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85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85화
피아쿨룸.
마을의 이름은 일단은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었다.
촌장은 계속해서 마을에 대한 것을 설명했다.
“아시겠지만, 이곳은 드라큘리온의 만행으로 인해 영지민의 반절이 사라진 뒤, 살아남은 이들이 만든 마을입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군요.”
“예, 크지요. 그렇게 남은 영지민들 중 이탈자는 거의 없었거든요.”
촌장은 자랑스럽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폈다.
“그래서 이곳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정말 좋은 곳입니다.”
“불편함은 없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훈련된 병사나 기사들의 보호가 없는 이상…….”
“자경단을 만들어 운영 중입니다. 숙련된 사냥꾼들이나, 병사로 일했던 이들로 이뤄졌지요.”
“흐음…….”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영주의 관리 아래 있는 지역이 아님을 생각하면 더더욱.
“게다가 몬스터들의 습격도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지요.”
그 뒤로 촌장은 마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 이 마을을 만들었는지를 설명했다.
자랑할 만한 마을이긴 하다.
일단 겉으로 보기엔.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난 이미 이 마을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결말을 비추어 보았을 때…….
아마, 그리 좋진 않으리라.
결과적으로 드라큘리온은 완전히 봉인에서 풀려났고, 이 일대의 모든 게 파멸했다.
누가 봐도 자랑스럽지는 않다.
아마, 그 결과를 제하고서라도 마을의 실체 또한 그럴 것이고.
“좋은 마을이군요. 저 너머, 방벽에서 무언가 문제만 터지지 않는다면…… 정말 좋겠지요.”
“방벽이라…….”
촌장이 방벽 쪽을 보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장담했다.
“후후,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늘 별일이 없었는걸요.”
“흐음.”
걱정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표정.
마치 방벽에서 별일이 없을 것을 확신한다는 듯.
혹은 그렇게 생각하게끔.
“방벽 앞을 지킨다며 난리를 피우는 괴짜가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까지 그 괴짜가 뭔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말도 없고 말이지요.”
“괴짜요?”
“예, 자유 기사라고 하던데, 본인이 자신에 대한 건 자세히 밝히지를 않아서 모릅니다.”
촌장은 그 뒤, 이번에는 그 자유 기사에 대해 한참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여간! 이 마을에 별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게 중요한 것이지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마을은 안전하기에, 그 누구도 터전을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영원히,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게 기쁨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촌장은 그 말들을 무척이나 감정에 북받친 듯 말했다.
애정이 과했다.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두 눈은 이미 제 마을에 대한 맹신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한참 제 마을에 대한 예찬을 하던 촌장은 그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손님들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이곳은 여행하러 오실 일도 없고, 특별히 일이 있어 오시는 경우도 드문데.”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요.”
난 방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드라큘리온.”
“……!”
그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촌장의 걸음이 멈췄다.
“혹시, 교국 소속이십니까?”
차가운 분위기.
방금 전까지의 온화한 인상이 어디로 갔는지, 새카만 눈동자로 날 응시하고 있다.
역시 이상하다.
하지만 그 속내는 감춘 채, 난 아무것도 모르는 듯 웃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개인적인 흥미지요. 역사학에 관심이 있어서요. 드라큘리온 사건은 끔찍한 일이지만, 어쨌건 중요한 역사의 일부니.”
“……흐음.”
내 말에도 촌장은 잠시 경계의 빛을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감춘 눈빛은 아니다. 감췄다기보다는 촌장의 태도는 광신도와 같았다.
‘어느 쪽이건 좋진 않지만.’
어쨌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요.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좋은 시간 되시지요.”
처음과는 달리 조금 미지근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여관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방을 하나 빌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목소리가 바깥으로 새지 않게 마법을 시전했다.
“집사.”
“예, 말씀하시지요.”
난 뒷짐을 진 채, 태연히 대답하는 집사에게 물었다.
“어때 보여?”
“하하.”
집사가 피식 웃었다.
“매혹시키는 건, 악마들이 자주 하는 짓들이기는 하지요.”
“흠, 역시.”
“가축들이 자청해서 밧줄에 묶여 있겠다 말하면, 관리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가축?”
리안이 눈가를 찡그렸다.
“어르신, 아무리 그래도 가축이라 말을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집사의 표현은 틀린 게 아니야, 리안.”
“무슨 소리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뒤에서 일을 꾸미는 놈들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리안도 대충 눈치를 챈 모양.
“……이 마을에 악마의 장난질이 섞여 있다?”
“이 마을뿐만이 아니야.”
일대의 마을은 총 일곱.
가장 번화한 이곳을 제외하고도 여섯 개의 마을이 더 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결백할 것이다.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들이겠지.
문제는.
‘촌장.’
모든 걸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까 전의 대화로 보자면, 촌장은 통제하는 쪽이라기보다는…….
‘꼭두각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용당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 일대의 모든 마을이 그 장난질에 엮여 있는 것 같으니 문제지. 아마, 한 번 터져 나가면 보통 일이 아닐 거다.”
“그걸 어떻게 아는데?”
“대략적인 분위기. 게다가, 덤으로 마을의 숫자.”
난 재차 말을 이었다.
“6은 제물을 상징하는 숫자로 유명하거든. 이런 경우에는 좋게 쓰이는 경우가 잘 없지.”
