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9
19화
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 건 전혀 모르는지 정주호는 암시장을 언급하다 미간을 구겼다.
“암시장을 건들자고? 야, 솔직히 말해라. 나 쫓아내려고 경쟁부서에서 온 스파이냐?”
“전혀 아닙니다.”
“맞잖아. 이제라도 솔직해지자. 그럼 편해지잖아. 응? 제발 그렇다고 해 줘. 제발!”
버서커를 잡으면서 암시장도 날려 버리자는 게 이렇게 놀랄 일인가?
“이건 기각. 절대 안 돼.”
“왜 안 되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이야기하면 사흘밤낮을 얘기하도 모자라지. 그래, 암시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암시장이 망하면 대한민국도 망한다.”
“······.”
“이해가 안 되지? 간단해. 암시장은 대한민국 모든 기득권의 이권이 얽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 빡빡한 규제 속에 트여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지.”
정주호의 설명은 이러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길드에 대한 규제는 물론 기업에 대한 규제도 무척 빡빡하게 짜여 있었다. 이것은 길드의 무력이, 기업의 재력이 국가를 뛰어넘는 걸 막기 위해서인데 그로 인한 불만이 상당했다.
이 부분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 바로 암시장의 존재였다. 길드, 기업, 정치인, 빌런, 공무원 헌터 등등 온갖 사람들이 뒤섞여 용광로처럼 만들어 낸 불만 배출구였다. 이곳에서 어떠한 책임도 세금도 존재하지 않아 지금의 규모에 이르렀다.
더 크지도 작아지지도 않는 건 정부가 허용한 선을 넘지 않아서 그렇단다.
“이걸 건드리면 저기서 이득 보는 사람 전부가 널 죽이려 들걸?”
저번 생에 그랬어도 살아남았는데.
아무튼 정주호가 어떤 의미로 말하는 건지 알겠다.
“불법이지만 모두가 인정한 중립지대라는 거로군요.”
“그런 셈이지.”
“이용하는 빌런들을 두고 보는 것도 일종의 울타리고요.”
“그래야 움직임 파악에 용이하고 원하는 시기에 잡아들일 수 있지.”
정주호는 부인하지 않았다.
결국 암시장 이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얽혀 있고 높으신 분들이 많이 얽혀 있다는 말이었다.
빌런들의 가두리 양식장이기도 하고.
“세상 모든 게 선악으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니까. 기업이나 길드 애들도 빡빡한 규제에 숨 쉴 곳 좀 필요하지 않겠냐? 거기서 돈 좀 세탁 시켜 주고 그런 거지. 그러니 이 계획은 폐기해.”
“알겠습니다.”
“평소에도 이러면 얼마나 좋냐? 좋아, 널 특별히 첩자 혐의에서 제외하지.”
“그런데 저도 암시장에 가도 되는 겁니까?”
웃고 있던 정주호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이용하려면 이용할 수 있지. 근데 왜 가려고 하냐.”
“정찰입니다. 버서커가 올 수도 있고요.”
“암시장이 몇 갠데 네가 가는 곳에 버서커가 나타나?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기프트가 뭔지 물어봐도 됩니까?”
“독심술은 아니다. 아무튼 간다고 하면 말릴 순 없겠지만 제발 좀 적당히 해라, 적당히. 후! 이런 말 한다고 들을 놈도 아니고. 용건 끝났으면 나가 봐.”
손을 휘휘 젓던 정주호는 자기 용건이 생각났다며 말했다.
“아! 그리고 거기에 모발에 좋은 전설의 약이 있다고 하던데 보이면 하나 좀 사 와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미리 대비하는 거니까. 엉?”
그런 약은 내가 회귀할 때까지 본 적이 없는데.
바로 거절하기엔 정주호의 눈길이 간절했다.
“찾아보겠습니다.”
* * *
밖으로 나오니 며칠 사이 눈이 퀭해진 정다현의 모습이 보였다.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래요? 요즘 잠을 좀 설쳐서 그런가 봐요.”
희미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정다현을 피곤하게 만든 건지 알았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약간이라도 힌트를 줘야겠다.
