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76
“그게 무슨 소리에요? 스톤해머 님?”
“쯧쯧-. 불쌍한 인간.”
드워프가 다가오는 조각배와 도미닉의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팔을 잡아 당겨 허리를 숙이게 하곤 등을 두드렸다.
“힘내.”
“그러니까 대체 뭘요?”
“난 가련다. 괜히 골치 아픈 일엔 안 엮이는 게 상책이지. 암, 암! 기사야, 너도 나랑 같이 갈래?”
“…예?”
“음, 아니지. 기사 너는 얘랑 같이 있는 게 낫겠다. 약해 빠진 중요한 인간을 지켜야 하니.”
도미닉과 이안은 멍한 표정으로 묻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땅딸막한 망아지를 타곤 훌쩍 떠나버리는 드워프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게 무슨 소릴까요, 기사님?”
“글쎄.”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죠? 저렇게 부리나케 내빼는 걸 보면.”
“…어쨌든 확인은 해야 하지 않나. 사하르 님이 보낸 이들이니 인수인계를 확실히 해야 하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함을 간신히 한 쪽으로 밀어내면서 항구로 향하는 도미닉.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사막에서 오신 선원들과 유학생들께서는 이쪽으로 줄을 서십시오!”
“여기 관리자 없습니까? 인원 체크를 부탁드립니다!”
“가지고 오신 물품 중에 금지품은 없는지 확인해야 하니 협조해주세요!”
선착장으로 하나 둘 씩 내리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카림을 필두로 한 행정관들이 바삐 움직였다.
“여기 명단과 대조를… 허억!”
“짐은 이게 다인… 오, 세상에, 신이시여!”
그 때, 한 무리의 키 큰 손님들의 신원을 확인하던 행정관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놀람과 감탄이 섞인 소리에 도미닉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 쪽을 향했다.
“헐.”
로브를 썼지만 따로 마스크를 쓰거나 가면을 쓰지는 않아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이들은 하나같이 연예인이 따로 없는 미남, 미녀들이었다.
“기사님.”
“말하라.”
“…이제 아카데미 최고 미남 소리는 못 들으실 수도 있겠는데요?”
도미닉의 말에 황당한 얼굴로 미간을 구기는 이안.
“아무리 봐도 최고 인기인 자리를 위협할 경쟁자가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은데.”
“실없는 소리 그만하지.”
도미닉은 속으로 ‘외국에 공부하러 보낸다고 일부러 외모 순으로 선발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대학의 홍보단이 그랬고 군대의 의장대가 그랬다. 가끔은 보여 지는 것이 일 순위가 될 때도 있는 법이다.
아무래도 사하르 님이 치사하게 외모로 기를 죽일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스톤해머 님은 저 먼 곳에서부터 얼굴이 보였나?’
드워프는 원래 시력이 좋은가?
그가 했던 말이 조금 거슬렸지만, 도미닉은 일종의 비유법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이 자들의 외모는 같은 인간이라고 하기엔 괴리가 너무 심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저 봐, 저 봐. 우리 행정관들 오징어 같잖아.’
나름대로 마을 처녀들에게 은근히 인기가 있는 행정관들도 저들과 붙어 있으니 이목구비 배열 상태가 영 엉망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같은 로브를 입고 있는 걸 보니까 확실히 저기가 딱 키랑 외모를 보고 뽑혀 온 사람들인 것 같네요. 그런데 사막인들 치고는 피부가 좀 흰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군.”
“네? 이상하다뇨? 견제하시는 거예요, 설마?”
“쯧-. 모르겠는가? 하긴, 그대가 알 리가 없지.”
“아, 왜 또 사람을 무시하고 그래요. 한 동안 안 그러시더니.”
“마나의 흐름 이야기야.”
이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나의 흐름이 보이질 않아.”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들이 모두 기척을 숨길 줄 아는 이들이란 뜻이다. 단순히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온 학생들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설마 저들이 모두 무사…?”