“6? 근데 굳이 따지면 지금 여기까지 합해서 일곱이잖아?”
“중앙에 ‘중심’으로 가장 거대한 게 하나가 들어가. 그리고 그걸 감싸듯 여섯이 놓이는 거지. 일종의 거대한 마법진이라고 해야 하나.”
“……허.”
6을 뒤집으면 9.
그리고 9는 끝자락에 있는 숫자라 ‘결과’라고도 불린다.
간단히 말하자면. ‘6’이라는 숫자만큼 제물로서 약발이 잘 먹히는 숫자가 없다는 뜻이다.
내 말에 리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즉, 오면서 봤던 그 마을들이 전부, 드라큘리온을 위한 제물로 쓰일 수도 있다?”
“내 추측대로라면.”
쾅!
격정에 못 이기고, 리안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내 추측이 용납 못할 정도로 사악하게 느껴진 것이리라.
“어떤 쓰레기가 이런 짓을.”
리안의 몸에서 오러가 휘몰아쳤다.
이미 오러를 제법 통제할 줄 아는 녀석이 이 정도로 반응한다는 건, 꽤 화가 났다는 것.
“진정해. 괜히 화만 내 봤자 바뀌는 건 없으니까.”
“……빌어먹을.”
녀석은 한참이나 그렇게 제 화를 이기지 못해 기세를 내뿜다가, 천천히 진정하며 기세를 거둬들였다.
“추측이라고 해도, 결국 근거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데…….”
“그러니까, 신중해야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악마들은 간교하고 영악하니, 괜히 먼저 달려들 필요는 없다.
미끼도 던져뒀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은…….”
촌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 하나를 만나야겠어.”
방벽을 지키는 괴짜 자유기사.
우선은, 그자와 만나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 *
칠흑 같은 밤.
하늘 높이 솟은 방벽 밑에서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관리되지 않아 녹슨 갑옷.
아무렇게나 자라난 수염과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기름이 뭉쳐 떡진 머리카락.
누가 보면 시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다만 단 하나.
그가 쥔 창만큼은 제법 손질이 되어 있었다. 언제건 날카롭게 상대를 꿰뚫을 수 있게끔.
퀭한 눈으로 주변을 응시하며, 남자는 주변을 훑었다.
시선은 앞을 향했지만
그의 머릿속에 보인 풍경은 지금과는 달랐다. 이런 삭막한 폐허와는 다른 따스한 풍경.
이제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그 광경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무너질 것 같았기에.
십 년을 넘도록 그리 살았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하, 하.”
힘없이 웃음소리를 내며, 그는 천천히 제 손을 들었다.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제 몸인데도 제 몸 같지 않다.
그때부터 늘 그랬다.
– 만족스럽지 않느냐.
악몽이 광기에 찬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럴 리가.”
입가를 떨며 키득댔다.
방벽에 접근하는 이들은 없다.
그건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죽은 듯이 주변을 감시하고 있을 때였다.
“……음?”
무언가 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한밤중에 느껴질 리가 없는 기척.
게다가 최근 몇 년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던 강력한 기운이었다.
창을 잡으며 그는 몸을 일으켰다. 낡아빠진 투구 사이로, 붉은 기운이 짧게 지나갔다.
결국, 온 것인가.
그토록 그가 걱정했던 순간이 왔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여태까지 몇 번이고 연습했던 궤적을 떠올리며 창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침입자가 접근할 시, 단 한 번에 심장을 꿰뚫기 위해.
속으로 숫자를 세고, 창을 내지를 순간을 기다렸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어쩌면 그와 같을지도 모르는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달빛 아래 맑은 금발이 휘날렸다.
그 옆에는 한 노인과 기사가 서 있었다.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던 노인이 말했다.
“도련님, 악마 같은데요?”
“아니, 좀 다른데.”
“……!”
악마.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을 악마라 부른 노인을 노려보며 창을 내질렀다.
“허 참, 초면부터 공격이라.”
노인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당연히 그대로 노인을 꿰뚫었을 거라 여겼던 일격이 간단히 막혔다.
노인은 그대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크윽!”
힘껏 내질렀던 것이 무색하게도, 창은 힘없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노인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도대체 이자들은……!’
혹시, 잘못 짚은 건가?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힘이라니. 이건 자신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다.
‘아니, 이걸로 안 된다면.’
아무리 쓰지 않기로 했어도, 어쩔 수 없다.
눈빛이 더더욱 붉게 변하며, 몸에 검은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만.”
하지만 그조차 이루지 못했다.
채 변하기도 전, 갑자기 귓가에 내리꽂힌 목소리.
그리고 동시에.
후웅.
바람이 그를 감쌌다.
그 순간,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았던 힘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는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너, 너희들은 누구냐.”
“대화하러 온 겁니다.”
대답한 것은, 방금 전 그에게 수수께끼의 힘을 보였던 청년.
“넌…….”
청년은 뭐라 대답하는 대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그의 앞에 보였다.
그 순간.
“아.”
그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기억 속에 있었다.
희미했지만, 어릴 적에 동화 속에서 보았던 영웅이 늘 이런 상징을 달고 있었기에.
“설마.”
“전 미하일 발푸르기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대에 신으로부터 ‘용사’로서 인정받은 자입니다.”
“……!”
그가 눈을 부릅떴다.
자신을 용사라 밝힌 청년은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