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1
131 반향
* * *
⌜장현필 밴드⌟ 공연이 모두 끝난 뒤.
박훈은 곧바로 차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 반응은 어때?”
– 아주 좋아요. 댓글도 그렇고, 스트리밍 수도 제법 나오고 있어요. 심지어 뉴튜브 영상에는 영어권 유저들 댓글도 제법 달리고 있고요. 찰스턴에서 공연을 본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준 걸지도 모르겠어요.
“뉴튜브 반응이야 나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잖냐. 그거 말고. 정확한 스트리밍 수는? 업체에 확인해봤어?”
– 아, 네. 그쪽에서 정확하게 언급은 안 해줬는데 이 추세라면 바로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답변은 들었습니다.
“그래?”
박훈이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번 노래는 MJ와 ⌜월광⌟이 계약한 마지막 곡이다.
덕분에 회사 내에서도 보는 눈이 많아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일 처리는 날림식으로 후다닥 처리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일주일 만에 거의 모든 걸 끝내버렸으니······.’
바쁜 일정을 맞추느라 이렇게 된 것이었지만, 어쨌든 조금은 눈치가 보이게 됐다.
이 상황에서 결과가 괜찮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박훈이 한시름 놓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다음 일정은?”
– 방송국에서 미국에 인터뷰를 하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하기로 했고요. 메인 시간대에 방영하는 것까지 약속받았어요.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도 한 꼭지 나가게 될 거예요.
“그래. 수고했다. 이 정도면 우리 할 일은 다 했네. 나머진 ⌜JHP⌟에서도 도와줄 테니까.”
박훈은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천만다행히도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상위권에 ⌜Long day⌟가 진입했다.
대한민국은 아침 시간이라 반응이 늦게 올까 봐 걱정했었는데, 장현필과 MJ의 네임벨류가 상상 이상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ㄴ 와···. 미쳤나 봐···. ⌜Long day⌟ 노래 왜 이렇게 슬프냐? 그냥 눈물이 나네···.
ㄴ MJ가 칼을 뽑았네. 장현필 보컬을 고른 것도 다 계산에 들어가 있었나 본데? 감정 전달이 특히 대박이야.
ㄴ 나 ⌜Long day⌟ 듣고 엄청 울었어. 하아. 옛날 생각나네.
ㄴ 멜로디는 또 어떻고? MJ가 밴드 음악을 이렇게 잘 썼었나?
ㄴ ㅠㅠ 진짜 펑펑 울었다. 5년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갑자기 너무 많이 생각이 난다. 있을 때 조금 더 잘해드릴걸······.
ㄴ 그래도 노래 끝까지 듣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져.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어.
ㄴ 아, 맞아! 왜 그렇지? 뭔가 위로받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ㄴ 멜로디가 점점 따뜻해지잖아. 가수하고 작곡가가 우리를 위로해주고 싶나 봐.
ㄴ 그게 그대로 전달 되는 것 같아서 좋아.
ㄴ 맞아! 진짜로 좋은 노래야.
팬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이로써 서진이하고 여섯 곡을 같이 작업하게 됐다.
슬슬 계약을 갱신해야 할 시기가 됐다.
갈수록 좋은 곡을 쓰고 있는 작곡가가 서진이다.
심지어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현재 ⌜월광⌟과 MJ의 계약은 비공개로 잘 유지가 되고 있지만, 만약 ⌜월광⌟과 계약이 끝났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다들 눈에 불을 켤 것이다.
대한민국의 레이블이라면.
아니면 최근 K-POP 열풍으로 대한민국에 관심이 있는 세계의 레이블이라면.
작곡가 MJ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일 것이다.
이런 작곡가에게는 어떠한 조건을 제시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월광⌟도 그에 질 수는 없었다.
서진이 성격상,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월광⌟과 쉽게 계약을 갱신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호의를 쉽게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아이가 믿어주는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박훈은 미국에서의 일정을 체크한 뒤에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를 대략적으로 계산해 봤다.
그러면서.
이번 계약에서는 ⌜월광⌟이 서진이에게 ‘백지수표’라도 건네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농담과 진담을 섞어가며 하게 됐다.
“일단은 ⌜Long day⌟부터 잘 마무리를 해야겠지.”
장현필 가수는 ⌜Long day⌟ 성공 여부에 따라 MJ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해주기로 했다.
그렇다면 어설픈 성공에 만족할 수는 없다.
박훈은 노트북을 유심히 바라보며.
조금 바쁜 시간을 보냈다.
