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153
알 수 없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은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자인가?’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눈앞에 앉아있는 금발의 기사는 본 적이 없었다.
‘그 싱클레어 백작의 제자라.’
황제는 알 수 없는 이 호감이 싱클레어 백작과 깊은 연이 있는 전도유망한 젊은이에게 보내는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색하지 않은 채, 입으로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 건넬 뿐이었다.
두 사람의 식사 시간은 남들이 보기엔 특별한 사건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한 끼에 불과했으나 둘 모두 기시감을 가슴 한 쪽에 밀어둔 시간이었다.
“바쁜 사람을 내가 너무 오래 잡아두었군.”
“아닙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뵙겠습니다.”
“시장과는 친한 사이인가?”
“예.”
“군신관계는 말이 되질 않고, 라이벌?”
VIP 톰 아저씨로 돌아온 황제가 짓궂게 묻자, 이안이 잠시 망설였다.
도미닉과의 관계를 무엇이라고 정리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우입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나온 말.
그 말에 황제는 의외의 대답이라는 듯 웃었고 이안 역시 괜히 민망해져서 침을 꿀꺽 삼켰다.
***
“벌써 답이 왔다고?”
“예, 폐하.”
숙소로 돌아온 황제가 곧바로 시종장의 보고에 깜짝 놀랐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마차 안.
황제는 이안에 대한 정보를 원하노라 명령을 내렸다. 시종장은 그 즉시 수도에 있는 ‘황제의 귀’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곧장 답을 받을 수 있었다.
“폐하의 귀 중 하나가 이미 조사를 어느 정도 마친 상태였다고 합니다. 다만, 중요도가 높지 않다는 상부의 판단으로 보고는 올리지 않은 듯 합니다. 서부 영지들의 일로 귀족파의 정세를 살피기 바쁜 시국이 아니었사옵니까.”
“그렇긴 하지. 그래, 어떤 자라던가?”
“이안 하노버. 싱클레어 노백작이 가장 신뢰하는 제자라는 것은 이미 남부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다 합니다. 실력이면 실력, 배짱이면 배짱. 무엇보다 입이 무겁고 행동이 무게감이 있다는 평입니다.”
“호오-.”
“다만 성정이 지나치게 꼿꼿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하여 기사라면 몰라도 지휘관으로서는 대성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는 자들도 있었나이다.”
“그렇게 보이진 않던데.”
“예. 이전에는 그러했으나 최근 그 성격이 제법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합니다.”
“성격이 바뀌었다?”
황제의 눈에 흥미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싱클레어 노백작이 도미닉, 그러니까 지금의 에버그린을 만든 시장을 경호하라는 임무를 준 이후, 이 도시가 이만큼 발전하는데 꽤 그 공이 크다 하더군요. 젊은 나이에 큰일을 하다 보니 성격도 바뀐 것이 아니겠습니까.”
“잠깐. 도미닉, 그 돈 밝히는 시장을 경호하란 명을 싱클레어가 내렸다고?”
“예, 폐하.”
“어째서? 상성이 맞질 않는 듯 보이던데.”
그리 길게 보진 않았지만 도미닉이라는 시장과 이안이라는 기사의 성격은 그리 비슷해보이질 않았다.
오랜 기간 군부에서 병사들을 이끌었던 싱클레어 노백작이 이를 모르진 않았을 텐데.
황제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지점이었다.
최초에 이안이 받은 명은 도미닉의 경호가 아닌 감시 역이었단 것을 모르는 입장에서야 당연한 의문이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자는 당사자들 밖에 없으니 모를 수밖에.
이미 시작부터 잘못된 정보와 예상이었다.
만약 황제의 귀들 중 능력이 출중한 자들이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파 보았다면 이상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도미닉의 정보를 캐거나 남부의 정세를 살피기 위해 파견되어 있던 정보원들의 수준과 수집을 하는 정보의 퀄리티가 그렇게 높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애초에 정보 경쟁에서 남부는 중요한 지역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렇게 제대로 된 전후 사정을 눈치 채지 못한 시종장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남부에 파견되었던 폐하의 귀들이 공통으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도미닉 시장에게 보이는 노백작의 신뢰의 정도가 엄청나다고 합니다. 애제자를 경호로 붙인 것도 시장에게 준 특혜 중 하나라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본인 역시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백작성이 아닌 바로 이 곳, 에버그린에 머무르고 있질 않사옵니까.”
