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36)
제 137화
그렇게 속으로 세던 숫자가 300을 넘었을 때.
손을 뻗었다.
바닥에 박혀 있는 장검의 손잡이.
그 차가운 감촉이 뇌리에 전달된다.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왜 전생에서 나를 검의 귀신이라 불렀던 걸까.
안 그래도 누군가에게 지어 줄 수 있는 별명의 수는 수백 가지가 넘는데, 왜 하필 검귀劍鬼일까.
간단하다.
귀신처럼, 움직였으니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정면에 다섯의 기사가 보인다.
마치 불나방.
내가 있는 쪽에 화려한 불꽃이라도 있는 것처럼 나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 눈에 담긴 것은 분명 ‘욕망’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왜 저렇게 죽고 싶어 안달난 건지도 모르겠고.
물론.
관심 없다.
서클은 한 놈이 8서클, 다른 네 놈이 6서클.
그리고 그 뒤쪽으로 수십이 넘는 인기척.
수십의 인기척 뒤로는 또다시 수백의 인기척.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아 둘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전부.
죽을 테니까.
자리를 박차는 것과, 검을 휘두르는 것.
그 두 가지 행동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서걱-
단 한 번의 절삭음.
그리고 떨어지는 다섯의 목.
이어서, 뒤이어 달려오던 수십 명의 기사들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선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 * *
툴칸 제국으로 귀화는 확정됐다.
후작에서 백작으로 바뀌는 거지만 이건 영전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최약소국의 후작이 최강대국의 백작이 된다?
괜히 영전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현재 헤르만 후작가의 전력이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기에 발표만 늦췄을 뿐이다.
내정됐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
그런 상황에서, 아들이 죽었다.
아들이 모험가 길드를 통해 잭 발란티에를 죽이려고 했다는 정보는 입수했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임무를 중개했던 아베이루라는 지부장은 사라졌고, 아들은 실종됐다.
딸려 보낸 세 명의 시종과 함께.
그뿐일까.
50만 골드를 들여 고용한 펜타닐 암살단도 모조리 실종됐다.
왜일까.
뻔하다.
거기는 어센블 영지다.
다른 곳도 아닌 어센블 영지에서, 어센블이라는 성이 지닌 힘은 왕, 그 이상이다.
거기다.
‘롬멜 총장, 전부터 말이 많았었지.’
그냥 많은 수준이 아니라, 귀족들 사이에서는 다 알고 있었다.
총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채로 한 아이를 굉장히 편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 아이의 이름은 잭 발란티에.
기숙사로 1인실로 배정해 주고, 수업에도 참여하지 않게 해 주는 등의 온갖 편애를 해 주던 그 롬멜 총장.
그런데, 이번에 벌어진 일이 어센블 영지에서 벌어졌고 롬멜 총장이 편애하는 잭 발란티에와 엮여 있다.
이건, 너무 뻔하다.
중간에 아베이루라는 지부장 놈이 정보에 장난질을 쳐 놨어도 상관없었다.
헤르만 후작은 판단했다.
디트리히를 죽인 것은 롬멜 총장이라고.
그 확신이 내려졌기에 헤르만 후작은 툴칸 제국으로 귀화를 결심했고, 잭 발란티에를 비롯해 어센블을 지워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발란티에 후작에게 영지전을 신청한 것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툴칸 제국에서 더 힘을 기르고, 더 정치적인 힘을 길러 어센블을 세상에서 지우는 것.
그게 헤르만 후작의 결심이자, 다짐이었다.
그 시작은 발란티에와 그 배후인 맨티스다.
여기서 왜 맨티스 백작가가 끼냐면.
발란티에 후작을 뒤에서 조종하는 게 맨티스 백작이니까.
발란티에 후작령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맨티스 백작.
그에게도 죄가 있다.
없다고 하는 게 이상하다.
아들의 죽음은 어센블 공작가와 발란티에 후작가, 그리고 맨티스 백작가의 책임이다.
헤르만 후작에게 있어서, 아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귀족이었으니까.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후우웅-
바람이 불더니.
쩌어엉-!
기묘한 소리와 함께 주변이 어두워졌다.
너무나도 기이한 현상이었다.
궁금증도 잠시.
“후작님!!”
한 기사가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익숙한 얼굴이다.
2년 전 수습기사로 들어왔고 2년 만에 정식 기사가 된 펠릭스.
재능도 괜찮아서 물심양면으로 키우고 있는 후작가의 ‘인재’다.
그런 그가, 마치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잭…… 잭 발란티에가 왔습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누가 왔다고?”
“잭 발란티에, 발란티에 가문의 막내가 지금,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펠릭스가 식은땀을 훔친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상한 주문을 외우자 하늘이 검은색으로 물들…….”
등등.
횡설수설하는 펠릭스의 이야기를 헤르만 후작은 끝까지 들을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1분 들었으면 충분했다.
중요한 건 하나.
“잭 발란티에가, 지금 이곳에 있다?”
“……예.”
그거면 충분했다.
“생각보다 더 멍청한 녀석이었군. 가서 잡아 오거라.”
“……예?”
“미리 죽여 놓으려고 보냈던 캐터펠이 헛걸음을 했군.”
펠릭스는 그게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엑사일 판테온이라는 마스터 검사도 동행했는데, 시간이 엇갈렸구나. 이거 참, 그 남자에게는 면목이 없겠어.”
엑사일 판테온이 왜 어센블로 가는지.
그 목적에 대해 헤르만 후작은 이렇게 알고 있었다.
‘워원회에 속해있던 롬멜 총장과 마자르 테슬란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엑사일은 이런 말도 했다.
