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62)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안 괜찮을 건 또 뭐가 있나. 좋은 보기가 하나 더 새로 생긴 건데.”
자식 관련된 내용이라도 그룹 회장으로서의 객관적인 시선과 중심 잡힌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투로 손 회장이 말했다.
“나는 항상 이 재경 안에서 내 포지션에 의문을 품어 왔던 사람이야.”
남 사장과 조 전무는 지난 세월 손 회장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종종 들어 왔기에, 오로지 그의 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난 나중에 어떤 경영자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 하는 걱정 혹은 의문을 항상 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거지. 아버지가 손중길 회장님이셨어. 세상은 날 형을 죽음으로 몰고 간 기회주의자라고 말하고 있고.”
“아닙니다, 회장님.”
“세상이 그렇다고 하는데, 조 전무 자네 혼자 아니라고 한다고 아닌 게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상관없어.”
“…….”
“이제 와 갑자기 이런 욕심이 생기기 시작해.”
남 사장과 조 전무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숨소리마저 조심하고 있었다.
“그래, 타고난 복이 이런 거라면 차라리 이방원이 되자.”
“…….”
“아버지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것처럼 재경을 만드셨고, 세상은 날 친형까지 몰아내고 왕위에 앉은 인물로 만들어 놨어. 여기에서 내가 내 손에 진짜 피를 묻혀 가며 제대로 기반을 다져 놓고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진 재경으로 자식 대에 넘겨줄 수만 있다면, 욕심만 많은 무능한 경영인으로 남지는 않을 거 아닌가. 이게 내 복이라면 이방원이라도 좋으니 그런 평가라도 들었으면 좋겠어. 욕심이 많았다는 소리는 칭찬으로 넘길 수 있겠는데, 무능하단 소리는 여전히 듣기에 아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약점을 자신의 최측근인 두 사람 앞에 고백한 뒤 힘든 미소를 지으며 손 회장이 말했다.
“두 놈 중에 세종을 찾아 왕위에 앉힐 수만 있다면, 내 손에 더러운 것은 얼마든지 더 묻힐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 앞으로 자네들이 날 좀 도와줘.”
“…네.”
“자네들도 알다시피 이제 우리한테는 그렇게 시간이 많지가 않아. 세대교체. 좀 더 집중해서 신경 써야 할 때가 온 거야. 자식 놈들 대에선 옛날 같은 그런 큰 잡음이 안 나왔으면 하는 게… 솔직한 지금 내 심정이기도 하고.”
* * *
“김 부장님?”
“아, 좀… 그만 좀 하시라니까요, 과장님.”
참 요즘 것들 재미없다.
흥이라는 걸 모른다, 이놈들이.
기껏 고 부장을 생뚜앙 지사로 보내고, HRO까지 만들어 줄줄이 승진을 시켜 놨으면 축제 분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는 만들어내어야 정상 아닌가?
왜 이런 날까지 좋은 감정을 숨기고 있지?
다들 웃음을 참느라 광대뼈가 봉긋한 게 빤히 보이는데 말이다.
“그만하긴 뭘 그만합니까? 안 그렇습니까, 박 차장님?”
“크흠… 이제 좀 적당히 하셔도 될 거 같긴 합니다, 과장님.”
이거 봐라, 이거….
“에이, 진짜 재미없다. 누군 뭐 이렇게 오버를 하고 싶어 합니까? 왜 다른 부서 신경을 씁니까? 우리가 잘해서 줄줄이 승진이 이뤄진 건데, 오늘 같은 날은 인사부 타이틀 내려놓고 그냥 편하게 좋아만 하자고요.”
요즘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뭐랄까… 쓸데없는 겁이 너무 많다고 할까?
아무튼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우린 뭐 맨날 다른 부서 사람들 챙기는 일만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까? 오늘 같은 날 누가 우리 인사부 직원들한테 축하한다고 인사를 해 줍니까? 우리끼리라도 해야죠.”
물론 인사부 전체 줄줄이 승진은 보는 사람에 따라 신상품 개발팀 전체 정직원 전환과 더불어 형평성의 문제로 말이 나올 수도 있는 부분.
그런 부분을 가지고 다들 너무 조심하는 모습이 한 번씩 날 답답하게 만들 때가 있다.
과연 요즘 사람들이 알기나 한 걸까?
30년 전과 비교해 요즘 사람들이 훨씬 더 남의 눈치를 많이 살피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병처럼 쓴다는 걸.
