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37)
제 438화
잠시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스승님의 눈은 떨리고 있었다.
“저와 스승님이 함께 만든 세상입니다. 각자 역할이 있었을 뿐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저는 움직이는 게 편하고 스승님은 한곳에서 관조하며 지키는 게 어울린다는 것을.”
[…….]“무례를 저지른 것은 죄송합니다. 의견을 묻지 않았던 것도 죄송합니다. 하지만 알아주십시오. 제가 어떤 마음으로 스승님에게 말씀을 드리지 못한 건지. 그건 율리우스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제 마음은 진짜니까.”
회의장에서 말했던 대로 나는 대가리만 칠거다.
곧 벌어질 거대한 전쟁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그건 ‘우리의’ 싸움이다.
벌어지지 않는다면 최고겠지만 그럴 확률은 아무리 봐도 제로에 수렴한다.
솔직히 말하면 스승님에게 의견을 묻지 않았던 것은 정말 말할 용기가 없어서 그랬다.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할 수 있을까.
스승님의 수명을 늘릴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인형으로 변해있는 스승님은 그 자체가 변수 덩어리라고, 나와 함께 다니면 내 목숨이 위험해지기 전에 스승님의 목숨이 먼저 위험해질 거라고, 그렇게 되면 나와 스승님이 만들었던 세상도 사라지고 모든 것을 잃는다고, 그걸 어떻게 말해. 정말 그걸 어떻게 말하냐고.
지금까지 약한 소리 한번 안 해왔는데 여기서 약한 소리를 하면 얼마나 멍청하고 한심해 보이겠어.
책임자는, 밑에서 믿고 따라오는 이가 있는 책임자는 극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져야한다. 나는 여유를 가졌을 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스승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상처를 줘버리고 말았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은 채 물었다.
“아무 말씀 안 하실 겁니까? 입도 맞췄는데.”
부드럽게 웃었지만 스승님은 말없이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뒤로 한걸음 물러선 뒤 고개를 숙였다. 아주 깊게 숙였다.
아무래도 우리 스승님은 아직 준비가 덜 됐나 보다.
내가 너무 일찍 감정을 드러낸 걸까.
스승님이 인형으로 변하는 그 리스크를 나는 아직 풀지 못한다. 인형인 상태에서 보름달이 뜨지 않은 날에도 스승님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대가는 스승님의 수명이다. 가능하면 그 힘을 사용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리스크를 감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회귀를 한 것은 나다. 모든 매듭은 내가 풀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거기서 스승님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것, 그게 내 실수였다.
엎질러진 물을 쓸어 담는 것과는 다르다. 이미 물에 젖어 버렸다. 말릴 기회는 지금이었는데 말릴 생각이 없으신 것 같다. 그럼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다녀오겠습니다. 스승님.”
그대로 몸을 돌려 걸었다. 회의실을 나서고 밖으로 완전히 나갔지만 스승님은 나를 따라 나오지 않으셨다. 목소리라도 기대했지만 그것도 없었다.
조금…… 씁쓸하다.
어쩌면 매우 많이.
* * *
밖으로 나온 나는 볼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아베이루와 우리 꼬맹이들을.
“이야기는 잘 끝내셨습니까.”
말없이 턱을 긁적였다. 정말 할 말이 없었거든.
그러자 아베이루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리고 주변 분위기도 어색해졌다.
슬쩍 아베이루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를 달라는 그 제스처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 안고 있던 것을 내게 건넸다.
긴 보자기로 감싸여 있는 길쭉한 어떤 것이었는데, 모습만 보면 알잖아.
보자기를 풀어 헤치자 긴 장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검.
“그래도 용케 포장했네. 만질 수 있는 애들이 거의 없을 텐데.”
익숙한 듯 허리춤에 채우자 다시 바닥에 질질 끌리는 형태가 되었다.
그나저나.
“표정이 왜 그래, 누가 보면 내가 죽으러 가는 줄 알겠어.”
아베이루한테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왜냐면 아베이루의 표정에서는 단 한 점의 걱정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건 우리 애들이다. 전부 걱정이 한가득 묻어 나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거든.
“니들 눈에는 내가 어디 가서 비명횡사할 놈으로 보이냐?”
모두가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냐. 기분 더럽게.”
샬롯과 셀, 그리고 타노스. 그리고 아베이루가 순간 흠칫했다. 아마 처음일 거다. 내가 이렇게 매몰차게 말한 게.
얘들이 어린 건 세상 모두가 안다. 모르는 놈이 없다. 하지만.
“너희를 따르는 애들이 있잖아. 있으면 책임감 있게 행동해. 철없는 애새끼처럼 굴지 말고.”
셀, 샬롯, 타노스. 이 세 명이 충격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얘네는 데리고 가야 할 이들이 있다.
그런데 여전히 애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면 그건 문제 있는 거다.
“들어가라. 아베이루, 넌 따라오고.”
* * *
“너무 매몰차게 말씀하신 거 아닌지요.”
아카데미 정보학부 건물 옥상에서 아베이루가 처음 건넨 말이었다.
매몰차다,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 그런데.
“나 말고 누가 걔네한테 그런 말 해 주겠냐.”
“…….”
“왜? 네가 해 주게?”
녀석이 어색하게 웃는다.
“타노스 정도라면 할 수 있겠지만 다른 두 녀석은…… 못하겠습니다.”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타노스는 뭐 나중에 교관으로도 올 거고 그러겠지만 다른 두 녀석은 아니니까.
그렇게 잠시 침묵이 자리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고 아베이루는 나를 기다리는 그런 상황.
난간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말했다.
