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618)
제 619화
대충 듣긴 했지만 그래도 기억은 하고 있었다.
사혼제는 곤륜산에 태어난 인물로서 기존의 ‘영정’이 교주로 있던 천마신교의 교인 출신이었고 시간이 흘러 천마신교가 멸교하자 천하성에 몸을 의탁한, 그런 인물.
그게 사혼제다.
냉정하게 말해서, 나와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내가 만든 천마신교에 사혼제의 자리는 없다.
아군도 아니고, 거의 적에 가까운 놈이 지금 내 앞에서 천마신교가 앞으로 움직일 방향을 제시했다.
내 입장에서 이건 거의 월권 수준을 넘어서 협박의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작 대원당주 따위가.
이건 건방진 것을 넘었다.
그대로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동시에 사혼제는 무언가를 느낀 듯했다.
그가 마찬가지로 온 힘을 끌어올리더니 옆쪽으로 자리를 박찼다.
부와악, 천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혼제가 벽에 처박힌다. 내가 날린 게 아니다. 사혼제는 낙하지점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자리를 박찼을 뿐이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나는 사혼제의 머리를 터트려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복면 안에 그런 얼굴이 있었군.”
사혼제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솔직히, 말이 나왔으니 하는 건데 사람이 복면을 쓰고 다닐 일이 얼마나 있겠나.
살수들처럼 음지에서 누구에게도 신분을 들키지 말아야 할 때 쓰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낮에, 그것도 사람들과 교류가 많은 천하성 외부에서 활동하는 대원당주가 계속 복면을 쓰고 다닌다?
매우 이상하다.
복면을 쓰는 게 취향이라기보다는 써야 할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사혼제는 복면을 쓰고 다닐 이유가 있었다.
그의 얼굴은 눈가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화상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흉측하다고 해야 할까. 분명 재생시킬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저러고 다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죽일 거니까.
그때였다.
“잠시만, 잠시만 멈춰 보십시오.”
나는 아버지를 닮아 마음이 흑해보다 넓다.
잠시 멈춘 내게 사혼제가 말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혼제의 표정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황태자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신교 출신입니다. 천하성에 몸담고 있지만 그때 그 시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주제넘었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정중하게 포권까지 취하는 사혼제에게 나는 더 이상 살기를 뿜어낼 수 없었다.
애도 아니고,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넘어가 줘야 하지 않겠나.
손에 있던 찢겨져 나간 복면을 옆에 대충 던져둔 뒤 말했다.
“이유나 좀 들어보지.”
“……제가 신교 출신이라…….”
“개소리하지 말고.”
그대로 입을 다문 사혼제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다 내게, 말했다.
“……당신의 신분 때문입니다.”
“내 신분?”
“당신이 서대륙의 일반 평민이거나, 몰락 귀족의 후손이거나, 혹은 그냥 동대륙 어느 가문의 자식이거나, 심지어 개방 출신의 거지였다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황태자인 게 문제다?”
“……천마신교가 몰락하게 된 배경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이자 모든 대륙의 주인인 잭 밀로스의 욕심이 아니라 이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고자 했던 신교의 교주 영정과 천외천의 혁진강, 그 둘의 욕심 때문이었죠.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지만 이걸 저처럼 생각하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저 말은 결국 모든 것의 핵심이기도 했다.
“천하성이 동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천마신교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천마신교를 무너뜨린 이는 현 황제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게 그냥 진실입니다. 지금 당신의 신분을 제대로 아는 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래에는 그 신분이 밝혀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당신은 분명 천마신교를 크게 키울 수 있겠지만 그렇게 커진 천마신교가 내분을 일으키게 된다면 동대륙은 더 없는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너무 먼 미래를 보고 있군.”
“다가올 게 확실한 미래이기도 합니다.”
나는 묘한 표정으로 사혼제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사혼제가 천마신교의 교인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 확실해 보인다. 이러면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흉터는 누구에게 당한 흉터지?”
사혼제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왜 궁금하냐고.
그냥이라고 답하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영정입니다.”
“영정?”
“예.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당신의 허리춤에 있던 그 천마신검의 주인이었던 남자입니다. 그에게 당한 상처입니다.”
“그런데 신교의 후인들을 그리도 아낀다?”
“그건 제 잘못에 대한 대가이기도 합니다. 또 상처를 낸 건 영정이지 교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죄가 없습니다.”
그거면 됐다.
솔직히, 이 이상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까 금태성이 재미있는 말을 하던데.”
금태성이 하던 이야기는 하나였다. 사혼제가 곧장 답했다.
“……운하 말씀이십니까?”
“그래, 운하. 천하성이 독점하고 있는 운하를 나도 좀 사용해 볼까 하는데.”
“……이건 성주님의 재가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독단으로 처리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피식 웃고 말았다.
“네가 말한 천마신교의 교인들이라면 곤륜산의 후인들을 말하는 것이겠지. 맞나?”
“맞습니다.”
“그들은 이제 내 ‘백성’이기도 하다. 그들을 먹여 살리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너도 알다시피 감찰관 봉급이 그렇게 세지가 않아.”
사혼제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감찰관 봉급은 한 달에 금화 두 잎 정도다.
엄청 적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그렇게 많지도 않다.
그런데, 사혼제는 안다.
감찰청장이 되면 예산을 사용할 수 있고 그 예산은 규정에만 벗어나지 않으면 눈먼 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
그런데 결국 그것도 임시방편이다.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사업이 있어야 한다.
