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64)
제 465화
풍진신개 우사는 진심으로 놀랐다.
온몸이 떨린다. 놀랍고 두려웠다.
저 론이라는 남자.
붉은 갑주를 입고 온갖 사술을 펼치며 거슬리게 했던 그 남자가 도망을 갔다. 그게 전부였다. 왜냐면 곧바로 쫓아갈 수 있었으니까.
어디로 간 건지 알고 있으니까.
이 산 전체를 수색했고 동선을 짰다. 서쪽의 황제가 숨어 있을 그곳을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또한 홍포신군의 행적도 속속들이 느껴진다. 이건 그가 지쳤다는 뜻이다.
다 잡은 물고기를 끝까지 추적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홍포신군이 어디로 갔는지는 안다. 그럼 다 잡은 물고기가 맞는 거다. 그보다 우선인 건, 죽었다 살아난 망자를 달래야 한다는 거다.
이들은 대화가 가능한 존재였다. 함께했지만 망자가 된 동료. 그들과 대화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수백 년 전 사령술사라는 이들이 무림에 등장했던 적이 있었다.
죽은 자를 되살리지는 않았지만 죽은 자를 이지 없는 강시로 만들어 세상을 어지럽혔던 이들이다.
또한 죽은 이들과 동물을 ‘합성’해서 ‘키메라’라는 것을 만드는 등의 천인공노할, 아주 극악무도한 짓을 했던 쓰레기들이 바로 사령술사다.
그 사령술사와 비슷한 이에게 당했다고 설득했다. 정천맹의 뜻을 다시 알려주었다.
패배할지언정 지지는 않는다.
모순되는 말처럼 보이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른 거다. 어감의 차이일 뿐이다.
싸움에서 패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빼앗지 못하고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게 정천맹의 정신이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더라도 팔 하나, 혹은 다리 하나, 장기 하나, 눈 하나라도 빼앗고 죽는다. 그게 정천맹이다.
결국 뜻이 통했다. 설득됐다.
죽은 자들과 함께 자리를 박찼다. 발견했다. 그리고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다.
동굴 안에서 서쪽의 황제가 걸어 나온다.
입고 있는 옷은 거의 넝마가 되어 있었지만 그가 겉으로 걸치고 있는 저 얇은 겉옷은 묘하게도 어울렸다.
그가 들고 있던 긴 장검을 바닥에 꽂는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돌덩어리에 앉았다.
그가 한숨을 내쉰다.
그 행동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가 소름이 끼쳤다.
그가 말했다.
“조금만 천천히 오지 그랬냐.”
식은땀을 흘리며 앉아 있는 서쪽의 황제는 분명 지쳐 있었다. 화천대사가 죽은 지 고작 몇 시간도 되지 않았다. 상처 입은 게 분명한데, 온몸의 긴장이 풀린 게 분명한데, 왜 저 상태에서도 주변을 압도하는 거지?
단순히 숨을 쉬는 것, 앉아 있는 것 그 모든 것에 본능이 외쳤다. 도망치라고.
뒤지기 싫으면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헛된 명예욕 같은 건 얻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이게 끝이라고.
“화천대사, 재미있는 늙은이였지.”
황제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그려진다.
“처음에는 추잡했다. 역겹기까지 했지, 하지만 마지막에는 무인다웠다. 짐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 순간만큼은 역겹던 처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으니까. 하지만.”
황제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콰아앙-!!
터진 굉음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무인들이 바닥에 머리를 박는 소리였다. 오직 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피가 흐르는 이들도 있었고 고통에 신음을 내뱉는 이들도 있었지만 단 한 명도 그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당연히 데스 나이트도 포함된다.
“너희들은 대체 뭐냐.”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검은 잡지도 않았다.
그대로 걸음을 옮긴다. 엎드려 있던 무인 한 명의 머리를 그대로 걷어찼다.
퍼석-!
머리 잃은 시체가 바닥에 쓰러진다.
“처음 보았던 염존의 눈은 탁했다. 탐욕이 가득했지. 뒤틀린 욕망, 추잡한 욕망, 서대륙에 아서 군나르라는 많이 모자란 놈이 있었는데 그놈과 같더구나. 같은 냄새를 풍겼어. 지금 짐의 눈에 비친 너희들이 그렇다.”
