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60)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60화
달시가 눈을 뜬 것은 6일이나 지난 후였다.
“그렇게나?”
심상 세계에서 눈을 뜬 그녀는 놀라서 눈을 껌뻑였다.
모르드가 말했다.
“육체는 멀쩡한데 정신이 서서히 죽어가더군.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그러니까 무의식적인 활동조차 점점 잠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알 것 같아. 어둠 속에 갇혀서 서서히… 아주 천천히 늪 속으로 가라앉아가는 그런 기분이었거든.”
달시가 이마를 짚으며 절망적인 기억을 떠올렸다.
“오러화로는 그런 것도 가능하구나.”
“역시 오러화의 기술이었나? 권능 같은 게 아니라?”
“응. 그놈한테 권능 같은 건 없는 것 같던데. 시공간의 바깥에서 엄습해오는 걸 막았다 싶었는데 또 뭔가에 찔렸고, 사로잡히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상태로 계속 싸웠다.
싸우면 싸울수록 몸이 아닌, 정신이 무거워지는 기묘한 느낌이 들다가 결국 무언가에 꽁꽁 묶여서 까마득한 어딘가로 떨어지듯 의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정신에 작용해서 육체에 영향을 끼치는 기술은 봤어도 정신 그 자체를 그런 식으로 봉해버리는 기술은 처음이다. 역시 이 영역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군…….”
생각에 잠긴 모르드를 잠시 바라보던 달시가 물었다.
“그놈은 어떻게 됐어?”
“만족스럽게 죽었다.”
“아, 젠장.”
달시는 짜증을 내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럴 것 같았어. 왠지 도망갈 것 같지 않더라고.”
“도망갔으면 했나?”
“아니, 설욕은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도망가길 바란 건 아냐. 그렇게 강한 놈이 단죄자인데 도망치면 다른 데서 엄청난 피가 흘렀겠지.”
기분상으로는 살아 있어서 설욕전을 치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런 걸 바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달시가 무예에 대해서는 광적인 집착을 가졌어도 분별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모순적인 기분에 괴로워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르드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얻은 건 있었나?”
“있었어.”
달시는 한숨을 쉬었다.
“그쪽도 좀 실력 있는 상대를 보면 제대로 놀아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타입이던데…….”
“확실히 그런 성향이 보였지.”
“안 그랬으면 좀 더 속수무책으로 당했을지도 모르지.”
달시가 자평하기로 순수하게 창술과 권법의 대결로 따지면 자신이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마투술과 무신술의 영역에서 완벽하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애당초 그런 승부가 이루어진 것 자체가 무쇠주먹의 양보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무신경의 기술을 이용, 철저하게 달시가 장기를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는 형태로 싸움을 끌고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쇠주먹은 그런 식으로 승부를 피하며 안전한 승리를 추구하는 대신 달시의 영역으로 걸어 들어와서 화끈하게 치고받는 길을 택했다.
“어쨌거나 그전의 싸움도 만만하지는 않았던 모양이고, 나한테도 꽤 부상을 입었으니 모르드 너하고 싸우는 건 피하는 게 현명했을 텐데… 그대로 맞선 건 오만해서만은 아니었을 것 같아.”
때로는 말을 나누는 것보다 목숨 걸고 싸우는 게 더 상대를 잘 이해하는 법일 때가 있다.
달시는 왠지 무쇠주먹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르드가 말했다.
“단죄자가 되어도 본성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생전의 그를 만나서 동지가 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느낀 안타까움이었다.
다올론도, 바쉬에탐도, 쿠에사도, 리케인도, 그리고 무쇠주먹도 모두 단죄자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었다면 좋았을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이미 끝났다. 악몽에 사로잡혀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세상을 파괴하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죽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뿐이었다.
“근데 모르드.”
문득 달시는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
모르드에게서 피로감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피로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치 격전을 치르고 난 후를 보는 것 같았다.
모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흑룡포에서 전투가 있었다.”
무쇠주먹을 쓰러뜨린 바로 다음 날, 단죄자들이 다시금 대규모로 흑룡포를 덮쳤다.
지난번에 패퇴하여 물러난 병력을 수습하고 거기에 새로운 병력까지 더해서.
남해 수군의 구원 요청이 날아들었고, 모르드 일행은 생존자 부대를 이끌고 참전했다.
“…전투가 사흘 밤낮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졌지.”
단죄자들은 밤낮없이, 휴식 따위 모른다는 듯 계속해서 몰아쳤다.
물론 그들도 피로를 모르는 존재는 아니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영혼 없는 단죄자 병사들과 괴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흑룡포를 빼앗겼다.”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이었다.
차라리 지난번처럼 적들의 목표가 명확했으면, 높으신 분들이 나와서 공명을 탐하는 상황이었으면 그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승리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단죄자들은 이번에는 그런 합리적인 작전을 선택하지 않았다.
마치 병력을 내던지듯이 밀어 넣고, 밀어 넣고, 밀어 넣고…….
계속 밀어 넣어서 오로지 이쪽을 소모시켜 파멸에 이르게 하는 작전을 선택했다.
