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나지막이 울부짖었던 마기 포식자.
내가 녀석을 꺼내 드는 순간.
스스스스─
길을 막고 있던 안개가 양측으로, 홍해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칼테르 요새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듯이.
저 커다란 암석산 위로 이루어진 요새를 향해서 가라는 듯이.
“이게 어찌 된 것인지······.”
“제이드, 자네가 한 것인가?”
기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확실히, 내가 신묘한 힘을 발휘한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길게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있다고만 말씀드리죠.”
이렇게 얼버무리면 알아서 착각해주겠지.
그리고 솔직히 나도 황당하다고.
“그렇군.”
“역시 왕자님께서 보낸 사람이, 아무런 비수가 없을 리가 없지.”
“그분께서는 전장을 지휘하시면서도 이곳 상황을 꿰뚫고 계신 건가?”
역시나.
좋아, 이제 작전을 시작할 차례였다.
“이예르님은 휘하 병력과 함께 인근에서 기다려주십시오. 저희가 요새의 문을 연다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남작 대리, 이예르에게 말했다.
내가 공표한 작전은, 우리가 요새로 침투해서 성문을 연 뒤, 그 성문으로 병사들이 치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다수의 병력이 성문을 넘을 필요가 없다.
물론 이 작전도 형식일 뿐이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갈 구실을 만들 그럴듯한 포장지라고 해야 할까?
요새 안으로 들어가면 그 누구도 예상 못 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제가 함께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도울 수 있는 건 돕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예르님. 저 위즐이 제이드의 옆에서 돕겠습니다.”
위즐이 이예르를 안심시켰다.
“조지 경, 코셰프 경. 두 분께서는 이예르 남작 대리를 지켜주십시오.”
“알겠네.”
“뒤를 부탁하지.”
우리가 칼테르 요새로 들어가 있는 동안, 이예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몰랐다.
만약에 대비한 호위는 붙여두어야지.
“언제까지 수다 떨 거냐. 빨리 들어가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헤겔은 굳은 얼굴을 한 채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럼 가시죠. 칼테르 요새로.”
스물의 대원들과 위즐. 그리고 헤겔 등 세 명의 기사와 함께 우리는 요새를 향해 진입했다.
* * *
안개가 갈라지며 드러난 산길은 매우 고요했다.
길을 막고 있던 안개는 길을 열어줬을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스스스슷─
좌우로 펼쳐진 뿌연 안개 사이를 걷는 기분은 기묘했다.
마치 순백의 복도를 걷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문제는 그 벽과 천장이 시종일관 꿈틀거리며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이 터지면서, 우리를 향해서 쏟아질 것만 같았다.
잡아 먹힌 것만 같은.
거대한 괴물의 뱃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
저벅. 저벅.
고개를 돌리자, 내 뒤를 따라서 안개 사이를 행군 중인 이들이 보였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은밀하게 침투해야 하기 때문이거니와, 무슨 소리를 잘못 내었다가는 당장이라도 안개가 우리를 덮칠 것만 같은, 합리적이지 못한 공포감 때문이리라.
그래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간간이 밟히는 풀 소리만 적막을 채울 뿐이었다.
이내 저 멀리, 안개의 길 끝으로 칼테르 요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십여 분을 더 걸은 끝에 요새의 성벽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그 옆으로 수직으로 깎아내린 것 같은 성벽이 높게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벽에는 레인저나 경계를 서는 병사가 아무도 없었다.
마치 텅 빈 것처럼.
남작을 납치하여 농성 중인 요새라기에는, 말이 안 되는 광경이었다.
“확실히 이상하군. 경계를 서는 이가 아무도 없다니.”
내 의문에 로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군. 성벽을 타고 올라가면 되겠어.”
“내가 돕지.”
로빈의 말에 검은 갑주를 입은 기사 이아곤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면 저와 로빈, 그리고 이아곤 경이 성벽을 타고 오르죠.”
나는 지미에게 밧줄 세 묶음을 받아 들고는 빠르게 타고 올랐다.
