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95)
“야…… 이…….”
마리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개잡놈아!”
마리엔은 이미 멀리멀리 달아나고 있을 2황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1황비의 머리를 빡빡 밀어서는 거울로 가득한 방에 가둬버릴 거라고 저주하기도 했다.
“와, 그건 나도 생각 못 했는데.”
콘스탄체가 중얼거렸다. 마리엔은 거추장스러웠던 백금색 가발과 가면을 몽땅 벗어 던졌다.
사장실에서 웃고 떠들 때까지만 해도 저들을 확실히 속여넘긴 것 같았는데.
대체 언제부터 눈치챘을까.
콘스탄체가 카인의 습격을 알렸을 때부터?
마리엔은 통로 안에서 잠깐 그런 생각도 했다.
1황비가 자꾸 사촌으로부터 절 감싸주는 이유는, 혹시라도 외국으로 도주할 일이 생기면 리디엔에게 돈을 꾸려고 그런 거라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이 순간에도 정방형 창고 안에는 빠른 속도로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잠시만…….”
마리엔의 속눈썹이 나비 날개처럼 파닥거렸다.
“경비대가 아니면 북부 놈……. 그래, 북부 놈을 잊고 있었어. 와, 얼마나 늦으면 내가 그놈 존재 자체를 까먹어?”
마리엔이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여하튼 북부 놈은 힘이 세니까 기술자 기다릴 필요 없어. 그놈이 한 방에 열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이에 콘스탄체가 물었다.
“북부 놈이 누군데?”
“카인 블랙우드.”
콘스탄체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늦어.”
“왜 그렇게 단정 짓는 거야? 왜 부정적인 말만 해!”
2황자 일당과 어울리다 보니 사람이 매사 부정적으로 바뀌는 거다.
마리엔은 기껏 마지막 희망 카인을 떠올린 상황에 콘스탄체가 찬물을 끼얹으니까 짜증이 북 났다.
안 그래도 찬물이 콸콸 끼얹어지고 있는 판에!
“저 구멍 크기를 보라고. 그리고 지금 쏟아지는 양을 봐. 벌써 우리 종아리까지 찼잖아. 못 버텨.”
“이 씨…….”
말도 안 된다. 사람 수장시키는 장치가 클럽 지하에 있다는 내용은 원작에서 보지 못했다.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마리엔 제 오른팔을 걸 수 있다.
‘그리고 목숨만은 보장해주는 거 아니었어?’
세부 내용이 좀 바뀌어도 결과는 항상 원작과 어떻게든 비슷하게 맞아떨어졌지 않나.
원작의 위장잠입 에피소드 후반에도 위기상황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혼자 공격 다 막는 카인 때문인지 읽으면서도 오데트의 안위가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마리엔은 쏟아지는 물을 망연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개죽음을 앞둔 무력한 느낌은 아니었다고.’
자신이 물속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안 온다.
마리엔은 진짜 죽을 것 같았다.
이번에야말로.
“선반을 밟고 올라가서 얼굴을 천장으로 향하고 버텨요. 그러다가 코까지 완전히 잠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요.”
옆에서 바일레온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물속에서 버둥거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한계까지 보통 이 분은 견딜 수 있어요. 인간은 숨이 멎은 후로도 약 삼 분 정도 심장이 뛰거든요. 그사이에 블랙우드 공작이 도착한다면…….”
한계까지 참는다. 숨이 멎는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려니 마리엔 안에서 왠지 모를 이상한 힘이 솟구쳤다.
바일레온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시간 싸움이군요.”
바일레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리엔은 드레스를 벗기 시작했다. 손 안 닿는 부분은 바일레온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연인이 뭘 하려는 건지 모르면서도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마리엔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다.
마리엔은 이어서 스커트를 종 모양으로 부풀리는 거대한 속치마도 벗었다.
흰 슈미즈와 드로어즈 차림만 돼도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실제로 걸친 게 흰 옷감 한 장뿐이니 과장은 아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콘스탄체가 곧 죽게 생기니까 수치심도 사라졌냐며 쏘아붙였다.
“포대…… 포대자루를 이쯤에서 주워 들던데 설마 여분이 하나쯤은.”
창고 구석을 살피던 마리엔은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포대자루 두 개를 주워 들었다.
“있다!”
이후 마리엔은 2황자 커플이 버리고 간 나머지 장부며 물건 따위를 정신없이 포대에 쓸어 넣었다. 바일레온은 마리엔이 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나머지 포대에 물건을 담았다.
