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 Wicked Woman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기어코 밝아 온 아침에 오즈번은 눈을 찌푸렸다. 자신이 오늘 죽을 날이란 것을 알기라도 한 것인지 오즈번은 자신을 비추는 햇빛에 치를 떨었다. 물론 지하라서 아주 작은 틈새로 새 들어온 빛이지만 그마저도 역겨운 듯 침을 뱉는 오즈번이었다.
“죄인을 압송하라.”
레켈의 명령에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드디어 감옥에서 나오게 된 오즈번은 이를 빠득 갈았다. 빌어먹을 엘리자벳을 만났어야 했는데! 그년의 목이라도 졸라 죽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오즈번의 속은 타들어 가듯 부글거렸다. 그리고 그런 오즈번의 앞에 나타난 카를시아였다.
“이런, 아무도 오지 않았군.”
“…….”
“반드시 올 거라던 사람은 아직 소식이 없나 보지.”
“하! 폐하의 그 오만함과 자만이 얼마나 갈지 기대가 되는군요.”
이제 그에 대한 사랑은 없었다. 증오와 경멸만 남았을 뿐. 오즈번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흉은 모두 엘리자벳과 카를시아라 생각했다. 애초에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황후로 두었다면 모두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가 되었을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미 틀어진 이야기 속에 틀어진 운명은 바로 잡을 수 없음이 분명했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시간을 돌리려 애를 썼던 오즈번이었다.
그렇게 오즈번은 이례적으로 죄인을 수송하는 마차가 아닌 걸어서 처형 장소까지 끌려갔다. 끌려가는 사이사이 백성들은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고 쓰레기를 던지며 욕을 하기도 하며 침을 뱉는 자도 있었다. 모두 시간을 돌리기 전, 엘리자벳이 처형을 당했을 때 당했던 굴욕이자 치욕이었다.
“…….”
이때 엘리자벳의 표정이 어떠했던가. 그리고 자신의 표정은 어떠한가. 오즈번은 입술을 까득 깨물며 엘리자벳이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들고선 매서운 눈으로 백성들을 째려보았다. 그런 오즈번의 모습에 기가 찬 사람들은 오히려 더 그녀를 비난하고 조롱할 뿐이었다. 딱 한 사람. 사람들의 무리 속에 섞여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브론드 루시엘라를 제외하고 말이다.
‘아아, 오즈번…! 네가 이런 취급을 받을 아이가 아니건만…!’
브론드는 끌려가는 오즈번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처형 장소는 분명 광장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처형을 인도하는 것은 황제인 카를시아가 아닌 아나이스 빈센트라 하였다. 그 말인, 즉, 엘리자벳도 그 자리에 참석한다는 뜻이었다. 브론드는 오즈번을 구하는 걸 최선의 일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엘리자벳을 죽이는 것 또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또다시 브론드의 몸속에서 검은색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꿈틀거림을 느낀 브론드는 오즈번을 따라 조심스레 처형 장소로 따라갔다. 모두가 오즈번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저 자신을 수상하게 보는 이는 없었다. 로브의 모자를 살짝 끌어당기며 더 모습을 숨기는 브론드였다. 마침내 도착한 처형 장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죄인을 이리로 끌고 와라.”
아나이스의 명에, 기사들은 오즈번을 처형이 있을 단상 위로 끌고 갔다. 분명 단두대가 있어야 했지만, 그 무엇도 있지 않았다. 오즈번을 뒤로 카를시아와 아라한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왼편엔 엘리자벳이 앉아 있었다.
‘하…! 이 내가 순순히 죽을 줄 알고…!’
오즈번은 엘리자벳을 째려보았다. 그런 오즈번과 눈을 마주친 세화는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죄인의 죄목을 알고 있는가.”
아나이스의 말에 오즈번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죄는 없었다. 죄가 있다면 저 엘리자벳을 죽이지 못한 것이요. 시간을 돌리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일말의 반성 따윈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옳고 자신이 맞았다. 이곳은 자신이 주인공인 세계니까.