황제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굉장히 서늘했다.
“정천맹은 패배할지언정 지지는 않는다?”
저 말을 어디서 들었냐면 화천대사와 싸우기 전, 정천맹의 문 앞에서 론과 한 명의 무인이 싸울 때 그때 들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거라. 짐의 목이 탐난다고, 짐의 목을 따서 영웅이 되어 새로운 정천맹주가 되고 싶다고, 역사의 한 축이 되고 싶다고, 왜 그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냐.”
황제는 진심으로 웃었다.
“추잡한 욕망을 가리기 위해 명분을 만들고, 그 명분으로 추잡한 욕망을 정당화시키고, 놀랍구나. 대체 뭐가 그리 두려운 것이냐.”
퍼석, 퍼석.
“무인으로서 무기를 들었으면 그 무기로 말을 해야지. 왜 정치를 하는 것이냐. 네놈들은 무인이 아니다. 그저 힘을 가진 어린아이, 협잡배,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있으면 떼를 써서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에 관계없는 이들도 모두 끌어들여 상대를 죄인으로 만들고 장난감을 훔치는 어린아이, 그게 짐의 눈에 비친 네놈들이다.”
무인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벌써 절반 이상이 죽었다. 검으로 베인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발로 장난감 차듯 머리통을 부쉈다.
죽는 모습을 추하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면 그건 통했다. 검사로 보이는 황제가 검도 쓰지 않고 발을 쓴다. 그 발에 머리통이 터진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굴욕이다.
이를 악문 남자.
풍진신개 우사가 외친다.
“개소리-!”
황제가 시선을 돌린다. 우사와 눈이 마주쳤다.
“정천맹은 패배할지언정…….”
황제가 피식, 웃는다.
우사는 말을 멈췄다. 모멸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왜 저 남자에게 압도당했는지.
그건 단순한 힘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저 눈.
저 엿 같은 두 개의 눈동자.
그래, 저거 때문이다. 어떤 욕망을 가지건 그걸 전부 꿰뚫어 보는 듯한, 엿 같은 눈.
우사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안정을 찾는다. 죽음이 가까워져 오니 그냥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개새끼.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진다.
“정천맹주, 한번 앉아 보고 싶었는데.”
황제가 웃는다.
“내가 볼 땐 네가 제일 나쁜 새끼야. 저쪽 애들은 뭣도 모르는 애들이었다면 넌 뭐 좀 아는 새끼니까.”
황제가 걸어온다.
“보통 일 크게 벌이는 새끼들은 뭣 좀 아는 새끼들이더라고. 너처럼.”
그게 우사가 이승에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황제의 발이. 퍼석-!
풍진신개 우사의 머리를 터트렸다.
* * *
나머지 무인들의 머리도 터트렸다. 그러다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잔뜩 굳어진 채 서 있는 남자.
음.
쟤 이름이 수라도제 유제하였나.
쟤는 그냥 무시했다. 힘들어 죽겠는데 저기까지 가기도 귀찮다.
그대로 털썩, 근처 돌덩이에 주저앉았다.
“도련님…….”
고개를 들어 론을 바라보았다. 우리 론, 모습이 꽤 가관이다. 어깨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었고 다리에도, 그냥 몸 전체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치명상은 없다는 거. 그보다.
“꼴이 그게 뭐야.”
론이 피식 웃는다.
“남 말 할 처지가 아닐걸요?”
거울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내 모습도 꽤 엉망인가 보다.
그렇게 웃음을 교환하고 있을 때까지도 수라도제 유제하는 저쪽 담장에 굳어진 채로 서 있었다.
“쟨 저기서 왜 저러고 있어?”
“……그게.”
론이 주섬주섬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수라심법이라 적혀 있는 책이었다.
“약속을 지키러 왔다고 하던데요.”
조금 색다르다는 눈으로 수라도제를 바라보았다. 이야, 이쪽 동대륙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애들이 많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제하.”
“……어…… 나 말이오?”
떨리는 목소리는 그렇다 치고.
“여기에 유제하라는 이름 쓰는 애가 너 말고 누가 있어.”
“…….”
“이리 와 봐.”
유제하의 몸이 움찔 떨린다. 겁을 먹은 건지 경외감을 느끼는 건지 자세하게는 모르겠는데 일단 긴장한 건 확실하다.