좋은 걸 오로지 좋다고 말하지 못하고, 싫은 걸 솔직하게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건 요즘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데 옛날보다 요즘이 훨씬 더 심한 게 분명하다.
결국, 난 꽥! 하고 사무실 정중앙에서 소리를 질렀다.
“자, 자! 다들 잠시 주목 좀 해 주세요!”
그제야 이번 줄줄이 승진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올라 있는 광대를 애써 숨기며 날 쳐다봤다.
“우리 인간적으로 오늘 같은 날은 승진자들이 돈 걷어서 회식 한번 합시다.”
여기저기에서 이번 하반기 인사에 포함되지 못한 직원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회가 좋아요? 개별적으로 승진 턱 내려면 돈이 얼마야? 다 같이 모아서 승진 턱 내면 메뉴도 풍부해지고 자리 분위기도 훨씬 더 잘살고 다 좋지. 안 그래요?”
“네, 맞아요! 승진자들 승진 턱 쏘세요!”
“쏘세요!”
“쏴!”
“쏴!”
난 사무실 직원들을 진정시켜 놓고 진행을 맡았다.
“회식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너무 자주 하면 서로 피곤하고, 한 번 할 때 확실히 하는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지난달 회식 때처럼 1차는 회사 앞 한우집에서 팀 회식비로 계산하고 2차, 3차는 이번 승진자들이 돈 모아서 내는 거로. 난 그게 완벽할 거 같은데, 다른 의견 있으신 분?”
결국 김원호 부장이 못 이긴 척 내 옆으로 다가와서 사무실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손 과장님 말대로 오늘은 승진자들 축하 겸 팀 회식. 1차는 지난달 회식했던 한우집에서 하고 2차는 그냥 제가 다 낼게요. 3차는 나머지 승진자들이 뿜빠이해서 해결하는 걸로!”
“와!”
직원들의 박수 소리와 환호가 인사부 사무실을 폭발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올라가 있을 때였다.
진동으로 안 해 놨으면 전화가 오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바지 주머니에서 폰이 진동을 일으켰다.
난 그제야 축제 분위기로 바뀌어 버린 사무실 모습을 뒤로한 채, 전화를 받으러 잠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남 사장의 전화였다.
“네, 사장님.”
―뭐야?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라니요? 뭐가요?”
―지금 이거 사람들 고함 소리 아냐?
“아, 오후에 인사 공지 떴잖아요. 직원들끼리 서로 축하하고 기분 좋게 떠들고 있는 중입니다.”
―놀래라. 난 또 뭐라고. 그럼 지금 사무실이겠네?
“네.”
―나도 지금 본사 사장단 회의 참석했다가 금방 복귀했거든. 잠시 내 방으로 좀 올라와. 할 이야기가 있어.
“지금이요?”
―왜? 바빠?
“바쁜 건 아닌데….”
아니구나.
지금 가야겠구나.
지금 가면 남 사장한테 팀 회식비 찬조도 좀 뜯어낼 수 있겠는데?
잘 걸렸다.
“네,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 * *
괜찮아야죠
남 사장과 조 전무를 통해 오늘 오전 그룹 본사 사장단 회의에서 있었던 정태 녀석의 발표와 그 후 홍준이가 두 사람만 따로 불러서 했다던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었다.
“회장님께서 두 분만 따로 불러 오늘 본사 상무가 한 발표의 기획이 제 기획이었단 말을 했단 말이죠?”
홍준이가 생각이 많아지고 있는 중인가 보다.
그래, 그 복잡한 심경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랬다.
자식들을 두고 후계를 결정하는 그 복잡한 심경은 기업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인 것이고.
남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시면서 너한테도 기회를 한번 줘 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어.”
기회?
이놈들이 지금 날 웃기고 있구나.
나에게 기회를 준다?
좋다.
아직은 내가 놀아나 주마.
“인사부 과장 자리에서 제가 잡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게 과연 뭐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거 때문에 네 생각을 묻고 싶어서 오라고 한 거야.”
옆에서 조 전무는 입을 무겁게 해 놓고 나와 남 사장의 대화를 지켜보기만 했다.
“일전에 전무님이 회장님께 브랜드 론칭에 관한 네 생각을 전달하신 적이 한 번 있다.”
난 잠시 시선을 조 전무 쪽으로 돌렸다.
더 이상 내가 보내는 시선을 불편하게 받지 않는 조 전무의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곧 남 사장이 다시 말을 붙였다.
