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71)
제 372화
꿈틀하고, 블랙맨의 오른쪽 어깨 근육도 움직였다.
쇄골도 움직였고.
허리도 움직였다.
다리가 땅을 파고든다. 몸이 앞으로 뻗어나간다.
전력을 다한 힘.
이어서 쌔애액 하는 공기가 찢어지는 그 첫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섬전 같은.
허공을 찢어 버리는 일격필살.
하지만.
터억-!
파아아아앙-!!
그 공격은 잭의 손에 너무나도 쉽게 잡혔다.
잭이 말한다.
“아래를 노리라니까. 너보다 신체가 작긴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였어. 왜 자꾸 위쪽을 노리냐. 번번이 막힌다는 건 수가 읽힌다는 뜻이잖아.”
“…….”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첫째, 상대의 허를 찔러야지. 그 허에는 뭐가 있을까. 균형, 그거 말고 더 있어?”
새삼스럽지만 마스터 간의 싸움은 수 싸움이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법한 수를 노리고, 그게 적중하면 이기는 한 끗 차이의 싸움.
비교적 신체가 작은 상대에게 그 누가 균형을 잃게 만드는 수를 쓸까.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말 그대로의 허虛.
“그러니 아래를 노려야지. 균형을 잃게 만들었어야지. 아까 발로 밀어 차는 게 아니라 그걸 아래 방향으로 채찍처럼 휘둘렀어야지.”
오른손으로 블랙맨의 손을 꽉, 쥐고 있던 잭이 왼손으로 블랙맨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
“둘, 이걸 너무 단순하게 휘두르는 거 아니냐? 아무리 주먹이 주무기가 아니라 해도 좀 심하잖아.”
블랙맨의 이마가 꿈틀한다.
이 인간.
확실히 소문대로 보통 인간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 우리 애를 시원하게 패 놨던데.”
“…….”
“그러니 딱 세 대만 맞자.”
블랙맨의 입이 열리려던 그때.
잭의 발에 마나가 담긴다.
동시에.
후웅-!
콰직-!!
“크헉-!”
블랙맨의 등이 크게 들썩이며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한 번 더, 잭의 발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목표는 블랙맨의 복부.
콰아아앙-!!
한 번 더 블랙맨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쿨럭-!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피가 입에서 터져 나온다.
마지막 한 방.
잭은 오른손을 들어 중지를 말아 쥐었다. 그리고 그걸로 블랙맨의 이마를.
따악-!
꿀밤을 먹이고 말았다.
순간 난입하려고 했던 건지 자세를 잡고 있던 하피들과 뒤에서 멀찍이 물러서 구경하고 있는 엘프와 메나마, 그리고 베네딕트와 켄까지.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잭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블랙맨도 멍하니 고개를 들어 잭을 바라본다.
방금 뭐야?
그런 표정이었지만 잭이 신경 쓸 리 만무했다.
“이렇게 보니 신기할 정도네. 이 악물고 고치던 그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 보니.”
“……뭐?”
“투기를 끌어 올릴 때 머리 쪽이 아프지? 그거 뇌문으로 가는 혈맥 두 개가 닫혀 있어서 그런 거야. 하나는 대뇌 쪽에 있는 거랑 하나는 소뇌 쪽에 있는 거, 위치는 몰랐지? 그거 얼른 고쳐라. 그거 못 고치면 너, 절대 적색 마스터는 못 될걸.”
블랙맨은 영문을 모르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어이가 없기도 했다.
이 인간, 정말 뭐지?
하지만 잭의 입가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모든 복수를 끝내고 죽었을 때 죽은 잭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던 유일한 남자.
도관이 신체 파편을 수집하고 있을 때 잭의 머리를 보호하며 그들과 싸웠던 남자.
전생의 잭에게 남아있던 유일한 단 한명의 친구.
잭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보름달이 떠있던 날 술 한잔을 기울였던 그때가.
