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84
DW에 편견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전화한 사람의 말투는 매우 정중했다.
사장이라면 강성권과 같은 핏줄일 것이다.
모든 주요 직책을 한 집안사람들로만 채운 건 아니겠지만, 이 사람의 성이 강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방증했다.
적어도 내가 겪어본 강성권 집안사람 중에서는 가장 나쁜 느낌이 덜했다.
“그러시죠. 저는 내일도 괜찮습니다.”
– 감사합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 * *
나는 강철구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
그곳은 간판 없이 운영되는 레스토랑이었으며 모든 객실이 룸으로 이루어져 있어 무척 조용한 곳이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룸 안에는 남자 2명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둘 다 50대쯤으로 보였고, 양복을 입고 있었다.
체격이 좋고 말쑥한 쪽이 강철구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내민 명함에 미리 들었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른 남자는 뭔가 가벼운 인상이었는데, 전형적으로 겉과 속이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인상이 별로였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헌터부 차관 김철원이라고 합니다.”
인상과는 반대로 무거운 직책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나라가 비슷하지만. 헌터부는 모든 행정부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곳이었다.
해당 부서의 공무원 중 상당수가 실제 헌터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적어도 헌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 헌터부 차관이 나올 줄은 몰랐다.
뭔가 시작부터 기분이 상했다.
그런 속내가 표정에 드러났는지 강철구가 얼른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김태수 회장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요. 따로 회장님의 시간을 뺏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당연히 자연스러운 합석이 아니었다.
꿍꿍이와 계산이 있는 합석이지.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헌터부 차관이 있다는 이유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강철구의 인상이 어떻든지 간에 DW측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가능한 한 그 횟수와 시간을 줄이고 싶은 일.
“아닙니다.”
나는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이 따로 있는 식당이 아닙니다. 인원수에 맞게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피해야 할 식재료가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없습니다.”
애피타이저부터 한식과 일식의 중간쯤 되는 퓨전 음식이 나왔고, 그 맛이 나쁘지 않았다.
블랙 코어 마나까지 가지고 있는 이상 독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식사하는 내내 김철원이 혼자 떠들어댔다.
요즘 헌터계가 돌아가는 동향을 이야기했는데, 가장 중요한 이소연이 죽은 이야기, 그리고 TS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었다.
물론 이 자리에서 나누어야 할 핵심적인 화제거리인 버려진 던전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의도적인 것이었고, 나는 그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식사나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강철구는 별다르게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의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때마다 어색한 동작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의 오른쪽 안구에 깃든 위화감을 포착했다.
아마도 의안이 아닐까 싶었는데, 진짜처럼 자연스러웠다.
다만 유난히 반짝거릴 때가 있었는데, 나를 몰래 훔쳐볼 때마다 그 현상이 일어났다.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서빙되고 나서야 강철구가 입을 열었다.
“저는 강윤미의 아버지입니다. 그 애가 맡고 있던 사업을 제가 이어받기로 했습니다.”
“그러시군요. 따님은 잘 있나요?”
“죽었습니다.”
“네?”
강윤미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놀라운 소식에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그 애가 회장님께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아비인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강철구가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허리를 숙였다.
나는 정말로 요지경이구나 하고 느꼈다.
강철구는 그나마 정상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딸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지 모를 장본인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태도를 유지했다.
좋게 보면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만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피를 가졌다는 점에서 그도 DW의 일족임이 분명했다.
다시 자리에 앉은 강철구가 말했다.
“사죄의 의미로 제주도의 버려진 던전 2곳과 그 부대 시설을 회장님께 양도하겠습니다. 아울러 지금 살고 계신 아파트와 인근의 버려진 던전도 함께 드리겠습니다. 회장님께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DW가 그동안 회장님께 저지른 잘못은 아무리 사과를 드려고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버려진 던전은 저희 DW의 사운이 걸린 프로젝트입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의 표정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적어도 이 표정은 거짓이 아닐 터였다.
