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76)
제 477화
다시 시간이 흘렀다. 발렌타인이 작게 중얼거린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이라…… 정말 볼만하구나.]발렌타인은 거대한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는 최소 수백 킬로가 넘었지만, 발렌타인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그 산은 절반 이상이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발렌타인이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두 꼬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까 들었지?”
-뭐를?
“서쪽의 황제가 지쳐서 쓰러졌고 그를 추격하던 정천맹의 무인들을 산 하나와 함께 통째로 지워 버렸다…… 이거 나만 들은 거 아니잖아.”
샬롯의 어조에는 걱정이라는 감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듣는 셀은 조금 달랐다.
-그래서, 그게 뭐?
“……그게 뭐냐니, 보스가 동대륙에서 수만 명의 무인들을 죽였다잖아.”
-그러니까 그게 뭐 어때서?
샬롯은 소름이 돋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느낀 건데 셀은 확실히 다른 이들과 달랐다.
재미있는 일은 이후 벌어졌다. 셀이 부드럽게 웃은 것이다.
-보스가 누군가를 죽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서대륙에서 많이 봐 왔잖아.
“…….”
-보스를 죽이려고 했다거나, 보스를 이용하려고 했다거나, 보스를 약자로 취급했다거나, 혹은 무시했다거나.
셀의 웃음은 여전했다. 정말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마저 말을 이었다.
-죽을 짓을 했으면 죽어야지. 안 그래?
샬롯은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냥 미간을 찌푸렸다.
셀은 과격하다. 지나치게 과격하다. 하지만 샬롯은 아니다.
샬롯도 어느 정도는 과감해질 때도 있지만 나름의 유도리가 있다. 셀과 샬롯은 이 순간 느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려해 줘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음을.
“……네 말이 맞아. 전부 동의는 못 하겠지만.”
셀이 묘한 웃음을 짓는다.
-그럼, 그렇다고 쳐.
지금이야 둘이 어리니까 대화로 풀렸다지만 먼 훗날에는 어떨까.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셀은 속으로 말했다. 너랑은 싸우고 싶지 않다고, 친구로 남고 싶다고. 샬롯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성향이다.
둘은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 셀은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샬롯은 버림받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둘의 성향은 달라진 거다. 그리고 점점 표현되겠지.
발렌타인은 묘한 눈으로 그 둘을 바라보았다.
자식을 가져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해 줘야 하는지는 안다.
저 둘은 똑똑하다. 어린 나이라고 어리게 보면 안 된다.
가진 힘이 있고 자리한 위치가 있다. 다른 이들은 겪지 못할 것을 어린 나이에 겪었다. 무너지지 않고 성장했다.
이미 두 녀석은 철든 지 오래였다.
발렌타인은 말없이 손을 뻗어 두 꼬마의 머리에 턱, 올렸다.
그냥, 이 말은 꼭 해 주고 싶었다.
[짐승도 자기 가족은 챙기는 법이다.]“…….”
-…….
슥슥, 둘의 머리가 헝클어진다.
묘하게도 발렌타인은 웃고 있었다.
[같은 사람을 보고 배웠어도 받아들이고, 체득하는 것은 다 다른 법이다. 검을 쓰는 이가 항상 마법도 잘 쓰리라는 법은 없다. 반대로 말하면 마법을 잘 쓰는 이가 검을 잘 쓰리라는 법도 없다. 각자의 개성이라는 게 있고 생각이 비슷해질지언정 같아질 수는 없다. 잭, 그 녀석과 내가 최근에 싸웠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셀과 샬롯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냥 들어야 한다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으니까.
[녀석과 싸우긴 했어도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러니 너희도 명심하거라.]발렌타인이 손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너희는 앞으로 많은 날을 살게 될 것이다. 살면서 많은 일을 겪겠지. 그리고 그걸 해결하고 고뇌하고 번뇌하고, 성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만큼은 버리지 말거라.]신비로운 두 눈이 두 꼬마를 한 번씩 바라본다.
[너희는 가족이다. 너희가 서로 싸우는 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죽이는 싸움은 하지 말거라. 비슷한 것도 하지 말거라. 가족끼리는 칼을 겨눠서는 안 된다. 만약 너희가 서로에게 칼을 겨눈다면,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을 죽인다면, 녀석이 많이 슬퍼할 거다.]나도 그렇고.
마지막 말은 그냥 속으로 했다. 하지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상황이 가끔 벌어지곤 하는데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샬롯과 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되었다.]발렌타인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 했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왜냐면 누군가 끼어들었으니까.
“외모답게 하시는 말씀도 참으로.”
셋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이곳은 공원 벤치다. 그것도 나름 구석에 있는 벤치. 그런데 정면에 약 열 명의 남자가 있었다. 말을 한 남자가 가장 앞에 있었고 나머지 아홉 명은 마치 호위처럼 보였다. 말을 건 남자는 꽤 젊었다.
나이는 많아야 20대 초중반.
머리는 적당한 길이였고 5:5 가르마를 타고 있었다. 가르마가 꽤 인상적이었다. 그가 마저 말을 잇는다. 외모답게 하시는 말씀도 참으로.
“기품이 있으시구려.”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끝마치는 그 남자에게 관심을 가진 이는 없었다. 셀과 샬롯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홱 돌렸다. 발렌타인을 바라본 거다.
여기가 아무리 구석에 있는 벤치라고 해도 이 종도라는 도시의 유동 인구는 꽤 많았다. 심지어 지금 대피를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중인데 유동 인구가 없다면 말이 되지 않겠지.
