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출정 (1)
[나는 끝없는 바다에서 수도 없이 죽을 위기를 맞이했다. 도무지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거대한 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시각각 출몰하는 이름 모를 괴물들. 거기에 한순간에 급변하며 몰아치는 폭풍우까지. 만약 내가 가진 이 신비한 두 유물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살아서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들을 물려주신 나의 조상들에게 감사한다.]이름 모를 누군가가 남긴 항해일지. 그것에 언급된 두 개의 유물은 이미 세월의 흐름을 이겨 내지 못한 채 낡고 녹이 슬어 망가져 있었다.
우우웅.
다시 복구하려면 이 유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고위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재영의 손에서 회색빛을 내며 공명하는 거대한 힘은, 그러한 마땅한 과정을 무시했다.
“이, 이럴 수가……?”
마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빛바래고 녹슨 볼품없는 나침반과 망원경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금이 가 버린 렌즈가 말끔한 상태로 빛을 내고 있었고,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빙글빙글 돌아가던 나침반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어느 한 방향을 올곧게 가리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치 새로 산 물건처럼 깔끔한 자태로 빛을 내는 두 개의 아이템.
그것을 본 카를로스와 다른 해적들은 경악에 찬 눈으로 재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템 복구를 성공적으로 완료하였습니다.] [개연성 200,000이 소모되었습니다.] [아이템, ‘망가진 낡은 나침반’이 ‘꿈을 꾸는 자의 이정표’로 변경됩니다.] [아이템, ‘금 간 망원경’이 ‘감시자의 눈’으로 변경됩니다.] [퀘스트, 오래된 마법 유물의 복구가 완료되었습니다.] [연계 퀘스트, ‘잊힌 자의 전설’이 완료되었습니다.] [칭호, ‘진도가 너무 빠른 아이’를 획득하였습니다.]“……?”
뭔가 재영 본인을 꼬집어 비아냥거리는 것 같은 이상한 칭호. 하지만 지금 자신이 거쳐 가는 이 과정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알기에 재영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미친……. 고작 저런 물건들 복구하는 데 시간을 뒤틀어 버린다고?”
“말도 안 돼……. 시간 회귀를 사용해서 물건을 고치다니…….”
하지만 그러한 재영을 황당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탄과 엘. 그 둘의 묘한 반응에 재영은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물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전혀 모르는 눈치로 물어 오자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탄과 엘. 그러고는 이내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주인이 방금 한 게 몰라서 묻는 거야?”
“시간 회귀는 그렇게 단순히 물건 고치는 데 사용할 만한 힘이 아니에요.”
시간 회귀.
이미 지나간 시간을 뒤틀어 다시 이전의 과거로 되돌리는, 절대적으로 신(神)의 영역에 이르는 초월적인 권능. 탄이나 엘과 같이 하나의 계를 지배하는 초월적이 강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감히 손댈 수 없는 힘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한 재영을, 이들은 마치 괴물 보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니, 전부터 궁금했는데…… 주인, 도대체 정체가 뭐야? 마왕인 나를 강제 계약으로 패밀리어의 상태로 불러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는데…….”
“혹시 다른 초월적인 존재랑 계약이라도 한 게 있는 건가요? 다른 특별한 힘은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죠…….”
영겁의 시간을 살아오며 끝없는 지식을 쌓아 온 탄과 엘. 하지만 재영의 존재는 이들에게 있어서도 이해의 범주를 아득히도 넘어선 상식 밖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마리(?)의 질문에 재영은 이전의 순간을 떠올렸다.
[앞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깽판 쳐 보세요. 제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난세의 방랑가라는 직업을 자신에게 주면서 정말 정신 나간 부탁을 하던 개발자. 그 정체에 대해서 예전부터 계속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이 둘의 말을 들으며 재영은 하나의 추론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 인간…… 그냥 일반적인 개발자는 절대 아니었네…….’
처음에는 단순히 히든 클래스를 개발하는 개발 직원 하나가 벌인 기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일 등급의 아이템을 만들어도 그 경위와 재영의 직업 하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주)아르카디아 운영진, 거기에 개연성이라고 하는 특수 스탯을 담보로 하긴 하지만 그야말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 속에서 그 어떤 일이라도 벌이게 해 주는 사기적인 능력을 보면,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을 말아먹다시피 하는 대형 사고를 치게 만드는 짓들은 일개 개발 직원 하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알게 했다.
거기에 탄과 엘마저도 경악할 수준의, 권능(權能)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강력한 힘까지도 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추론을 확실하게 만들어 줬다.
‘메인 개발자나 그에 버금가는 핵심 개발자의 소행이겠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러한 직업을 만들고 자신의 플레이를 방관하는지 모르겠지만, 재영은 어딘가에서 자신을 거대한 체스판 속 하나의 말로 삼고 지켜보고 있을 그 개발자를 상상하며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주인? 갑자기 왜 웃어?”
정확히 지금 재영이 하고 있는 짓들을 보며 그 의문의 개발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갑자기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호승심에 다짐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왕 판 깔아 줬는데 신명 나게 놀지 못하면 그건 덱스가 아니지.”
이전에는 혹시라도 선 넘는다고 밴 때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재영. 최근에는 그런 걱정조차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나름의 상도덕(?)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카를로스에게 물었다.
“이봐, 카를로스. 이제 이 두 물건들은 문제없이 작동할 거야.”
마치 꿈을 꾸는 듯, 멍한 눈으로 정지한 채 서 있는 카를로스와 그의 수하들. 그들은 재영의 말에 퍼뜩 정신이 돌아온 듯 헛기침을 하며 민망해했다.