“다시 한번 묻겠다. 죄인의 죄목을 알고 있는가.”
아나이스는 침착하게 다시금 되물었지만, 오즈번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오즈번의 모습에 기가 찬 듯 헛웃음을 내비친 아나이스가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네놈의 죄가 하도 커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군.”
아나이스는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는 판단하에 제 허리춤에 있는 검을 꺼냈다. 그 순간이었다. 광장들의 무리 속에서 아스칼과 같은 검은색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걸 제일 먼저 목격한 것은 오즈번이었다.
그리고 그 연기의 주인이 자신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제 오라비인 것도 알아차렸다. 차마 연기를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과 아나이스는 그대로 검을 내리쳐 오즈번의 목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깐.”
그런 아나이스를 멈춰 세운 것은 세화였다. 세화의 목소리에 아나이스는 들고 있던 검을 멈칫거렸다. 그건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웅성거리던 소리를 멈추고선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화는 자신이 앉아 있던 단상에서 내려와 오즈번을 향해 걸어갔다.
“…위험하니 물러나 있도록 하거라. 이 할아버지가 모든 것을 끝낼 테….”
어느새 아나이스의 옆에까지 온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선 잠시 기다려 달라는 듯 아나이스를 바라보았다. 용서하는 것은 아니었다. 용서할 생각도 없었고. 하지만 듣고 싶었다. 그렇게까지 발악해서 얻을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던 이가 왜 탐욕과 욕심의 악마가 되었는지.
“…잠시, 잠시만요.”
나의 간곡한 부탁에 아나이스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리고선 한숨을 쉬었다.
“만약 저년이 또 널 해하게 한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힘을 잃었잖아요.”
“하…! 하하하하하!”
얌전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오즈번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소리 내면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
뒤를 돌아 날아온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광장을 본 나는 아스칼이 내뿜었던 검은 연기와 같은 사내를 보고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스칼은 분명 처리했다.
그런데 저 검은 연기는 무엇인가. 주위 사람들을 덮치기 전에 어서 속히 저 연기를 없애야겠다, 생각한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준비한 오펄의 검을 꺼내 들었다.
내가 갑자기 검을 들자 그제야 광장을 바라보는 카를시아와 아라한, 아나이스였지만 이미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브론드였다.
“어째서…! 아스칼은 분명…!”
“오만과 자만의 신이 다가 아닌가 보지.”
오즈번은 걸어오는 자신의 오라버니를 보고 직감했다. 자신들의 욕심과 자신들의 오만이 악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란 것을. 그것이 루시엘라 가문의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루시엘라의 그 자체가 사탄이라 불리는 루시퍼의 근원이기에 그러할지도 모르지.
“하….”
오즈번의 말에 나는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아나이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후, 도대체가 어떻게 제 언니를 닮아서는.”
“그러니까 쌍둥이잖아요.”
나는 아나이스의 실없는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내가 끝냈어야 할 이야기였다. 아르켈미스가 증거로 남기고 기록해 놓은 소설을 읽은 내가 마무리 지어야 할 이야기. 이야기의 끝마무리는 원래 주인공이 하는 법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나니까.
엘리자벳도 오즈번도 아닌. 이세화니까.
“그래,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말거라.”
아나이스는 내 맘을 이해했는지 얌전히 뒤로 물러나 날 지켜보았다. 어느새 브론드는 내 눈앞으로 다가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아르엘시아.”
“빌어먹을 루시엘라가 할 말은 아닌데.”
“어차피 죽을 운명의 네년이었다.”
“그건 엘리자벳이고 난 엘리자벳이 아닌걸.”
“하…?”
브론드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조소를 비추며 ‘드디어 네년도 미쳤구나?’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오즈번에게 오라버니가 있는 것처럼 엘리자벳에게도 동생이 있었거든.”
“하…! 그래서 네년이 그 동생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맞아. 내가 그 동생이야. 네가 동생을 위해 날 죽이러 온 것처럼 나도 내 언니를 죽인 널 용서할 수 없거든.”
