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91
제91화
카르데나스는 이미 라울의 가문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제가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라울의 물음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그저 너와 저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으로 짐작했을 뿐.”
정면에서 바라본 카르데나스는 굉장히 선이 두껍고 남자다운 인상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갈색 머리에 신장은 190 정도. 체형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근육질의 몸이었는데 전체적으로는 단단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였지만, 그의 경지로 보아선 실제 나이가 얼마나 될지 추측하기 어려웠다.
라울은 허허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카르데나스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정식으로 인사했다.
“애쉬튼 백작가의 삼남인 라울 드 애쉬튼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제가 이끌고 있는 기사단의 단장 필립 경과 부단장인 피어스 경입니다. 지고한 경지를 이루신 선배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애쉬튼가의 직계였구나. 현재 가주가 멜빈이었던가?”
“네, 그렇습니다.”
“애쉬튼가의 아이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선배님의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라울이 조심스럽게 묻자, 카르데나스가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카르데나스. 이곳을 지키기로 맹세했던 봉인의 수호자였지. 보다시피 맹세는 지켜지지 못했지만….”
카르데나스가 고개를 돌려 제단 뒤쪽을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곳에는 몸이 조각조각 절단된 수십 명의 사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복장과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으로 보아하니 임페리얼 하운드의 마법사와 기사들이 분명했다.
“저들이 원흉입니까?”
“그래. 너에게는 고마움을 표해야겠구나. 네 덕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저 쓰레기 같은 놈들을 치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제가 한 게 뭐 있습니까. 끝까지 도와드리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라울은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임페리얼 하운드의 요원들이 저렇게 떼죽음을 당했으니, 당분간 놈들의 기세도 한풀 꺾일 게 분명했다.
카르데나스가 라울을 한 번 지그시 쳐다보고는 눈을 빛냈다.
“아이야, 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올해로 열다섯입니다.”
“호오.”
약간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카르데나스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라면 자격을 갖출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구나. 내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카르데나스는 봉인의 수호자임과 동시에 루벤 왕가의 숨겨진 검이자 왕국 마스터들의 알려지지 않은 스승이었다.
루벤 왕국의 마스터치고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이는 없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는 전통적으로 이곳에 방문해 오러를 다루는 법과 경지를 높이기 위한 수련법을 전수받아 왔다.
그들은 그 대가로 왕가와 왕국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고 마스터 간의 사적인 충돌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했다.
왕실에 변변찮은 마스터가 없음에도 왕국이 유지되고 명문 무가들이 존속해 온 데는 카르데나스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르데나스가 사라지고 나면 앞으로 왕국의 질서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건 남겨진 자들의 몫일 뿐.
어느새 그의 가슴에선 눈에 보일 정도로 결정화된 마나의 가루가 공중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겠습니까?”
카르데나스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챈 라울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생을 유지해 온 것은 봉인을 지키겠다는 맹세와 함께 봉인석에 그의 영혼이 새겨졌기 때문이었다.
봉인석이 깨진 이상 그의 소멸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라벨,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상황이 종료되어서 그런지,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라울이 머릿속으로 묻자, 도감에 들어가 있던 라벨이 밖으로 나와 카르데나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카르데나스와 라벨의 눈이 마주쳤다.
“호오. 요정인가?”
“내가 보여?”
“물론. 인간 세상에서 다시 요정을 만나게 될 줄이야. 놀랍구나.”
“응? 나 말고도 요정을 만난 적이 있단 말이야?”
카르데나스의 말에 깜짝 놀란 라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의 눈앞까지 날아가며 물었다.
“아주 오래전 대륙을 떠돌아다닐 때 잠깐 만났던 적이 있지. 맞아. 파란 머리를 한 호수의 요정들이었어.”
“어, 어디서 만난 거야?”
“흠. 벨라디아 호수였을 거다. 지금은 금역이 되어 버린 서쪽 몬스터 숲에 있는 호수지.”
“아아….”
라벨은 비록 일족이 아니지만 요정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어쩌면 그녀의 일족도 어딘가에 살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미안하지만 이미 1,00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아직 그들이 거기 살고 있을지는….”
“아니야, 정말 소중한 정보를 알려줘서 너무 고마워. 아, 인사가 늦었네. 나는 숲의 요정 라이벨리나 에리오트 메르디아네. 라벨이라고 불러줘.”
“카르데나스다. 칼이라고 불러도 좋아.”
그들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필립과 피어스가 라울에게 물었다.
“요정이라니, 갑자기 무슨 말일까요?”
“마스터의 눈에도 요정이 보입니까?”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라벨은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잠시만.”
기사들에게 양해를 구한 라울이 라벨에게 물었다.
「라벨. 일반인들 앞에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응. 스킬 도감 덕분에 이제 현신(現身)할 수 있어. 그런데 왜?」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긴데 계속 숨어 지낼 필요는 없잖아. 적어도 길드 간부들에게는 네 존재를 알려 주는 게 어떨까 해서.」
긴 시간을 홀로 외롭게 버텨 온 라벨이었다. 라울은 그녀가 라울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라울의 생각이 그렇다면 나는 상관없어.」
「고마워.」
라울이 필립과 피어스에게 말했다.
