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나는 스틸 스왈로우의 시점으로 붉은도끼오크들의 군세를 살피던 중, 문득 한 가지 의문에 봉착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전서구를 쫓아왔잖아?
그것도 인간 흑마법사가 날린 전서구를.
“······붉은도끼부족이 왜 흑마법사랑 연락을 취하는 거지?”
내가 아는 한 미래에서 붉은도끼부족의 오크들은, 붉은엄니왕국을 세울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 된다.
사막의 오크들이 하나의 왕을 자처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분명······.
“······재앙일 텐데?”
흰귀신개미라는, 재앙에 터전을 잃고 밀려난 오크들이 인류의 땅을 빼앗은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셰리오에서 흑마법사를 보았던바. 흑마법사들도 이 재앙에 엮여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재앙을 일으킨 가해자인 흑마법사들과 피해자인 붉은도끼부족이 전서구를 주고받는다고?’
그 순간 하나의 가능성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붉은도끼부족의 족장들.
‘애초에 흑마법사와 교류하고 모든 걸 계획했을 가능성 말이지.’
1회차에서 반인류적인 행보를 보이던 붉은엄니왕국.
그래도 마왕군이라는 공통의 적이 등장하면서, 인간 연합과 일시적인 화친이 가능할 듯싶었다. 실제로 그런 무드로 가며 여러 차례 회담이 열렸으니까.
하지만, 놈들은 중요한 순간에 인간 연합들을 배반했고, 인간 연합이 큰 피해를 입는다.
그게 단순히 인류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마왕의 입김이 작용된 결과였다면?
이 추론이 사실이라면 내가 생각한 전제가 무너진다.
셰리오 시의 유물을 발동하면, 몰려드는 흰귀신개미들에 의해 붉은도끼부족의 오크들이 물러나리라 생각했다.
즉, 두 위협 중 하나만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이대로 간다면 선발대는 큰 위험에 처한다.
앞으로는 붉은도끼부족을, 뒤로는 몰려오는 흰귀신개미 떼를 맞이해야 한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
“하, 시발. 이거 봐라?”
난 그제야 깨달았다.
흑마법사들. 놈들의 시꺼먼 마수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걸.
‘아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가?’
1회차의 내가 알 정도로 흔해 빠진 정보들이었으니까.
물론 그것들은 2회차에서 상당한 이점이긴 했다만······.
‘충분하진 않다.’
놈들은 생각보다 더 깊게 침투했고, 더 계획적이었다.
‘놈들을 얕봐선 안 된다.’
밤이 내리며 사막의 공기가 식었고, 내 피부와 폐에 스며드는 공기도 차가워졌다.
입김이 올랐다.
덕분에 머리가 차가워진다.
‘놈들처럼 생각해보자.’
한껏 끌어올린 긴장과 동시에 머리가 팽팽히 돌아갔다.
놈들이 나의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놈들이 이 모든 걸 꿰뚫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놈들이 하려는 것은?”
“붉은도끼부족을 시켜 셰리오 시로 오는 토벌대를 급습하려는 것.”
“그 이유는?”
“유물을 가동하지 못해야 놈들이 유리하니까.”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 되물었다.
그럴수록 차츰 놈들의 목표와 생각이 더욱 윤곽을 드러냈다.
“단순히 저지하려는 게 아니야. 유물을 못 쓰도록 점령할 생각이지.”
“어떻게 점령할 생각이지? 놈들의 무기는······.”
“······흰귀신개미.”
재앙을 푼 게 흑마법사들이라면, 조종도 할 수 있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곧장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두두두두!
“칼라마르, 이 주변에 위치한 마기를 최대한 감지해. 빠르게.”
달리는 칼라마르에게 명령하며 나는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동시에 남은 한 손으로는 마기 포식자를 꽉 쥐었다.
마기를 감지했을 때, 조금의 떨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몇 번의 사구를 뛰어넘고, 근처를 수색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달이 떠올랐다.
밤이 되자 사막은 더더욱 어두워졌고,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 앞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칼라마르가 질주하니 쌀쌀한 바람이 내 볼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때였다.
칼라마르가 걸음을 멈춘 것은 말이다.
[‘칼라마르’가 스킬 – 마기 추적(LV. 1)을 사용 중입니다.]크르르르─
사구로 만들어진 언덕 아래를 향해 칼라마르가 낮게 울음소리를 내며 자세를 낮추었다.
“여기라고?”
우웅─
칼라마르와 의견이 같다는 듯 뒤이어 마기 포식자가 미약하게 떨렸다.
나는 시야에 들어찬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눈에 마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달빛을 가리던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며, 내 앞의 풍경을 밝혀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지막이 감상을 내뱉었다.
“······씨발.”
달빛에 환히 드러난 사구.
