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54)
제 455화
무인이 말했다.
“두 눈을 뽑고 혀를 뽑는 것에서 멈춰 주마……라고 했습니다.”
“그게 끝인가?”
“……아닙니다.”
화천대사는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 들어 보고 싶었다.
무인이 마저 말한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사지를 자르고 들개들 먹이로 줄 것이며 목을 잘라 효수할 것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화천대사가 웃는다. 폭소를 터트렸다.
“태극검제가 사람 하나는 잘 봤어. 미친놈이라고 하더니 제대로 미친 놈이었군.”
생각해 보니 직접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서쪽의 황제라…… 서쪽의 황제…….”
아직까지 화천대사는 여유로웠다.
아직까지는.
* * *
솔직히 말하면 화천대사니 정천맹이니, 이런 건 관심도 없었다. 사천맹이라는 단체가 정천맹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느니, 사천맹의 실질적인 수장이 암왕 주체니…… 이딴 거, 정말 관심 없었다.
내 관심은 오직 하나.
천마신교였다.
흑해에서 내가 얻은 단서는 지금 봐도 꽤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고 그 내용의 중심에 서 있는 게 바로 라그나로크와 아수라다.
그런데 라그나로크라는 이름을 들어 본 이들이 없다고 한다. 태극검제도 몰랐고 한천빙제도 몰랐다. 이 무림이라는 곳에서 나름 군림이라는 걸 하는 그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 라그나로크다.
하지만, 아수라는 아니었다.
천마신교가 모시는 신의 이름이 아수라라고 한다.
그래서 내 관심은 천마신교에 쏠려 있었다. 또한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마가 현 세상의 천하제일인이라잖아.
관심을 어떻게 안 가질 수가 있었어.
그게 전부였는데 도저히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아마 염존 화천대사는 모를 거다. 오늘 놈의 미래가 정해졌다는 것을.
고개를 들었다.
적의 어린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수백의 남녀가 보인다. 경지는 그렇게 높지가 않았다.
대충 8서클 내지 9서클 마나 유저랑 흡사한 이들이 약 100명, 초급 마스터에 달하는 이들이 40명. 중급 마스터가 24명. 이렇게 보니 높지 않다고 하는 건 조금 실례인가.
슬며시 뒷짐을 졌다.
여기서는 말투를 좀 황제답게 해야겠지.
웃으며 말했다.
“화천대사라는 남자는 참으로 겁이 많은가 보구나.”
그런 내게 한 남자가 외쳤다.
“네 이놈-!”
깜짝 놀랄 정도로 목소리가 우렁찼다.
“네놈이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말없이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딘데.
그런 눈빛인데 다행히도 알아들었나 보다.
“이곳은 정천맹이다. 서쪽의 황제니 뭐니 하는 개소리…… 어?”
그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개소리, 그 다음은 무엇이냐.”
“어…… 어…….”
이 남자의 경지는 중급 마스터다. 아까 소개하는 걸 들어 보니까 천검대 2대장이라고 했던 거 같다. 그런 그의 코앞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내가 순식간에 다가왔으니 당황하는 건 당연하다.
아마 느끼지도 못했을 거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대로 손을 뻗었다. 놈의 머리채가 잡힌다.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직-!
놈이 무언가 반응하기도 전에 발을 뻗었다. 그대로 놈의 목을 짓밟았다.
“켁…… 켁…….”
마나를 끌어올린다. 놈의 몸이 금빛으로 휩싸였다. 하지만 의미 없었다. 목은 계속 짓눌렸다.
이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색달라서 신선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서대륙에서는 워낙 깽판을 치고 다녀서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가 나온다거나 하는 그런 상황은 최근 들어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왜 이렇게 좁밥 취급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그냥 미친 듯이 날뛸 수 있다. 그래서 마음에 들기도 한다.
“고작 중급 따위가 짐의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구나.”
내 발에 목이 짓밟힌 중급 마스터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축 늘어진 몸.
그대로 발에 힘을 주었다.
뚜둑 하며 목이 부러진다.