버려진 던전 3곳을 주겠다고 한 것은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김철원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이쯤에서 사과를 받아주는 게 어떨까요? 이제 회장님도 대한민국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권력자이시지 않습니까? 앞으로 TS와 회장님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DW와 잘 지내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 친구는 강성권 회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아들이에요. 장차 DW는 이 친구가 물려받게 될 겁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저도 차기 헌터부 장관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때요?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리 세 사람이 지금부터 함께 뭉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김철원은 그렇게 말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말하는 내용도 그렇고 그의 경박한 웃음소리도 짜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차관님은 이 자리에 게스트로 오신 겁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좀 빠져계시죠.”
“네?”
김철원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내 표정을 본 그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나는 입가를 닦고 나서 말했다.
“따님이 돌아가신 것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그 따님이 저와 제 여자친구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아신다면 제가 그녀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는 것도 이해하실 겁니다. DW는 여러 번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은 말 몇 마디, 선물 몇 개로 지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주일 기한을 드리죠. 저는 DW 소유의 버려진 던전 관련 부동산 전부를 원합니다. 시가의 10분의 1을 드리죠.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제가 제시한 가격은커녕 되레 손해만 보시게 될 겁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강철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김철원은 황급히 나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회장님!”
* * *
자동차로 돌아온 나는 시동을 걸지 않고 시트에 몸을 기댔다.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했다.
‘추적’.
내가 가진 스킬 중 하나였다.
액티브 스킬로, 마나 조각을 작게 뭉쳐 대상에 붙이는 식으로 작동한다.
나는 김철원의 소매에 ‘추적’ 스킬을 위한 마나 조각을 붙여놓았다.
그들은 여전히 식당에 있었고, 둘이서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려왔다.
– 씨발! 어린놈이 건방지기는! 운 좋게 능력을 얻어 출세한 주제에 싸가지가 존나 없네!
욕이 섞인 저렴한 말투는 김철원의 것이었다.
그는 계속 나에게 욕을 하며 씩씩대다가 강철구에게 물어보았다.
– 어때? 저놈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아?
– 모르겠어. 아주 강한 것 같기도 하고, 평범한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안 보인 적은 처음이야.
– 처음이라고? 혹시 스킬 같은 걸로 능력을 숨기는 거 아니야?
– 그럴 수도 있지. 아마 내가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걸 눈치챈 것 같아. 제대로 보이질 않아서 몇 번이나 쳐다봤거든. 덕분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야.
– S급은 아니지?
– 응.
– 그러면 됐지 뭐. 일본 쪽에서 곧 움직일 거야. 와타나베가 직접 제주도로 가려는 모양이야.
– 제주도? 서울이 아니라?
– 최초의 던전을 노리는 거겠지.
– 김태수는?
– 사실 최초의 던전이 노리기 쉬운 타깃인 건 맞잖아. 마루 길드가 독점하고 다른 길드에는 개방조차 안 하고 있으니까. 한국 정부도 관여할 수 없으니 일본으로서는 거저먹겠다는 생각을 할 만하지.
– 한국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고? 안 하는 거겠지.
– 김태수가 어떤 놈인지가 중요했어. 오늘 만나보니 역시 말이 안 통하는 놈이네. TS나 SH가 설치는 것보다 우리 입장에서는 DW랑 같이 가는 게 나으니까. 지금까지 추진해온 건도 있고 말이야. 최초의 던전을 접수하면 김태수를 노릴 생각인 것 같아. 최초의 던전보다 오히려 김태수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 그래?
– 우리야 데려가 주면 좋지. 헌터부는 이번 일을 모르는 척할 거야. DW는 어때?
– 글쎄, 아버지는 김태수랑 관련된 일이라면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으셔.
– 데이먼 눈치를 보는 거지?
– 뭐, 그렇지.
– 너는 어때? 빨리 회장이 되고 싶지 않아? 네 아버지는 여간해선 돌아가실 것 같지 않던데. 네 딸이 죽은 것도 실은……
– 다 아는 얘기는 그만하자.
부스럭대는 소리와 의자 빼는 소리가 났다.
나는 더 들을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역시 그들의 꿍꿍이는 따로 있었다.
와타나베….
일단 그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