이 해역에서 죽으면 진정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도, 여기서 남해 수군을 죽여봐야 아군으로 편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 끔찍한 태도 앞에서는 모르드 일행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로텐다르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모르드 일행이 강해도 한계는 있다.
적들이 쉴 틈을 안 주고 몰아치는 데다 주시자 군주 같은 대형병기들이 문제다. 로텐다르가 있으면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놈들이지만 내려서 싸울 때는 하나하나 파괴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다.
모르드 일행이 황금사과 조각까지 먹어가며 밤낮없이 싸웠음에도, 결국 남해 수군의 피해가 누적되면서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시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오늘 아침까지 남해 수군의 철수와 흑룡포 사람들의 피난을 돕고, 물자를 챙겨서 옮겨주고 돌아온 참이었다.”
“아, 그런…….”
달시는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무인으로서의 욕심을 떨치지 못하고 무쇠주먹과 일대일 대결에 임했다가 패하고 쓰러진 동안 그런 일이 있었다니…….
“우리 쪽 피해는 어땠는데?”
“생존자 부대에서 전사자가 네 명 나왔다.”
“아…….”
달시가 탄식했다.
그 정도의 격전에서 네 명밖에 안 죽은 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어찌 그들의 죽음을 숫자로만 여길 수 있겠는가?
“장례는 치렀다.”
“그렇구나. 나도 꽃이라도 바쳐야겠네. 흑룡포는 놈들 손에 넘어간 거야?”
“그렇지.”
남해 수군은 그보다 동쪽에 있는 격룡포로 방어선을 물린 상태다.
“…근데 그럼 놈들이 계속 밀고 들어오지 않을까? 흑룡포에서 밀렸으면 격룡포라고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다행히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다.”
일단 흑룡포가 함락당하는 과정에서 단죄자들의 병력이 너무 많이 갈려 나갔다.
기어이 이쪽을 패퇴시키긴 했지만 정말로 무한한 것 같았던 대군도 사흘 밤낮 동안 갈려 나가고 나자 끝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격룡포는 흑룡포보다 좀 더 방어에 용이한 지형이더군.”
앞바다에 암초가 많고, 물살이 거세서 대군을 밀어 넣을 수 없는 지형이었다.
“아군도 병력을 많이 밀어 넣을 수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물리적 공간 문제로 이번에 철수한 남해 수군 중 상당수는 격룡포보다 보다 동쪽에 배치된다고 한다.
달시는 한숨을 쉬고 물었다.
“다음에는 빠지는 일 없도록 할게. 근데 이런 때에 미안하지만 나한테 좀 시간을 줄 수 없을까?”
그녀가 무쇠주먹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죽음을 직면하며 얻은 경험은 실로 귀중한 것이다. 그 경험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모르드가 말했다.
“그거야 괜찮지만… 후회하지 않겠나?”
“음? 무슨 뜻이야?”
“동대륙의 천하제일검이 우리 편이 됐는데.”
“뭐어?”
달시의 눈이 크게 떠졌다.
***
‘별을 베는 검’이라 불리는 노검객, 우문섭은 지팡이를 짚고 평상에 걸터앉은 채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직 병상에 누워서 안정해야 할 때 아닌가?”
그는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상대도 그럴 것을 알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옆에 와서 앉았다.
거구의 남자, 모르드였다.
“안에만 있자니 너무 답답해서 죽을 것 같더군요. 이 정도는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우문섭은 허허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노검객은 앉아서 살짝 몸을 구부정하게 숙인 상태에서도 자신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모르드의 눈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물었다.
“여러분은 정말 놀랍군요.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실체를 반도 담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별을 베는 검이라고 부르더군.”
“10년 전에 작은 재주를 보이고 얻은 허명일 뿐입니다.”
“마을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검으로 베어 없앤 것을 작은 재주라고 하는 건 겸손함이 너무 지나치다.”
“그래 봐야 단죄자도 막지 못해서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게 만든 무능한 늙은이일 뿐이지요.”
우문섭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늙은 자신을 살리겠다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다. 그 사실이 그의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믿어지지 않았다.
단죄자들이 운평도로 밀고 들어온 이후로 그들의 운명은 패배로 결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싸워봐야 패배를 늦출 수 있을 뿐,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침내 무쇠주먹이 대군을 동원하여 결계를 뚫고 자신의 후퇴를 따라잡았을 때, 우문섭은 오늘 모든 것이 끝나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무쇠주먹을 붙잡고 있는 동안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들이 피난할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패배가 확정되었다고 여긴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저 산들 너머 해안에 가까운 지역부터 계속해서 밀려난 사람들은 더 이상 어딘가로 피난 가는 게 아니라 이곳에 자리 잡고 버틸 수 있었다.
“늦었지만 이 늙은이의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비루한 목숨이나마 사람들을 살리는 데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다.”
모르드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에게 우문섭에 대해 물으면 다들 찬양 일색이었다.
그는 언제나 앞장서서 싸웠고, 한 사람이라도 더 피난할 수 있도록 위험을 무릅썼다.
본래 우문섭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명가는 아니어도 나름 부유한 집안의 셋째로 태어나 그럭저럭 노년까지 먹고살 만한 재산을 물려받았기에, 가문을 떠나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소일거리로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런 그가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한 사건 때문이었다.