“오만의 대가는 죽음이다. 그것이 서대륙의 법도였고 짐의 법도다.”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정천맹이라 쓰여 있는 간판의 앞에서 멈춰 섰다.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들었다.
“짐은 밀로스 제국의 황제다.”
허리춤에 매어져 있던 천마신검이 스르릉하며 허공으로 떠오른다.
“짐을 장기짝으로 취급하던 오만한 자를 벌하러 왔다.”
* * *
천검대 소속의 허도소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으니까.
솔직히 아는 이들이 이 자리에 얼마나 될까.
겉으로 보이는 상황은 그냥 하나였다. 미친놈 하나가 정천맹으로 쳐들어온 거.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그런 외모였고 그런 외형이었다. 심지어 들고 있는 저 검은 지나치게 길었는데 이 무림에서 저런 검을 쓰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서쪽의 황제? 자기를 장기말로 삼았다? 대체 정천맹주인 화천대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그가 만약 약했더라면 이런 생각은 안 했을 거다.
그냥 제압하고 감옥에 가두면 될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다.
천검대의 2번 대장은 강하다. 화경의 고수였지만 곧 현경을 앞둔 게 확실한 그런 강자.
무림서열록에 의하면 그는 현 무림에서 38번째로 강하다. 그런 남자가 지금 단 한 수에 제압당했고 죽었다.
“짐은 밀로스 제국의 황제다.”
허리춤에 매어져 있던 그의 검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검집도 없었는데 청명음이 들린 것 같았다. 그보다 저건 허공섭물 이잖아.
최소 현경 이상에 이른 이들만 쓸 수 있는 건데 그거랑은 무언가 달랐다.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지?
허도소는 안다. 이건 그만큼 격이 차이 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을 장기짝으로 취급하던 오만한 자를 벌하러 왔다.”
그의 말에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뿐일까. 그는 강했다.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에 간격을 느끼지도 못한다.
허도소의 다리가 움찔 떨린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도망치면 그 뒤에는 뭐가 남나.
무인이다.
초절정의 고수고 무림서열록 끄트머리에 이름을 걸고 있는 무인이다.
도망은 있을 수 없다. 강자와는 싸우는 게 맞다. 그게 무인이다.
무기를 고쳐 쥐었다.
허도소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머지않아 정천맹 안쪽에서도 반응이 온다.
수백, 수천이 넘는 고수들이 정문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절정, 그리고 초절정, 심지어는 화경에 이른 이들이다.
정천맹의 최소 절반에 달하는 전력.
심지어 정천맹 본청이 위치한 곳은 화천대사가 다스리는 매화산이다. 말이 산이지 산을 깎고 그 넓은 곳에 건물을 지은 나름 획기적인 도시.
그래, 이 정도면 할 만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서쪽의 황제가 허공에 떠올라 있는 장검의 손잡이를 잡기 전까지는.
* * *
그의 손에 걸린 장검은 그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했다. 정확히는 장검을 들고 있는 황제의 모습에 모두가 압도당했다. 그리고 그것은 본능이었다.
주변에 있던 정천맹의 무인들이 내공을 끌어올리고 전투태세를 갖춘 것은 정말 본능이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서쪽의 황제가 검을 휘두른다.
털썩.
뒤에 눈이라도 달렸는지 황제의 뒤로 몰래 접근하던 세 명의 무인이 동시에 쓰러진다. 털썩, 그 소리는 세 번 난 게 아니라 정확히 두 번 났다.
세 명의 무인이 일시에 쓰러지는 소리가 한 번, 그리고 세 명의 목이 동시에 잘리고 동시에 떨어지는 것까지 한 번. 그렇게 총 두 번.
거의 예술의 경지였다.
황제가 움직인다.
동시에 그의 입이 열렸다.
“[빠르기가 질풍처럼.]”
매섭게 부는 바람은.
모든 무인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연스럽게 무인들이 사방으로 퍼진다.
대형을 갖추는 것보다 일단 피하고자 하는 그 움직임.
이것도 본능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격을 찢어발기리라.]”