“저 친구는 레인저 출신이라 했고, 나는 동부의 전사라 그렇다 쳐도 자네도 꽤 하는군?”
“하하, 뭐······.”
1회차 때도 엔간히 구르고 굴렀기에 간단한 요령은 이미 익숙했다.
성벽의 틈 사이로 손가락을 넣고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니 올라가는 데 큰 문제야 없었다.
턱.
우리는 성공적으로 성벽 위에 도착했다.
“······.”
숨을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칼테르 요새의 성벽은 밖에서 관측했던 것처럼 텅 비어있었다.
그래도 시간을 두고 성벽 위를 세세히 살폈지만,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이드, 슬슬 시작하지.”
로빈이 성벽 한쪽에 밧줄을 단단하게 묶었고 밧줄을 풀어 아래의 대원들이 올라올 수 있게 해두었다.
그 순간이었다.
피잉!
튕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날아드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팍!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고, 서 있던 자리에 날카로운 볼트 하나가 박혔다.
“제이드! 저기다!”
날아온 방향으로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한 여인이 이쪽을 향해 쇠뇌를 겨누고 있었다.
기사의 복장을 한 검은 머리의 여인은 쇠뇌를 당기고 볼트를 장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뒤로 두 명의 기사가 창과 방패를 들고 나타났다.
나는 마기 포식자를 꺼내 들고는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로빈에게 소리쳤다.
“로빈, 함부로 쏘지 마!”
“음?”
“일단 대화를 시도할 거야!”
일부러 저들에게 들릴 정도로 소리쳤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대화할 생각이 없는 건지, 볼트 한 발이 더 날아들었다.
나는 즉시 마기 포식자를 휘둘러 쳐냈다.
“힐다! 너인가?”
기사 이아곤이 소리쳤다.
그러자 저쪽의 여인이 움찔하며 반응했다.
“정말로 반역을 저지른 것인가?”
이아곤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였겠으나, 지금은 오해가 쌓여 있을 테니까.
그러자 힐다라고 불린 여인이 잠깐 멈칫하더니, 소리쳤다.
“어······ 이아곤 경?”
“그래, 나다. 이아곤.”
“여기는 왜 들어오신 겁니까! 당장 나가세요!”
그러는 사이 데릭과 그룬을 비롯한 대원들이 성벽을 타고 올라왔다.
뒤따라 올라온 기사 헤겔과 데인, 이가람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럴수록 우리와 대치 중이었던 요새의 세 기사의 표정은 점차 구겨져 갔다.
“맙소사! 데인! 헤겔! 당신들마저 여기에 들어오면······!”
“대체 왜 오신 겁니까! 가문은 누가 지키려는 겁니까!”
요새의 기사들은 당혹이 담긴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댔다.
호승심에 불타던 아군 쪽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헤겔이 앞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건 오히려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델토로 남작가의 기사들이 대체 왜 남작님을 감금하고 성문을 닫은 것인가!!”
저쪽에서는 다시금 황당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감금이라니? 저희는······ 젠장!”
“절대 요새로 오지 말라고 연통을 그렇게 보냈는데!”
그 말에 헤겔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동료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이아곤이 앞으로 나서 대답했다.
“연통을 보냈다고?”
“그간 성안의 전서구를 전부 날려 보냈습니다!”
잠깐의 침묵.
이아곤이 다시 입을 열었다.
“힐다. 우리는 지난 두 달간 아무것도 받지 못했네.”
“그럴 리가······.”
“오히려 전서구를 수십 차례 보냈지. 하지만 답장이 없어서 자네들이 소통을 거부했다고 생각했어.”
이아곤의 말에 요새의 세 기사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설마, 안개 때문인가?’
밖에서의 접근이 안 될 도안 안에서의 탈출 역시 불가능했던 듯했다.
“잠깐······ 그렇다면 지금 이 요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밖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요?”
여기사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
“그럴 수가.”
“빌어먹을······.”
헤겔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 기사가 통탄하며 좌절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너희들, 남작가를 배신한 게 아니었나?”
