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41
41화. 더는 환생이 없다?
“해머교, 해머교…….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너무 촌스러워요.”
느닷없이 튀어나온 성녀의 말에, 시립해 있던 사제들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 22살이 된 아리따운 처자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피식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사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재앙을 극복하느라 급급해서 우리 교. 황. 님이 사칭하던 시절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뿐이지. 종교 이름이 해머가 뭡니까, 해머가?”
그 말에 사제들은 저마다 상징처럼 쥐고 있는 작은 망치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성녀의 아래쪽에 앉아 있는 ‘교황’ 하일론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교의 이름을 바꾸다니 말도 안 되는…….’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자신이 없으니 당신이 대신 해 달라는, 무언의 압박.
그에 하일론은 땀을 삐질 흘리면서 억지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해머는 우리 주, 불굴의 신의 주무기 아닙니까? 이제 와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찌 보면 위치가 거꾸로 된 것 같았지만, 이것이 해머교의 현실.
신의 친족이나 다름없는 성녀와, 신의 하인에 불과한 교황의 차이였다.
그리고.
“교의 이름을 바꾸면, 신께서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실 수도 있어요.”
재앙 극복 이후, 좀처럼 외부에 나서지 않고 소통도 하지 않았던 그들의 신.
그를 언급하는 순간, 성녀의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은 사실상 가장 빠르게 해결해야 할 안건이 되었다.
그리고.
“타이니교?”
“아주 작은 종교라니, 그건 좀…….”
“불굴교?”
“그건 싸우자는 것 같고.”
“전신교?”
“전쟁을 위한 종교 같잖소!”
“그럼…….”
와글와글.
삽시간에 시끄러워지는 대회의실.
그러던 어느 순간.
[작은 종교. 그것이 좋겠다.]사제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똑같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오오!”
“그분이 응답하셨다!”
“드디어 6년 만에……!”
머릿속에 울려 퍼진 목소리를 듣자마자 환호하던 사제들은 한 박자 늦게 그 내용을 해석하고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타이니교……로 하란 말씀이시겠죠? 본인 이름 따서.”
“그, 그렇지 않겠소이까.”
서로 마주친 시선들이 떨떠름하게 물들어 갈 때.
장난스레 이 주제를 꺼내 들었던 에리나는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들었다.
다른 사제들과는 달리, 그녀는 타이니가 전한 뜻을 온전히 알아듣고 있었으니.
‘작은 종교……?’
성녀인 자신조차 엘븐하임에 찾아가야 만나 주던 타이니가 굳이 사제들의 머릿속에까지 신탁을 내렸다.
그리고 그 신탁의 내용이 그것이라면.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녀가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바로 응답이 왔다.
[그래.] [왜? 혼란에 대비하라고 한 건 너였어. 그런데 이제 와서 대륙을 지탱하는 유일한 종교의 역할을 축소하라고? 앞뒤가 안 맞잖아?] [당장 그러라는 건 아니야. 단지 종교의 본분을 잊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어. 지금은 세상의 혼란을 잠재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면 돼.]에리나가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 이래, 두 사람의 관계는 다소 어정쩡해졌다.
그녀는 타이니에게 누나이자 조카뻘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정작 당사자들을 개의치 않고 서로 편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리나는 따질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인 거야?] [창세가 완전히 마무리되는 날, 나 역시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이야.]“뭐!?”
콰당.
너무 크게 놀라는 바람에 육성으로 고함 소리가 튀어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며 넘어뜨린 의자, 그리고 모여드는 시선들.
“성녀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단 교의 명칭은 타이니교로 가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 [지금은 이렇게 해 줘. 네 이름이 필요할 때야.] [……그렇다면 교리로 남겨 놓기라도 해. 종교의 역할은 민중의 혼란을 바로잡는 것으로 끝이라고.] [……그럴게.]에리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에게 모인 시선을 의식하며 태연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동서의 모든 나라에 새로운 이름을 전하고, 교리를 다시 정비합시다.”
“교리를요?”
“타이니교는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고 민중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즉, 세속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타이니의 생각에 자신의 의견을 더하여 몇 가지 말을 더 남겼다.
역사가 오래되어 권위 의식이 만연한 종교에서라면 권력을 멀리하라는 교리에 발작할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오…….”
“과연…….”
“과연 우리 주께서는 생각이 깊으십니다.”
해머교, 아니 타이니교는 대륙에 공표된 지 고작 6년이 지난 신설 종교인 데다 심지어 신이 현세에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타이니와 파장이 맞는 신도 중에서도 가장 신실한 고위 사제들이었으니.
그렇기에 그 무욕한 교리에도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만족스러웠지만.
정작 에리나의 속은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왜? 왜 떠나겠다는 거야?] [진정해. 적어도 아직 백 년가량의 시간은 남았으니까.]“아…….”
그 말에 에리나는 불안과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타이니가 왜 떠나려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불안했고, 그래도 작별의 날까지 한참은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늘 도움을 받고 있어. 미안해, 에리나.] [……나야말로. 너는 내 동생이고 삼촌이기 이전에, 내 구원이었어.] [작별 인사야? 나 벌써 가라고?]진심을 담아 답을 하는데, 웃음기 어린 대답이 돌아왔다.
“뭐!?”
“무슨 일이십니까. 성녀님?”
하일론의 말도, 다른 사제들의 시선도 지금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창세기였기에 반복되던 환생의 인과는 이제 사라질 거야. 당연히 누나의 환생도 이제는 없어.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살길 바라.]수없이 환생을 반복해 온 환생자로서, 그 말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으니까.