“확신할 수는 없으나 확인을 해 보아야겠지.”
이안이 허리춤의 레이피어에 손을 올렸다.
당장이라도 검을 빼어들 기세였다. 그것은 항구에 지원을 나온 노영주님 휘하의 기사들 몇 명도 마찬가지였다. 이안이 검을 든다면 그들도 동시에 저 수상한 이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칼을 겨눌 것이 분명했다.
마나의 흐름 같은 건 보지 못했지만 기류가 바꾸었다는 사실을 감으로 때려 맞춘 도미닉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사하르 님이 설마… 아니지. 에버그린에 노영주님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는 사하르 님이 이렇게 바로 들킬 만한 일을 벌일 리가 없어. 그럼 첩자는 아니다.’
만약 몰래 사람을 심어놓을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눈에 띄기 좋은 방식으로 다수의 사람들을 한번에 묶어서 보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들이 주목 당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황하지 않아.’
오히려 빨리 발견해주길 바라는 듯 한 표정처럼 느껴졌다.
“일단 이야기는 해 보아야겠어요.”
“위험하다.”
“그렇다고 손님을 포박이라도 해서 끌고 가요? 거래고 뭐고 다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내 결정은 변함없다. 내가 받은 명령은 그대의 신변을 지키는 것. 저들의 경지를 나 역시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위험을 무릅쓰겠다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어.”
그 명령, 싱클레어 백작도 잊어버린 것 같다는 말을 하려다 여전히 레이피어에 손을 올린 이안의 손을 보고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뭐, 좋아요. 저도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옳은 선택을 한거다.”
“하지만 대화는 해야 해요. 이상한 사람들인 게 분명한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니까요.”
“그렇지.”
“…뭐하세요?”
“…?”
“얼른 노영주님 모셔와야죠.”
“뭐라?”
황당해하는 이안에게 도미닉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말을 마저 이어갔다.
“소드마스터가 와 있으면 다 해결되는 문제 아니에요? 저 사람들이 아무리 세 봐야 소드마스터를 이기겠어?”
도미닉이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는 이유.
‘세계관 최강자 중 하나가 내 고객님인데 무서울 게 뭐가 있어?’
일단, 영감님이 오시기 전까지 이동은 금지다.
“카림 행정총관!”
한창 리스트를 대조하고 있던 카림이 도미닉의 제스쳐에 모든 과정을 중단시켰다.
***
뙤약볕 아래 기다리게 된 선원들과 하역 노동자들이었지만 별로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여기, 이것 좀 드세요. 이게 요즘 우리 도시에서 유행하는 빵인데 제법 괜찮습니다. 원래는 가시는 마차에서 나눠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으니 이해 좀 해주세요.”
“고맙소. 문제가 생겼다니 별 수 있나.”
사정이 생겨 대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미리 준비했던 음료와 간식을 건네고 자리를 만들어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덕분이었다.
사이사이 돌아다니며 뻣뻣하지 않은 자세로 연신 양해를 구하는 행정관들의 모습도 그들의 마음을 유하게 만들어준 원인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그런데 저 자가 정말 이 도시의 행정총관이오?”
“아, 카림 총관님이요? 네. 저희 시장님의 공식적인 오른팔이시죠.”
“얼핏 보기에는 제국인들의 외모보다는…”
“아! 사막부족과 혼혈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국인의 타 민족 차별의 역사는 유구했고, 사막인들 역시 그런 제국인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곤 했다.
하지만 카림의 존재는 그런 마음의 벽을 허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카림 역시 자신에게 유독 친절하게 굴며 미소를 보내는 사막의 선원들을 보며 처음으로 자신의 피부색에 감사를 할 정도였다.
“슬슬 오실 때 됐죠?”
“조금 있으면 직접 말을 달려서 오실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영주를 모시러 간 건 이안은 아니었다.
급한 일이니 통신구를 사용한 것이다.
‘통신구 값이 대체 얼마야. 어휴.’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조족지혈임에도 불구하고 마도구의 비싼 가격을 여전히 못마땅해 하는 도미닉.
