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54)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54화
제315장 무쇠주먹
산 위가 불타고 있었다.
단죄자들을 상대로 항전하던 온누리의 방어선 역할을 하던 산성(山城)이다.
소수의 침투는 허용해도 일정 규모 이상의 병력이 침투하는 것을 불허하는 이 결계에 기대어 지형적으로도 까다로운 산성에 틀어박힌 병력은 단죄자들을 꽤 짜증 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단죄자들은 소수만으로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정예 병력을 투입해서 이곳을 돌파해 냈다.
“영혼 강탈자라…….”
단죄자들과 괴물들이 한창 부서진 산성의 잔해를 치우고 있는 것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남자가 있었다.
190센티를 약간 넘는 장신의 단죄자 남자였다.
굉장히 균형감이 좋고 탄력적인 몸을 가진 그의 미간에는 선명한 흉터가 새겨져 있어서 마치 사람의 형상을 한 맹수처럼 보였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불타는 산성을 바라보던 그에게 대머리 단죄자 남자가 다가왔다.
“무쇠주먹 님.”
“무슨 일이지?”
“서신이 왔습니다.”
“혹시 또 이홍화가 보냈나?”
“예.”
“태워 버려. 내용도 똑같겠지.”
“…….”
“왜?”
“그 여자와 사이가 안 좋으신 건 알겠지만 굳이 이런 기회를 마다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 정도로 지원을 몰아주는 걸 보면 상부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쓰는 문제 같은데…….”
“흠.”
무쇠주먹이라 불린 사내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돌아보자, 대머리 단죄자가 움찔했다.
그도 180센티를 넘는 장신에 극한까지 단련된 몸을 가졌지만 무쇠주먹과 눈을 마주하자 주눅이 들었다. 그건 무쇠주먹이 그의 스승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는 짓을 보니 무신의 화신이었던 놈들을 죄다 모으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무쇠주먹 또한 단죄자로 전생하기 전에는 무신의 화신이었던 자.
천하제일권(天下第一拳)으로 불렸던 남자였다.
무기조차 쓰지 않고 두 주먹만으로 무수한 악적들과 마족들을 때려잡으며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던 자.
한때 무수한 단죄자를 쓰러뜨리며 수많은 목숨을 구했던 그는, 지금은 세상의 종말을 위해 싸우는 가장 강력한 개인 중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홍화, 그년이 하는 짓이라면 뻔해. 전방에 나서서 위험을 감수하며 싸우는 이들은 모두 고기방패나 다름없다.”
이홍화는 대결이 아니라 사냥을 하려고 하고 있다.
무쇠주먹을 청하는 것은 그 사냥을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앞으로 나서서 사냥감과 치고받아 줄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더 열 받는 건… 그년이 마음만 먹으면 정면으로 싸우는 것도 욕 나올 정도로 잘한다는 점이지!”
단죄자가 되기 전에 무쇠주먹은 이홍화와 몇 번 힘을 합쳐 싸운 적이 있었다.
동대륙은 은의 피처럼 강대한 수호자를 자처하는 조직이 없는 세상.
끊임없는 파멸의 위협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무쇠주먹은 이홍화와 함께 인간의 몸으로 마왕급 던전에 진입하여 마왕조차 잡아낸 적이 있었으며, 그에 필적하는 위협인 대요괴를 사냥한 적도 있었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무쇠주먹은 이홍화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안다.
‘적으로 만나면 악몽이지. 하지만 아군으로서도 딱히 이용당해 주고 싶진 않군.’
무엇보다 수많은 난민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끝없이 밀려드는 단죄자들을 막아선 무쇠주먹을 패배시켜 인간으로서의 삶을 끝내준 것이 바로 이홍화였다.
그때 이홍화는 난민들을 무쇠주먹이 있는 지역으로 몰아넣어서 그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목숨을 등에 짊어지게 함으로써 도주를 막았다.
그리고 난민들이 도망칠 수 있는 길을 터준 다음 그 길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단죄자들을 순차적으로 보내 그로 하여금 막게 만들었다.
막을 수밖에 없도록, 힘이 모자라서 막을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없도록…….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이 무쇠주먹의 심신을 갉아먹어서 약화시켰다.
그리고 그가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이홍화는 화살 한 대를 그의 몸에 박아 넣으며 진실을 알려주었다.
악귀처럼 싸워서 피난시킨 사람들이, 사실은 적이 준비한 몰살의 함정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사실을.
한순간에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낸 모든 것을 잃어버린 무쇠주먹은 절규하며 이홍화에게 달려들었다.