* * *
과연 좋은 음악이란 무엇일까.
대체 무슨 차이가 있길래 어떤 음악은 사랑받고, 어떤 음악은 무관심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걸까.
음악가들이 평생에 걸쳐 탐구하는 주제다.
아름다운 선율.
리드미컬한 박자.
그에 걸맞은 훌륭한 가사와 보컬.
또는 음악가의 삶을 녹여낸 연주.
······.
수많은 음악가가 있는 만큼, 가치 기준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모두가 본인만의 기준을 가지고 음악을 만든다.
음악이란 무척 신기하다.
어떨 땐 사람을 들뜨게 만들기도 하고.
어떨 땐 사람을 한없이 우울하게 만든다.
음악가의 사상과 감정을 소리라는 매개체로 전달했을 뿐인데, 듣는 사람은 그에 반응을 하게 된다.
울고, 웃고, 슬퍼하고, 즐거워한다.
좋은 음악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결론을 정확히 내릴 수는 없지만.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신나는 댄스 음악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었다면 그건 좋은 음악이다.
이별의 음악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면 그 또한 좋은 음악이다.
귀엽거나 미소가 지어지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어도 그건 좋은 음악이 된다.
감정의 변화.
좋은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바꾸어 놓는다.
한평생 음악에 모든 것을 바쳐온 장현필은 그렇게 생각했다.
고로, ⌜Long day⌟는 좋은 음악이다.
오랜 시간 응어리지어졌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진다.
한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심정에 조금씩 평온이 찾아온다.
노래의 힘은 대단했다.
수십 년간 그를 옭아매 왔던 무시무시한 슬픔을 마주 볼 수 있게 됐다.
애써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
닳고, 또 닳아버린 감정이, 무뎌졌을 거라 착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슬펐다.
그리고 그리웠다.
이게 전부였다.
장현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원엔 어느새 어둠이 내리깔려 있었다.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한 몇 개의 가로등만이 중간중간에서 빛을 내주고 있다.
조금은 멀리 떨어진 벤치에서 알 것만 같은 얼굴이 보였다.
장현필은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벤치에 앉아 있던 노년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둘은 반갑게 포옹부터 했다.
“자네라면 이 시간에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네. 공연은 잘 마쳤나.”
“그래······. 그리고 고맙네······. 잊지 않아 줘서.”
“어린 시절 자네 어머님께 얻어먹은 과자가 몇 갠데. 쉽게 잊을 수는 없지.”
“하하. 그것도 그랬겠구만.”
장현필의 오랜 친구인 그레이슨 그랜트는 그의 등을 툭 두드려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인 그랜트는, 어린 시절 장현필과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함께 많은 추억을 쌓았다.
차별이 심했던 지역은 아니라 학교생활 자체는 그럭저럭해냈지만, 가끔씩 장현필이 동양인이라며 시비가 걸릴 때는 함께 맞서 싸우기도 했다.
거기에.
음악을 한 번 해보겠다고.
장현필은 노래를 하고, 그랜트는 베이스를 치느라, 공부를 하지 않아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었다.
학창 시절 같은 밴드에 있었던 둘.
성인이 된 이후 장현필은 한국으로 가서, 그랜드는 미국 현지에서, 각자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랜트는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밴드에 소속되어가며, 프로 베이시스트로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무대에서 은퇴를 하긴 했지만, 전성기 때의 그는 미국에서 꽤 알아주는 베이시스트였다.
그때의 활동을 기반으로 미국 유명 레이블인 ⌜DreamSounds⌟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그레이슨 그랜트.
그는 한국에서 ⌜JHP⌟의 대표로 있는 장현필과 이래저래 공통점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자네가 방금 불렀던 그 노래는 뭔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아, 자네도 들었나?”
“노래의 마지막 부분만 간신히 들었어. 일부러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거든. 기타 소리와 노랫말이 들려오길래 귀를 기울인 게 전부였다네.”
“그런가. 어머니께서 자네도 보고 싶어 했던 것 같구만. 우연이 잘 맞아떨어진 걸 보면 말이야.”
“그랬을 수도 있겠어.”
둘은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자며 각자 차를 끌고 찰스턴으로 향했다.
밴스(Vance) 보다는 훨씬 번화한 곳.
그곳의 한 주차장에 차를 세운 둘은 낡은 바(Bar) 안으로 들어갔다.
낮이었다면 창문 밖으로 해변의 절경이 보였을 그곳엔,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차량의 불빛만이 간헐적으로 들어왔다.
바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마쳤을 때, 몇몇 사람들이 장현필을 알아봤다.