“음.”
신분을 감추고 에버그린에 온 만큼 황제는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머리색을 감추는 등 조취를 취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이서 자신의 경호를 맡았던 싱클레어 노백작의 눈마저 피할 수는 요원한 일이다.
다만, 운이 좋게도 노백작은 현재 출타 중이라고 했다.
영지 병력 구조를 재편하기로 했다던가?
황제로서는 조금이라도 더 비밀스런 휴양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된 일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그것이···. 아직 정확한 물증이 나온 것은 아니나, 폐하의 귀가 여러 정황을 모아 내린 결론이 조금···.”
“무엇인데 말을 하다 말지?”
“저···. 도미닉 시장이 싱클레어 노백작의 서자일 확률이 높다 합니다.”
“뭐라고?”
황제가 깜짝 놀라며 시종장의 손에 들려 있던 서류를 빼앗았다.
급히 통신구로 받아 적느라 날림으로 적힌 글자들이었지만 알아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
서류를 보던 황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단어 몇 개를 읽고 또 읽었다.
황제의 눈에 들어온 단어들.
“싱클레어 노백작의 낙향 시기와 나이가 같음. 출생지와 가족 정보 불분명. 묘하게 지식의 수준이 높으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예, 폐하.”
“그러니까 이것이 도미닉, 그 시장을 싱클레어 백작의 서자로 추정하는 이유라?”
“···폐하. 무엇을 생각하시는 지 감히 짐작하건대, 아닐 것입니다.”
“하나 오래 전의 그 소문이 진짜라면 어쩌겠느냐.”
“폐하!”
귀족파를 견제하기 위해 남부의 유력자들을 직접 눈으로 살피는 것은 물론, 겸사겸사 수완 좋은 에버그린의 시장이라는 자를 직접 보고 추후 중히 쓸 수 있을만한 인재인지 확인하러 온 휴양이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과 마주하다니.
“아무래도 휴양이 길어질 듯 하구나.”
황제가 조금은 절박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
“드디어 완성했다!”
아침부터 눈이 벌개져선 오븐을 들여다보며,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던 도미닉이 양팔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곧 알싸하고 달콤한 마늘 소스의 냄새와 닭기름의 농후한 고소함이 합쳐지자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가게 하는 자극적인 냄새로 조리실이 가득 찼다.
힙합 가수가 몸살이 올 것 같을 때는 이게 최고라며 전설의 먹방을 시전했던 바로 그 마늘 통닭이 시공간을 넘어 도미닉의 손끝에서 완성된 것이다.
“다른 일도 그렇게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완성하면 좋을 텐데.”
“왜 괜히 시비에요. 그냥 칭찬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앗뜨뜨!”
핀잔을 주는 이안의 잔소리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김이 풀풀 나는 통닭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 나 하나 좋자고 하는 거예요? 다 일이다 이겁니다.”
“무슨 일?”
“우리 에버그린에도 이제 제대로 된 양조장이 드디어 들어섰잖아요! 오늘 드디어 처음 만든 맥주가 나온다는데 선물로 괜찮은 레시피 하나 만들어줘야 할 것 아녜요.”
도미닉의 말에 이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워진 탓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핀잔을 주었구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만족을 위해 급한 일을 제쳐놓고 딴 짓을 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자신의 오해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맥주라니? 와인과 브랜디가 주력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아.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요. 와인이나 브랜디는 좀 더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나 봐요. 그런데 그 전까지 뭐 손 빨고 있을 수는 없으니 숙성 기간이 짧은 맥주와 몇 가지 곡주들도 일단 만들 생각이래요.”
“장을 담글 때 사용했던 발효 촉진제를 쓰면 안 되나?”
“그것도 시험은 해 본다는데, 글쎄요. 여전히 고급 와인과 브랜디, 위스키 같은 것들은 촉진제를 쓰지 않고 시간을 들인 것들만 취급한다더라고요. 저야 맛만 좋으면 상관없다 싶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가 보더라고요.”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도미닉.
그래도 ‘장시간 오랜 기간 정성을 쏟으며 만들었다.’는 시간 마케팅은 자신 역시 쏠쏠히 써 먹고 있으니 남 말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시음회는 기사님도 가셔야죠?”
“일단 초대는 받긴 했는데···.”
