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의도 (2)
세 개의 특성이 한꺼번에 몸에 깃들자 변화가 바로 체감되었다.
탈진과 회로 과부하.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신체에 주던 부담과 고통이 한순간에 누그러든 것이다.
여전히 조금 불편하긴 하나, 환자처럼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하는 상태에선 분명히 벗어났다.
“…응?”
단숨에 기력을 회복한 카를의 모습에 아나스타시아의 눈이 커졌다.
진짜로 괜찮아졌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듯 그녀가 물었다.
“카를 괜찮…아진 거예요? 마법사들이 며칠은 쉬어야 한다고 말하던데….”
“무리할 생각은 없어. 그런데, 괜찮아.”
“그럼 다행이네요. 금방 나아서.”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아나스타시아는 웃어 보였다. 그러고선 다시 책을 들었다.
“구체적으로 틈을 이용하는 방식은… 아마 틈을 이용해서 신들의 세계로 넘어가려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카를 당신은 어때요?”
“직접 넘어간다….”
“네. 아, 잠깐만요.”
허상 세계로 향하는 틈을 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시아나도 원한다면 허상 세계로 향하는 틈을 열고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공간 계열 마법사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칼리테에겐 그런 마법사를 다수 포섭할 능력도 있었다.
틈이 목적이라면 마법사가 아닌 신을 강림시킬 이유가 없다.
절망의 신이 강림하면서 생기는 거대한 틈. 그걸 노리고 있다.
“저희 단원들이 보내 준 교전 보고서에요.”
“용병들이?”
“네.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그림자… 그러니까, 사도들이랑 맞닥뜨린 단원이 꽤 있어요. 그래서 교전도 몇 번 있었고요.”
아나스타시아가 꽤 두꺼운 보고서를 카를에게 주었다.
「분석」과 「이해」가 작용했다.
“다 다른 곳에서 벌어진 전투인데도… 일방적으로 물러난 건 사도들이군.”
“네. 그게 좀 거슬려요. 호위대장은 그림자들의 실력이면 저희 단원들은 상대도 안 될 거라고 했거든요. 과하게 몸을 사리고 있어요.”
“만약 우리랑 싸울 작정이었으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지.”
“네. 그거예요.”
그림자의 몸에 깃든 사도들이 자신을 노릴 기회는 한없이 많았다.
재현된 사도들과의 싸움은 모두 개방된 광장에서 벌어졌다.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그 기회를 놓쳤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황궁 지하에서 자살 테러에 당한 것만 해도 그렇다. 놈들은 반드시 빈틈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자살 테러는커녕, 적극적인 공격이 아예 없다.
애초에 노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림자들의 육체를 조종하는 주도권은 확실히 칼리테에게 있어. 그 녀석이… 우리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의도는 없고.”
오히려, 칼리테는 자신에게 저 신을 막아 달라 부탁했다.
대체 왜. 그런 의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친다. 마력이 조금씩 소모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죠. 제 생각엔 자기가 조종할 수 있는 사도들을 전부 이끌고 틈을 넘어가려는 게 아닐까요?”
“전부….”
“네. 거의 100명이니까요. 동시에 넘어가려면 틈이 커야 하니까…….”
저런 신을 불러낸 것 같아요.
아나스타시아의 그 목소리가 바로 옆이 아니라 한참은 떨어져 있는 곳에서 말하는 것처럼 작게 들렸다.
해가 진 후의 풀벌레 소리. 상단 건물 내에 있는 사람들이 내는 말소리, 발소리. 그런 모든 소리가 순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
시야가 흐려졌다. 약에 취한듯 몽롱하지만 무언가에 취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두뇌 회전만은 또렷했다. 주변의 모든 감각이 거의 사라지고 「사고」만이 가속된다.
이런 현상을, 읽어 본 적이 있다. 책. 에르딘 칼렉의 저서 중 하나.
일정한 경지에 이른 마법사들은 마력 그 자체와 동화될 때가 있다는 그 말. 경험담에 의거한 저술은 칼렉을 동경하던 자신의 기억에 분명히 남아 있다.
“아….”
자신이 왜 갑자기 이런 상태에 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특정한 상황에서만 작용하는 다른 특성과 달리 「사고」는 언제나 작용한다. 그 특성이 최대한의 마력을 소모하며 한계까지 작동하고 있었다.
사고의 확장. 그로 인해 몰입이 발생했다.
“다른, 이유.”
고작 틈의 크기를 넓게 하려고 절망의 신을 강림시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칼리테는 이번 한 번에 모든 것을 걸었다. 단순히 다수의 인물이 건너가기 위해 넓은 틈을 필요로 했다면 더 많은 공간 계열 마법사를 고용하는 것이 정상이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
“…아카시아의 영혼?”
진짜 역사서의 말미에 나오는 케리엔의 목표는, 정황상 그것이다.
아카시아의 영혼을 되찾는 것.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다시 살려 내려는 것.