“잠깐 커피나 한잔할까요?”
“네.”
우리는 카페로 와서 음료 한 잔씩 마셨다.
“얘기는 잘 됐어요?”
“반려됐습니다.”
“어떤 걸 했는데요?”
“암시장 소탕 작전을 제안했습니다.”
버서커 얘기를 꺼내면 기겁할 거 같아 말하지 않았다.
“암시장이면 그럴 만하네요. 저도 암시장을 좋게 보는 건 아니지만 워낙 얽힌 곳이 많아서요.”
“안 그래도 국장님에게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준호 씨를 아껴서 하는 말이에요. 국장님은 친한 사람한테만 말을 편하게 하시거든요.”
“그런 것치고 자꾸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터라.”
“무리한 요구요?”
말을 하려다 탈모는 남자의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라는 걸 생각하고 입을 닫았다. 내 침묵의 의미를 이해했는지 정다현도 더 묻지 않았다.
난 처음 목적이었던 걸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
“다급한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만 혹사는 옳지 않습니다.”
“준호 씨도 다급했던 적이 있었어요?”
“예, 다급하다 못해 간절했었습니다.”
“놀랍네요.”
정다현이 놀라지만 저번 생 이맘때 나는 정말 찌질한 녀석이었다.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하며 원망하고 분노를 가족에게 풀었다. 그리고 무작정 힘을 쫓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혈종이 되었지.
내가 해본 실수를 다른 사람이 하도록 두고 볼 필요가 없었다.
“여유가 중요합니다.”
“여유, 네.”
“다현 씨가 더 강해지려면 수련의 양보다 질이 중요합니다. 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수련해야 합니다. 만약 오늘 컨디션이 안 좋다 싶으면 푹 쉬는 게 오히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수련의 질, 질이군요.”
“예.”
“조언 감사해요. 진짜 다음에 제대로 대접할게요. 혹시 좋아하시는 게 있나요?”
“저번에 된장 전골을 만들 때 아쉽게 넣지 못한 재료가 있습니다. 그걸 넣으면 몇 배 더 맛있었을 겁니다.”
정다현의 눈이 수련에 관한 걸 얘기할 때보다 더 반짝였다.
“그런 마법의 재료가 있다고요? 뭔데요? 알려 주세요!”
“아울 보어 머리입니다.”
“아울 보어 머리··· 해 볼게요!”
“기대하겠습니다.”
암시장에 갈 때 아울 보어 머리를 하나 구해 오면 좋아하려나?
* * *
이번 생에 처음 암시장을 방문하면서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혈종으로 모두를 적으로 돌렸던 시절, 내 의식주 상태는 좋지 못했다. 행적이 드러나면 어김없이 추격이 따라붙었기에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던 곳이 암시장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암시장에서 필요한 물건만 사고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정주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암시장 방문 후 추격이 붙었는지 알게 됐지만.
암시장은 주로 20일에서 한 달 사이에 한 번 열리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오픈했다가 아침이 되면 흔적도 없이 철수한다.
암시장이 형성되는 곳은 수도권 외곽 지역.
항구와 멀지 않고 대기업, 대형 길드 세력권이며, 빌런들도 접근할 수 있는 이해관계가 일치한 곳이다.
“그래서 구역이 나뉘었군.”
암시장이 형성되면 크게 3~4개 구역으로 나뉘곤 했는데 그게 바로 세력별로 경계가 그어졌던 것이다.
과거로 돌아와 곱상한 외모가 되어서 입장이 거절될까 걱정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바로 통과되었다.
“오랜만인데.”
암시장에 방문한 이유는 별다른 건 아니다. 소탕 작전을 포기했으니 다른 방법으로 약화시킬 방법을 직접 둘러보며 찾아보기 위해서다.
빌런이 힘을 얻는 과정은 그들이 도시에서 이탈한 유민들을 흡수해 숫자를 불리고 총기류로 무장한 뒤 헌터들을 습격할 때다.
저레벨 각성자에게 총기류는 여전히 유효했기에 암시장의 총기류는 빌런들이 싹 쓸어 가곤 했다.
