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다만 왕이 이르기를 (5)
무적함대가 가진 대형선 130척. 그중 약 90척이 동원되는 대규모 작전.
군소 왕국 연합 해군을 저지할 때 필요한 전력 40여 척이었으므로 전시(戰時)가 아님을 고려하면 최대 규모의 작전이었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더 꺾어야 한다.”
“여기서 더 가면 풍랑 지대인데….”
“풍랑을 피하고 들어갈 방법은 없다.”
이번 작전의 총지휘관 역을 맡은 가튼 아트마 백작은 레샬리에의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전단장이라고는 하나 연락책에 불과했던 그는 황제와 카를이 내린 명령을 전달한 덕분에 이번 작전에서 총지휘관이 되었다.
황제와 카를의 권력에 편승하겠다는 레지엘의 의지였으나 가튼 입장에선 피가 말리는 듯했다.
“풍랑을 피할 방법이 없으면… 으음.”
“배가 상할까 걱정되는가?”
“어, 음.”
레샬리에의 말에 가튼은 긍정도 부정도 못 하고 애매한 기색을 내비쳤다.
마력으로 작동하는 아티팩트, 일종의 엔진이라 불리는 것을 사용할 수는 있다고 하나….
마력의 소모가 커서 여전히 함선들의 동력은 돛에서 비롯된다.
거센 풍랑에 배가 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한데.”
“……예? 그, 그렇습니까?”
“대단한 자들이 이 배들을 지켜 줄 테니 말이다.”
레샬리에가 짓궂게 웃으며 카를을 바라보았다.
카를과, 카를이 데리고 온 마법사들 그리고 원래부터 함대의 소속이었던 마법사들이 배를 지켜 줄 것이다. 그리 말하고 있는 것이다.
“……흥.”
“어, 그, 그러면 수호자 합하… 괜찮겠습니까?”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휙 돌리는 레샬리에. 왜 저러나 싶었던 카를은 가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침몰할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기수를 북동쪽으로 돌리라고 전하도록.”
“예!”
가튼의 명령에 숨죽이고 있던 부관이 튀어 나갔다. 곧 뿌우우, 하고 뿔피리 소리들이 여러 번 울려 퍼졌다.
배가 천천히 방향을 튼다. 그것을 느낀 카를은 밖으로 나와 갑판 위에 섰다.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레샬리에의 옆으로 가서 물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드나?”
“…….”
“그대와 나는 나름 마음이 잘 맞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죽하면 이시엘이 묘하게 죽이 잘 맞는다며 고개를 갸웃거렸을까.
이전에는 생판 남임에도 친구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지냈으나, 재회하고 출항한 요 며칠 동안 레샬리에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내가 언제 네놈과 잘 맞았다고… 내가 네 녀석 엘프한테 어울려 준 것일 뿐이다.”
“그랬나.”
“……흥.”
다시금 콧방귀를 뀌고서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레샬리에. 카를은 그녀의 곁에 서서 마찬가지로 바다를 바라보며 물었다.
“레샬리에 그대에게도 기구한 사연이 있었던 것 같은데.”
“…….”
“말해 주지 않겠나.”
“기구한 사연은 무슨. 그런 게 있어 보이느냐.”
“나가가 바다 밖으로 나와 육지에서 싸우고 있는데 아무 사연도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물고기처럼 육지에 올라온다고 바로 죽는 건 아니지만, 나가들은 육지에서 활동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 아니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종족. 레샬리에도 하루에 절반 이상은 바닷물이 담긴 통 안에서 지냈다.
“이시엘과도 뭔가 약속을 했고.”
“…….”
“내게 말하기 곤란한 일인가.”
그렇게 말했으나 한참 대답이 없자 카를은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말할 생각이 없다면 굳이 캐물을 생각은 없다. 이윽고 걸음을 뗀 순간, 레샬리에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가들은.”
“…흠?”
“우리 나가라는 종족은 우리가 믿는 신을 죽였다. 절대적인 신을 믿지도 않기에 절대적인 군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들에겐 여왕이 있지 않나.”
“그렇기에 기한을 정해 둔다. 한 여왕은 13년을 통치하면 왕관을 벗어야 하지.”
민주주의나 공화주의는 아직 이 세계에 희박한 개념이었다. 학자들이나 논하는 이야기였지 실질적인 통치에서 쓰이는 일이 없었다.
신도 왕도 믿지 않는 종족. 나가. 어느 정치 체제를 택할 수 없는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의 여왕은 15년째 그 왕좌에 앉아 있다.”
“…15년? 반발은 없었나?”