하지만 아카시아는 영혼을 빼앗겼다. 아스텔이 말하길, 그 후에 전쟁의 신에게 패해 결국엔 무너졌다고 하던가.
아카시아의 혼은 절망의 신에게 빼앗겼으리라. 목적은 인간들을 무너뜨리는 것이지, 그 영혼을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녀의 영혼은 소멸되었을 것이다. 칼리테가, 케리엔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영혼을 되찾고자 절망의 신을 쓰러트리려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가능성… 다른, 방법.”
말도 안 되는 방법. 자신은 떠올리기도 어려운 방법. 하지만, 가능성은 있는 방법.
칼리테는 지금도 죽음을 극복한 힘을 가지고 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700년. 그 시간을 되돌리려고 하는 걸까.
“카를…?”
그의 몸이 푸르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손과 발, 머리카락 따위의 신체 끝부분은 마치 눈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마력과 육체가 한층 더 깊이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으로 한층 더 깊게 「사고」가 확장된다.
“허상 공간. 시간. 연관점.”
지식과 경험. 그 모든 것을 동원해 찾는다. 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카를은 바로 얼마 전의 기억으로부터 답을 찾아냈다.
자신의 신.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신. 그 신을 마주하러 갔을 때, 자신은 어떻게 갔는가?
무덤이었다. 아스텔을 비롯한 죽은 자들의 무덤. 그곳의 시간은 멈추어 있다.
“차이점이, 있다.”
현실에 개입하기 위해서 아스텔은 자신의 의식으로 들어왔다. 카리아에게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허상 공간은 달랐다. 그 무덤의 깊은 지하…에서 문을 열자 허상 공간이 나오지 않았던가?
시간이 흐르는 현실에는 직접 개입할 방법이 없어 타인의 의식에 접속해야 하지만, 허상 공간은 이어져 있다.
“시간이 고여 있는 곳….”
신의 죽음은 평범하지 않다. 죽음 이후에도 정수가 남는다. 다시 자신을 상징하는 개념이 모이길 기다린다. 죽어 있는 동안 정수는 변하지 않는다.
허상 공간의 일부는 시간이 흐를 터이나, 일부는 시간이 멈춰 있다.
칼리테는 그 고여 있는 시간을 노리는 것이다.
……「사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첫 마력 동화인 만큼 통제는 쉽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마력 탈진에서 갓 벗어난 참이다. 카를은 차라리 마력을 모조리 소모할 때까지 이러고 있자고 결정했다.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 잘 알 수도 없는 권능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었다.
“…….”
「사고」는 폭주하며 의식의 시간마저 가속시켰다. 한 시간은 족히 흐른 듯했으나, 벽에 걸린 시계의 분침은 겨우 두 칸 움직였다.
2분. 그 시간 동안의 폭주가 가져다준 수확은 명확했다.
칼리테의 의도. 사도들이 어째서 무덤 속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재현한 건지, 아스텔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더 강해질 방법까지.
“하아….”
방금 얻은 세 개의 특성은 몸에서 분명히 효과를 발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 번 마력 탈진이 찾아온 몸은 폭주가 풀림과 동시에 짙은 피로를 느꼈다.
“……카를?”
다행인 점이라면, 마침 그가 앉아 있었던 장소가 침대 위라는 것과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걸까.
앉은 채로도 비틀거리는 카를을 조심스럽게 눕힌 아나스타시아가 물었다.
“카를? 제 말 들려요?”
“…….”
“아, 음. 말, 하기 어려워요? 제 말 들리면 눈 한 번만 깜빡여 볼래요?”
눈앞에서 흔들리는 아나스타시아의 손. 카를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흐른다.
“괜찮아요? 아니면, 사람을 불러올까요? 괜찮으면 그냥 눈 감고 있어요.”
자신의 증상은 잘 알고 있다. 첫 마력 동화가 가져온 육체의 부하. 그리고 마력 탈진.
사람을 불러도 바뀌는 건 없다. 쉬면서 자연스럽게 회복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고 나면, 확실한 리턴이 있다. 마력 동화는 그 자체로 육체가 마력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니.
탈진된 마력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마력을 다룰 수 있게 해 주리라.
“괜찮다면 다행이에요. 아, 잠들었나…? 카를, 자요?”
“…….”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한쪽만 살짝 떠서 그녀를 응시했다.
많이 피곤해요? 그런 물음에 카를은 살짝 뜬 눈을 다시 감았다.
머리는 멀쩡한데 몸은 눈을 깜빡이거나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게 한계라니….
전신 마비 환자들의 심정이 이런 걸까.
“음… 제가 책 읽어 줄까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 책 읽어 줬거든요. 그리고 이 역사서… 카를은 아직 못 봤으니까.”
“…….”
“방금 눈 떴다가 깜빡인 거 맞죠? 알았어요. 그럼… 처음부터 읽어 줄게요.”
펼쳤던 책을 다시 덮고 표지부터 천천히 넘기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카를은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느꼈다.