대충 손짓하자 주변을 덮고 있던 내 기운이 회수되었다. 유제하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천천히 다가온다.
나와 약 5m 정도 거리를 둔 채 그는 멈춰 섰다.
“얼굴이 작살났던 거 같은데 생각 외로 멀쩡하네?”
“……그, 열심히 치료를 받았으니 멀쩡해야지……요.”
얘가 이런 애가 아닌 것 같았는데. 되게 호탕한 애가 아니었나?
피식 웃고 말았다.
“몇 살이냐?”
“……올해로 49세입니다.”
염존에 비해서는.
“젊네. 그래서 넌 뭘 하려고?”
“그냥 상황 봐서 도망가려고 했는데…… 불렀지 않소이까.”
그건 그렇지.
“너, 할 거 없으면 서대륙으로 올래?”
“……에?”
“오는 김에 이 수라심법이라는 거 우리 론한테 좀 알려 주고.”
유제하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입을 조금 벌린 채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다 할 말이 떠올랐나 보다.
“내가 보기엔 이래도 마궁의 궁주요. 데리고 있는 이들이 수만 명인데…….”
“그럼 걔들도 데리고 오던가.”
“……정말,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시오?”
“그럼 지금 내가 너랑 농담 따먹기 하고 있겠냐? 힘들어 뒤지겠는데.”
“크흠.”
“고민되면 생각해 보고 나중에 말하던지. 가 봐, 이제.”
몸을 돌리려던 유제하가 움찔한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오?”
“뭐가?”
“……자세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정천맹의 무인들은 약 7천이 넘을 거요. 하나하나가 절정 고수고 초절정도 꽤 많이 섞여 있소이다. 절정이 아닌 일류 고수들도 합류하고 있다고 하니,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거요.”
대충 예상은 했다. 숫자까지는 몰랐지만.
“화천대사를 죽인 남자가 지금 빈사 상태라는 소문이 무림을 강타했소. 이런 상황에서 만약 당신을 죽이는 이가 있다면 그는 어마어마한 유명세를 얻게 될 거고 영웅이 될 거요. 어쩌면 정천맹주가 될 수도 있겠지.”
“방금 뒤진 쟤처럼?”
“그렇소. 하지만.”
“하지만?”
“……머지않아 잠잠해지겠지. 왜냐면.”
“왜냐면?”
유제하가 내 몸을 한눈에 담는다. 불쾌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유제하의 눈에는 감탄과 두려움, 경외, 그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었거든.
유제하가 마저 말한다.
“생각보다 멀쩡하니 잠잠해질 수밖에. 혹은 일이 더 커지거나.”
그거 말고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표정인데. 아니나 다를까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자 입을 연다.
“……서대륙으로 가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보겠소. 그 전에 나랑 거래 하나 하시겠소?”
“거래?”
“마궁의 주인인 마궁주로서 서쪽의 황제인 당신을 정식으로 초대하겠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그게 거래야?”
“난 주제를 아는 놈이오. 절대적인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을지라도 오고 있는 잔챙이들은 정리해 주겠소. 그대가 보기엔 어설퍼 보이겠지만 그래도 마궁의 세력은 정천맹의 한 축을 담당했을 정도요.”
이거 재미있네.
“비록 내가 정천맹의 무인이라 불리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난 중립이오. 사천맹이랑은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고 정천맹과도 엮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천맹의 미친놈들보다는 정천맹의 음흉한 놈들이 조금 더 낫다고 판단했소. 그래서 정천맹에 속해 있는 거요.”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변명하는 사람처럼.”
“아마 변명이 맞을지도 모르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요. 난 정천맹의 무인이라 불리긴 하지만 그대랑 척을 질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거. 뒤를 친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소. 아마 평생 안 할 거요. 지금 나는 그걸 알아 달라고 말하고 있는 거요.”
확실히, 몇 번 언급했지만 이 수라도제 유제하라는 녀석은 생각 외로 재미있는 남자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거래라고 했으니까. 원하는 게 있다는 건데.
“원하는 건?”
“……생사경으로 넘어가고 싶소.”
유제하가 걸어온다. 사실 많이 걷지는 않았다. 그냥 딱 한걸음 내딛었고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