“힘을 한계 이상까지 끌어다 쓰고 쓰러지면 강제로 꿈을 꾸게 되더라.”
아베이루는 조용히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사용하는 힘은 영혼의 힘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많이 사용할수록 영혼은 상처를 입는다. 이건 존재 자체로서의 힘. 그 존재가 쌓아올린 격.
그걸 회복하는 과정에서 전생의 기억이 흘러들어오는 것, 나는 그걸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까 회의장에서 기억을 보여 준 건 흑마법을 섞은 거지만 결정적으로 그 기억들 자체는 그런 식으로 얻었다. 여기서 문제는.
“최근부터 느낀 건데, 멈췄더라고.”
“예?”
“정확히 아서 군나르를 죽이고 나서 쓰러졌을 때까지는 전생의 기억이 흘러들어 왔어. 그런데 그 이후 마수의 숲이랑 얼마 전에 있었던 툴칸 제국의 일까지, 그렇게 두 번을 쓰러졌는데 전생의 기억이 들어오지 않더라.”
“아…….”
“그래서 한번 몸을 관조해 봤어.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애초에 이 전생의 기억을 보게 되는 그 상황이 영혼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가적인 일이 맞는 걸까.”
스승님한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긴데, 이걸 아베이루한테 하게 되네.
“결론만 말하면 이상이 없더라. 문제가 아예 없었어. 위화감도 없었고.”
아베이루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그런 표정이었는데 머지않아 녀석의 눈이 크게 떠진다.
알아챘나 보다.
“자연스럽게 벌어졌던 일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게 되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 말씀이시면, 지금 저랑 주군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인데 하늘이 참 맑다.
아베이루가 말했다.
“누군가의 의도였군요.”
웃고 말았다. 그래, 의도.
“너는 잘 모르겠지만 혼기의 사용법은 무궁무진해. 드래곤 로드 중에 예언자 흉내를 내던 놈이 하나 있었어. 그놈이 미래를 볼 때 이런 형식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었거든. 그런데 아니더라.”
말 그대로 찢어진 영혼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예언자 흉내를 내던 드래곤도 이런 식으로 미래를 보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건 그딴 게 아니다.
혼기의 사용법이 무궁무진하다지만 혼기를 깨우친 방향.
그 방향이 사용자의 성질을 결정한다.
아서 군나르의 경우에는 재생再生이었고, 이스칸다르의 경우에는 분석分析이었다.
내가 쓰는 혼기의 성질은 살기殺氣다. 철저하게 상대를 죽이기 위한 방향.
그게 표현되었고 아마 앞으로도 내가 사용하는 혼기의 끝은 상대의 죽음일 거다.
그래서 미래를 예지한다는 그 드래곤 로드의 혼기를 나는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내 성질과는 전혀 다르니까.
영혼이 회복되면서 전생의 기억이 흘러들어오는 것, 이 가설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가설이었다. 그거 말고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다른 게 있었다. 최선의 가설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게 정답은 아니었다.
누군가 심은 거다. 과거의 기억을. 그것도 의도적으로.
“내가 정신을 잃으면 깨어나는 그런 장치가 내 몸에 심어져 있던 거지. 누군지 대충 짐작은 가.”
“누구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뻔한 거잖아.
“내가 회귀를 한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어.”
“…….”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거든. 전생에서 혼기를 쓰는 놈들이 되게 많았는데 그놈들이 죽어 나가면서 놈들이 품고 있던 반쪽짜리 혼기가 세상에 퍼졌고 그게 뭉치고 뭉쳐서 터져 버렸다…… 그 반사작용으로 시간이 돌려졌다…… 일리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요점만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이거다.
“이 세상의 시간을 전부 돌려 버린 ‘누군가’가, 나와 이스칸다르에게 단서를 남긴 거야. 시간이 돌려졌다, 너는 회귀자다…… 그런 거.”
“신, 일까요?”
아베이루의 목소리는 의외로 떨리지 않고 있었다.
“글쎄,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보니까 있을 법도 하네.”
팔짱을 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재미있는 상황이다.
모르는 이들이라면 그냥 모르는 채로 살아도 상관없는 사실이지만 나는 이걸 알게 되었잖아.
지금 이 모든 게 흐름이라는 걸 나는 알아챘잖아.
“누구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데, 나를 회귀시킨 놈은 원하고 있어. 나와 이스칸다르가 동대륙으로 가기를.”
“꼭, 가셔야 합니까?”
“응?”
“아무리 필연이어도 저는 주군을 믿습니다. 주군은 필연도 우연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분이시지요. 제게 있어서 살아 있는 신은 주군 말고는 없습니다.”
얘가 혓바닥에 기름칠을 했나. 왜 이렇게 아부를 잘해.
“솔직히 궁금하긴 해.”
“그렇습니까?”
“어떻게 시간을 돌린 걸까. 대체 동대륙에 뭐가 있길래 흐름이 이렇게 만들어진 걸까. 왜 가야 하냐고 물었지.”
“예.”
“이건 단서니까.”
“……단서 말씀이십니까?”
세상에 우연 따위는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뿐이다. 나는 지금 느꼈다. 이건 무조건적인 필연이라고.
이스칸다르는 분명 강했다. 단순히 가지고 있는 힘만으로 줄을 세우자면 이 대륙에서 정확히 세 번째 자리에 위치해 있을 거다.
사실 말이 세 번째지 이스칸다르도 마음만 먹으면 툴칸 제국 하나 정도는 혼자서 지워 버릴 수 있다.
나와 스승님, 그리고 이스칸다르, 이렇게 셋은 언터쳐블 같은 존재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놈은 자기 혼자 살기 위해 국가 하나를 버렸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게 과연 버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