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55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55화
「내가 보이는구나?」
잠시 사고가 멈췄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직감적으로 내 눈앞에 있는 이 소녀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했다.
굳이 말하자면 정령?
아니,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윗줄임이 분명했다.
‘인지하는 건 나뿐인가.’
교황도, 지크프리트도 소녀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존재도 아니고 이 둘이 소녀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 이 소녀가 그보다도 한참 더 위에 있다는 뜻.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교국 내에서 이 둘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존재라고 한다면…….
[허.]그때, 어깨 위에 있던 세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소녀 또한 웃었다.
그리고 준비라도 한 듯, 소녀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하.”
모든 게 멈췄다.
의문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던 교황은 물론 지크프리트마저.
움직이는 건 나와 세트 그리고 소녀……. 이렇게 셋뿐.
「흐음, 흠.」
소녀는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입은 새하얀 백의가 바람에 하늘하늘 휘날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소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사실 이쯤 되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문제.
소녀가 물었다.
「질문을 하나 하도록 할게. 과연 내가 누구일까?」
입가에 서린 건 장난기.
악동과 같은 미소로 날 보며, 소녀가 물었다.
물론 내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헤카우.”
옛 신, 아사르가 사라진 시점에서 이제는 유일신으로서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수호자.
“당신은 현명한 헤카우다.”
「정답.」
여우와도 같은 눈매가 요요하게 휘어졌다.
* * *
장난기 어린 표정과 태도.
신으로서의 위엄보다는 좀 더 가벼운 무언가가 보인다.
눈가에는 붉은 화장이 칠해져 있었고, 눈 양쪽에는 눈물 모양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은실로 짠 듯 빛나는 머리카락은 양 갈래로 묶인 채 어깨에 올라가 있었으며, 양 갈래로 묶인 머리에는 마치 동물의 귀를 연상케 하는 장식이 있었다.
신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세트 같네.’
[지금 뭔가 실례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니?]“안 했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며 답했다.
내 말에 세트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후후후, 세트…… 굉~장히 보잘것없어졌구나?」
[……당신이 할 말인가요?]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세트가 그녀를 쳐다봤다.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는 헤카우.
그녀는 가슴을 활짝 펴며 내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 네 말대로란다! 내가 바로 마법의 시조이며, 위대한 아사르의 반쪽……!」
[개소리.]세트가 일축했다.
[반쪽이 아니라 반쪽이 난 거겠지. 항상 그분께 덤볐다가, 질질 짠 게 엊그제…….]「그만하세요!」
헤카우는 그대로 세트를 꽈당 내리쳤다.
켁 소리와 함께 세트가 그대로 납작해졌다.
「흠, 흠, 뭐, 하여간-♪」
납작해진 세트를 뒤로 하고, 헤카우가 날 보았다.
「반가워. 그이의 후계자야.」
“……후계자?”
「아사르의 일부를 이어받았잖니. 아마 앞으로도 쭉쭉 손에 넣을 테고. 그럼 후계자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내 몸이 투명하게 비치더니 마나의 흐름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자율 순환식.
내가 지금까지 쌓아 왔던 모든 것이 투명하게 비쳤다.
「흥미롭구나. 인간의 선천적인 능력을 초월한 마나 순환 능력이라……. 안 그래도 부담이 적지 않을 텐데, 또 폭풍으로 괴상한 수를 동원했어.」
“훌륭한 생존 수단이지.”
「경우에 따라서는 널 죽일 수도 있을 텐데.」
“그 정도는 제어할 수 있어. 어려운 일은 아니지.”
내 말에 헤카우의 여우 같은 눈이 가늘어졌다.
「흐음.」
천천히, 날 살펴보는 그녀.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난 머릿속으로 몇 가지를 생각했다.
그녀는 분명 헤카우다.
시간 동결이라는 ‘기적’을 이토록 간단히 행하며, 이런 존재감을 지닌 존재는 희박하다.
허나.
‘왜 지금 모습을 보였지?’
난 미래를 알고 있다.
설령 내가 본 미래가 이미 많이 바뀌게 될지언정 한 가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신은 우릴 돕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기도가 이어졌고, 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가.
헤카우는 마지막까지 개입하지 않았고 우리는 패배했다.
그래.
당신은 우릴 돌보지 않았다.
「날 보는 눈이 꽤 불손하구나. 말에도…… 딱히 날 경외하는 기색도 없는 듯하고.」
“세계수가 말라 죽어가고, 대악마가 제 세력을 넓히는데도 방관하고 있는 게 당신이잖아. 오히려 경외하는 쪽이 이상한 것 아닌가?”
현시점에서 왜 단 한 번도 계시를 내리지 않았던 그녀가 내게 모습을 보인 건지는 모르겠다.
하나, 으레 인간이 신을 볼 때 들어야 할 경외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스스로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냉소마저 나올 정도.
내 말에 그녀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눈에 힘을 주고 다시 뚫어져라 날 쳐다본다.
그리고는.
「아.」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재미있구나. 재밌어. 너, 반 정도 내게 걸쳤구나?」
“무슨 말을.”
「그렇다면 납득이 되지. 어째서 일개 인간이 내 흥미를 끌었고, 나와 접할 수 있으며 또 자세한 걸 읽을 수 없는지.」
순간적으로 한 가지가 떠올랐다.
10서클.
아주 잠깐이지만, 난 그 경지에 도달한 전례가 있다.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은…….
‘10서클이 신의 경지에 걸쳐 있다는 뜻인가?’
즉, 난 한 번 10서클을 경험한 적이 있기에 그녀가 나에 대한 것을 확인할 수 없다.
……확실한 건 없지만.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내가 계시에 응하지 않은 것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이유가 있거든?」
“……이유?”
