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65
65. 네 잘못 아니야
서진(진혁)의 형이 죽은 건,
서진이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해였다.
고등학교 2학년. 서진과 10살 차이였던 형은 완벽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서진의 기억에는 그랬다.
늘 전교 1등. 모든 사람의 칭찬을 받는 모범생. 부모님에겐 완벽한 아들이었고, 자신에게도 완벽한 형이었다.
‘서진아. 그거 갖고 싶어?’
‘응.’
‘그럼 너 가져.’
‘형은?’
‘형은 괜찮아.’
한결같이 모습으로 늘 책상에 앉아 있던 형. 장난꾸러기였던 어린 서진이 슬며시 방으로 들어올 때면, 단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웃어주던 모습.
트레이드 마크였던 큰 테의 안경과 자신을 향해 고개 돌려 웃어주던 형의 미소.
여전히 진서진의 가슴에 살아있는 형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형의 모습은 진서진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그해 여름에 멈춰버린 채,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았다.
‘서진아! 기다려! 형이 갈 거야!’
‘살려…. 흡….. 살….’
그렇게 물속에서 정신을 잃었던 서진의 정신이 돌아왔을 때, 서진을 향해 달려오던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리고 형은.
다시는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서진의 차갑도록 슬프게 젖은 목소리. 같은 슬픔으로 차가운 눈이 엄마를 정확하게 응시했다.
“형은 죽었어요.”
“뭐?”
“형은 죽었다고요.”
“네, 네가 지금 무슨….”
“형은!”
얼어있던 서진의 눈동자 아래 슬픔이 흔들렸다.
“죽었다고요!”
서진의 고함에 엄마가 커진 눈으로 굳어버렸다.
“아시겠어요, 엄마? 형은 죽었어요.”
서진의 차가운 눈동자 아래, 일렁이던 뜨거운 슬픔이 기어코 얼음을 깨어버렸다.
깨진 보석처럼 눈동자의 빛이 산란했다.
흘러내는 눈물이
조각 같은 진혁의 얼굴을 타고 내려.
유려한 턱선 아래서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형의 죽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말.
10년 전에 멈춰버린 건, 비단 형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서진의 가슴도 형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던 10년 전 그날 밤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휴. 명진아. 이불을 이렇게 다 차 내면 어떡해. 우리 아가.’
‘어, 엄마!?’
‘명진아, 여름이라도 배를 내놓고 자면, 배탈 난다고 엄마가 말했지? 아휴, 우리 아가 착하지.’
‘어, 어, 엄마…. 나 서진이야.’
‘아휴. 우리 명진이 엄마 안고 자자.’
서진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가장 포근해야 할 엄마의 품 안에서.
그렇게 뜬눈으로 지새웠던 밤. 새벽녘에서야 얕은 잠을 청하고 깨어났건만, 서진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서진이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 놨다.’
김치찌개는 형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날 밤 이후로 엄마가 자신을 형의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아휴. 우리 서진이는 안경이 참 잘 어울린다.’
‘우리 서진이는 공부하는 걸 참 좋아하지?’
‘우리 서진이는 엄마 말씀을 참 잘 듣는 아이예요.’
‘우리 서진이는….’
장난꾸러기 진서진은 사라졌다. 형과 같은 모범생 진서진만 남아야 했다.
형이 안경을 썼던 건 사실이었다. 서진이 형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형 때문에 안경을 썼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진서진이 정도아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진서진이 안경을 썼던 건, 형을 좋아했던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죄책감이었다. 엄마와 형에 대한 죄책감.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그리고 형은….”
서진은 말하고 싶었다.
‘내가 죽인 게 아니에요.’
‘사고였잖아. 엄마. 그건 사고였잖아.’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통증이 서진의 호흡을 막아버린 까닭이었다.
아닐까. 정말 아닐까.
그날 죽어야 했던 건 형이 아니라, 내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죽고 형이 살아야 했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되뇌었던가.
가슴이 막혀버린 서진이 가까스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살아 있잖아….”
막혀있는 가슴을 돌아 깨져버린 눈동자로 향한 눈물이 고통의 틈새로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살아있는데.”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의 통증으로 억누른 괴로움을 꿀꺽 삼켰다. 뜨겁고, 끈적거렸다.
탁.
서진이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만 쓸게요.
안경.
안 어울린대요.
친구들이.”
돌아선 서진(진혁)이 현관 밖을 나설 때까지 엄마에게선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
낯설지 않은 스토리, 특별한 것이 없었던 연출.