“와! 오늘 공연하신 분 맞죠? 친구 따라서 공연을 보러 갔었거든요. 반가워요!”
“특히 마지막 노래가 대박이었어요!”
“저는 완전 펑펑 울었어요!”
“장현필 가수님, 혹시 사인 하나만 해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마지막 팬은 한인이었다.
장현필은 그녀에게 사인을 해주며, 간략하게나마 그녀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거의 10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면서 한국에 있던 친구들과 이별을 하게 된 이야기.
⌜Long day⌟의 노랫말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이 노래를 듣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장현필은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며, 노래를 진지하게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오히려 그녀에게 해줬다.
잠시 후, 바텐더가 술잔 두 개를 들고 그랜트와 장현필 앞으로 왔다.
계산을 하려는 장현필의 손을 바텐더가 막아선다.
“방금 당신의 팬 중 한 명이 계산을 마쳤습니다. 좋은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더군요.”
“······ 그렇습니까.”
장현필은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바텐더가 자리에서 떠날 무렵, 그랜트가 말을 걸어왔다.
“모두 귀가 비슷한 모양이로군. 자네가 공원에서 불렀던 노래,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와 같은 곡이라고 했지?”
“맞네. 하지만 어머니 앞에서 노래할 때는 내가 가사만 조금 바꿨네. ‘YOU’라는 인칭대명사만으로 어머니를 부를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된 거였나.”
“⌜Long day⌟의 원 가사엔 특정한 대상이 정해져 있진 않네. 특히, 한국어 가사를 보면 더더욱 조심스럽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쓰여진 가사야.”
“······.”
그랜트는 장현필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궁금하던 것을 물어봤다.
“나는 처음에 자네가 만든 곡이라고 생각했었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구만.”
“한국의 작곡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곡가가 만든 곡이라네.”
“비밀스러운 인물인가 보군.”
“그렇지. 작곡가 MJ. 혹시 들어봤나?”
“MJ?”
그랜트는 단번에 떠오르는 이름을 말해봤다.
마이클 잭슨, 마이클 조던, 믹 재거.
하지만 그러한 인물들은 아닌 듯했다.
“작년 이맘때에 한국에서 데뷔한 작곡가야. 그동안 MJ가 쓴 곡을 몇 개 유심히 들어보긴 했었는데, 이번에 나와는 ⌜Long day⌟로 인연이 됐다네.”
장현필은 그랜트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랜트는 공동묘지 공원에서 ⌜Long day⌟의 마지막 부분만 들어봤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분명 지금쯤 ‘노래 전체’를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그랜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사실,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네.”
“말하는 것 하고는. 자네 성격은 여전하구만.”
“그만큼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훌륭한 노래였어.”
“좋은 음악. 거기에 훌륭한 노래라······. 자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군.”
“그 공원에서 자네가 노래하는 분위기에 취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 노래를 듣고 전율이 느껴졌었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노래였어.”
그레이슨 그랜트.
그의 이례적인 칭찬에 장현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랜트는 장현필의 스마트폰으로 음원을 재생했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의 선율이 엮이면서 장현필의 묵직한 보컬이 나타난다.
강렬한 도입부.
바 테이블 너머에서 컵을 닦고 있던 바텐더가 일순간 행동을 멈춘다.
티비를 보고 있던 손님들이 이쪽으로 스윽 시선을 돌린다.
오늘 공연 시각에 맞춰 한국에서 공식 발표했다는 노래.
한국어로 된 가사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노래의 멜로디와 분위기만으로도 그랜트는 감탄을 내뱉게 됐다.
‘굉장하군······.’
이 노래에서 장현필의 보컬은 엄청난 역할을 했다.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중후한 목소리.
만약 다른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다면 이 정도의 느낌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곡 단계에서부터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노래라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코드 진행도 독특한데다가······. 어둡기만 했던 이 멜로디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반전시킨다고?’
노래는 희망으로 끝났다.
듣는 이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깊게 숨겨놓았던 슬픔을 끄집어내 단번에 끌어안는다.
괜찮다고.
그러니 속상해하지 말라며.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랜트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 노래를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비슷한 느낌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말이지.’
일종의 기시감이었다.
미국에서는 매년 곡이 쏟아져나온다.
그것도 히트곡이 수없이 쏟아져나온다.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음원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DreamSounds⌟ 레이블에서 수많은 곡을 들어왔던 그랜트는 끝내 그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그랜트는 오랜 친구를 통해 이 천재 작곡가를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치유의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