‘자네를 조금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왜 그런 소리를 하냐.’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때의 잭은 웃었다.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네가 나를 지금보다 더 일찍 만난다면 넌 어떻게 행동했을까.’
뭘 그런걸 묻냐는 듯 블랙맨이 웃음을 터트렸다. 답은 정말 간단했다.
‘일단 싸웠겠지.’
‘그리고?’
‘개처럼 뚜드려 맞았겠지.’
‘그리고?’
블랙맨이 고개를 돌린다. 잭을 바라본다. 술잔을 내밀었다. 그리고.
‘친구가 되었겠지.’
현실의 잭이 눈을 떴다.
보름달 아래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그때처럼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잭이 말했다.
“만나서 반갑다. 톤 그륜힐.”
잭의 입가에 새겨진 웃음은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전우를 만났을 때 지을 법한 그런 웃음이었다.
“정말 보고 싶었다.”
chapter 6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멍하니 있는 이들부터, 당황한 표정을 짓는 이들까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표정이었는데 그중 한 명.
황갈색 피부에 꽤 어려 보이는 한 오크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봤는데.
그런 생각도 잠시.
“이름이 카이저, 였나?”
움찔하며, 꼬마 오크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피식 웃고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야, 가까이서 보니까 몰라보겠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카이저.
내가 이스마엘의 노예 시장에서 구했던 그 꼬마 오크.
그때는 분명 키가 대충 내 허리? 그 정도밖에 안 왔는데 고작 몇 달 지난 지금 녀석의 키는 내 어깨 정도로 큰 상태였다.
이건 성장기라고 쳐도 좀 심하잖아.
“확실히 오크라 그런가, 얼추 30cm는 더 큰 거 같은데, 무서울 정도야.”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약간의 두려움과 경외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결국 작게 눈물을 흘린다.
왜 흘리는지는 모르겠다.
샬롯이나 셀, 그리고 타노스의 경우처럼 유대가 쌓인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도 잠시, 녀석이 말했다.
“……전에 말씀 못 드린 게 있었어요.”
“뭔데?”
“아저씨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삶을 포기한 오크에 불과했어요.”
아저씨라니, 내가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더 잘생긴 건 아는데 아저씨는 아니잖아.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좀 들어야 할 것 같았거든.
내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다.
그렇게 말없이 녀석을 바라보았다.
“아저씨를 만나고, 꿈도 꾸지 못했던 세상을 직접 보고, 좋은 스승님도 얻었어요. 그때 노예 시장에서 말씀드리지 못했던 거, 말씀드리고 싶어요.”
“말해 봐.”
카이저가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존중을 담은 인사.
녀석의 턱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이제는 수직으로 바닥에 떨어진다.
“정말 고마워요.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잠시 녀석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스승님을 만났던 그 처음의 순간, 그게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고 샬롯이나 셀, 그리고 타노스가 나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이 녀석들에게 최고의 순간이었듯 눈앞의 카이저에게도 나를 만난 그 순간은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을 거다.
그 이후 유대감을 쌓았건 쌓지 않았건 그런 것은 무의미했다.
이건,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된 나와, 누군가를 의미 있는 존재로 여기는 누군가와의 일.
자리에서 가볍게 쪼그려 앉으며 녀석의 머리에 오른손을 턱, 올렸다.
천천히 쓰다듬어 주자, 녀석이 고개를 든다.
녀석의 눈에 비친 내 얼굴.
내 웃음이 녀석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오크는 세 번 운다고 했잖아.”
어떻게 비칠지는 의미 없었다.
왜냐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거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면 의미 있는 존재로서 오롯이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렇게, 살았다.
“앞으로 자주 보자. 꼬맹아.”
녀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꼬맹아, 너 괜찮겠냐.
이쪽을 바라보는 오크들 시선이 곱지가 않은데.
* * *
밀로스 왕국의 재상이자, 밀로스 아카데미의 정보학부 학부장.
그리고, 무명의 관리자.