하지만 우진혁의 신들린 연기가 모든 걸 집어삼켜 버렸다.
엄마를 바라보던 우진혁의 그 눈빛과 눈물 앞에서는 아무 영문을 모르는 사람조차 눈물을 쏟아낼 수 밖에 없을 만큼. 우진혁의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 울었다.
┖ ㅠㅠ
┖ 진혁아….
– 미쳤다. 미쳤어. 우진혁 연기 완전 미쳤어.
┖ 진짜…. 하….
┖ 너무 울었더니 머리가 아프다….
– 서진이 꼭 한번 안아주고 싶다.
┖ 여기서 님의 의도를 의심하는 제가 죽일 놈이겠죠….
– 이것으로 연말 신인상은 예약인가.
┖ 신인상이 아니라, 남우조연상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은데.
팬들이 난리가 났다. 가까운 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으어엉-.”
“야, 도민우 그만 울어. 남자애가 무슨 대성통곡을 하고… 으어엉-.”
도민우와 김민영이 눈물을 펑펑 쏟는 사이, 이영준은 고개를 돌려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진혁의 연기가 시작될 때부터 울고 있던 세린은 이미 화장실로 달려간 후였다.
촬영장에서도 그렇게 울더니.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기감정처럼 느끼는 세린이기에 다가오는 감정의 강도가 훨씬 강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서연조차 쿠션으로 입을 가린 채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고.
“진혁아!”
울고 있던 도민우가 진혁에게 달려들어 와락 끌어안았다.
“이 자식아,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으면 형님한테 얘길 해야지!”
“……”
진혁은 잠시 고민했다.
현실과 드라마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까.
“하. 이 자식. 그래. 김아린하고의 관계. 내가 허락하마. 이렇게 오랜 시간 아프게 살았는데, 사랑만큼은 상처받지 말아야지.”
“민우야.”
“응?”
김민영이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 훌쩍…. 그럼 강혁은 어쩌고. 내가 아프다고 남까지 아프게 하면 안 되지.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정신은 차리자고.”
그래. 도민우, 김민영, 둘 다 정신 차려라.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진혁과 서연의 시선이 마주쳤다.
“……”
그리고. TV 화면에서도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
“진서진!”
진서진(우진혁)과 마주친 정도아(민서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3일간 학교를 무단결석한 진서진. 그런 서진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아의 눈앞에 나타났다.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그래서 3일 동안 어딜 다닌 거야. 네 성격에 신세 질 만한 친구도 없을 테고. 집 나가 봐야, 우리 같은 미성년자가 갈 데도 별로 없는데.”
“잘 아네.”
“아. 그거야 뭐. 나도 나가 봤…. 흠.”
정도아(민서연)가 하던 말을 멈칫하더니 말을 돌렸다.
“암튼. 학교에서 애들이 너 걱정 많이 했어. 특히 방송반 애들.”
“……”
“뭐야. 무슨 일인데 집까지 나가.”
서진(진혁)이 말이 없자 도아(서연)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서진의 눈치만 흘끔흘끔 살폈다.
“어? 안경…. 잃어버렸어?”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실은….”
무슨 이유인지 도아(서연)에게 만큼은 편안함을 느끼는 서진(진혁).
서진(진혁)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
서진의 이야기를 듣던 도아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툭 하고 떨어졌다.
“아. 씨. 쪽팔리게.”
그제야 자기도 모르게 떨어진 눈물을 인식한 도아가 손등으로 눈가를 쓱 문질렀다.
“야. 오해하지 마. 너 불쌍해서 우는 거 아니니까.”
민망했는지 고개를 숙였던 도아가 살며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 알아. 아는데. 네가 이런 얘기 나한테 솔직하게 해줬으니까. 그 뭐. 기브 앤 테이크 그런 거야.”
도아(서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진(진혁)의 시선을 도아가 슬쩍 피했다.
“나도 아빠 있었다. 우리 집 사업 망하기 전까지는.”
아빠라는 단어와 함께, 도아의 눈에 겨우 가둬놨던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아 씨. 그렇게 갈 거면 잘해주지나 말지.”
도아가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쓸어내렸다. 잠시간 말이 없던 도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서진이 했던 것과 같이 슬픔을 꿀꺽 삼켜버렸다.
“야, 진서진, 이 자식아. 너 똑바로 들어라.”
도아가 울컥거리는 호흡을 추어 삼키며,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네 잘못 아니야.”
