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63)
제 464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서대륙에서 고서클 마나 유저 중 9서클 마나 유저는 꽤 희귀했다.
왜 9서클 마나 유저를 고서클 마나 유저라고 묶어서 불렀겠는가. 너무 적어서 숫자를 좀 뻥튀기시키려고 하나로 묶은 거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런 게 무의미했다.
멀리서 오고 있는 수천의 무인들 중 절반 이상이 9서클 마나 유저였거든. 이쪽 말로 하면 절정 고수.
생각은 거기까지만 했다.
론이 아직 살아 있다. 그거면 된다.
기운을 퍼트렸다.
밖에 있던 모두가 움직임을 멈춘다. 달려오고 있던 수천의 무인들도 멈췄다. 그들에게 전했다.
깨어났다고.
황제가 눈을 떴다고.
뒤지기 싫으면 거기서 못 박힌 듯 처박혀 있으라고.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 * *
론은 필사적이었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이미 왼팔에는 감각이 없다.
회복 마법을 펼칠 시간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지금은 공격은커녕 피하기 바빴으니까.
눈앞에서 곤봉을 휘두르는 이 남자가 풍진신개 우사라고 했던가.
“사령술사-! 무림공적의 잡졸 새끼들이 살아 있었구나-!”
땅을 구르며 간신히 피했다.
“나려타곤? 하, 잡졸답게 피하는 방법도 옹졸하기 그지없구나.”
들은 척도 안 했다. 방법이 뭐가 중요한가. 피했으면 된 거지.
때마침 발밑에 시체가 보인다. 데스 나이트로 만든 시체가 아니라 데스 나이트에게 죽은 무인의 시체.
론은 빠르게 시동어를 외웠다.
“[애니메이티드 데드.]”
시체가 일어선다.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퍼석-! 우사의 곤봉이 데스 나이트의 머리를 짓뭉갠다.
일어서려던 데스 나이트가 균형을 잃었다. 한쪽 무릎을 꿇는다. 우사가 론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건 우사의 실수였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사의 실수.
데스 나이트는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 데스 나이트를 죽이려면 시전자를 죽이거나 데스 나이트의 남아 있는 모든 마나와 사기, 그리고 생기를 소진시켜야 한다.
얼굴이 함몰된 데스 나이트가 들고 있던 긴 창을 휘둘렀다.
뒤늦게 반응한 우사가 몸을 틀었지만 늦었다.
데스 나이트의 봉이 우사의 옆구리를 강타한다. 콰아앙-!!
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 튀기며 싸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대치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데스 나이트는, 먼저 공격당하지 않는 한 공격하지 않는다. 자의식이 있는 데스 나이트다.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그 괴리감과 가슴속에서 외치는 론에 대한 충성.
그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며 혼란스러워하는 데스 나이트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싸울 일이 없다. 론은 생각했다. 지금이 분기점이라고.
이제 슬슬 그걸 눈치채는 무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길어야 5분.
정천맹의 무인들은, 적어도 선발대는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전부다. 숫자는 대충 88명.
그중 수라도제 유제하가 보이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론은 마나를 끌어 올렸다. 주문을 외웠다.
“[익스플로전-!]”
콰아아앙-!!
땅이 폭발하며 먼지가 사방을 덮는다. 머지않아 먼지가 걷혔다. 그 자리에 론은 없었다.
싸우지 않고 데스 나이트와 대치하고 있던 무인들의 눈이 한쪽으로 이동했다.
붉은 갑주의 남자.
한 명의 무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홍포신군紅袍神軍…….”
붉은 갑주를 입고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황제의 수하.
그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있다. 순식간에 수십 미터씩 몸이 이동하는 것도 안다. 따라가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데스 나이트들에게로 향했다.
일단 이것들부터 어떻게 좀 하자, 그리 생각했다.
그런 생각만 했기에 이 자리에 있던 이들 중 수라도제가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챈 이들은 없었다. 풍진신개 우사조차도 몰랐다.
* * *
블링크를 연달아 사용했다. 숨이 가빠 온다.
후우. 가볍게 돌리고는 다시 자리를 박찼다. 다시 블링크도 사용했다. 따라오는 이는 없는 것 같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론은 안다. 따라올 필요가 없다는 거지.
지금 론이 어디로 가는지, 잭이 어디에 있는지 대충 감 잡았다는 무인들의 자신감.
그게 확실했다. 머지않아 잭이 누워 있는 동굴 근처에 도착했다. 다시 그렇게 자리를 박차려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천천히 고개가 돌아간다.
언제부터였을까, 모르겠다. 요즘 이런 표현을 자주 쓰는 거 같은데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자연과 동화되듯 그 자리에 있었다.
흑색과 백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왔다. 누가 보면 여성인 줄 알겠지만 아니었다. 그는 노인이었다. 참으로 신묘한 느낌의 노인.
외모는 중년인쯤으로 보였지만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중년인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분명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나무에 등을 기대며 느긋하게 서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한 번 더 소름이 돋았다. 마치 무저갱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눈빛.
그의 입이 열린다.
“천마신교로 가시는가?”
굉장히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천마신교?
론의 감은 정확했다. 오싹했던 그 감정은 분명했다. 이 노인은 알고 있다. 잭이 천마신교로 향하려는 것을.
답하지 않는 론에게 노인이 묻는다.
“가겠군. 서쪽의 황제라…… 약속의 땅에서 온 황제……. 필연이 가까워져 오는가.”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위험하다는 거.
생각이 일치했던 걸까. 노인의 고개가 잭이 누워 있는 동굴로 향했다.
“서쪽의 황제, 그자의 기운은 참으로 포악하더군. 느껴지시는가? 지금 이 범위. 딱 여기가 마지노선이야.”