“없었겠느냐.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들의 입을 틀어막았을 뿐이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터인데….”
“여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다. 딱 13년이면 끝나고, 이제까지는 그러했으니.”
레샬리에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카를은 그런 격언을 떠올렸지만, 이제까지의 나가들에겐 적용되지 않은 말인 듯했다.
나가들이 자신의 신을 죽인 것이 수백 년 전. 수십 명의 여왕이 딱 13년만 통치하고 내려왔다고 하니, 이번 여왕의 경우가 이상한 것이리라.
“레이 궁정의 레샬리에…라. 차기 여왕은 레샬리에 그대였을 테고.”
“…그렇다.”
“지금의 여왕은 그대를 내쫓았군. 아니면 위협을 해서… 그대가 제 발로 걸어 나왔거나.”
“내 침소에 푸른 달팽이의 독이 묻어 있더군.”
레샬리에가 왼팔을 들어 보였다. 온몸이 비늘로 뒤덮여 있었으나, 왼팔의 안쪽 피부는 비늘이 벗겨지고 살이 짓이겨진 흉터가 있었다.
“그래서 왕국에서 나와 군주님께 몸을 의탁했다. 그런데….”
“흠?”
“그런데 엘프 네놈이 군주님을 독점하지 않았더냐!”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레샬리에. 갑판 위의 마족과 선원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그들에게 쏠렸다.
읏. 당황한 레샬리에가 입술을 떨었다. 마족들이 눈치껏 함선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레샬리에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원래 말이다. 전쟁이 끝나면, 군주님께서 내게 왕좌를 약속하셨다.”
“레이 궁정의?”
“우리 나가들은 독립적이지만… 군주님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여왕은 명백히 규칙을 어겼으니….”
마왕이 나가들의 왕좌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런 말일까.
“하지만 네 녀석이 군주님을 독점하는 바람에 내가 레이 궁정으로 돌아가는 게 늦어졌다! 그런데도 네 녀석은 뻔뻔하게!”
“…….”
어이가 없을 정도로 유치한 이유였다.
“……미안하게 됐군. 그러니, 나도 약속하지. 여왕의 통치는 오늘로 끝날 테니 그대도 여왕이 될 수 있다.”
“이젠 관심 없다.”
“음?”
“다른 이의 손으로 세워진 여왕에게 왕관을 쓸 자격이 있겠느냐. 나는 계속 군주님의 곁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레샬리에의 눈에 깃드는 선망의 빛. 왕좌를 차지하지 못해서 원망한 게 아닌, 이시엘과의 사이를 질투한 것에 가까웠다.
할 말을 잃은 채 레샬리에를 바라보던 카를은 헛웃음을 흘렸다.
“준비해라, 엘프 녀석아. 이제 풍랑 지대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수평선의 끝자락에 검은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먹구름이 점점 더 크게 드리우고 있었다.
바람 역시 거세져서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쿠르릉…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 번개 소리에 카를은 품으로 손을 집어넣어 작은 손거울을 꺼냈다.
“아, 다들 듣고 있나?”
거울 형태의 통신용 아티팩트.
언젠가 칼리테가 자신에게 빌려주었던 것을 개량해 양산한 것이었다.
함선들에는 최소한 한 명, 많으면 세 명의 마법사가 탑승하고 있다. 그들만큼이나 마법에 능한 마족들 역시 다수 탑승했다.
배를 타고 있다면 천둥 번개와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달아나야 할 테지만….
마법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 그래슬리입니다. 듣고 있습니다.
―메리샤입니다. 듣고 있어요.
―사라. 듣고 있어. 선배.
“좋아. 나한테 맞춰서 마법을 발동한다. 연습한 대로만 해. 연습한 대로.”
뭘 하려는 거냐고 묻는 눈빛이 날아왔다. 카를은 레샬리에의 시선을 받으면서 입을 열었다.
“과거에, 우리는 신의 분노에 맞서는 짓을 어리석은 짓이라 여겼다.”
마법의 시전. 거대한 그림을 그릴 때, 먼저 스케치를 하는 것처럼….
카를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옅게 퍼지며 무적함대를 감쌌다.
툭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미약한 마력. 카를의 앞에 떠오른 작은 구슬이 그 마력을 붙잡아 주고 있었다.
―폭풍이 몰아치거든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다.
멀리 떨어진 다른 함선에 탑승하고 있는 마법사에게서도 방대한 양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유리와 유리를 겹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미약한 마력 위에 마력이 겹쳐졌다.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구슬이 있었다. 카를의 구슬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구슬에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폭풍에 맞설 힘을 얻었다.
