟아져 나온 몬스터를 정리하더라도 언제 다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지 모르니 던전을 관리하기 위해 병력을 상시 배치해야 할 테니 말이다.
아마도 몇 달간은 영지를 안정화 시키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쓰긴 어려울 것이다.
수도로 도피해 온 귀족들은 어떻게든 영지를 되찾고 싶을 테지만, 당장 도움의 손길을 내밀 곳은 없을 것이다.
용병들을 고용하고 싶어도 이미 수도의 용병들은 씨가 말랐다. 게이트 아웃브레이크가 터지고 각 귀족가에서 앞다퉈 최하급 용병까지 모조리 쓸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많은 용병을 고용한 것은 라울이었다. 상황이 발생할 때 임시로 고용했던 이들과 계약을 연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수도에서 라울이 부릴 수 있는 병력은 기사단 200, 정규병 2,000여 명에 용병 3,000명까지 5,000명이 넘었다.
라울의 예상대로라면 아마도 조만간 많은 이들이 그를 찾아올 것이다.
‘어디부터 시작해 볼까?’
라울은 탁자 위에 왕국 지도를 펼쳐놓고 고민에 빠졌다. 케인의 정보에 따라 각 영지의 상황이 지도 위에 간략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버나드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마스터, 길라티엔 남작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슬슬 입질이 오는구나.’
라울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접객실로 모셔.”
본격적인 수확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쉬이잉.
싸늘한 바람이 얄팍한 가죽옷 사이를 파고들었다.
‘어느새 12월인가?’
메디니 마을의 자경대장 빈스는 목책 위에 올라 으슬으슬한 몸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그 저주받은 날 이후로 어느덧 6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게이트는 메디니 마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숲속에 나타났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해가 뜰 때까지 그런 일이 벌어진 사실도 모르고 편한 밤을 보냈다.
하지만 주민들이 일을 하러 목책 밖으로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 원숭이.
마치 낫처럼 생긴 30센티가량의 손톱과 발톱이 돋아나 있고, 주둥이는 늑대의 그것처럼 삐죽 튀어나와 날카로운 송곳니가 가득했다.
영악하게도 숲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놈들은 주민들이 목책에서 한참 벗어난 후에야 기습해 왔다.
그리고 그날 메디니 마을의 주민 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500여 명의 주민은 목책을 꽉 걸어 잠근 채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마을에는 200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악마 같은 놈들.’
숲에 자리 잡은 괴물 원숭이들은 낮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괴물 같은 놈들이긴 했지만, 생긴 것과 달리 전투력이 그렇게 높진 않았다.
제대로 훈련받은 성인이라면 충분히 한 마리를 감당할 수 있을 수준이었으니.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자경단을 중심으로 놈들을 견제하며 어떻게든 식량을 조달해 올 수 있었다.
문제는 밤.
어스름이 찾아오면 어둠을 틈타 목책에 다가온 놈들이 갈고리 발톱으로 목책을 타고 올라 주민들을 습격한 것이다.
목책 위에 화톳불을 피워 놓고 경비를 아무리 촘촘하게 세워 놓아도 피해가 발생했다.
게다가 얼마나 영악한지 함정이라도 파 놓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몸을 사렸다.
그렇게 야금야금 인원이 줄다 보니 지금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후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식량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농작물이 예년에 비해 빨리 자라났고, 수확량도 훨씬 증가했다.
하지만 200명의 인원으론 목책을 충분히 방비하기 힘들었다.
놈들도 그 사실을 알아챘는지 언제부턴가 낮에도 목책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영주성에 구원 요청을 보낸 지 오래였지만, 큰 기대를 걸긴 어려웠다.
우연찮게 구해 낸 외부의 생존자들은 영주성 또한 몬스터에 포위되어 있고, 영지 전체에 몬스터가 들끓고 있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이라도 숲의 괴물 원숭이들이 총공격을 해 온다면 과연 막아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니야. 최후까지 버티고 버텨 봐야지.’
마을에는 아직 그의 아내와 아들이 남아 있었다. 가장으로서 그들을 마지막까지 지켜 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창을 꾹 움켜쥔 빈스가 다시금 각오를 다지는 사이, 해가 슬금슬금 저물어 가고 있었다.
탁. 탁.