[마나가 대기에서 사라지는 대신, 일정한 수만 유지되던 세상의 생명은 무한히 번성할 거야. 그 미래가 어떨지는 나도 모르지만.]“그런…….”
[그것이 작금의 변화가 올바른 이유야. 받아들여야 해, 누나.]받아들여야 한다.그 말에야 에리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의 삶을 충실히…….”
“성녀님?”
“아……. 그, 새로운 교리에요. 포기하지 말고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라는.”
“설마, 지금도 신탁을 받으시는 중입니까?”
“그래요.”
“오오!”
[하긴, 반복되는 삶은 괴롭고 힘들지.]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후련하기까지 했다.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 뒤에도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무거운 짐이 그제야 정리되는 듯했고.
몇 번이든 환생이 반복될 것을 알기에 현재의 삶에서 맺는 인연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로 했던 각오가, 그 순간 깨져 나갔다.
‘괜한 짓이었네.’
거기다 타이니가 다시 한마디를 보탰다.
[그래. 그 괴로움도 끝이야. 그러니 누나도 지금의 삶에 집중하도록 해. 괜히 이미 다 짐작하고 있는 크롬 애태우지 말고.]그 말에 흠칫한 에리나의 시선이 회의장 구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한 성기사를 향했다.
해머교, 아니 타이니교 내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신성력을 보유한 성기사이자.
‘인간 중 최강’으로 자주 거론되는 고대와 현대의 용사.
그리고.
그녀의 옛…… 연인.
“그래, 그럴게.”
“예?”
“아니, 아니에요.”
[그럼, 넌 이제 어쩔 생각이야?] [내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일들이 조금 있어. 그것을 마무리하고 나면, 나는 세상의 일에 가능한 한 간섭하지 않으려 해.] [그래도, 우리 결혼식에는 올 거지?] [뭐? 푸하하하!]장난스레 건넨 말에 머릿속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크큭. 확실히 넌 에리나 누나이면서도, 그 말괄량이 에리나이기도 한 것 같아.] [그 모두가 나야, 타이니.] [알아. 근데 사제가, 성녀가 결혼을 해도 돼?] [뭐, 어때? 어차피 교리는 지금 내가 정하는 대로 될 텐데. 설마 상관할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원하는 대로 해. 누, 아니 에리나.]영파에서 느껴지는 웃음기가 자신에게 옮겨온 것인지, 자연스레 미소가 나왔다.
“그래. 내가 원하는 대로…….”
또다시 혼잣말을 하는 성녀.
하지만 이제 사제들은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구석의 성기사에게 꽂혀 있던 그녀의 시선이 곧 다시 사제들을 훑었고.
“몇 가지 교리를 정리하고, 세상에 다시 퍼트리겠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 주의 뜻대로.”
“우리 주의 뜻대로.”
쿵. 쿵. 쿵.
사제들의 손에 들린 작은 망치가 탁자를 두드리며 호응하는 순간.
본격적으로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여신의 성기사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에리나…….’
크롬벨은 열정적으로 회의를 이끌어 가는 에리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그녀에게선 연인이던 시절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과거의 기억을 진작 되찾은 것 같은데도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에 대해 아무 말도 없었으니.
그 때문에 크롬벨은 해머교, 아니 이 타이니교에서 맡은 역할이 없음에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신이시여.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녀의 마음도 자신의 마음도 뚜렷이 알지 못하니,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리운 신의 모습일 뿐이라.
그렇게 멍하니 사라진 신을 회상하고 있던 순간.
“크롬벨, 뭐 해요?”
“음? 아……. 다 끝났나?”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대회의실에 남은 것은 에리나 혼자였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검은 눈동자는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끌어들여 여전히 마음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크롬벨은 애써 그 마음을 숨긴 채 담담히 말을 꺼냈다.
“오늘 일정은 끝인가?”
“네.”
“그럼, 가지.”
“어디요?”
“음?”
평상시대로라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거나 산책로로 나갈 것 같았던 에리나가 처음으로 반문을 해 왔다.
“피곤하면 방으로, 아니면 산책. 아니었나?”
“좀 더 하고 싶은 게 생각났어요.”
검은 눈이 미묘하게 빛나는 것을 보니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과거의 에리나건 현재의 에리나건 간에, 저런 눈빛을 보인 다음에는 항상 곤란한 일을 저질렀었으므로.
반사적으로 고함이 나왔다.
“안 돼!”
“뭐가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러자 바로 뚱한 표정을 짓는 것도 왠지 불길했다.
“아무튼 안 돼.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거, 뭔지 몰라도 하지 마.”
“……싫은데요?”
이 쪼끄만 게…….
좀 전까지 애타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스승으로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뭐든 사고 치면, 더는 뒷수습 안 해 줄 거다. 저번에 거대 신상 만든다고 신전 기둥 박살 냈을 때도 내가 그걸…….”
장황하게 설교를 늘어놓으려는데.
그녀가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계 대전의 마지막에 대해서 말해 줄 게 있어요, 크롬벨.”
이어져 나온 말이 그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마, 마계 대전? 그때 너는 아직…….”
“아뇨. 지금 말고, ‘우리의’ 마계 대전이요.”
허읍.
“사실 그게 내 의지가 아니었다는 말,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이제야 마음먹게 돼서.”
“설마 너……?”
“그래요. 짐작하고 있었잖아요.”
“어…….”
그렇지만.
‘갑자기, 왜?’
가슴속에 태풍이 휘몰아치는데.
“일단, 가면서 얘기해요.”
에리나는 불쑥 손을 잡고 그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뒤.
용사와 성녀의 결혼식이 열리며, 세상의 권력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거기엔, 신도 있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