또 한 번 마력이 덧대어지고.
구슬과 구슬이 빛으로 이어진다.
―이를, 다만 우리는 마법이라 부르며.
마력의 적성을 종족째로 타고난 마족, 그 적성을 타고난 마법사.
그들에게만 보이던 풍경이 비단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하고 투명한 막. 비눗방울 같은 막이 함대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신의 분노에 맞설 수 있다.
방어 역장.
흔하디흔한 마법 중 하나.
한 척에 선원만 3백 명이 넘고 비상시에 가동할 아티팩트 엔진까지 갖춘 거대한 군함이 대부분인 무적함대에는 방어 역장 따위는 기본 소양으로 다루는 마법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 마법사들도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이길 수 있다.”
함대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규모의 방어 역장. 단순한 역장임에도 그 어마어마한 규모는 역장이 아니라 ‘결계’에 가까웠다.
그런 형태를 하고 있는 이유는 역장의 기초를 만든, 그리고 마무리를 지은 사람이 결계 마법에 조예가 깊기 때문이리라.
“…….”
함대는 방어 역장의 보호를 받으며 거센 풍랑 속으로 들어갔다.
하늘은 햇빛 한 점 없고 먹구름이 가득하며, 바람 소리가 찢어질 듯 불어오고 있었으나.
갑판 위는 고요했다.
그에, 의문을 느낀 레샬리에가 카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뭐 하는 짓이지.”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손으로 카를의 옷을 잡아당겨 얼굴을 끌어온 레샬리에의 눈이 카를을 노려보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카를이 미간을 찌푸리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레샬리에가 말했다.
“왜, 멀쩡하지?”
“왜냐긴.”
“저만한 범위의 역장을 치고도 왜 멀쩡하냐는 말이다. 회로 과부하도 마력 탈진도 없이….”
“내가 혼자서 쓴 마법이었다면 그랬겠지.”
“……다른 마법사랑 함께 썼다. 이 말인가?”
“그래.”
아페마나이스를 토벌한 이후, 특기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탐욕의 신의 사도 ‘세 머리 뱀’이 강림하긴 했으나….
그 뱀은 약해진 아페마나이스가 불러낸 거수만도 못한 놈이었다.
대가리가 셋 달린 뱀의 뼈는 거수가 남긴 하반신과 함께 제도의 또 다른 마스코트가 되었다.
“다중 연계 마법.”
“……들어 본 적 없어.”
“마법을 요리라고 가정해 보지. 레샬리에.”
“우리는 요리를 하지 않는….”
“그럼 전쟁으로 가정을 하지.”
확실히 나가는 어떤 형태든 익힌 음식을 먹지 않는다. 예시를 잘못 들었군. 카를은 살짝 후회하면서 말을 이었다.
“전쟁에서 일련의 과정들을 생각해봐. 병사들을 징집하고… 적에게 선전 포고를 하고 병력을 움직이고, 전투로 맞붙지. 도중에 휴전 협상을 할 수도 있고 어느 한쪽이 항복할 때까지 밀어붙일 수도 있어. 그렇지?”
“……그래.”
“그러면 이 모든 일을 군주 혼자서 할 수 있나? 군주가 될 수 있었던 너는 알 텐데.”
“…신하들 없이라면 불가능하지.”
“그래, 불가능해. 이만한 규모의 역장을 치는 것도 혼자서는 불가능하지.”
결계라면 가능은 하다. 다만, 카를은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하는 거다. 전쟁으로 치면 나는 선전 포고를 맡았고….”
“승리 선언까지 맡았지.”
나가들도 일단은 마족의 일종이다. 공주인 그녀는 마법 역시 다룰 수 있었고. 영창을 읊는 것을 듣고 마법의 구성을 파악하는 건 그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럿이서 마법을 단계 별로 분류해서 발동한다…그렇게 해서 이만한 규모의 방어 역장을 완성한 거냐?”
“그런 셈이지.”
“인간들은 대체….”
그렇게 감탄하는 레샬리에를 본 카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는데 말이지.”
“……뭐?”
“여기가 레샬리에, 네가 말한 해역 맞지?”
함대는 어느새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고 바다 쪽으로 몸을 쭉 내밀어 바다를 바라본 레샬리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그런데 대체 뭘….”
“잘 봐.”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 카를로스의 얼굴을 본 레샬리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입에서 낭랑한 시어가, 마법의 영창이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거울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거울에서 흘러나오며 응답했다.
또 하나의 시가 완성된 순간.
“……허?”
나가들의 왕국을 품고 있는 바다에 구멍이 뻥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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