“소개가 늦었네. 얼마 전부터 나를 도와주게 된 요정 라벨이야.”
“안녕? 나는 숲의 요정 라이벨리나 에리오트 메르디아네. 앞으로 잘 부탁할게.”
갑자기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녹색 머리 요정이 인사를 하자, 필립과 피어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잘 부탁합니다.”
평소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두 기사의 당황스런 얼굴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나누기로 하고. 라벨, 카르데나스 님의 상태는 어떤 거 같아?”
“잠시만. 칼, 실례지만 좀 살펴볼게.”
라벨이 나풀나풀 날아서 마나가 새어 나오는 그의 몸을 잠시 살핀 뒤, 제단에 놓인 금이 간 봉인석과 깨져 버린 결계 등을 훑어봤다.
한동안 그렇게 이것저것을 살펴본 라벨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안 되겠어. 봉인은 완전히 훼손되었고, 이대로라면 칼은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소멸할 거야.”
라벨의 말에 라울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카르데나스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어차피 봉인과 함께할 운명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긴 시간이었구나. 마지막까지 봉인을 지켜 내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제 나 같은 과거의 잔재는 퇴장해야 할 때가 된 것이겠지.”
카르데나스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쩌면 나는 지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군.’
봉인을 지키느라 결계에 묶여 있던 1,000년이 넘는 세월.
왕궁을 벗어나지 못하는 제약 때문에 왕족과 실력 있는 일부 기사들을 지도하며 세월을 흘려보냈다.
도중에 강력한 침입자가 나타난 적도 있었고, 그를 배신한 왕가의 핏줄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봉인을 지켜 왔다.
결국 이렇게 봉인이 풀리며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변함없이 반복되던 긴 세월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가 지켜온 세상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과 끝끝내 봉인을 훼손한 인류의 배신자 놈들을 직접 처단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그건 나의 몫이 아닌 모양이지.’
어린 나이에 뛰어난 성취를 거둔 라울이란 아이를 보니 뒷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는 사이,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라벨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방법이 떠올랐어! 시간이 없으니 짧게 설명할게.”
라벨은 휘리릭 날아서 라울의 팔찌 ‘레그나토르’의 위에 내려앉았다.
“답은 여기에 있어.”
라벨의 설명에 의하면 스킬 도감과 마찬가지로 레그나토르 또한 본연의 힘을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본래의 레그나토르는 일종의 ‘에고 아이템’, 영혼이 담긴 장비인데 모종의 이유로 그 자리가 비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부서진 봉인석을 레그나토르가 대신할 수 있단 얘기야.”
라벨의 설명이 끝나자 라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건….”
긴 시간 봉인에 묶여 있던 카르데나스를 또다시 레그나토르에 가둬 두는 꼴이 아닌가.
그 사실을 모두들 깨달았는지 조용한 침묵이 이어졌다.
결국 선택은 카르데나스에게 달렸다. 이대로 봉인과 함께 길었던 생을 마감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영혼이 얽매인 채 새로운 길을 걸을 것인지.
길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어느새 카르데나스의 몸이 손끝부터 입자로 변해 허공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고뇌에 가득찬 카르데나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 * *
와르륵.
라울 일행이 결계에서 빠져나오자 긴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결계석들이 빛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그저 돌무덤처럼 변해 버린 결계석 더미와 주변의 사체들로 인해 신전 내부는 마치 무덤처럼 황량하고 쓸쓸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라울의 눈앞에 기다란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공지 사항]차원 게이트를 억제하던 고대 봉인 네 개가 모두 풀렸습니다. 2단계 봉인이 해제됨에 따라 게이트 침식이 더욱 가속화됩니다.
-지금부터 C등급 게이트가 랜덤하게 등장합니다.
-게이트를 통해 잊혀졌던 타 차원의 몬스터들이 등장합니다.
-커넥트 세상의 마나 농도가 짙어집니다. 이제 주민들의 마나 적합성이 높아지고, 마나 관련 성취가 한결 빨라집니다.
-식물과 동물의 생장이 촉진됩니다. 식량 생산이 가속화되지만, 돌연변이가 등장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어둠의 기운이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숨겨져 있던 봉인지가 노출될 확률이 올라갑니다.
-일부 NPC가 시나리오 NPC로 전환되었습니다. 시나리오 NPC와 충돌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구나.’
어차피 봉인은 풀리게 되어 있었고, 앞으로도 봉인은 계속 풀려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더 위협적인 적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희망적인 사항이라면 봉인이 풀릴수록 주민들의 성장도 빨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마스터들이 몇 년만 지나도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잠재 능력이 높은 이들을 영입하려고 애쓰는 이유지.’
당장은 플레이어들의 성장에 견줄 수 없겠지만, 길게 봤을 땐 충분히 플레이어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니까.
“이제 돌아가자.”
왕궁에서 볼일은 끝났다. 아직 적의 잔당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것까지 책임질 이유는 없었다.
서둘러 지하에서 빠져나온 라울은 왕족을 보호하고 있는 부하들과 합류해 무사히 저택으로 귀환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