그게 현재 아베이루의 직함이었다.
잭과 발렌타인이 마수의 숲으로 떠난 지 3시간.
아베이루는 정보학부 학부장실에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잭이 휴가를 주긴 했지만, 쉴 수가 없었다.
미지에 싸인 동대륙, 그리고 그곳에 현재의 어린 잭은 이길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솔직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베이루의 눈에 비친 잭의 모습은 절대자, 그 자체였으니까.
겁을 주려고 한 말인지 아니면 경각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한 말인지, 확실하게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이거만큼은 확실했다.
잭에게 비견될 만한 ‘적’은, 분명 존재한다는 거.
이거 하나면 모든 게 설명된다. 그러니 어떻게 쉴 수가 있겠어.
아베이루는 집중했다.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
하지만 머지않아 학부장실의 문이 쾅 하고 열리며 불청객이 들어섰다.
아베이루의 집중력이 깨진 것도 그때였다.
천천히 고개를 든 아베이루는 볼 수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남자를.
그가 말했다.
“왕국의 국호를 바꾸고 왕국에 ‘철도’를 깐다던데. 이 소문이 사실입니까?”
아베이루는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다.
요리스 레오폴드.
몇 달 전에 잭은 테슬란 왕국을 정리했었다.
그리고 귀족들을 한자리에 모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중 툴칸 제국에 협력하지 않았고 나름 중립 진영에서 마자르 테슬란과 위원회를 견제했던 귀족들.
그들이 살아남게 되었는데, 요리스 레오폴드 후작은 그중 한 명이었다.
몇 개의 자작 영지와 남작 영지, 그리고 두 개의 백작 영지를 대신 관리하고 있는 남자였으며, 약 십여 명이 넘는 이들의 중심축이 된 레오폴드 후작이, 왜 여기로 왔을까.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후작은 지금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좋아요. 철도를 깐다고 쳐 봅시다. 용병들로 그 인력을 보충하겠다고요? 그리고, 각 영지를 경유해야 할 텐데 그 부지는 어떻게 선정하고요? 그리고 돈은 어디 있습니까? 강철이 최소 수백 톤 이상 필요하다는데 이건 또 어디서 구하고요?”
생각보다 많은 걸 주워들은 모양이다.
용병들이 생각보다 입이 싸네.
그보다.
“못 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요?”
“……이런 사안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진행시킨다는 것이 저희 ‘귀족들’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아베이루가 그대로 손으로 탁자를 툭, 쳤다.
“갑작스럽다…… ‘저희 귀족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표로 오신 거 같은데, 좋아요. 그럼 제가 여쭤보겠습니다. 레오폴드 후작님.”
“예. 말씀하시죠.”
“저나 주군이 어떤 일을 하거나 할 때, 후작님에게 일일이 보고를 하고 진행해야 합니까?”
“……하지만 이건 왕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굉장히 큰 사업인데 이걸 영주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그러니까.”
그제야 후작은 볼 수 있었다.
아베이루의 표정은 싸늘했고 차가웠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표정 내부에 담긴 은은한 분노.
“왕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굉장히 큰 사업이라면 그걸 진행할 때마다 후작님의 의사를 일일이 물어보고, 동시에 다른 귀족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 모두를 납득시켜 가면서 일을 진행해야 하는 거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겁니다, 저는.”
레오폴드 후작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이 남자가 원래 이런 남자였나?
되게 조용하고 잭의 곁을 지키는, 일종의 통역관과도 같은 그런 남자처럼 느꼈는데 아니었다.
이건 뱀이었다.
맹독을 품고 있는 뱀.
레오폴드는 질 수 없다는 듯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요구 사항은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적어도 귀족들에게 언질 정도는 해 주셨어야죠. 보아하니 롬멜 총장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고, 시어런 후작가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국호가 바뀌고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그런 중요한 사안을 이렇게 갑작스…….”
“하아…….”
아베이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진심 섞은 한숨에 후작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