“이 기록물은 영원히 우리 제국의 첫 번째 황제로 기억되실 아카시아 폐하의 일생을 다룬….”
700여 년 전에 쓰인 책의 문장은 고루하기 짝이 없었다. 다만, 그걸 읽는 사람의 목소리 덕분에 마냥 지루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 * *
북부, 크로우 가문 저택.
그나마 여름에나 볼 수 있는 싱그러운 잔디가 깔린 마당은 이곳저곳이 파헤쳐져 있다.
먹물이라도 뿌린 것처럼 새까맣게 된 잔디. 그것을 짓밟으며 한 남자가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아틸렌? 연락 들어왔어?”
“예. 가주님.”
저택 2층에 위치한 가주의 집무실은 빈말로도 좋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어지럽혀진 책상 위, 잔뜩 쏟아진 책들 분별없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들 그리고 깨진 유리창까지….
모든 것이 ‘습격’의 흔적이었다.
“먼저 북서쪽… 테나 집행관에게서 제일 먼저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깔끔하게 정리했다고 합니다.”
“진짜?”
“예. 테나 집행관이 조금 다치긴 했지만… 이상은 없습니다. 적은 일천 이상이 전사했고 나머지는 아예 쭉 후퇴했다고 합니다.”
수석 행정관 대리 아틸렌. 그는 자신이 직접 말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 거렸다.
고작 두 명이서 수천의 군세를 막아 냈다고 하면, 그게 말이나 되겠는가.
“작은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았다고 전해왔습니다. 진짜로 용을 불러냈다고 하더군요.”
새끼 백색용.
그리고 그 새끼 백색용을 비호하는, 다른 여러 성체 용.
용은 한 개체만으로도 전황을 뒤집는다. 그런 용이 여럿. 마수의 군세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방법이 없다.
“그리고 아카데미 쪽은… 탑주가 잘 해결이 되었다고 연락을 전해 왔습니다.”
“하긴 그쪽은 걱정할 것도 없었지?”
“조금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곤 합니다. 사상자가 발생할 뻔한 것을 카리아 프라헨이라는 학생이 잘 저지해 주었다고….”
“…알았어.”
유리아도 그 이름을 들은 기억이 있다. 굳이 ‘특별 지시’까지 내려가면서 데려온 학생. 보고를 들으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이 갔다.
“우리 쪽도 상황은 얼추 정리가 됐고….”
깨진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저택 내부의 광경을 둘러본다.
이곳저곳이 부서져 있고, 검고 붉은 피가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다.
습격은 이곳에도 있었다. 다만, 이쪽의 인원은 소수였다. 암살이 목적이었으리라.
하지만 저택에는 거수 토벌을 위해 불러 놓은 기사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오우거 기사. 리자드맨 기사. 어디서 그런 기사들만 골라서 데려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엔 그들이 제 역할을 다해 주었다.
“남은 건 정면밖에 없지?”
“예, 가주님.”
“레지엘 쪽은 어떻게 되고 있어? 나중에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저희가 지원한 동생 쪽이 ‘무적 함대’를 거의 장악했다는 소식입니다.”
레지엘 가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무적 함대. 그 함대를 장악했다면 이미 승계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레지엘 가문의 차남은 크로우 가문에게 전쟁 지원을 약속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아무리 빨리 와도 전투가 벌어질 때까진 못 올 것 같은데.”
“전선을 뒤로 물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주님.”
“그럼 주민들은 어쩌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하얀 잎 상단 쪽 인원이 있긴 한데….”
카를은 제도로 떠나기 전에 공격이 예상되는 장소를 미리 알려 주고 떠났다.
그 대응으로 테나는 ‘검귀’가 있는 곳으로 떠났고 저택의 습격은 사상자도 거의 없다.
아카데미는 예상하지 못한 듯하나, 그쪽은 이미 방비가 철저했다.
문제는 정면. 내전에서 패한 연합이 모든 것을 그러모아 쳐들어오는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아, 아가씨! 피하십시오!”
“응?”
당황한 나머지 아틸렌의 입에서 예전 호칭이 튀어나왔다.
이유는, 그녀가 앉은 자리 뒤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검은 물체. 그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두 번째 습격이라고 아틸렌은 판단 내렸다.
“…….”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검은 물체… 아니 인간, 아니 마족은 말없이 두 사람을 응시했다.
창문을 넘어 들어온 그 마족은 아틸렌 너머, 유리아를 호박색 눈으로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공작 까마귀의… 딸인가? 아니면 동생?”
“…뭐?”
“딸은 아닐 테고, 그대는 누구지?”
“동생…인데 왜 나만 대답해! 당신은 누군데?”
“그대들이 마왕이라 부르는 자.”
“뭐?”
“기어코 연합의 잡것들이 선을 넘었다. 그에 논의를 하러 왔다만….”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떼었다. 당황한 아틸렌이 떨어뜨린 종이를 주워 든 그녀가 말했다.
“그대와 이야기해도 상관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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