목책 위의 화톳불이 불똥을 튀기며 타올랐고, 횃불을 든 자경단원들이 목책을 오가자 새까만 그림자가 어지러이 목책 위를 기어 다녔다.
빈스는 멍하니 어두운 벌판을 주시했다. 하필이면 구름이 달빛을 가려 더더욱 어둠을 짙게 만들고 있었다.
사사사삭.
‘응?’
바람에 흩날리는 풀 소리 사이로 이질적인 소음이 들린 듯했다.
정신이 번쩍 든 빈스가 재빨리 화톳불의 장작 하나를 꺼내 목책 아래로 집어 던졌다.
파앗.
작게 불타오르는 장작 근처에 시커먼 것들이 바닥을 기어오고 있었다.
“적이다!”
외침과 함께 빈스가 날린 화살이 피웅 소리를 내며 괴물 원숭이의 몸을 꿰뚫었다.
“뀌이이엑~!”
그리고 검은 물결이 목책을 향해 밀려오기 시작했다.
땡땡땡땡!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마을을 깨웠다.
“시야 확보해!”
“활을 쏴!”
목책 위의 자경대원들이 황급히 불붙은 횃불과 장작더미를 목책 밖으로 투척하는가 하면, 활을 쏘고 돌멩이를 던졌다.
화르륵.
쏟아져 내린 장작더미가 괴물 원숭이를 덮치며 목책 아래를 환하게 비췄다.
“맙소사.”
자경대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목책 아래는 어느새 괴물 원숭이들로 가득했다. 사방이 온통 원숭이 무리로 뒤덮인 듯했다.
평소에는 소수의 무리가 소리 없이 다가와 기습을 하고 재빨리 도망치곤 했는데, 오늘은 완전히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제길. 도대체 몇 마리야?’
빈스는 도무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놈들의 수에 절망했지만, 이를 꽉 깨물고는 소리쳤다.
“정신 차려! 대기 인원이 도착할 때 까지 버텨야 해!”
“X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망할 새끼들아, 다 뒈져라!”
자경단원들도 뒤가 없다는 생각에 독이 올라 창을 찌르고 도끼를 휘두르며 괴물 원숭이들과 전투를 시작했다.
빈스는 창을 내질러 목책에 달라붙은 원숭이의 머리를 꿰뚫고, 그대로 창대를 휘둘러 달라붙은 놈들을 목책에서 떼어냈다.
하지만 징글징글한 놈들은 끝도 없이 목책을 기어오르고 있었고, 4미터 높이의 목책은 어느새 시꺼먼 괴물 원숭이로 뒤덮였다.
“끼르륵!”
마침내 목책에 올라탄 괴물 원숭이가 폴짝 뛰어올라 자경대원의 목에 발톱을 꽂아 넣었다.
푸슉.
“끄아악!”
핏물이 솟구치고 자경대원이 비명과 함께 원숭이를 뜯어내려 했지만….
꽈드득.
괴물 원숭이의 주둥이가 그의 얼굴을 잔인하게 물어뜯었다.
뒤늦게 빈스의 도끼가 원숭이의 골통을 빠개 버렸지만, 이미 자경대원은 절명한 상태였다.
“끄악!”
“아악!”
목책 위에서 대원들이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뒤늦게 마을에서 대기병과 마을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목책이 점령당하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이, 이놈들! 여기는 못 지나간다!”
빈스가 한 손에는 창, 반대 손에는 도끼를 들고 미친 듯이 원숭이들을 찌르고 베어 냈다.
10년 넘게 군에서 복무한 상급 병사 출신답게 그의 주변엔 원숭이들의 사체가 하나둘 쌓여 갔다.
하지만 놈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 이미 마을로 뛰어내린 놈들까지 있었다.
‘정말 여기까지란 말인가!’
절망감에 휩싸인 빈스가 필사적으로 창을 내지르던 바로 그때.
쉬익, 쉬익, 퍼버벅!
화르륵~ 콰앙!!
“뀌이이익!”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세례가 괴물 원숭이들을 꿰뚫었고, 머리통만 한 화염구가 쉴 새 없이 목책 아래쪽에서 폭발하며 원숭이 무리를 박살 내 버렸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벌판 너머로 백마를 탄 하얀 갑옷의 기사들이 달빛을 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갑주에 새겨진 것은 바로 황금빛 매.
퍼스트 기사단이 전장에 나타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