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74)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974화
제292장 백경(白鯨)
“…시간에 맞췄군.”
모르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서 로텐다르를 발진시키기 전, 페세이타는 경고했다.
아무리 로텐다르라 해도 혼자서는 백경을 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백경과 일대일로 싸운다면 모를까, 대군주라 불리는 백경은 수만의 군세를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리케인은 그 모든 군세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자였으며, 그렇기에 백경은 아직 세상에 넷밖에 없는 대군주 중에서도 최강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
적 대군에 맞설 대군을 준비하는 것이다.
로텐다르의 발진과 동시에, 페세이타는 온 바다에 계시를 내렸다.
그녀를 섬기는 모든 신관들은 그녀의 목소리로 내려진 계시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임무를 목숨을 걸고 수행했다.
그리하여 온 바다가 이 순간을 위해 움직였다.
불과 몇 시간 전, 백경 파괴 작전에 나섰다가 대패하여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던 일곱 산호 연합의 잔존 병력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올라갈 수 없는 비교적 얕은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그렇기에 고스란히 전력을 온존한 심해의 존재들도.
모두가 여신의 계시에 따라 약속된 전장으로 모여들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다.
[남김없이 쏟아부어! 뒷일 따윈 생각하지 마라!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모르드 일행이 아직 만나지 못한 심해의 거대한 게 종족이 타고난 거품공격과 마법, 정령을 퍼부어댔다.
가장 작은 개체도 집채만 한 크기를 자랑하는 그들 중에는 50미터가 넘는 괴수급 존재도 몇 명이나 있었다. 기동력이 부족한 대신 해저의 이동포대 역할을 하는 그들의 공격이 단죄자의 군세를 사정없이 두들겨댔다.
[저분들에게 길을 열어드려야 한다! 정령을 무턱대고 자폭시키지 마라! 밀어젖혀! 공간을 만드는 거다!]바다 엘프 최강의 정령술사로 불리는 레우더가 부하들을 지휘하여 공간을 열어젖힌다.
“다시 봐도 정말 우아하네. 세데아가 봤어야 하는데…….”
물의 정령과 얼음정령, 바람정령, 어둠정령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유려한 정령술에 케엘은 다시금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후후, 그렇군요. 그곳에 계시는군요, 육지의 대마법사여!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흥분한 기색으로 외친 것은 백색증을 앓고 있는 깊은고래족의 대마법사, 헤르수아였다.
그녀의 마법을 본 파르웰이 눈을 크게 떴다.
“대마법사? 고래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모르드를 바라보았다.
모르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들을 이야기가 아주 많은 것 같은데요?”
“다행히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모르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일단 저 빌어먹을 정도로 큰 놈을 격침시킨 후의 일이지.”
“그건 그렇군요.”
파르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습적으로 막강한 화력을 쏟아붓자 문자 그대로 적들이 쓸려 나갔다.
그리고 십자포화가 끝나길 기다린 바다의 백성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페슈를 짓밟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근접전을 장기로 삼는 종족들이었다. 어둠상어족의 전사들이 심해가재족과 함께 앞장서서 적들을 덮쳤다.
[복수의 때가 왔다! 가련한 동포들의 영혼에 안식을!]푸른 지느러미 부족의 브린탄이 창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인어족 전사들이 신관들과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으며 뛰어들어 언데드들을 격파한다.
[위대한 페세이타의 성자께 길을 열어드리는 거다!]이 순간, 바다의 백성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여신의 계시가 모두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위대한 전사가, 위대한 바다의 어머니에게 성자로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오직 그만이 여신의 배 로텐다르를 타고 대군주 백경과 맞설 수 있을 것이며, 그와 함께 싸우면 저 사악한 단죄자들의 손에 넘어간 가련한 영혼들을 구할 수 있을 것임을!
지금까지 단죄자들과의 싸움은, 절망에 침식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속도를 늦출 뿐, 파멸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모두가 그 절망에 집어삼켜지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고결한 희생조차 재앙에 오염되어 존엄함을 잃어버리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도 진정한 희망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싸움은 파멸이 예정된 자들의 발버둥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기적을 놓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앙에 빼앗긴 가족과 친지의 죽음에 존엄함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그리고 저 빌어먹을 단죄자들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여주고 바다의 미래를 되찾기 위해서!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 자리의 모두는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다.
그들의 눈부신 각오가 단죄자의 군세를 뒤흔들었다.
리케인은 이를 갈았다.
“제기랄! 이것들이 진짜!”
완벽하게 당했다.
격노하는 한편, 그는 냉정하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심해로, 그것도 적들이 계획한 지점으로 유인당했다지만 저만한 숫자가 매복하고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당해버리다니.