“으음……. 그렇군.”
“아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마치 새 물건이라도 된 것처럼 반짝반짝 광택을 내며 그 자태를 뽐내는 나침반과 망원경. 그것들을 집어 들어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수하들을 뒤로하고 재영이 물었다.
“그럼 이제 가능한 건가?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는 것 말이야.”
그 말에 카를로스는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 이렇게 빠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기 이 항해일지에 나와 있는 모든 것은 다 준비가 되었네. 이제 필요한 거라고는 배와 선원이지.”
항해를 위해 필요한 배와 선원.
단순히 육지와 조금 떨어진 해안가로 향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대양을 가로질러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뛰어난 항해 스킬만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뛰어난 선원들이 겸비되어 있는 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카를로스와 재영이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다.
“내일까지 자네가 타고 갈 수 있는 전투선 하나를 준비해 두겠네. 항해는 캐러비안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녀석들로 골라 둘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배 하나와 선장. 그리고 유능한 선원들을 준비하겠다는 카를로스.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재영이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무엇이 말인가?”
“카를로스, 자네가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를 이끌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 캐러비안에서 가장 뛰어난 항해 실력을 가진 존재. 그것은 일생 전체를 배와 함께하며 수없이 많은 전투와 항해 속에서 캐러비안의 명실상부한 절대자로 자리매김한 해적왕 카를로스, 바로 본인이었다. 하지만 재영의 물음에 방 안의 분위기는 살짝 미묘하게 변했다.
“자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네. 하지만 나는 이제 아직 가 보지도 않은 ‘끝없는 바다’로 직접 나가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
“혹시 두려운 건가?”
움찔.
카를로스의 말을 자르며 묻는 재영. 두렵냐는 질문에 카를로스의 수하들이 공격적인 눈빛으로 돌변해 재영에게 험악한 말을 쏟아 내려 했다.
“이 자식이…… 감히 카를로스 님에게 무슨 망발을…….”
“캐러비안의 지배자가 혹시라도 죽게 된다면 또다시 과거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섣불리 직접 나서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해적왕 카를로스. 캐러비안 전체의 상징이자 든든한 받침대인 그가 죽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여러 이유를 대는 순간 그는 다시는 함선을 지휘하는 방향타를 잡을 수 없었다.
“…….”
미묘한 표정으로 재영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는 카를로스. 재영은 다른 수하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말했다.
“나는 너에게 다시 기회를 줬어. 험악하고 위험천만하지만, 가슴 뛰는 낭만과 흥미진진한 모험이 가득한 캐러비안의 지배자가 되어 다시 해적의 검은 깃발을 휘날리며 바다를 누빌 수 있는 기회를.”
[메인 시나리오의 분기점에 도달하였습니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시나리오의 방향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플레이에 유의하세요.]원래라면 카를로스를 통해 제공 받은 배를 타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신대륙에 당도하게 되는 시나리오. 하지만 지금 재영은 이미 식어 버린 카를로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네가 직접 그 기회를 걷어찰 줄은 몰랐군, 카를로스.”
“그게 그리 말하는 대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인 줄 아는가!”
재영의 비웃음 어린 한마디에 고함 치듯 소리치는 카를로스. 그의 얼굴에 복잡미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며 재영은 눈치챘다, 카를로스 본인 역시 혼란스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재영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말했다.
“쉬운 일이야. 캐러비안의 지배자인 네 입장에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을 막거나 제지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어. 그저 주변에서 걱정 어린 마음에 하는 유혹에 넘어가 여러 변명들을 갖다 붙이며 무섭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일 뿐.”
[협상 스킬이 발동합니다. 발동 대상, 해적왕 카를로스.] [카를로스의 속내를 정확히 꿰뚫었습니다.] [추가 보너스, 대상자가 자신의 결정에 회의감을 느낍니다.] [스킬 보너스, 플레이어가 제시한 선택지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합니다.]연이어 발동하는 협상 스킬. 그 순간, 카를로스의 눈빛은 보란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도대체 뭔가…….”
오랫동안 이것을 고민한 것 같은 카를로스. 지친 얼굴로 하는 한탄이 섞인 자조 어린 중얼거림에 재영은 악마와도 같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와 함께 다른 대륙을 향해 넘어가는 거지. 그저 배 한 척만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캐러비안의 자랑인 검은 해적단과 대륙을 넘어갈 수 있는 모든 배를 모조리 끌어모아서, 검은 해적의 깃발을 휘날리며 그 망할 ‘끝없는 바다’를 넘어서는 거야. 그리고 그 끝에 존재하는, 우리가 지금껏 발을 디뎌 보지 못한 새로운 대륙에서…….”
마치 그 순간을 상상하듯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를로스. 그런 그에게 재영은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검은 해적단의 깃발을 꽂는 거지. 그곳에 존재할 해적들이든, 그 잘난 돼지 같은 영주들이든. 모조리 네 앞에 무릎 꿇려서 당당하게 선포하는 거지.”
“버러지 취급 받으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범죄자와 해적들이 그 어떤 왕국이나 제국도 이루지 못한 위업, 그 끝없는 바다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을 장악했다고 말이야.”
그 말에 카를로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감옥 속에서 신대륙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재영의 말을 들으며 떠올렸던 그만의 상상과도 같은 꿈. 현실적인 여러 문제로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접어 두고 있었지만, 재영의 말에 다시금 그 헛된 망상과도 같은 꿈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타오르는 것 같았다.
우우웅.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서 울고 있는 칠흑 같은 검은색의 커틀러스. 그것을 내려다본 카를로스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신의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전원, 출정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