역시 내 사랑. 내 최애. 제국의 태양. 척하면 척 알아듣는 똑똑이.
마리엔은 속으로 바일레온에게 찬사를 퍼부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수위는 빠르게 올라 어느새 허벅지에 다다랐다.
“이리 줘요.”
마리엔이 낑낑거리면서 수문을 향해 걸어가자 바일레온이 도와주었다. 그는 양어깨에 무거운 포대를 하나씩 짊어진 채 수문으로 이동했다.
“지금 둘 다 뭘 하는…… 하, 설마 그걸로 구멍을 막게?”
콘스탄체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작 그딴 수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어?”
“야, 주둥이.”
마리엔은 물에 젖어서 아까보다 더 무거워진 드레스를 그러모아 어깨에 짊어졌다.
“그래, 너. 내가 너라면 거기 서서 빈정대느니 드레스부터 벗겠어. 곧 물이 더 차오르면 넌 드레스 때문에 나보다 빨리 죽을걸.”
“웃기시네.”
“하나도 안 웃겨. 지금 네 꼴이 더 웃겨. 드레스 겉자락이 부풀어서 거꾸로 엎은 버섯 같다고.”
콘스탄체가 눈을 부라렸다. 마리엔은 바일레온이 수문에 끼운 포대 사이로 드레스를 마구 구겨 밀어넣으며 소리 질렀다.
“뭐 해? 빨리 벗어!”
이 말을 하려고 벌린 입으로 물이 한 움큼 들어왔다.
“웩!”
“마리엔, 괜찮아요?”
“콜록! 콜록! 케엑!”
“마리엔.”
“콜록! 너, 나가서…… 복수 안 할 거냐고!”
복수라는 단어에 콘스탄체가 움찔했다. 그녀는 이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살아서 나갈 리가 없잖아!”
“해보기 전엔 모르지!”
“나간다고 해도!”
콘스탄체가 분해 죽겠다는 듯이 외쳤다.
“저 잡것들이 날 먼저 죽일 거야! 저것들이 얼마나 교활하고 빈틈없는데! 클럽 운영하는 내내 그랬어. 궂은일은 내가 다 떠맡는데 돈은 저것들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고!”
흥분하다가 발이 미끄러졌나 보다. 순간 콘스탄체가 뒤로 넘어갔다. 옆의 선반을 짚고 겨우 일어난 콘스탄체는 물 묻은 가면을 벗어 던졌다.
“……저것들은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겠지. 내가 한 짓뿐 아니라 내가 안 한 짓, 거기까지는 손대지 말자고 조심스럽게 말렸던 짓까지 전부.”
콘스탄체가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내가 했다고 몰아갈 거야. 판사들이 날 믿어줄까? 그럴 리가. 이번 일만 넘기면 황태자가 될 황자와 척져선 안 된다는 것쯤은 법복 안 입는 나도 알아.”
“2황자 놈은 다음 생에도 황태자 못 해!”
마리엔이 말했다.
“아나이스 사제 알지? 2황자 심복. 그 인간도 우리 4황녀 전하 쪽으로 갈아탔거든?”
“……뭐?”
“2황자는 이미 끝났어. 너도 빨리 노선 변경해서 감형이나 받으라고. 족쇄 차고 발악하는 저 인간들 구경하면서 손 흔들어줘야지.”
수압을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팔짱을 꼈다. 다른 손으로는 옆에 있는 철제 선반을 움켜잡았다.
수문을 안 막을 때보다는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느려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꾸준히 올라가는 수위를 다 막을 순 없었다.
미처 못다 막은 틈새로 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마리엔이 반쯤 쉰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만약에 살아나가면.”
콘스탄체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더니 드레스를 찢어발기듯이 벗기 시작했다.
복잡한 리본 매듭은 선반 위쪽에서 주운 가위로 쫘악, 잘라 해결해버렸다.
이를 악문 콘스탄체가 옷뭉치를 들고 수문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물이 흘러나오는 틈새에 옷뭉치를 밀어넣고는 근처의 선반 꼭대기로 올라갔다.
“마리엔.”
바일레온이 가면을 벗으며 연인에게 말했다.
“당신도 선반 위로 올라가요.”
“싫어요. 이 자세로 최대한 버틸래요.”
어이가 없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수압이 얼마나 센데, 이걸 지금 저 혼자 막겠다고?