노인이 발로 바닥을 툭 찔렀다.
그 마지노선이라는 범위가 여기까지라는 듯, 그렇게 말과 행동을 동시에 보여 준다. 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서 한 걸음 내디디면 그는 깨어나겠지. 내 존재도 눈치채겠지. 잠들어 있는 와중에도 이 정도로 감각을 넓힌다는 건…… 놀라워. 진심으로 놀라워. 이런 무인이 지금껏 존재했었던가.”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침묵하던 론은 결국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노인이 웃는다. 웃으며 슬쩍 허리춤의 검을 가리켰다. 그 검은 잭이 들고 다니는 장검과 흡사했다.
미스릴이나 아다만티움, 그런 걸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흑해의 바다에서 보았던 거대한 에테르.
그러니까 에테르로 만들어진 무기.
한천빙제 유설하에게 물어봤는데, 그 에테르를 여기에서는 ‘만년한철’이라고 부른다더라.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남자의 허리춤의 저것이 ‘검’이었다는 거다.
노인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자리를 박찼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사라졌다.
그 이상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론은 동굴로 다가갔다. 잭은 여전히 누워 있었다. 잠을 설치는 건지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하다.
론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후우.
솔직히 말할까.
힘들어 뒤질 것 같다.
잭을 곁에서 보며 잭의 말투를 조금 비슷하게 흉내내는 것 같지만 그거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정말 힘들어 뒤질 것 같다.
잭은 이런 생활을 내내 했던 걸까.
괜스레 안쓰러웠다. 눈시울이 살짝 시큰했다.
그냥 편하게, 웃고 떠들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다시 밖으로 나온 론은 입구 앞에서 무언가를 끄적였다.
마법진이었다. 종류는 텔레포트.
이게 잭이나 발렌타인 같은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너무나도 손쉽게 사용해서 굉장히 흔하고 쉬운 마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많을 테지만 그건 아니다.
텔레포트는, 특히 텔레포트라는 시동어를 내뱉으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초월자들의 전유물이다. 그 밑의 마법사들은 온갖 주문을 외워야 한다.
그것도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 아니면 거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론은 9서클 마법사다. 원래라면 사용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마법진의 경우는 다르다.
재능만 있다면, 마법에 대한 이해도만 있다면 9서클 마나 유저도 10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8서클이어도, 7서클이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시간이다.
론은 빠르게 수식을 적어 내려갔다. 좌표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장소는 빙궁. 정확히는 배를 정착해 놓은 그곳이다.
수식 하나하나에 마나를 담고 숫자 하나하나에도 마나를 담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핏물과 땀이 맞물려 툭 떨어진다. 어깨가 욱신거리고 허리가 찢어질듯하며 다리에 감각이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 무시했다. 계속 적어 내려갔다.
그러다 멈칫했다.
분명 따라오는 이는 없었는데?
고개를 들었다. 조금 먼 거리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등에 메고 있는 거대한 도刀. 익숙한 외모.
수라도제 유제하.
그를 본 순간 론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까도 보긴 했지만 이 남자는 약간 방관하는 형태였거든. 그런데 왜?
그가 말했다.
“약속을 지키러 왔네.”
“……약속?”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리고 론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그걸 받아 든 론은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수라심법修羅心法.
“서쪽의 황제, 그가 말했었지. 내가 지면 심법을 내놓으라고. 그걸 지키러 왔네.”
론은 멍했다. 계속 생각한 거지만 이 무인이라는 이들은 왜 이렇게 사고방식이 특이한 걸까. 아니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게 맞는 것 같다. 은원恩怨.
은혜에는 은혜로 원한에는 원한으로.
그리고 약속은 신뢰로.
론은 그걸 받아들였다. 이건 잭의 것이니까.
수라도제는 그 이상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까, 검을 차고 있던 이상한 노인이 있었던 그 나무 근처로 간 뒤 그 나무에 등을 기댔다.
말 그대로 방관자.
그가 물었다.
“보아하니 무언가 또 준비하는 모양인데,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마저 하시게.”
“…….”
“아, 그런데 그거 아나? 자네한테 별호가 붙었어. 홍포신군紅袍神軍이라고 하더군.”
다시 텔레포트 수식을 써 내려갈까 하다가 하지 않았다. 왜냐면 늦었으니까.
수라도제가 왔건 오지 않았건 그거랑은 관계없었다.
론의 예상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8분, 지금 4분이 지났고 1분 동안 대화했다. 3분이라는 시간은, 벌 수가 없다.
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엄청난 숫자의 무인들이 자리를 박찬다. 그중에는 데스 나이트가 된 무인들도 있었다.
어떻게 설득을 했나 보다.
웃었다. 설마 여기서 죽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달려오던 무인들의 몸이 일정 반경을 넘었다. 잭의 감각, 그 사선을 넘는다.
넘고 약 10초가 지났다.
싸아아아아아-!!
서늘한 바람이 주변을 훑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데스 나이트들이었다.
그들은 그 즉시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고개조차 들 수 없다는 듯 머리를 박았다. 쾅 소리가 날 정도다. 그다음은 살아 숨 쉬는 정파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대로 자리에서 떨어져 내렸다. 몸을 떠는 이들도 있었고 구역질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싹함이 너무나도 소름 끼쳤는지 눈물마저 흘리는 이들이 있었다. 바지춤을 적신 이들도 있었다.
압도적인.
말도 안 되는 기운.
죽음을 느꼈다? 아니다. 이건 죽음 따위가 아니었다. 그 이상이다. 소멸.
존재 자체가 소멸할 것 같은 불길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기운.
서쪽의 황제가,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