“그 부분에 대한 기획을 오피셜하게 한번 만들어 봐.”
“그건 아무 문제 될 게 없는데요, 제 말은 그런 프로젝트를 인사부 과장이 진행을 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겠냐는 거죠.”
“부서 이동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내용인 거고.”
이번만큼은 남 사장에게 과장 손정훈이 아닌, 재경가의 일원으로 엄한 눈빛을 보냈다.
“사장님은 저 한 사람 때문에 회사를 유치원으로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뭐?”
“재경이라고 하면 그래도 대한민국 경제 속에선 나름 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 아닙니까?”
“그게 뭐가 어땠다는 거야?”
“큰아버지부터 시작해, 지금의 회장님, 그리고 본사 상무까지… 과장으로 입사를 해서 현장 경험을 쌓고 차례대로 그룹 본사로 들어갔던 건 어쩌면 짧은 반백 년의 역사 속에서 재경이 만들어 가고 있는 작은 전통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남 사장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놈이 감히 지금 날 떠봤다는 게 되는 건가?”
“저는 제가 그걸 깨고 싶지도 않고, 오히려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더 크게 부각해 놓고 그룹 본사로 들어갈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더 크게 부각해 놓고 그룹 본사로 들어갈 계획이다… 좋아. 그 부분에 대해선 손 과장 네 의견을 존중해 주겠어. 그럼 브랜드 론칭에 관한 기획 건은 잠시 묻어 두는 걸로 하면 되겠어?”
날 떠보는 게 맞았네.
귀엽다.
“사장님.”
“말해.”
“우리는 같은 편입니까?”
난 남 사장에게 먼저 묻고, 곧바로 조 전무의 표정을 살폈다.
“당연한 걸 물어?”
“어떤 의미에서 같은 편입니까?”
“뭐가?”
“회장님의 사람이라는 공통점에서 같은 편인 겁니까, 아님 재경모직이라는 점에서 같은 편인 겁니까?”
“재경 안에 회장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이 어디에 있나.”
“그럼 재경모직이라는 점에서 같은 편인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회장님께서도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사 상무가 발표한 기획안이 원래는 제 기획이라는 걸 두 분께 비밀로 알려 주신 걸 거고요.”
그 말에 남 사장과 조 전무의 표정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이런 답답한 놈들.
확실히 홍준이가 그나마 인물이란 증거인 것일까.
하긴.
그 정도 인물은 되니까, 지난 세월 세를 불리지는 못했더라도 지금까지 재경을 꾸역꾸역 끌고 올 수 있었던 거겠지.
“사장님과 전무님은 회장님께서 진심으로 저한테도 기회를 한번 줘 보겠다고 브랜드 론칭에 관한 프로젝트를 저한테 시켜 보라고 하셨다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게 무슨….”
정치력이 좋다고 하는 조 전무마저 홍준이의 깊은 생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정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겠나.
이게 현실인 것을.
하지만 그나마 다행 아닌가.
어쨌거나 남 사장과 조 전무가 이젠 확실히 노선을 내 쪽으로 옮긴 것 같으니.
“저는 오히려 지금 회장님은 본사 상무를 사장으로 올리기 위한 명분 쌓기를 하고 계신 중인 거 같은데요?”
“명분 쌓기?”
“재경이 스너프를 인수해서 트래픽 사업에 뛰어들면 그 사업을 누가 맡아 나가겠습니까? 당연히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시킨 본사 상무가 맡아 나가겠죠.”
이건 정말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모직 인사부 과장인 저한테 그 프로젝트를 맡길 수도 없었을 것이고, 만약 제가 해당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하면 사업의 필요성을 떠나 본사 상무 쪽 인사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적잖은 반감을 표현했겠죠.”
“……!”
“하지만 해당 프로젝트 기획이 본사 상무의 기획이었다고 하면요? 재경 그룹 전체로 놓고 봐도 손해 볼 게 없는 사업에 어쩌면 큰 유통판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스너프 인수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는 거죠. 오히려 다들 열을 올려 가며 해당 기획에 투자와 지원을 쏟아부을 겁니다.”
“그 말은… 손 과장 너는 회장님이 이런 결정을 하실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거야?”
“이런 결정을 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죠.”
내심 불안하기도 했었다.
괜히 이만한 기획 건 때문에 날 귀찮게 오라 가라 하지는 않을까, 정태 놈이 빈정 상하게 나와 경쟁을 붙이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여기까지가 큰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