“그래서 그 신의 힘으로 날 죽이겠다는 건가. 네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는 브론드의 모습에 나는 오즈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도 느껴야지. 소중한 것을 잃은 감정을. 엘리자벳이 날 잃었던 것처럼. 내가 엘리자벳을 잃었던 것처럼. 그래야 공평하잖아.”
그 말을 끝으로 오펄의 검은 오즈번을 향해 겨눠졌다. 그런 나의 행동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브론드의 검은색 연기가 날 휘감았지만 더 이상 그 힘은 날 옥죄지 못했다.
“어째서…!”
자신의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자 브론드는 당황했다. 그런 브론드의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까득 깨물던 오즈번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브론드를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즈번이 브론드의 팔을 깨물고 그의 검은색의 연기가 점점 오즈번에게 흡수되고 있음을.
“쓸 줄 모르면 넘겨.”
이미 오즈번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건 완벽하게 마몬이 되어 버린 욕망의 덩어리만 있을 뿐. 그리고 그 욕망의 덩어리가 이내 기하학적인 움직임으로 몸을 일으키며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목 꺾임으로 날 바라보았다.
‘분명, 이 소설 전체 이용가였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청소년 관람 불가로 만드는 걸까.’
“세화야…!”
날 부르는 아나이스를 안심시키듯 미소를 지었고 다시금 오즈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의 죄목은 남의 것을 탐한 죄야.”
“원래 나의 것이었어!”
“원래 너의 것이란 건 없었어. 애초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네가 아니거든.”
“아니!! 네년만 죽이면 돼!! 네년만 죽이면 아르켈미스의 힘이 내게 들어와 내가 주인공이 될 거라고!!”
저런 걸 피해망상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난생처음 듣는 말에 나는 눈을 끔뻑이며 측은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피해망상에 허언증까지. 정말 정신병의 콜라보를 가지고 있는 오즈번의 모습에 나는 지체 없이 검을 높이 들었다.
이미 인간이 아닌 그에게 자비란 없었다. 사람들을 농락하고 죄 없는 이를 죽였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엄청난 죄를 지은 죄인지라 내가 굳이 검을 내리치지 않아도 아르켈미스가 알아서 단죄할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엘리자벳은 그러지 않고 자신이 직접 오즈번을 죽였겠지. 그리고 그녀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었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 이왕이면 단숨에 죽이면 좋고.”
엘리자벳이 언젠가 오즈번에게 뱉은 적이 있던 말이었다. 역시 걸 크러시의 본좌, 엘리자벳의 대사다운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내뱉는 나도 그녀의 동생다운 이세화였고.
‘휙!’
오즈번이 더 발악하기도 전에 내려쳐진 검이 순식간에 검은색의 연기를 베어 냈다. 그리고 그 속에 남아 있던 오즈번의 목이 처연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하고 떨어진 목에 사람들은 엘리자벳에게 했던 그 행동들을 그대로 보이며 그녀를 향해 분노했다.
오즈번은 알까. 자신이 느꼈던 그 감정을 엘리자벳도 느꼈다는 것을. 자신이 당하고 있는 걸 오로지 혼자 감내해야만 했던 엘리자벳의 마음을. 회귀해서 복수하고 싶었을 텐데도 자신의 동생에게 모든 것을 누리게 해 주기 위해 회귀를 포기했던 엘리자벳의 마음을. 모를 것이다. 자신을 구하러 온 오라비의 힘까지 쥐어짜듯 먹어 버린 그녀에게 엘리자벳과 같은 마음은 없었다.
어디로 보나 엘리자벳은 성녀였다.
‘이제 모든 게 끝났어. 그러니까 언니도 편히 쉬어.’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어디선가 듣고 있을 엘리자벳에게 말을 걸었다. 돌고 돌아 끝난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였다. 엘리자벳이 준 이 기회를 난 다시 잡고 일어설 생각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내게 준 선물이니까.
‘고마워,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