마리엔 디디의 힘이 장정에 댈 바는 아니다. 그래도 콘스탄체처럼 치사하게 혼자만 선반 위로 튀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올라가요. 이러다 기력을 소진할까 봐 걱정돼요.”
“어차피 물에 잠기면 버둥거리지 말고 이삼 분쯤 가만히 있어야 한다면서요. 적당히 힘 빼놓으면 그때 도움 되겠죠.”
“마리엔.”
“바일레온.”
마리엔은 고개 돌려 연인을 쳐다봤다. 똑바로 응시해오는 하늘빛 눈동자에 바일레온이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다.
“저 고백할 게 있어요. 듣고 나서 무조건 용서해줘야 해요. 왜냐면 제 잘못은 쪼금이고, 일방적으로 사람 여럿 곤혹스럽게 만든 건 카인 놈이니까요.”
마리엔 디디는 콘스탄체처럼 치사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마리엔 디디에게는 제 고유의 치사함이 있다.
가령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을 틈타 바일레온에게 용서를 구하는 식이다.
“황녀 전하께서 하사하신 드레스랑 보석이요. 그거 사실 카인 놈이 저한테 보낸 선물이에요. 아무 상의도 없이 물건부터 집무실로 먼저 보내서는, 당연히 제가 껌뻑 죽을 줄 알았다며 찾아온 거 있죠? 뻔뻔한 놈…….”
마리엔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바일레온의 눈치를 봤다. 아직은 괜찮아 보였다.
이에 고무된 마리엔은 괜히 언성을 높이며 카인의 흉을 봤다.
“진짜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찼나 봐요!”
“그래서요?”
바일레온이 조용히 다음을 재촉했다. 카인 욕을 하면서 잠깐 고양됐던 마리엔의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다.
낮게 잠긴 바일레온의 목소리. 역시 기분이 좋을 린 없겠지 싶었다.
“처음엔 선물을 없애버리려 했어요. 근데 놈이 나중에 물건값 물고 늘어질까 걱정도 됐고……. 황녀 전하께서 제게 화내실까 봐도 겁나서요.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전하가 덮어주셨어요. 그냥 본인 하사품으로 하자고.”
마리엔은 주눅 든 눈으로 연인을 올려다봤다.
“비어스 경이 너무 많은 생각에 잠길까 봐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어느새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다. 마리엔은 가슴까지 차오른 물에 휘청거렸다.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
바일레온이 침착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댔는데, 곧 머리가 물에 잠긴다고 생각하니까 심장박동이 저절로 빨라졌다.
“전 비어스 경이 좋은데, 즐겁게만 해드리고 싶은데, 비어스 경이 멀어진다는 생각만 하면 너무 싫은데. 고작 놈이 보낸 선물 때문에 우리 사이가 그렇게 되면……. 숨겨서 죄송해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너무 많은 생각에 잠긴 쪽이 바일레온인지 자신인지 모르겠다. 마리엔은 입을 꾹 다물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럼 마리엔.”
“네…….”
“여기서 나가면 이번엔 내가 선물하는 드레스 입어줘요.”
이 말을 하는 바일레온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리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속 안 상하세요?”
“당연히 속상하죠.”
그가 말했다.
“원치도 않는 선물 때문에 당신이 조마조마했을 걸 생각하니까 화가 나요.”
“하지만 저 무조건 용서해주시기로……!”
“이 화는 더 비싼 드레스를 선물하는 걸로 풀어야겠어요. 두고 봐요. 내 안목이 블랙우드보다 훨씬 뛰어날 테니까.”
마리엔은 배시시 웃었다. 바일레온의 마음이 풀린다면야 몇 벌이고 받아줄 수 있다.
역시 지금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밍이 얌체 같긴 해도, 계속 가슴에 남아 있던 응어리가 풀린 기분이니.
“앗!”
감상은 여기까지.
포대보다 가벼운 옷뭉치가 결국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넓어진 틈새로 물이 콸콸 흘러 들어왔다. 마리엔은 물살에 휘청거리다가 그대로 물에 잠길 뻔했다.
바일레온이 마리엔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선반에 올려주었다. 마리엔은 콜록거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수문 앞에서 최대한 버티려던 바일레온도 몸을 피할 수밖에 없는 때가 왔다.
마리엔은 시시각각 차오르는 물에서 시선을 떼고 대신 바일레온을 쳐다보았다.
‘아직 제대로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했는데…….’
미안, 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마리엔은 그의 신호에 맞춰 마지막으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일 초가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