분위기상 서로 오해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양측이 무기를 거두었다.
헤겔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베그렉, 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자세히 말해라.”
힐다는 고개를 숙이고는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통탄이 담겨 있었다.
“저주에요. 지금 요새에는 저주가 역병처럼 퍼져나가고 있어요.”
“저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음?”
힐다라고 불린 여기사가 제 팔을 들어 보였다.
반투명한 마름모 문양의 낙인이 그녀의 팔에 새겨져 있었다.
“당신들은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이 요새에 들어온 이상.”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녀의 말과 동시에 내 시야에 시스템이 떠올랐으니까.
띠링!
[특성 – 영웅이 저주의 일부를 저항했습니다.] [저주 – 광기의 낙인이 몸에 새겨집니다.] [광기의 낙인 (1%)]스으으.
내 왼 손목 아래에 점차 마름모 형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갑자기 손목에 이상한 게?”
나뿐만이 아니었다.
대원들과 기사들에게도 하나둘씩 마름모 모양의 낙인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들어오면 안 됐는데······ 당신들까지······.”
그녀의 서글픈 눈동자가 우리를 훑었다.
* * *
우리는 기사들을 따라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일단 오해부터 풀어야겠군. 우리는 남작님을 감금하지 않았어.”
“애초에 명예로운 기사인 로이암 경께서 그럴 분일 리가 없지 않은가?”
“성에 올라왔을 때 공격한 건, 요새에 아무도 들어오면 안 되기 때문이야. 그런데 당신들일 줄은······.”
칼테르 요새의 응접실.
요새에 남아 있던 기사들과 레인저들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들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충혈된 듯 붉은 눈동자와 까맣게 진 눈그늘.
초췌해 보이는 얼굴과 잠깐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지친 기색까지.
‘기사라기보다는 병자에 가깝군.’
요새의 규모를 보자면 아무리 못해도 백여 명이 넘는 병력이 상주할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안의 사람들은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게 전부입니까? 요새의 규모를 보면 적어도 수십 명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제이드의 말이 맞군. 힐다, 나머지는 전부 어디로 갔지?”
내 말에 헤겔 역시 그 점이 의아한지 좀 전에 쇠뇌를 들고 있던 여기사, 힐다에게 물었다.
까득.
힐다는 입술을 짓이기고는 말했다.
“이게 전부입니다.”
“전부라고?”
“대체 요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냐.”
의아해하는 우리들을 향해 힐다가 입을 열었다.
“헤겔 경. 이 요새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기억하십니까?”
힐다의 물음에 헤겔이 고개를 저었다.
“칼테르 요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지. 우리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마누스 왕국이 건국되기 전부터 존재한 고대의 요새죠.”
칼테르 요새.
그 기원이나 출처가 불분명했기에 유적이나 다름없는 이 요새는, 인근 철광 개발된 이후로 길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발탁, 오랫동안 유지되고 보수해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실을 보수하던 중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헤겔의 되물음에 힐다가 얼굴을 구겼다.
이 자리의 모두가 말이다.
“숨겨진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지하실의 보수작업을 진행하던 중 무너진 바닥으로 숨겨진 석실을 발견한 것이다.
“고대의 시절로 보이는 유적의 발견은 델토로 남작님의 흥미를 끌어냈죠. 고대의 유물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요.”
요새의 지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넓고 커다란 석실.
그 끝에는 분명히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무언가가 있으리라.
인간으로서는 그런 호기심과 욕망을 저버리기 힘들 것이었다.
“델토로 남작님은 호위인 기사들과 신비를 탐구하는 주술사들을 데리고 탐사했습니다.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도록 탐사는 계속되었고······ 석실 가장 깊은 방에서 한 물건을 발견했죠.”
그 안에서 발견한 건 기묘하게 생긴 한 상자였다.
회색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돌 상자.
“그리고 그 뒤로부터 남작님의 상태가 이상해졌어요. 그때는 아무도 몰랐죠. 그게······ 저주의 시작일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