「응응, 이유!」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말이 전해지지 않고 있어.」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한번 못 박듯.
「난 내 아이들에게 신이라 불리고 실제로 그에 가까운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지는 않거든.」
“당신, 신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 하나…….”
「……그거에 대해 이야기하면 한세월이니 설명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어쨌건, 모종의 이유로 내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닿지 않게 되었어. 심지어 차선책으로 내었던 예언조차 믿지 않게 되었고.」
“흐음…….”
굳이 내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것.
“내게 바라는 게 뭐지?”
「무슨 원인인지 알아봐 줘. 넌 현시점에서 나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인간이니.」
헤카우가 활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덤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면 더 좋고!」
* * *
눈을 떴다.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고, 멈춰 있던 풍경 또한 움직였다.
교황과 지크프리트의 시선은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천천히.
방금 전, 헤카우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러고는 눈을 한 차례 질끈 감았다.
“……미하일 님.”
교황은 긴장된 기색으로 날 쳐다보며 재차 물었다.
“계시가 무엇이었습니까.”
계시.
그 순간, 난 헤카우에게서 들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 무슨 원인인지 알아봐 줘.
신조차도 확신하지 못할 문제.
어쩌면 마신이 직접적으로 얽혀 있을지도 모를 문제.
원인조차 알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다.
다른 존재도 아니고 신이 그런 거니.
그렇다면.
‘해결해야지.’
한시라도 빠르게.
그렇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미끼.’
과연 물지, 안 물지는 모르지만 되도록 많이 뿌려 두는 편이 좋겠지.
“말씀드리지요.”
난 교황을 똑바로 쳐다보며, ‘계시’에 관한 것을 말했다.
“신께서는 현 교국의 실태에 무척 실망이 크다 말씀하셨습니다, 성하.”
“……!”
내 말에 교황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크프리트 또한 격노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날 노려봤다.
“무엄하오!”
“무엄하다?”
넌 좀 닥치고 있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지크프리트 경은 감히 계시를 ‘무엄하다’라고 말한 것에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
“제가 받은 계시가 진실인지, 거짓인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무엄하다니. 하하.”
난 놈을 노려봤다.
“좀 짜져 있으십시오.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으니까.”
“뭐, 뭔……?!”
회귀 전, 내가 겪었던 일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헤카우는 마지막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신성력은 존재했다.
따라서 신성력이 있으니 헤카우 또한 건재하리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무리 나라도, 신에 대한 것까지 예측하는 건 힘들었다.
내가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니.
“또한.”
난 재차 말을 이었다.
“오래전, 성하가 거둔 두 여아에 대한 것도 말씀하셨지요.”
그 순간.
꿈틀.
내 말을 듣고 있던 교황의 눈가가 잠시 움직였다.
난 그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한 동요.
“하나는 쥐었으나 또 하나는 떨어졌으니. 뜻 또한 올바르지는 않으리라.”
“……!”
대충 계시답게 표현을 포장해 말했다.
모호한 말이지만, 교황 정도라면 적당히 걸러서 알아들었으리라.
물론 헤카우가 이런 계시를 내린 건 아니지만 상관없다.
사실로 만들면 결국 그게 계시가 되기 마련이니.
‘모르는 이야기도 아닐 테고.’
감이 잡히는 게 있을 것이다.
두 아이.
선택받은 쪽과 아닌 쪽.
이건 교황 스스로가 부끄러워하고, 끊임없이 자책하던 문제.
어련히 스스로 의미를 찾고, 개선하려 하겠지.
“혹시 계시를 믿지 못하시는 거라면, 저로서도 더 할 말은 없습니다만.”
“……모르겠군요. 하나.”
교황의 얼굴은 혼란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말한 ‘계시’에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미하일 님은 용사의 자격을 지닌 분. 그런 분이 하신 말씀을 흘려듣는 것도 현명한 것은 못 되지요.”
“감사합니다.”
지금은 그것으로 되었다.
교황은 내가 말한 계시를 그냥 흘려듣지는 않을 것이고, 끊임없이 생각하겠지.
그것만으로도 바뀔 것이다.
“성하, 아무리 용사의 자격을 지녔다고 해도 계시란 그렇게 간단히…….”
“지크프리트 경.”
“……예?”
“성하가 알아서 고심하신다니까 주둥이 닫읍시다, 좀.”
난 조용히 지크프리트를 노려봤다.
만약 여기서 저 새끼가 한마디만 더하면 그대로 턱을 돌려 버리리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 얄미운 턱주가리를 날리리라.
그런 신념을 담은 눈으로 지그시 노려봤다.
슬쩍 놈이 시선을 피했다.
안타깝게도.
[너, 유독 저 아이에게만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구나.]당연하지.
저래 뵈도 세계 작살 낸 것에 적지 않은 지분이 있는 놈.
수시로 기를 죽여 둬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쓸데없이 날뛰다가 문제를 일으킬 테니.
확신할 수 있다. 저 새끼는 그러고도 남을 새끼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요. 두 분께는 저 역시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교황은 혼란스러운 속내를 어느 정도 정리하며 말하고는 대담을 끝내기로 했다.
그렇게 대실을 나서기 전.
“미하일 님, 혹시…….”
잠시 교황이 날 붙잡았다.
잠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교국이라는 거대한 종교 국가의 수장임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난 그런 교황을 보며 말했다.
그가 하려 했던 말이 무엇인지 짐작했기에 피식 웃으며.
“……예?”
“계시에 대해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으신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난 확신을 담아 말했다.
“다 옳은 대로 흐를 테니.”
설령 아니라 해도.
내가 그리 만들 것이고.
“……하하.”
내 말에 교황이 힘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간절함을 담아, 내게 말했다.
“정말 그리됐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교황과의 대담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