“북해의 만년설을 정제한 빙정은 서대륙의 귀족들에게 매우 비싼 값에 팔리지. 빙정을 더 늘려서 거래하는 걸로 하면 어떻겠나?”
“……설마, 북해빙궁이 천마신교에 흡수된 겁니까?”
“그래.”
숨길 이유가 없다. 어차피 알려질 일이니까.
“하겠나?”
“앞서도 말씀드렸듯 성주님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성주님의 성향상 굳이 거부하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좋군. 그럼 조만간 대리인을 보내도록 하지.”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였다.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게 사혼제가 말했다.
“제 본명은 ‘영허’입니다.”
“……영허?”
“천마신교의 영정에게는 두 명의 혼외자가 있었습니다.”
미간이 구겨진다. 혼외자?
“저는 영정의 아들입니다. 소교주가 아니었고 천마신공도 배우지 못한 혼외 자식이죠. 그리고 ‘영월’은 제 이복동생입니다. 제가 천하성 소속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교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교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일은 진행될 겁니다.”
사혼제의 정중한 태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계속해서 지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영월이 신교의 교주였던 영정의 피를 이었다고?
* * *
오두막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영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린 시절부터 영월은 신교에서 나고 자랐다.
교주였던 영정은 여자를 많이 밝혔다.
그런 영정에게는 총 세 명의 자식이 있었다. 전부 혼외자다. 그중 한 명이 죽었고 한 명이 실종되었다. 그리고 한 명은 계속 곤륜산에서 신교의 후인으로 살았다.
간단했다.
죽은 이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실종된 이는 본명을 내려놓은 뒤 ‘사혼제’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시작했고 나머지 한 명은 영월이라는 이름으로 회천교의 운영 총책이 되어 회천교를 이끌었다.
회천교의 교주였던 천월이 영월을 괜히 총책으로 임명했던 게 아니다. 부교주였던 진천휘가 없었더라면 아마 영월을 부교주에 임명했을 거다.
물론 영월이 영정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괜히 입 밖으로 떠벌리고 다닐 이유가 없는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
득보다 해가 더 많다.
천월 입장에서는 그걸 밝히면 천마신교를 재건하는 건 천월이 아니라 영월이어야 한다는 교인들을 숙청해야 할 수도 있다.
안 그래도 힘이 없는 천마신교의 세력을 더 줄이는 건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다.
영월도 바보는 아니어서 그냥 입 닫고 살았다.
하지만, 적어도 영월의 측근들은 그 사실을 안다.
그녀가 영정의 후손이라는 것.
그건 엄청난 무기다.
천마신교의 교인들을 하나로 완벽하게 묶을 수 있는, 그런 무기.
영월은 이 사실을 언젠가는 현 교주인 메론에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건 앞서서 말한 무기라는 것과 연관이 되는데, 그 무기라는 것에 가치를 두고 싶지 않았다.
영월은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비록, 어린 시절부터 무공을 배운 것이 아니라서 성장이 매우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무인이다.
무인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자들을 뜻한다.
그렇기에 먼저 개인의 능력을 증명하고 그 배경을 나중에 밝히려는,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영월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방금 대원관에 갔다 왔는데, 사혼제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냉큼 일어선 영월이 고개를 돌렸다. 메론이었다.
“영정의 혼외자라던데, 맞나?”
영월은 찔끔했다.
사혼제의 본명이 뭔지는 영월도 안다.
영허.
그런데 그 머저리 새끼가,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이라도 서로의 비밀 정도는 지켜 줄 줄 알았는데. 이 빌어먹을 새끼.
잠시 뜸을 들이던 영월이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메론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놀랐을 뿐이다.
누구의 아들인지, 누구의 딸인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한가.
애들도 아니고, 그런 걸로 급을 나누거나 그런 행동들은 이미 오래전에 졸업했다.
메론은 그저, 기분이 조금 나쁠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음부터는 ‘내 사람’에 대한 비밀을 남의 입에서 듣게 하지 마라. 알겠나?”
영월은 무엇보다 ‘내 사람’이라는 부분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깊은 울림이 있다고 해야 할까.
영월은, 상황을 잊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이 맞다.
“그리고, 사혼제한테 빙정을 더 늘려서 거래하겠다고 말해 뒀으니 조만간 시간 내서 가 보도록.”
이건 알아서 정리하라는 뜻이었다.
영월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존명-!”
그런 영월에게 메론이 말했다.
“갔다 올 데가 있는데, 며칠 비울 수도 있다.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일이 발생하면 이걸 쓰도록.”
그렇게 말하며 메론이 어떤 물건 하나를 건넸는데, 그걸 받아 든 영월의 표정이 묘해진다.
목걸이였으니까.
“강제 순간 이동이 걸려 있는 목걸이다. 목에 차고 다니도록.”
“가…… 감사합니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어디를 다녀올 생각이신가요?”
메론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용의 협곡.”
용의 협곡.
동대륙에서 동쪽으로 쭉 가면 화곡산이라는 곳이 나온다.
그 산을 현재 부르는 이름이 바로 용의 협곡이다.
왜 용의 협곡인가, 간단했다.
그곳에 용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 동대륙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살아가는 곳.
동대륙의 천하제일인.
부동의 괴물.
드래곤 로드 셀의 거처가 바로 용의 협곡이다.
메론은 이제 그동안 보지 못한 스승님을 뵈러 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