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37)
제 138화
* * *
헤르만 후작.
브랜틀리 헤르만은 이 모든 상황을 잊고 멍했다.
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의 손에 자기 키만 한 장검이 들려 있었으며.
그 장검에 묻어 있는 수많은 핏물들은 붉다 못해 끈적했고.
그 핏물들의 주인이 저 먼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 숫자.
족히 수백은 넘어간다.
이 후작가의 본관.
툴칸 제국의 건축 양식을 따라 새롭게 건축했던 일종의 장원 같은 거대한 본관이 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자가, 코앞에 있는 이 상황.
멍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현실감각이 없나 본데, 내가 누군지는 아냐?”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외향이 참으로 묘하다.
분위기와 상황 때문이었는지 아까는 자세히 못 봤지만 목소리가 참 여리다.
외모도, 상당히 여렸다.
그냥.
어려 보인다.
나이는 많아 봐야 15살.
그 또래의 아이들보다 조금 큰 키.
그런 걸 넘어서, 외모가 뭔가 익숙하다.
“이거 웃기는 새끼네. 네가 죽이려던 놈 얼굴도 몰라? 모르고 죽이려고 했어?”
집 나간 정신이 돌아오고.
멍한 눈이 상황을 파악한다.
브랜틀리 헤르만은 깨달았다.
“잭…… 발란티에?”
그러자 피로 물든 장검을 들고 있는 남자가 인상을 찌푸린다.
“발란티에…… 그 이름 참 지겹다. 버리기로 작정한 이름인데 자꾸 부르니까 정이라도 생기려고 하잖아.”
느긋하게 장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핏물을 벗겨 내는 그 모습에 브랜틀리는 소름이 돋았다.
말도 안 돼.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학살.
그건 롬멜 총장이 저질렀던 일이라고 믿었다.
정보 면에서 특출 난 알라베스 모험가 길드.
그쪽에서 준 정보와 상황을 종합했고, 브랜틀리 나름의 결론을 내렸는데.
그게, 아니었다.
잭 발란티에.
놈은, 진짜였다.
7서클 검사이자, 아카데미에 다닐 적 수석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우수 학생.
브랜틀리 헤르만은 이 순간 검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또한, 마나를 끌어 올려야 한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현실과의 괴리감.
아는 이는 아는 만큼 보이고 모르는 이는 모르는 만큼 보인다.
브랜틀리는 안다.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전의 상실? 상황 파악이 느린 거치고는 감이 꽤 좋네. 그런데.”
실소를 터트린 잭 발란티에가.
그대로 장검을 휘둘렀다.
서걱-!
하늘로 팔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
어깻죽지부터 깔끔하게 잘려 나간 팔.
그건, 브랜틀리의 오른팔이었다.
“이미 늦었어.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해.”
뒤늦게.
“끄아악-!”
브랜틀리가 비명을 질렀지만, 잭은 무시했다.
정확히.
무시했다기보다는 그냥,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자식 농사 잘못 지은 거? 그럴 수도 있지.”
잭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선민의식에 가득 찬 거? 그것도 상관없어. 애들 삥 뜯고, 몽둥이로 두드려 패도 상관없어. 그럴 수 있지. 어린애니까. 똑같이 패고 똑같이 교육해 주면 변할 수 있어. 어린애니까.”
장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낸 잭이,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잘려 나간 팔을 부여잡은 채 주저앉아 있는 브랜틀리.
그를 내려다보는 잭의 시선.
차갑고, 뜨거웠다.
또한 냉정했고 싸늘했다.
“그런데, 암살단을 고용해서 나를 죽이려 했던 건 도저히 넘어가 줄 수 없는 부분이었거든. 그래서 죽은 거야.”
“뭐…… 뭐?”
“네 아들, 디 뭐시기 하는 그 망나니 새끼, 그래서 죽은 거라고.”
“……이…… 개새끼!!”
그제야,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였던 브랜틀리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을 짓을 했으면 죽어야지. 한번 살려 줬고, 기회를 줬으면 알아서 기었어야지. 너도 마찬가지야.”
“……뭐라……?”
“난 나를 건드린 새끼들을 단 한 놈도 살려 둔 역사가 없어. 솔직히 말할까. 나는 이런 일 같은 건 상상도 못 했어. 왠지 알아?”
“…….”
“‘그때’ 살았던 놈들은 알았거든. 나를 건드리면, 그리고 나랑 엮이면 어떻게 되는지. 나를 죽이려고 암살자를 보내면 그 암살자가 어떻게 되고, 청부를 넣은 놈이 어떻게 되는지. 나를 죽이려고 한 단체가 나서면 하루 안에 그 단체에 속한 모든 이들이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걸, 놈들은 알았거든. 차이는 하나밖에 없어. ‘그때’의 놈들과 ‘지금’의 놈들이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 그냥, 그 차이 하나거든.”
잭은 진심이었다.
전생에서 했던 것처럼 이번 생에서도 한다?
그런 대학살을 벌이고 계속해서 적을 만드는 것.
솔직히 피곤한 일이다.
피곤한 일이어서 잭은 가능하면 자제했다.
반드시 필요한 학살과 불필요한 학살.
그 두 개를 잭은 확실히 구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아베이루를 만났을 때.
왜 아베이루를 협박했을까.
대륙전장의 장주를 만났을 때.
왜 장주 앞에서 본래 힘을 드러낸 걸까.
가능하면.
정말 가능하면 학살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면 적어도 사리판단이 되고 뭐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는 있으니까.
그것들은 전부 진실이었고 확실한 팩트였다.
“그 망나니 새끼를 죽이고, 헤르만 후작가로 곧바로 찾아가지 않은 이유. 별거 없어. 그냥 알아서 기었으면 했거든.”