저들 때문에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썼다는 생각에 시선이 곱지 않았다.
게다가 휴식하는 모습을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으니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저 사람들.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같이 배를 타고 왔을 텐데, 그 누구도 선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울리는 이들이 없어요.”
“음.”
게다가,
‘그리고 왜 사람 성의를 무시하고 그래? 저게 얼마나 맛있는 건데. 쳇.’
무엇보다 도미닉의 신경을 건드린 건 저들 중 그 누구도 행정관들이 건네 준 음료와 간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는 것 취급을 하며 눈길조차 두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슬슬 빈정이 상하려던 참이었다.
히이이잉-!
언덕 저편에서 멋들어진 전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이내 사자 같은 기세로 말을 달리는 노영주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세가 어찌나 사납던지 도미닉의 피부에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세상만사 아무 것에도 관심 없는 것처럼 앉아있던 미남, 미녀들도 모두 이 쪽을 바라보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노영주가 일부러 기운을 흘린 것 같았다.
‘무협지 같은데서 보면 살기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하던데, 저 양반, 진짜 그 정도 경지에 오른 거 아냐?’
색색깔의 화려한 꽃무늬 셔츠를 입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 그동안 뭐 잘못한 거 없지?’
도미닉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잘 모셔야겠다고 다짐했다.
“워, 워!”
“노영주님! 미천하고 미력하기 그지없는 이 수하가 능력이 모자라 이렇게 귀찮은 발걸음을 하시게 만들었습니다. 사소한 일로 번거롭게 한 것 같아 어떻게 사죄의 말씀을 올려야 할지 말을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부디 용서를!”
“…이안. 도미닉 이 놈,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러는 게야?”
“스승님의 기세에 놀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푸하하! 이 놈, 이거. 하여간에 대범한 건지, 소심한 건지 알 수가 없구나. 그래, 저 놈들이로구나.”
“예.”
“데려오라.”
도미닉이 하는 짓이 퍽 웃겨서 좀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우선은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노영주가 느끼기에도 확실히 보통 내기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마나를 다루는 방식이 특이하군.’
카림의 인솔을 받으며 다가오는 이들을 훑어 본 노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지를 넘은 분을 뵙습니다.”
낯선 예법으로 인사하는 이들. 우아한데다가 마치 훈련된 무용수처럼 서로가 한 몸인 것 마냥 척척 똑같이 움직였다.
“오호라. 내 경지를 짐작하는 겐가?”
“자연과 동화되는 선각자의 향기가 나시는 분이시라 그저 짐작한 것일 뿐입니다.”
“재미있는 표현이로군.”
도미닉은 옆에 서서, ‘우리말인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라고 생각하며 입을 삐죽였다.
“이 지역의 지배자에게도 인사를 드립니다. 미리 인사하고 싶었으나 경계하는 듯 하여.”
“아, 흠, 흠. 반갑습니다.”
하지만 곧 일행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도미닉에게도 예의를 차리며 인사를 건네 왔다. 여전히 우아함을 잃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 속으로 흉을 보던 스스로가 살짝 부끄러워진 도미닉이었다.
“그래. 수인족은 아닌 것 같은데.”
도미닉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이면 백 퍼센트 담이 올 정도로 격하고 빠르게.
“아, 틀렸나? 그럼… 그래, 엘프겠구먼. 허허. 결국 술탄이 그대들의 도시를 찾은 게야!”
노영주의 말에 은은한 미소를 짓는 그들.
신비의 이종족, 엘프의 등장이었다.
‘드워프에 엘프에. 그렇지. 나올 때 됐지. 왜 안 나오나 했네.’
어휴, 내 팔자야.
도미닉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에는 이제 저 엘프들이 눈을 즐겁게 해 주는 미남, 미녀가 아니라 골치 아픈 일거리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꼬르륵-.
‘그 와중에 배도 고파? 골고루 한다, 골고루 해.’
한숨에 한숨이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