사냥하는 헌터들을 습격하고, 그 헌터들 중에 윤희가 있다. 그리고 세력이 커지면 지방 도시를 공격하기도 하는데 부모님은 지방에 계셨고.
나로서는 암시장을 약화시켜야 할 이유가 존재하는 셈이다.
완전히 없애 버리면 더 좋고.
“예전이랑 똑같네.”
암시장은 정확하게 두 분류만 존재한다.
물건을 사는 자와 파는 자.
손님이나 상인이나 모두 과묵했다. 쓸데없이 이목을 끌 이유도 없고 목소리로 정체가 밝혀질 수 있어서다.
유일하게 대화가 오가는 건 물건 값을 주고받을 때다.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며 든 생각은 암시장은 철저하게 이해가 맞물린 곳이란 점이다. 왜 정주호가 말렸는지 잘 알겠다.
일단 여기 있는 인원을 다 죽이면 수습하기 쉽지 않아 보이긴 했다. 일일이 쫓기도 쉽지 않았고.
정주호가 커버하지 못하면 내 존재가 노출되고, 빌런들은 상관없더라도 대기업, 대형 길드는 가만있지 않겠지.
여러 사건사고가 터지는 가운데 균형을 잡으려는 부분을 나는 높게 평가했다. 정주호는 내가 쓸모 있으니 빌런이 되지 않길 원해 말렸겠지. 나도 공무원 헌터라서 빌런을 체포할 때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다.
물론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것들만.
가장 확실한 건 레벨 측정으로 초인 인정을 받고 권한을 쥐는 것이다. 주변의 관심이야 이미 혈종일 때 받아 봐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
주변의 귀찮음이야 감수하면 그만이고. 다만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없네.”
혹시나 버서커가 있을까 싶어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암시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는데 오늘은 허탕인 건가.
그러다 익숙한 물건을 발견했다.
유해 4단계에 해당하는 마물의 심장이었다. 가격도 적당하고 현금화하기 좋아 쫓기던 시절 3~4단계 심장을 많이 취급 했었다.
“이거 가격은?”
“에누리 없이 2천만 원.”
“······.”
“안 살 거면 꺼져.”
난 충격을 받아 욕하는 것도 그냥 지나쳤다.
저번 생에 내가 상인한테 팔 땐 개당 300만 원에 팔았었는데. 설마 당했던 건가. 암시장을 여러 번 들렸어도 나한테 필요한 게 아니라 가격에 관심이 없었다.
설마 다른 물건들도?
그 길로 암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저번 생에 내가 팔았던 물건들을 찾아보았다.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20배 이상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이제야 암시장 상인 놈들이 왜 목숨을 걸고 나한테 접근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호구라니.”
눈앞에 있었으면 모조리 머리를 부숴 버렸을 텐데.
판도라의 상자를 연 나는 얼얼한 충격을 받은 채 암시장 외곽으로 이동했다.
처음 방문할 때만 해도 암시장은 모두가 윈윈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필요하지 않은 장물을 팔 수 있고 다소 비싸지만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다.
그 속에 유일한 피해자는 나였다.
이익 앞에서 목숨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건가. 돈에 미쳐 있으면 얼마나 대담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불현 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좋은 방법인 거 같은데.”
암시장은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곳이다. 정주호는 내가 이곳을 붕괴시킬 경우 그 세력들이 적으로 돌변할까 걱정하는 거고.
그렇다면 서서히 망하게 만들면 어떨까?
가령 암시장에 방문한 빌런이 있다고 치자. 암시장을 방문할 정도니 기본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고 돈도 많아 구매력도 상당하다. 그만큼 해로운 녀석일 테고.
그 빌런이 암시장 방문 후 실종된다면?
그리고 한두 명이 아니라 꾸준히 그 숫자가 늘어난다면?
빌런들은 몸을 사리게 될 테고 암시장은 돈을 쓰는 고객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너무 대놓고 제거할 필요가 없다. 빌런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줄 정도로 꾸준히 하면 된다.
빌런을 제거하는 건 정당한 공무집행이니까. 안 들키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버서커가 걸려들면 좋은 거고.
암시장 밖으로 나온 나는 희생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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