“……”
“알겠어?”
“……”
“알겠냐고!”
도아(서연)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서진(진혁)을 향해, 하지만 어쩐지 서진만을 향한 말이 아닌 것처럼 울먹이며 말했다.
“누구도 살아있어서 잘못인 사람은 없어.”
서진(진혁)의 고개가 떨어졌다.
“……”
얼굴을 가린 서진의 하얀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
– 서연아ㅠㅠ
┖ 서연 언니ㅠㅠ
┖ 누나ㅜㅜ
– 이젠 진서진, 정도아 커플이 아니면, 범죄입니다.
┖ 방송국 앞 1인 시위 각.
– 와. 민서연 연기 뭔데. 우진혁이 미친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밀리지 않는 것 같음.
┖ ‘장순이’ 영상 못 봤음? 그때부터 이미 천재.
쏟아지는 인터넷 기사와 댓글들을 확인하고 있는 한유경 작가 앞에 찻잔이 놓였다.
“작가님. 기사 보세요?”
“아, 네.”
“와. 어제 진짜 굉장했죠.”
한유경 작가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로서 한유경이 지금 느끼는 감정은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자신이 그려낸 가상의 인물이, 진짜 아픔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이 느낌.
차를 내온 프로덕션 여직원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진서진하고 누가 연결되는지 그런 건 여쭤보면 안 되겠죠?”
한유경 작가가 대답 대신 알 듯 모를 듯 한 미소로 화답했다.
“죄송해요. 너무 궁금해서.”
“아뇨. 뭐. 그럴 수 있죠. 요즈음 맨날 듣는 질문인걸요.”
직원이 미안한 표정으로 머쓱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회의실 문이 열렸다.
직원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어서 오세요. 우진혁 배우님! 오랜만이네요.”
“네. 안녕하세요.”
진혁의 엷은 미소에, 여직원이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어서 와. 요즈음 많이 바쁘지.”
“조금요.”
진혁이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모과차. 괜찮지? 목에 좋다고 해서. 맛도 나쁘지 않을 거야.”
“아. 네.”
한유경이 보온병을 열어 모과 액기스가 담긴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진혁에게 잔을 건넸다.
“바쁜데 용건부터 얘기할게.”
“네.”
“그, 드라마 마지막 화에 방송제 장면 있잖아.”
강혁의 야구대회 응원과 승리, 그리고 오랫동안 준비한 방송제가 유종의 미를 거두며 마무리되는 엔딩이었다.
“진혁이 네가 친구들에게 쓴 편지 읽어 주는 장면.”
“네.”
“그거 편지 읽는 거 말고, 진혁이 네가 노래하는 거로 바꾸는 건 어때?”
“노래요?”
한유경 작가가 진혁을 향해 미소를 보냈다.
“너 작년 겨울에 세린이 하고 구청 가요제 나가서 완전히 뒤집어 놨다며?”
“……”
“랩 듣고는 노래도 잘하겠다 하긴 했는데. 넌 도대체 못 하는 게 뭐니?”
그림. 이라는 단어가 진혁의 머리에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질문은 아니었을 테니.
“지금 세린이하고 같이 부른 OST 반응도 너무 좋고, 진혁이 네 노래가 궁금하다는 반응이 엄청 올라오거든.‘
둘이 부른 OST가 음원차트 상위권에 랭크되었다는 소식을 진혁도 들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봤는데. 편지 대신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하면 훨씬 임팩트가 있지 않을까.”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진혁이 너무 간단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자 한유경 작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자, 봐봐. 일단 내 그림은….”
서진(진혁)이 기타 하나를 메고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모두가 조용히 진혁을 주목하는 가운데, 기타 반주 하나로 강당에 울려 퍼지는 진혁의 노래.
“녹음해서 립싱크하면 크게 부담 가지 않을 거야. 기타도 치는 흉내만 내면 되는 거고….”
“작가님.”
“응?”
“진서진의 모든 감정이 한 곡의 노래에 담겨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장면인데, 립싱크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유경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한데…. 직접 불러도 부담 안 되겠어?”
“전 괜찮아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진혁이 네가 부담이 안 되면 그게 제일 좋지. 혹시 해보고 안 되면 녹음으로 하자. 그럼, 일단은 기타만 세션 녹음해서 가고, 노래는 직접 부르는 거로….”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직접 기타 치면서 노래할게요. 그게 감정을 표현하기엔 가장 좋은 방법 같아요.”
“뭐?”
한유경 작가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