어느 날, 예지를 다루는 술법사가 마을을 덮칠 재난을 예견했다.
‘내일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이 마을을 박살 낼 것이니 모두 피신하시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짐을 싸서 마을을 벗어났다.
그런데 오직 한 명, 우문섭만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지붕 위에 올라 밤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들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단 한 번 검을 휘둘러 자신을 붙잡는 이들의 옷자락을 모두 베어내는 신기(神技)를 선보여 그들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았다.
불타는 별이 마을 한복판으로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하지만 그들이 그 별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은 아주 짧았다.
낙하속도가 워낙 빨라서만은 아니다.
지붕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우문섭이 검을 뽑아 들어 하늘을 향해 베자 별이 하늘 높은 곳에서 두 동강 나서 폭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우문섭은 ‘별을 베는 검’이라 불리게 되었다.
부끄러운 듯 뒷목을 문지르던 우문섭이 물었다.
“모르드 님께서 무쇠주먹을 쓰러뜨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다. 그는 만족스럽게 죽었고, 영혼은 구원받았다.”
“진실로 단죄자의 영혼에 구원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있다.”
단언한 모르드는 영혼 인도자의 권능, 그리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우문섭 또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천하를 떨쳐 울릴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조용히 살아가길 선택했던, 그러나 자신이 필요한 세상이 오자 분연히 일어나 사람들을 위해 싸웠던 노인은 지팡이에 의존하여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일어나기조차 힘든 부상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기세로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하더니 외쳤다.
“모르드 장군님, 부디 이 노구를 휘하로 거두어주십시오! 거두어주시기만 하면 분골쇄신하여 장군님이 밝히는 희망의 등불에 불씨를 더하겠나이다!”
“…….”
그의 행동에는 모르드도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이 시대에 적응할 만큼 적응했다 해도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21세기 대한민국 사람인 엄태성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그것도 사람들 살리겠다고 자기 목숨을 기꺼이 던져가며 싸워온 노인이 납죽 엎드리자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차라리 마왕을 상대하는 게 낫겠다.’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킨 모르드가 식은땀을 흘릴 때였다.
“…부탁이니 일어나라.”
“허락하실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장군님이 거두어주시지 않으면 이 늙은이의 목숨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모르드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우문섭 공, 당신은 온누리 사람이다.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당신의 이웃들에게 예전의 세상을 돌려주고 싶다면 내가 아니라 한울왕자를 따르도록 해라.”
그 말에 우문섭은 잠시 침묵하더니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를 들며 물었다.
“부끄럽지만 이 늙은이는 무신께 천하제일검으로 인정받은 몸입니다. 장군께서 큰일을 하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요. 장군께서는 제 검이 탐나지 않으십니까?”
“탐난다 탐나지 않는다를 따진다면, 탐난다. 하지만 당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내 옆이 아니다.”
솔직히 우문섭은 탐나는 인재였다. 모르드 일행이 몇 가지 투자만 한다면 니스카 이상으로 강력한 전력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나 모르드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연을 들었을 때, 그가 생존자 부대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
우문섭은 가족은 없을지언정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있었다. 온누리 사람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연고가 확실한 사람은 모르드의 밑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한울왕자 밑으로 들어가 이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게 어울린다.
“우리는 함께 싸우고, 함께 무예를 연마하는 동지가 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당신의 충성을 받지는 않겠다. 한울왕자는 당신을 등용할 것이고, 당신이 바란다면 용족화 시술도 해줄 것이다.”
한울왕자군에게 있어서 용족화 시술은 아무에게나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술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닌 데다 시술을 위한 자원이 극히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문섭 정도 되는 인재라면 무조건 용족화 시술을 베풀 대상이었다. 그가 용족이 되어 늙고 지친 몸으로부터 벗어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전력이 될 테니까.
그러나 우문섭은 쓴웃음을 지었다.
“용족화 시술은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늙은이는 젊은 시절에 이미 용족화 시술을 받았으나 용족이 되지 못한 실패자에 불과하니까요.”
“…….”
모르드는 여전히 온누리 제국의 사회문화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셋째라고는 하나 우문섭 같은 실력자가 아무런 야심도 없이 가문을 떠나서 시골에서 은거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를 선택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 용족화 시술을 받는 것은 크나큰 특혜지만 실패했을 때는 가문이 얻은 크나큰 기회를 날려 버렸다는 실패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이리라.
세독마에 언급된 용족화 시술의 성공률은 7할 정도.
단순히 수치만 보면 높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육체와 마력이 강할수록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조건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하지만 그 성패에 목숨이 걸렸다면 어떨까?
용족화 시술을 받고도 용족이 되는 것에 실패할 경우의 사망률도 7할이 넘는다. 우문섭은 그런 확률을 뚫고 살아남아 실패자의 낙인이 찍힌 것이다.
게다가 용족화 시술은 일생에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기에, 우문섭은 다시는 실패자의 낙인을 지울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랬군.”
“하지만 장군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알겠습니다. 이 늙은이가 생각이 짧아 난처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우문섭은 일어나서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