“그럼 와서 빨리 이거 간 좀 봐 주세요. 기사님이 미식가는 아니더라도 입맛이 되게 대중적이긴 하잖아요. 얼른요. 마늘 소스 푹푹 찍어서 드시면 되요. 아! 맥주도 좀 꺼내오시고. 찬장 위에 아이스 찻잔 있으니까 거기다가 따라오셔야 돼요.”
“···그러지.”
“붉은색 끈이 묶여 있는 맥주니까 다른 거랑 헷갈리면 안 돼요! 그게 오늘 시음회에 나올 맥주라고 그랬으니까 그거랑 어울리는 지 볼 거거든요.”
곧 이안이 맥주가 담긴 병을 가져왔다.
유리병 안에 담긴 맥주는 검은 빛으로 찰랑이고 있었다.
“크! 이거지!”
남부 마탑에서 공수한 아이스 맥주잔에 흑맥주를 따르자 오밀조밀하게 쫀쫀한 거품이 일어났다.
술을 즐기지 않는 이안도 침이 고일 정도의 묵직하고도 매력적인 향기가 훅 풍겼다.
“사장, 여기 있나?”
두 사람이 건배를 하고 마늘 통닭에 흑맥주를 한 잔 마시려는데 조리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이거, 내가 간식 시간을 방해한 것인가?”
VIP, 톰 아저씨였다.
‘아니, 저 양반이 여길 어떻게 알고 왔대?’
도미닉은 속으로 온갖 의심과 경계를 했지만 겉으로 나온 건,
“어휴, 들어오세요. 좀 누추하긴 한데. 식사 하셨습니까? 안 하셨으면 이거라도 어떻게 좀 드셔 보시겠어요?”
친절하기 짝이 없는 미소와 몸짓이었다.
···조금 비굴해 보이기도 했지만 하룻밤 그와 그의 수행원들이 뿌리는 금화를 생각하면 먹던 밥그릇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도미닉이었다.
“아닐세. 그저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야.”
“부탁이요? 그런 것이라면 부지배인에게 이야기를 하시면 처리해주었을 텐데···.”
“그것이 그 부지배인이라는 자의 선에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듯 하여. 또, 이 도시의 거리를 직접 걸어보고 싶기도 했었고 말이야.”
“그러셨군요. 그럼 부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최대한 빨리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도미닉은 맥주잔까지 손에서 내려놓았다.
“내 듣자하니 이 곳에 헬스장이라는 것이 있다지?”
“그렇습니다. 몸을 단련하는 곳이지요.”
“내 경지 높은 기사들만큼은 아니나 검을 수련하고 몸에서 떼어놓질 않네. 게다가 내 수행원들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훈련을 할 곳이 필요하여 그대가 가진 헬스장을 하루에 두어 시간 쯤 임대를 했으면 하네만. 가능하겠나?”
“가능하다 말다요.”
생각보다 VIP의 부탁이라는 것이 별로 무리가 될 만한 일이 아니라 한 편으로는 안도를, 또 한 편으로는 살짝 짜증이 났을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라키에게 말해도 충분히 조율이 되었을 텐데 내 귀한 마늘 통닭이 식어가잖아!
그러나 톰 아저씨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또 하나 더.”
“말씀하시지요.”
“그대와 함께 훈련을 하고 싶군.”
“···예? 저랑요?”
이건 또 뭔 소리야?
도미닉은 물론 관망하고 있던 이안까지 뜬금없는 소리에 톰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그래. 내 수행 기사들의 능력이 출중하기는 하나, 휴양을 온 김에 훈련의 분위기도 바꿔보고 싶지 뭔가.”
“하지만 저는 기사님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병사들보다 실력이 떨어집니다. 톰··· 어르신께 방해만 될 겁니다.”
“그대의 훈련을 담당하는 이가 저 기사라지?”
도미닉의 우려에도 톰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쪽에 조용히 서 있던 이안에게 눈빛을 보냈다.
“예.”
“소드마스터인 싱클레어 노백작의 제자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안이 담담히 질문에 답했다.
“스승이 이리 훌륭한데 배울 것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시장이 불편하지만 않다면 함께 훈련을 하고 싶네만. 아. 당연히 필요한 경비와 수고비는 지불할 테니 걱정 말고.”
그 말에 도미닉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단독 대절에다가 소드마스터 제자임을 먼저 언급헀으니 이건 후려쳐도 할 말이 있지!’
아무래도 VIP 톰 아저씨는 도미닉의 2대 호구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가진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