그런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발렌타인과 두 꼬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저 젊은 남자가 눈치챈 거다.
여기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저 젊은 남자가 굉장한 고수일 경우. 다른 하나는 발렌타인이 지쳤을 경우.
지금 여기서는,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발렌타인의 말에 대답한 것은 두 꼬마가 아니었다. 젊은 남자였다.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시려고 하시오.”
[내가 말해야 하느냐?]발렌타인의 두 눈이 남자의 두 눈에 꽂힌다. 남자는 웃었다. 진심으로 웃었다.
이런 여인이 종도에 있었던가. 물 흐르듯 입이 열린다.
“소개가 조금 늦은듯하오. 본인은 ‘종도의 성주’이신 패력무제 진우 님의 둘째 아들이오.”
당연한 소리지만 정천맹은 망했다. 그리고 정천맹이 망하기도 전에 종도는 망했다. 정확히는 종도의 성주였던 태극검제가 죽었다. 하지만 그곳에 터전을 두고 살아가던 일반 주민들이 있다. 그들은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는다. 익숙한 곳에서 살고 싶으니까.
왕이 수도 없이 바뀌어도 그 왕이 다스리는 땅의 백성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백성은 바뀌지 않았고 다스리는 이가 바뀌었다.
정천맹의 태극검제에서 사천맹의 패력무제 진우로.
발렌타인은 말없이 패력무제 진우의 둘째 아들이라 주장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불쾌했던 걸까. 아니면 신경 쓰였던 걸까.
“네 이년! 지금 진성재 님께서 묻고 있지를 않느냐-!”
정작 말은 뒤쪽에서 나왔다. 호위로 보였던 이들은 진짜 호위였다.
그 말에도 발렌타인은 물끄러미 남자, 그러니까 진성재를 바라보았다.
결국, 진성재가 묻는다.
“왜 그리 바라보시오?”
[내세울 게 그거 말곤 없느냐?]진성재의 미간이 구겨진다.
[이름이 진성재라는 것을 네놈의 입이 아니라 다른 이의 입에서 듣게 되는구나.]발렌타인은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
[처음 소개를 할 때 본인의 이름이 아니라 누구의 아들인지를 내세웠지. 정작 본인의 이름은 자기 입으로 말하지도 못하는 남자라……. 재미있구나.]진성재도 웃었다. 이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 참 짧으시구려.”
“언제 봤다고 말을 놓으시는 거요?”
아하하하하.
발렌타인은 웃었다. 듣기 좋은 울림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굉장히 익숙한 상황이다.
[고작 몇 시간 전의 일이다. 너처럼 말하던 남자가 있었지. 어떻게 되었을까.]“……내가 알아야 하오?”
발렌타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것도 되게 간만이다. 엘릭서 6병 중 마신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은 온전히 남아있는 수명으로 저주를 막고 있는 것뿐이다.
선천지기를 사용한다고 표현해도 좋다. 악불군과 싸우면서 꽤나 많은 힘이 소모되었다. 지금은 지친 상태다. 부정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생각도 없다.
그게 발렌타인이 걸어온 길이다. 앞으로 걸을 길이고 죽을 때까지도 걷고 있을 길.
자리에서 일어섰다.
패력무제 진우의 둘째 아들인 진성재는 젊었다. 굉장히 젊었고 하는 행동으로만 봐도 각이 나온다.
그래서 발렌타인의 말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악불군? 그건 또 누구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구나. 그런데.]발렌타인의 두 눈이 진성재의 몸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사타구니 쪽으로 향했다.
[방탕하구나.]“방탕하다?”
[사타구니가 부풀어 올라 있는데 모양새가, 속옷을 입지 않은 모양새야. 악불군이라는 그 남자는 적어도 속옷은 입고 있었는데 말이다.]진성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야, 확인해보면 될 일 아니겠소?”
[확인?]“저기 조용한 곳에 가서 몸의 대화를 한번 나눠 보시는 게 어떻겠소.”
사실 이 정도면 대화는 충분히 나눈 거나 다름이 없었다.
발렌타인이 일어서려던 그때였다.
곁에 있던 두 꼬마가 동시에 손을 뻗었다.
발렌타인의 오른팔은 샬롯이, 왼팔은 셀이.
[왜 그러느냐.]두 꼬마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발렌타인의 질문에 가장 먼저 답을 한 것은 샬롯이었다.
“쉬고 계세요.”
샬롯이 앞으로 걸어 나간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았다.
챠릉.
그 청명한 소리에 무인들이 움찔 몸을 떤다. 진성재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느낌이, 싸했으니까.
더 놀랄 일은 이후에 벌어졌다.
발렌타인의 옆에 있던 셀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거다.
키는 커졌고 이마에는 뿔이 솟았다.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요괴……?”
그 말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샬롯이 움직였고 셀은 발렌타인의 주변을 지켰다. 둘의 모습에 발렌타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달려나간 샬롯의 단검이 푸르게 물든다. 첫 목표는 진성재였다.
망설임? 그런 건 없었다. 샬롯은 셀이 과격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분명 팩트였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치고는 서로 비슷한 주제의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다르게 보면 서로 어느 정도 통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적이라고 판단이 되면 반드시 죽인다.
샬롯의 단검이 서걱, 진성재의 목을 스쳤다.
허공으로 피가 흩날린다. 그 다음 목표는 발렌타인에게 네 이년이라고 외쳤던 무인이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샬롯의 몸이 사라졌다.
이어서 서걱, 서걱.
순식간에 주변이 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