잭의 몸에서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드넓은 대저택을 완전히 감싼 저 검은 기운과 흡사한 기운.
브랜틀리는 그걸 느꼈다.
이놈은, 정말 괴물이구나.
“그런데 그러지를 않네. 너 같은 새끼들이 꼭 그러더라고, 한번 겪고, 한번 데어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는 거. 그런데 아마 넌 이제 기회가 없을 거야.”
그때, 잭의 장검이 한 번 더 휘둘러졌다.
푸욱-!
브랜틀리의 왼쪽 어깨.
심장 윗부분과 쇄골 아래쪽 부분.
그 경계에 깔끔하게 잭의 장검이 박힌다.
“넌 이 자리에서 뒤질 거고, 헤르만이라는 이름은 오늘부로 대륙에서 사라질 거거든. 수도 없이 많은 너 같은 놈들이 너를 반면교사 삼을 건데. 그런 걸 본보기라고 하잖아? 그거라도 위안 삼아. 쓰레기 같은 인생, 그나마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이라도 한 거니까.”
분노한 브랜틀리 헤르만이, 뒤늦게나마 마나를 끌어 올린다.
7개의 서클.
비록 팔 하나가 잘려 나갔다고는 해도, 심장은 여전하다.
장검이 꽂혀 있다 해도, 심장은 비껴 갔다.
브랜틀리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승기를 잡은 것처럼 방심하고 있는 잭 발란티에.
비록 오른팔이 날아갔어도 왼팔은 살아 있다.
아마 잭 발란티에는 모를 거다.
브랜틀리 헤르만이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마나를 끌어 올리고, 왼팔을 휘두르려던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잭이 검을 비틀었다.
서걱-!!
“……어?”
브랜틀리의 눈에 아까처럼 어깻죽지부터 잘려 나간 팔이 하늘로 솟구치는 게 보인다.
마치 데자뷔 같았다.
“5분 준다고 했잖아.”
브랜틀리 헤르만의 양팔을 자른 잭이, 그대로 장검을 바닥에 꽂았다.
“그 5분 동안 남은 가족이랑 해후라도 하지 그랬어.”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브랜틀리는 이 순간에도 그게 궁금했다.
검 손잡이를 놓고, 오른팔을 위로 쭉 들어 올린 잭.
그리고, 그의 손에서 기묘한 기운이 또다시 일렁인다.
그와 동시에, 잭이 말했다.
“[Animated Dead]”
파아아앗-!!
잭의 손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검은 연기에 헤르만은 눈을 감고 말았다.
그 압도적인 기운.
근원조차 불투명한 기이한 그 기운이 감히 바라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눈을 감고, 5초가 지났을까.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살아 있는 게 의아했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사라졌다.
눈앞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철퍽-!
피 웅덩이에서 잘려 나간 팔 하나가 꿈틀거린다.
이어서.
흐어어-
몸이 대각선으로 잘려 나가 있는 한 시체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솟아오르고.
철퍽-!
몸이 상하체 반으로 갈라진 시체가, 피 웅덩이를 양손으로 짚고 일어났다.
철퍽-!
철퍽-!!
흐어어-!
“말도…… 안 돼.”
브랜틀리 헤르만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코앞에 있는 잭이 듣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뭐…… 뭐야!! 뭐야, 이게!!”
“시…… 시체가, 살아났어?”
아직 살아 있는 헤르만 후작가의 기사단들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겁에 질린 듯 뒤로 물러선다.
죽어 있던 수백의 시체.
그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처럼 눈을 뜨고.
걷고.
숨을 쉬는데.
그 누가 겁을 먹지 않을까.
그 혼란으로 점철된 전장에서, 잭이 천천히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이렇게 가르치더라고.”
검게 물든 손을 천천히 내리는 잭.
그의 입에 살아남은 이들 모두의 시선이 옮겨진다.
“흑마법은 배척해야 한다…… 흑마법을 쓰는 이들은 불결하고 상종할 가치가 없다…… 참 웃기는 소리야. 제대로 된 흑마법을 겪어 보지도 못한 것들이 그런 평가를 내린다는 게, 참 웃기잖아.”
말투는 웃는 것처럼 들렸지만, 잭은 웃지 않았다.
그저 싸늘한 표정을 지을 뿐.
“혼자서 일인군단이 될 수 있고, 혼자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괴물. 그게 흑마법사로서 정점에 이른 ‘네크로맨서’가 할 수 있는 일이거든. 그러니까 영광으로 알아.”
잭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다.
“네크로맨서가 펼치는 진짜 흑마법을 겪을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앞서 말했듯 잭은 웃지 않았다.
하지만, 잭을 바라보는 브랜틀리는 잭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환각일까.
이어서.
잭이 말했다.
“[전부 죽여. 하나도 빠짐없이.]”
말의 힘.
말로 하는 명령.
언어의 약속.
잭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체들이 주변 ‘생명체’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마나를 사용하면서.
“너는 건드리면 안 될 놈을 건드린 거야.”
브랜틀리 헤르만은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멍청했고, 서둘렀다.
왜 현명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아카데미를 정리한 인간이 롬멜 총장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걸까.
툴칸 제국의 정보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수도 없이 겪었다 해도, 의심할 건 의심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고, 지금 결과가 눈앞에 있다.
브랜틀리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까, 자신에게 잭 발란티에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며 다급한 표정으로 왔던 기사.
펠릭스가 한 손으로 잘려 나간 자신의 머리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검을 들고 걸어온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하늘로 올라가고.
잘린 머리가 기괴한 표정으로 웃고.
이어서 그 검이 브랜틀리의 머리를 내려찍는 그 순간까지.
브랜틀리는 후회했다.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