적들이 집결하는 과정에도, 이곳에 포진하여 매복하는 과정에도 분명 신의 힘이 개입했으리라. 신관들 중에 자신을 희생해서 기적을 일으킨 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내일 따윈 생각하지 않는다 이거군. 그야말로 결전을 치를 각오다.’
적들의 기습은 백경의 군세에 크나큰 타격을 입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쏟아진 화력에 1만 이상이 쓸려 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근접전과 화력 지원에 의해 다시 5천 이상이 줄어들었다.
“나운 호, 가준 호, 좌익을 지원해! 누티아 호와 메벨 호는 위쪽을 막고, 바다군주들은 깊은고래 놈들과 산호거북 놈들을 들이받아! 해저화산게 중에서 쓸데없이 덩치가 큰 것들도!”
리케인은 전 병력을 수세로 돌리며 태세를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군세였다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으리라.
하지만 백경의 군세는 리케인에 의해 수족처럼 통제된다. 전체적인 방향성만 잡아줘도 패닉에 빠져서 무너지는 일 없이 수습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여전히 우리가 훨씬 더 많다.’
리케인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백경이 집결한 적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적은 총 4만 5천의 대군이며, 지난번에는 얕은 지점에서 싸웠기에 참전하지 못했던 강대한 심해 종족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백경의 군세는 여전히 6만 5천에 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합류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군세가 또 있었고.
문제는, 그들 전부를 합친 것만큼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르한 호가 격침되었습니다!]언데드 부하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백경을 따르는 12척의 전투함 중에 하나가 격침되었다.
“우르한!”
리케인이 비명처럼 외쳤다.
신족이 된 그의 사도이기도 했던 자, 전투함의 선장 우르한이, 로텐다르의 뿔에서 뻗어 나온 권능의 칼날에 박살 나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르한의 영혼을… 빼앗겼다…….”
리케인은 아연한 나머지 휘청거렸다.
다른 이들의 죽음과는 달랐다.
12척의 전투함을 책임지는 선장들은 리케인의 오래된 부하들이었다. 그들 중 넷은 리케인의 사도였고, 여덟 또한 강력한 권능을 나눠 받는 권속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영혼은 리케인에게 구속되어 있었다.
단죄자임에도 죽었을 때 바로 저주의 일부가 되지 않고 리케인에게 돌아옴으로써, 보다 신속한 부활이 가능한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르한의 영혼은 리케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실로부터 떠올린 추측을, 칠감이 강하게 긍정해 주었다.
“…정말로 육지를 경동시킨 영혼 강탈자, 네놈이 여기까지 온 것이었군.”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육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놈이 신화에 페세이타의 사도로 이름났던 로텐다르를 타고 자기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보다는 로텐다르에 영혼을 거두어 신의 품에 보내는 능력이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리케인은 적의 정체를 확신하게 되었다.
“내 사도 우르한의 영혼을 앗아간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리케인의 눈이 분노와 원한으로 불타올랐다.
우르한은 그와 온갖 모험을 함께 해온 부하이자 친구였던 자.
단죄자가 되어 가치관이 바뀐 지금도 인간으로서의 감정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리케인은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에 격노했다.
그리고 그 감정 때문에, 당연히 예상했어야 할 사실을 놓치고 말았다.
쿠구궁……!
[뭐, 뭐지?]골파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했던 리케인은, 곧 사태를 파악하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크라켄족! 빌어먹을 것들이 여기까지 올라왔나!”
모든 바다의 백성 중 가장 거대한 존재들, 크라켄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깊은고래족은 실로 거대한 존재들이다. 단죄자들이 만들어낸 바다군주보다도 더.
그러나 심해에는 그들보다 더욱 거대한 존재들이 있었다.
크라켄.
이 세계에서 바다 괴물의 대명사라 불릴 만한, 생물의 형상을 띤 자연재해에 가까운 존재.
“산처럼 큰 게 한둘이 아닌 상황이지만… 진짜 엄청나네.”
억지로 미소 짓는 달시의 얼굴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쿠구구구궁……!
심해에 굉음이 울려 퍼지며, 바닥에 숨어 있던 거대한 오징어와 문어의 형상이 솟구쳤다.
모르드 역시 놀람을 금치 못했다.
‘왜 이 심도에서 맞붙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 알겠군.’
본래 일곱 산호 연합이 대군주 백경 파괴 작전을 수행하려고 했던 전장은 심도 3,500미터 지점이었다.
깊은고래족을 비롯한, 가장 깊은 곳에서 사는 심해종족들이 올라와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한계치였다.