황제가 검을 휘두른다. 검은 기운이,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한 기운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것은 바람의 형태를 한 칼날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차례대로 피를 뿌리며 쓰러진다. 초절정의 무인이, 화경의 무인이.
그 어디를 가도 대접을 받고 일반인들은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그 무인들이 쓰러진다.
딱 한 번, 그 한 번의 공격에 수백이 넘는 이들이 쓰러졌다.
이후 정천맹의 무인들은 정확히 두 개의 부류로 나눠졌다.
저 황제는 저게 전력일까. 더 숨기고 있는 게 있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뒤로 물러섰고 저 황제는 저게 전력일 거다. 저런 힘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 거다.
이미 척을 졌다. 적이다. 무조건 죽여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이들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무기를 뽑았다. 내공을 끌어 올렸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렸다.
황제를 향해 달려가는 정천맹의 무인들의 눈에 보인다. 황제가 검을 고쳐 쥐는 것이.
다시 휘두르려는 걸까. 방금 전의 그 기술은 끔찍했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아니 선제공격을 해야 했다.
무기를 집어 던졌다. 낫, 통파, 도끼, 검, 단검, 연검, 도, 심지어 사슬까지.
수많은 무기들이 황제에게 날아간다. 내공을 담고 강기가 맺힌 그 병기들은 위협적이었다.
황제가 검을 휘두른다.
터엉.
날아오던 연검이 달려가던 무인의 목에 박힌다. 한 번 더 터엉.
이번에는 두 개의 무기가 튕겨 나며 두 명의 목을 갈랐다.
황제가 움직인다.
투두두둑-!
비처럼 쏟아지던 무기들이 황제를 스쳐 지나 땅에 박힌다. 황제가 검을 역수로 고쳐 쥔다. 달려들던 무인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그것도 저렇게 긴 장검을 그것도, 역수로 고쳐 쥔다고? 미친놈.
이건 기회다. 오만함이 뇌를 지배한 저 미친 황제를 죽일 기회.
그 순간 툭.
황제의 몸이 사라진다. 무인들의 주먹이, 발이, 그리고 무기를 던지지 않은 이들의 무기가 방금 전까지 황제가 있던 곳에 박힌다. 어디 간 거지?
그들이 이승에서 한 생각은 그게 끝이었다.
서걱, 단 한 번의 소리. 그리고 후두둑 떨어지는 수십 개의 머리.
황제가 한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그냥 피하고 뒤로 돌아가서 한 번에 목을 따 버린 것.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있었으면 개나 소나 황제가 되었겠지.
황제가 고개를 든다. 그리고 푹, 검을 땅에 박는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오직 나만의 대지.]”
뒤로 물러났던 무인들은 이번에도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달려드는 이들과 도망치는 이들. 그중 달려오던 무인들과 거리가 좁혀진다.
주먹을 휘두르고 숨겨 두었던 무기를 휘두른다. 황제의 머리, 목, 팔, 몸통, 다리, 급소, 심지어는 발가락까지. 모든 부위를 노렸다. 하지만 의미 없었다.
“[내 땅에는 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고 범접하지 못하리.]”
달려드는 이들과, 도망치는 이들, 더 나아가 황제를 중심으로 부채꼴 형태로 5km 이상이 빛에 휩싸였다. 머지않아.
콰아아아아아앙!!
* * *
론은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잭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곳은 빛에 휩싸이지 않은 곳, 그러니까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게 잭의 배려라는 것을 론은 안다.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잭이 따로 했던 말이 있었다.
‘세상에 과연 변수가 없을까?’
‘변수요?’
‘필연이라는 게, 한 명의 절대자가 그 모든 것을 만들고 자기 입맛대로 조정할 수 있을까?’
잭의 말은 꽤나 모호했다.
‘라그나로크가 필연적인 존재일까. 내가 필연적인 존재일까. 혹은 나와 라그나로크 둘 다 필연적인 존재일까.’
어떻게 보면 철학적인 말처럼 보인다. 실제로 론은 저 말이 되게 철학적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필연에는 변수라는 게 있어. 그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필연과 필연이 부딪힐 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끼어든다면 그 필연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