그곳에는 새하얀 자갈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흰귀신개미들로 이루어진 새하얀 자갈, 아니 갑각밭이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일까?
놈들은 서로 몸을 붙인 채 반쯤 모래로 몸을 덮고 있었다.
모래 사이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갑각과 다리들이 눈에 띄었다.
흑마법사들과 붉은도끼부족의 오크들이 어떤 이해관계로 모였는지 그 내막은 모른다.
하지만 놈들이 하려는 것은 정해져 있다.
그러니······.
“······판을 짜봐야겠군.”
* * *
“지원군은 오지 않을 거야.”
그룬과 데릭은 제이드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대장, 그게 무슨 소리야?”
“지원군 없이 막아야 한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밤늦게까지 밖을 수색하고 왔다더니, 그거랑 관계가 있는 거야?”
데릭은 제이드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자신이 인정하는 대장이자 친우의 표정이 오늘따라 더욱 진지했다.
언뜻 보기엔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제이드가 담담히 말했다.
“흰개미들이 이미 근처까지 왔어. 곧 이곳을 덮칠 거야.”
“뭐?”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제이드의 대답에 모두가 놀랐다.
가장 크게 반응한 건 신기루 연구회의 트루디아였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분명 회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는 하루 정도는 더 걸릴 거라 했어요. 놈들은 밤에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 모래 아래로 들어간다고요.”
“제가 그걸 보고 왔어요.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사구에서.”
“······네?”
“뭐?”
“흰 자갈이나, 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만 같더라고요.”
제이드의 입이 열리자 방안은 정적으로 가득 찼다.
“적어도 500마리. 그게 사구 한곳에서만 발견한 숫자입니다. 발견하지 못했던 놈들까지 생각한다면 1,000마리에는 가까울 수도 있죠. 아니, 어쩌면 그 이상까지도. 물론 이게 군락 전체는 아니겠지만.”
제이드는 담담히 말하면서 종이 하나를 가져와 무언가를 끄적였다.
“그러면 후발대를 빨리 부르면 되지 않아?”
“아니, 후발대는 할 일이 있어.”
“할 일?”
그룬의 질문에 제이드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어딘가 오싹해 그룬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후발대는 붉은도끼부족에게 기습을 당할 거야.”
“기, 기습? 그건 또 뭔 소리야? 그게 사실이야?”
그룬은 제이드가 입을 열 때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당장 개미가 근처에 있다는 것만 해도 당황스러운데 후발대는 기습당한다니?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게 제이드인지 미친 예언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보다 왜 저렇게 평온한 건데?’
그러는 사이, 제이드는 새장에서 전서구 한 마리를 꺼내 녀석의 다리에 편지를 묶어 밖으로 날렸다.
“어디, 한번 시작해 보자고.”
제이드는 웃었다.
때때로 얼굴에 띄우던, 그 특유하고 어딘가 기괴하고 음습한.
보는 이가 기분이 썩 좋을 수 없는, 비릿한 웃음이었다.
* * *
“왔군.”
일천에 달하는 군세를 본 아딜로가 눈을 빛냈다.
아딜로. 붉은도끼부족의 열 번째 지파를 이끄는 족장이자 매복한 부대의 지휘관이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바티스타에서 셰리오로 향하는 지원군들을 전부 쓸어버리는 것.
그 하나를 위해 이 모래언덕에서 며칠을 기다리지 않았나.
정찰병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신기루 주술을 유지하면서.
“카르그의 말이 들어맞았군.”
아딜로는 다섯 번째 족장 카르그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와 함께하는 마법사가 이곳으로 인간의 대군이 올 것이라는 판단했다던가.
물론 그에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다가오고 있는 저 토벌대를 처리하는 것이었으니.
저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에 적이 숨어 있으리라 생각 못했는지, 각자 대화를 나누며 다가오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로 이루어진 환영의 장막, 신기루 주술.
바깥으로부터 안쪽의 모습을 숨기는 주술이었고, 덕분에 그들은 경로에 적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아딜로의 시선이 행렬의 선두로 향했다.
비슷한 복장을 한, 두 명의 오크가 보였다.
‘분명 무리를 이끄는 건······ 검은 뱀 형제라고 했지.’
바티스타의 유명 챔피언인 그들의 위명은 아딜로 역시 들어본 적 있었다.
그들의 실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위기를 돌파하고, 상대를 쓰러트리는 역전의 전사들.
콜로세움에서 최정상에 오른 챔피언들.
과연 이번에도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아딜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너희는 전멸할 것이다.’
숫자는 적들이 더 많았으나, 아딜로는 걱정이 없었다.
“기습은, 몇 배의 적을 이길 수 있는 무기지.”
특히나 탁 트인 사막에 활동하는 용병들은 평소에 기습을 경험하지 못했을 터.
아군이 신기루 장면을 뚫고 나오는 순간, 적들은 공황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 500명이 전부 숙련된 오크 전사들.