그런데 모르드 일행이 해상에서 날뛰는 바람에 백경이 그들을 잡기 위해 갑작스럽게 부상하면서 계획이 완벽하게 어긋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모르드 일행은 일곱 산호 연합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근거를 보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심해종족은 모두가 막강했지만 그중에서도 크라켄족은 움직이는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두 부류였다.
오징어 종족과 문어 종족.
지구에서 가장 몸길이가 긴 두족류로 알려진 대왕오징어는 촉수를 포함한 총 몸길이가 10미터를 넘는다.
하지만 대왕오징어를 닮은 크라켄족들은 촉수를 포함한 몸길이가 가장 작은 개체도 300미터, 가장 큰 개체는 500미터에 이르고 있었다.
모르드가 페세이타를 배알할 때 본 크라켄족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저 백경을 들이받거나 붙잡는 행위가 유효할 정도의 거대함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백경을 덮치는 크라켄족은 오징어와 문어를 합쳐 열 명이나 되었다.
쿠구구구궁……!
굉음이 울린다.
위쪽으로 올라간 오징어 크라켄족의 촉수가 어둠을 발하며 백경을 휘감는다. 놀랍게도 그들 중 가장 큰 존재의 촉수가 그 어둠으로 인해 더욱 거대해지며 백경을 휘감고 있었다.
‘권능이다.’
크라켄족은 거대한 덩치를 더욱 거대하게 활용하는 권능을 가졌던 것이다.
퍼어어어엉!
붙잡힌 백경이 마안 공격을 발해서 오징어 크라켄 하나를 떨궈낸다.
그리고 두 번째 공격이 가해지는 순간…….
‘환영?’
놀랍게도 마안 공격이 엉뚱한 지점을 때려 폭발시켰다.
바닥에서 백경을 붙잡던 문어 크라켄족이 허공에 녹아들듯이 사라지고, 5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동일한 존재가 나타난다.
그들은 백경을 속여 넘길 정도로 강력한 환영의 권능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크라켄족 열 명이 백경을 덮치자, 백경도 구속된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때는 아군 병력이 외부에서 공격해 해방시켜 줘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백경의 군세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기습을 가한 바다의 백성들이 기세를 잃지 않고 몰아치는 공격을 방어하는 것에 급급했으니까.
[바다의 백성들이여! 오늘, 이 순간만이 유일한 기회다! 오늘 패한다면 절망의 구렁텅이에 삼켜지리라! 위대한 바다의 어머니를 위해, 이 바다에 존엄을 되찾을 때다!]크라켄 중 가장 거대한 문어의 의념파가 심해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그 크라켄에게서 눈부신 은색의 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바다의 백성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 크라켄이야말로 가장 깊은 곳에 머물며 페세이타의 목소리를 듣는, 바다의 교황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페세이타 교단에는 두 명의 교황이 있지. 바다의 교황은 크라켄이었나!’
교황의 정체에 모르드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페세이타 교단에 두 명의 교황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세독마에도 지나가듯 언급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설마 또 한 명의 교황이 크라켄일 줄이야!
강대한 크라켄의 교황이 기적을 발하자 백경을 구속하는 크라켄들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땅에서 어둠으로 이루어진 사슬들이 나타나 백경을 휘감고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백경이 묶여 있는 사이 로텐다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적들을 휘저었다.
“좋았어!”
케엘이 신나서 외쳤다.
로텐다르가 또 한 척의 전투함을 꿰뚫어서 격침시켰던 것이다.
백경에서 나온 12척의 전투함은 어느 하나 뛰어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연계할 만한 다수의 아군이 없다면 해저기동력과 화력 모두 크게 앞서는 로텐다르에게서 달아날 방법이 없었다.
오오, 오오오오오……!
그때 백경이 울부짖는다.
대량의 거품폭뢰가 발생,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자신을 붙잡은 크라켄들을 두들겨댔다. 지근거리였기에 그 자신조차 휘말렸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구구구궁……!
그리고 또다시 변화가 일어난다.
앞서 로텐다르를 몰아붙였던, 청새치 형태의 저주폭뢰가 대량으로 발사된 것이다.
동시에 백경의 덩치가 한층 더 작아지기 시작했다.
‘안 되겠군.’
그것을 모르드는 지금이 승부처임을 직감했다.
가능하면 전투함을 몇 대 더 파괴한 후에 승부에 나서고 싶었는데, 그랬다가는 가장 좋은 타이밍을 놓칠 것만 같았다.
‘간다.’
결단을 내린 모르드의 눈이 빛났다.
-대지의 맹우!
그리고 수심 3,600미터의 심해에서, 대지의 여신이 자랑하는 장대한 권능이 바다의 백성들을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