‘잭 발란티에, 그가 거슬리나?’
그렇다고 대답하기 무섭게.
‘그럼, 기다리고 있으시게.’
엑사일 판테온의 태도가 조금은 묘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어차피 믿고 가야 하는 관계였으니까.
엑사일 판테온이 잭 발란티에를 포섭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잭 발란티에의 가치가 헤르만 후작가보다 높다면 헤르만 후작가를 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었지만.
그걸 헤르만 후작은 몰랐다.
그냥, 그는 태평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잭 발란티에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플라이 마법을 썼겠지.
잭 발란티에가 이곳 헤르만 후작령에 와 있다?
며칠 전에 어센블 영지에서 말을 타고 왔나 보지.
그거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헤르만 후작은 그냥,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
“뭘 하고 있는 것이냐? 가서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
“하하, 설마하니, 잭 발란티에가 마스터가 된 마탑주를 제압했다는 그 소문을 믿는 것이냐?”
“…….”
“거기다 그 외 많은 교관들을 죽인 게 전부 잭 발란티에라는 그 말을, 네 녀석은 믿고 있는 것이구나.”
펠릭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 잭 발란티에를 봤다면, 헤르만 후작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른 귀족들이 바보로 보이느냐?”
“……예?”
조금 뜬금없는 말에 펠릭스가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교관들은 대부분 귀족 가문과 연결이 되어 있어. 그런데 그들이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귀족 가문이 일제히 입을 닫고 가만히 있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너도 아카데미에 다녀 봤으니 충분히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니더냐?”
확실히 이상하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지금 5분 남았다니까, 무슨 개소리를 하려는 거지?
펠릭스는 그 말을 그냥 속으로 삼켰다.
밖으로 내뱉기에는 심장이 크지 않았으니까.
“다, 롬멜 어센블 때문이다. 롬멜 어센블이 모든 일을 계획했고 롬멜 어센블이 그 아이의 배후로 있기에 가만히 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아이는 아무것도 없어. 그냥 아이에 불과하지. 그것도 14살짜리 햇병아리.”
“…….”
“그래도 표정이 좋지 않구나.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지금 기사들이 전부 모여서 수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서 전하거라.”
“뭐라고…… 전할까요?”
“영지에 침입한 잭 발란티에를 데려오는 이에게 내, 100만 골드를 포상금으로 내리겠다고.”
펠릭스는 판단했다.
일단, 대비부터 하자고.
그래서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주군.”
사실, 지나치게 겁을 먹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헤르만 후작가.
현재 헤르만 후작가에 있는 기사들의 숫자는 무려 900.
마법사들의 숫자도 무려 200이나 된다.
일반 병사?
내일 모집할 거다.
징집이라고 해야겠지.
원래 징집을 하기 위해서는 국왕의 직접적인 명령이 있어야 하지만 영지전이 벌어질 경우에는 각 영주가 독단적으로 영지민을 징집할 수 있다.
그들에게 준비 기간?
필요 없다.
어차피 평민이고, 그냥 갑옷에 싸구려 칼만 몇 개 쥐여 준 채로 돌격시키면 된다.
어차피 중요한 건 ‘승리’니까.
즉.
영지민을 제외하고 현재 헤르만 후작가에는 약 1100명의 마나 유저가 있다.
거기다 내일 있을 출정식을 위해 몸도 뜨겁게 달궈 놓은 상태.
확실히, 지나치게 겁을 먹었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 * *
헤르만 후작은 생각했다.
모든 일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잭 발란티에가 영지에 와 있다…… 그 사실이 계획상 생각지도 못한 일이긴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큰 계획의 범주는 변하지 않았으니까.
현재 헤르만 후작가에는 은사자 기사단 전원과 그를 보조하는 마법사단이 전부 대기 중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일 오전 발란티에 후작령으로 일제히 출정해야 했으니까.
당연히 그들을 통솔하는 것은 헤르만 후작, 자신이었다.
은사자 기사단의 단장인 캐터펠과 부단장은 정확히 3일 뒤 발란티에 영지에서 합류하게 될 것이다.
모든 건 계획대로였다.
“아들아…… 내, 반드시 복수를 해 주마.”
잠깐 감상에 젖어 있던 것도 잠시.
콰아앙-!!
콰앙-!!
“막아-!!”
“뭐야!! 어디 있어!!”
서걱-!
서걱-!!
건물 밖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의아하다.
그리고.
뭔가 잘못됐다.
밖으로 자리를 옮긴 헤르만 후작은 볼 수 있었다.
허공을 가르는 검은 빛무리.
그리고 그 빛무리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사방에 뿌려지는 붉은 핏물.
상황도 잊고, 순간이지만 감탄했다.
아름, 답구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약 5초가 흐른 뒤, 헤르만 후작은 볼 수 있었다.
쓰러져 있는 수백 명의 기사들을.
“어…… 어?”
자세히 살필 필요도 없었다.
전부 헤르만 후작가의 기사들이었으니까.
“후작님!! 피하십시오!!”
들려오는 고함에 고개를 돌렸다.
한 기사가 달려오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아까 전, 잭 발란티에가 왔다며 횡설수설하던 그 기사였다.
이름은 펠릭스.
그가 재차 외쳤다.
“후작님!! 그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피하셔야 합니……!”
서걱-!
말을 끝마치지도 못하고 목이 잘린다.
후작의 눈은, 펠릭스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 뒤쪽으로.
긴 장검을 들고 있는 한 남자.
그가 말했다.
“네가 헤르만 후작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