그때의 그는, 살아 움직이는 재해나 다름없었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이홍화의 화살조차 돌파하여 그 앞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홍화는 당황하지 않고 맞섰다.
아무리 다치고, 지쳐서 한계에 도달했다지만 무쇠주먹을 근접전에서 압도하며 죽음을 안겨주었다.
‘네 사냥감이 불쌍하군, 이홍화.’
무쇠주먹은 피식 웃었다.
‘기나긴 유배가 끝나 전선으로 복귀한 이상,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럼 그동안의 세월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같은 단죄자로서 확인해 주지.’
그는 제자를 보며 말했다.
“그년의 사냥을 위한 도구가 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보다 더 큰 기회가 올 거다.”
“영혼 강탈자 말씀입니까? 가포를 강습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그놈을 만날 수 있다면 최고겠지만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놈이라…….”
무쇠주먹은 혀를 찼다.
모르드 일행은 단죄자 세력에게 있어서 최악의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도저히 잡을 방법이 없었다.
“곧 별을 베는 검, 그 명성 높은 늙은이가 이 주먹이 닿는 곳으로 내려올 것이다.”
* * *
11월 중순.
슬슬 겨울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시기지만 새벽 반도 남쪽에 위치한 서남도는 아직 선선한 정도의 날씨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내일도 같은 시간에 오겠습니다.”
파르웰은 책을 덮으며 말했다.
그러자 브레디아스 신전에 모여 앉은 수십 명의 마법사들과 술법사들이 마치 수업 끝난 대학생들처럼 자기 짐을 챙겨서 일어난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다가왔다.
한울왕자의 측근, 고위 마법사 김 아르센이었다.
그가 무언가를 건넸다.
“삶아서 꿀에 졸인 밤입니다. 제 안사람이 선생님께도 맛을 좀 보여주라고 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별미군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파르웰은 빙긋 웃으며 선물을 받아 들었다.
김 아르센은 선망의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자신의 연구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이토록 아낌없이 지식을 나눠주시다니요.”
파르웰은 틈틈이 브레디아스 신전에서 강론회를 열고 있었다.
주로 용하의 브레디아스 신전에서 하지만 미리 일자를 공지한 뒤 서남도의 다른 도시에서 열 때도 있었다.
이 강론회의 인기는 대단했다.
일단 파르웰이 대마법사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으니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참가자를 제한하지 않고 마법에 학문적 관심이 있는 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고 공지했기에, 매번 수십 명에서 많을 때는 수백 명이 모여서 파르웰의 강의를 듣고 뜨겁게 토론을 벌였다.
이것은 마법사들에게도, 술법사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학당을 세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제자로 들이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나랏일을 맡아서 교관으로 나선 것조차 아니다.
배움을 원하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귀하디귀한 마법 지식을 무상으로 나누어준다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강론회에 한 번이라도 참가한 마법사라면 파르웰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학구열이 넘칠 수밖에 없는데 그 지식을 구하기는 너무나 어려워 항상 목마를 수밖에 없는 상태이니 그럴 수밖에.
파르웰은 빙긋 웃었다.
“위대한 브레디아스의 가르침에 따를 뿐입니다. 학문은 만인의 것이어야 하니까요. 한 사람이라도 많은 마법사를 성장시키는 것이 인류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대외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파르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마법의 지식을 전수하고, 그들과 토론을 벌이는 과정은 그의 신성을 성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강론회에서는 군사적으로 표준화할 만한 주문들과 운용법을 다루고 있으니, 이것들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온누리 마법병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면 내 신성에도 크나큰 양분이 되겠지.’
파르웰은 좀 더 먼 훗날의 영향력까지 염두에 두고 강론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한울왕자 세력권의 마법사들을 성장시키겠다는 의도가 가장 크긴 했다.
모든 마법사를 모르드 부대의 마법사들처럼 훈련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래도 이 사람은 좀 가능성이 있어.’
파르웰은 김 아르센과의 대화를 즐기는 편이었다.
용족이면서도 마법사라서 그런가, 보통 인간이나 신혈 마법사와는 다른 독특한 감성이 느껴진다.
마법사로서의 재능도 우수해서, 파르웰이 알아서 공부해 보라고 제공해 준 주문서를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7서클 마스터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음?”
문득 파르웰이 고개를 들었다.
김 아르센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왜 그러십니까?”
“아, 미안합니다. 브레디아스께서 부르시는군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선물은 감사히 잘 먹겠다고 아내분께 전해주세요.”
신의 성자가 신이 불러서 간다는데 붙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 아르센을 일별하고 신전 안쪽으로 향한 파르웰에게 브레디아스가 살짝 흥분된 기색으로 말했다.