한 명의 오크 전사는 인간 사내 서넛도 감당할 수 있따.
즉, 500명의 붉은도끼부족의 전사가 저들을 무참히 베어낼 것이다.
그 상상에 아딜로는 흥분했다.
그 검은 뱀 형제를 제 손으로 쓰러트릴 수 있다는 상상에 입꼬리가 씰룩였다.
붉은 염료로 칠한 문신보다 더 진한 피로 온몸을 적실 상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딜로는 저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몇 번을 되뇐 끝에 놈들이 적정거리에 다다랐고.
“돌격하라─!”
아딜로가 도끼를 꺼내 들며 소리쳤다.
그리고 가장 앞장서서 놈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화악!
신기루 장막을 뚫고 나가자 후끈한 열기가 몸을 데웠다.
이제 진정한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저, 적이다!”
“붉은도끼놈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고, 진형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검은 뱀 형제마저 말이다!
역시 사막에서의 기습이란, 가장 희박한 경우의 수.
예상 못한바, 절대로 대응할 수 없는 최강의 암수일지니.
“으하하! 죽여달라고 애원을 해보아라! 대단하신 챔피언들!”
천하의 검은 뱀 형제도 별거 없구나!
아딜로는 순식간에 그들을 따라잡았고, 도끼를 휘둘러서 형제 중 한 명의 목을 쳐냈다.
“음?”
그런데 손맛이 이상했다.
살과 뼈를 가를 때 느껴져야 할 저항감이 없던 것이다.
감각에 혼란함을 느끼는 그 순간, 적들의 모습이 일렁거리더니 갑자기 사라지는 게 아닌가?
“환영? 대체 언제부터······!”
“큭, 붉은도끼 놈들, 너희만 주술을 쓸 수 있는 줄 아는 건가?”
“······뭐? 잠깐! 무슨 일이지?”
경악에 찬 아딜로는 방어 태세를 취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눈앞까지 다가와서 함정에 빠졌던 적 중 절반 이상이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분명히 검은 뱀 형제 두 명의 나란히 서 있었거늘,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설마, 그 모든 게 환영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군세를 부풀렸단 말인가? 대체 왜······?
이해할 수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최악의 방법으로.
와아아아─!
붉은도끼부족 후방에서부터 요란한 고함이 들려왔으니······.
“놈들을 쓸어버려라!”
“비열한 약탈자 놈들!”
사라진 절반의 적 병력이, 그곳에서 나타난 것이다.
“무, 무슨! 함정이었단 말인가! 대체 언제부터!”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앞뒤로 포위되어 공격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막에서 기습이 최악의 암수라는 말은, 붉은도끼부족에게도 적용되었다.
눈앞의 적만 보고 승리를 확신하며 달려가던 그들은, 귀신에 홀린 듯이 공황에 빠졌다.
“크악!”
“어디에서 나타난─ 커억!”
우왕좌왕하다가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과 창에 맞고 쓰러졌다.
낙타 부대 한 무리가 중심부까지 치고 들어오자,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의 오크가 죽었다.
초전박살.
자신들이 계획했던 결과의 희생양이, 자신들이 되어버렸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된 것이지!”
아딜로는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완벽한 함정을 팠다고 생각했거늘, 역으로 함정에 걸리고 말았다.
“어떻게 함정을 팠냐고?”
피식 웃는 자라크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주 간단하지.”
그런데 자라크의 목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워졌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어느새 옆에서 나타난 자라크가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환영!’
아딜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술사였구나, 네 녀석─!”
서걱!
경악에 찬 아딜로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면, 뭐든 다 잘해야 한다. 넌 아니군.”
힘을 잃고 쓰러지는 아딜로의 몸뚱이를 보며 자라크가 이죽거렸다.
검투도, 주술도 다 잘하는 것.
콜로세움에서부터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 아니겠나?
어떤 공격에도 대처할 수 있기에.
“······아니, 상관을 잘 두어서인가?”
언젠가 드이제가 말했다.
무기를 뽑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콜로세움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방법이 아니냐고.
맞는 말이었다. 싸울 상대를 고르는 것이 전사의 명예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살아남으며 강해지면은, 더 강한 적을 벨 기회가 오고, 더 큰 명예를 얻게 되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서야 할 곳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검은 뱀 형제가 헥토르의 뒤에 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거대한 판에서 쉽게 소모되지 않고, 이기는 승부에 가담할 수 있도록 가장 강한 주인을 섬기는 것.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이름이 떠올랐다.
드이제.
그자가 전서구를 통해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다.
끌끌 웃은 자라크가 전장을 바라보았다.
“붉은도끼 놈들을 살려두지 마라! 빠르게 처리하고 셰리오 시로 향한다!”
포효하듯 외친 자라크가 다시금 전장을 향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