[왔군요.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아니, 진행 중인 것 중에 어떤 것을 완성하신 걸까 생각해 보고 있었습니다.”
파르웰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동안 브레디아스, 정확히는 브레디아스의 천계 연구진에게 맡긴 과제가 야금야금 늘어나서 지금 진행 중인 것만 해도 열 개가 넘었다.
‘서대륙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호사이긴 한데… 이걸 좋아하자니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미묘한 기분이야…….’
파르웰은 그런 딜레마를 느끼며 브레디아스의 설명을 기다렸다.
[아, 미안합니다. 제가 직접 주관한 연구라서 너무 흥분해 버렸군요.]브레디아스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성역 대책입니다.]“그게 벌써 완성되었습니까?”
[예. 실전에서 확인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효과가 증명된다면…….]깜짝 놀라는 파르웰에게 브레디아스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을 위한 안식의 땅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
서남도는 새벽 반도에서는 무척 따뜻한 기후를 자랑해서 눈을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차근차근 다가오는 겨울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최대한 내실을 다지면서 서남도 바깥의 지방세력들에게도 통합을 호소한다.
단죄자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것에 이어 주하왕자군을 손쉽게 격파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자 인접한 지방세력들은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한울왕자가 평화로운 통합을 호소하고 있지만 수틀리면 군사력으로 밀어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되면 수뇌부의 목숨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 사실이 주변 세력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고개 숙이고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의 지방세력과 통합을 위한 협의가 시작되었다.
“착착 진행되어가고 있군. 이제부터는 더 가속이 붙겠어.”
모르드 일행은 그런 진행 상황에 흡족함을 느꼈다.
그들은 로텐다르가 수리될 때까지는 용하에 머물며 훈련과 재정비에 힘쓰기로 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훈련에만 힘쓴 건 아니고 모르드 부대나 한울왕자 세력에서 선발된 일부 인원들의 훈련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한울왕자의 호위무사이자, 한울왕자 세력 최강의 무인이기도 한 중년의 용족 남자 주영수.
오러의 4단계를 수행하는 무신술사인 그는 틈틈이 모르드 부대의 훈련에 참가하며 니스카와 대련을 벌였다.
니스카 또한 이 대련을 반겼기에, 모르드 부대의 사람들과 한울왕자가 보낸 잠재력 뛰어난 인재들은 매일같이 엄청나게 수준 높은 달인들의 대련을 직관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오래 계속되진 않았다.
“로텐다르가 수리될 때까지는 좀 쉬나 싶었더니만…….”
케엘이 한숨을 쉬었다.
쉰다고 해도 진짜 쉬는 건 아니고 매일같이 꽤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모르드가 물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
한울왕자가 급히 그들을 호출하여 도움을 청했다.
“위쪽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소.”
“위쪽이면, 운평도?”
서남도 아래쪽으로는 남해 수군의 영역인 용운도, 북쪽으로는 운평도가 위치해 있었다.
한울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단죄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 도와주기만 하면 우리 밑으로 들어오겠다는군.”
도움을 요청한 것은 운평도 북쪽에 위치한 세력이었다.
“아직 운평도에서 우리와 함께하기로 한 곳이 하나뿐인데 북쪽에서 이런 요청이 날아들다니…….”
한울왕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모르드가 물었다.
“운평도의 상황은?”
“절반 가까이 단죄자들에게 먹힌 상황이지.”
항구도시 가포가 운평도에 있었다.
가포를 기점으로 차근차근 내륙으로 진출한 병력들이 운평도를 절반쯤 잡아먹은 것이다.
“여러분 덕분에 최근에는 좀 기세가 뜸했던 것 같소만…….”
모르드 일행이 가포를 두 번이나 박살 내고, 서해의 기항지들과 오가는 병력과 물자까지 박살 내고 다니는 바람에 내륙을 향한 공세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운평도의 지방세력들은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린 모양이다.
“가 봐야겠군.”
단죄자에게 공격받는 중이라면 모르드 일행이 나설 일이었다.
한울왕자가 말했다.
“나도 가겠소. 이 일을 처리하면 운평도 전역을 장악할 수 있을 테니 위험을 감수할 만하지.”
“설마 안 갈 생각이었나? 이런 기회를 앞두고 몸을 사릴 생각을 했다고?”
“…….”
모르드가 뭘 그런 걸 생색내면서 말하냐는 듯한 눈으로 바라봐주자 한울왕자는 머쓱해졌다.
이제는 서남도를 통일한 거물이 되었음에도 모르드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았다.
다른 이들의 태도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는 중이었기에, 한울왕자는 그 사실이 왠지 기뻤다.
“흠흠.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