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want to play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백작, 오라버니는 어디 있죠?”
“형님께서는 뒤에 객차에 타고 계십니다.”
“어휴, 이럴 줄 알았어.”
혀를 찬 아드린느 백작 부인이 눈치껏 빠져주자 프란체스카 상단주가 다가와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백작님.”
“네, 반갑습니다. 상단주.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그동안 필리프는 물론, 프란체스카도 상단과 리베리온의 일로 바빠서 브란델 영지를 한동안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는 델파로스 행수를 통해 항상 필리프나 그의 영지에 대한 정보들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 공개된 증기기관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 시대의 혁명이라…… 과연 그럴만한 작품이네요.”
엘프답게 눈과 귀가 밝은 프란체스카는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기차를 발견했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증기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커다란 덩치와 영혼을 울리는 듯한 특유의 기적 소리에 놀라긴 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경탄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기관차 뒤에 끌려오고 있는 10량이 넘는 객차들이었는데, 그걸 끌고도 기차의 속도가 증기차보다 빨랐었다.
‘어떠한 도로보다 매끄러운 철도 위로 기관차가 수많은 사람과 화물을 싣고 마차나 운하의 배보다 더 빨리 수송한다면?’
시간은 돈이다.
상단을 운영하며 이 같은 사실을 잘 아는 프란체스카는 보다 많이, 보다 빨리, 보다 안정적으로 수송이 가능한 기차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미래에 분명 대세가 될 거라고 믿었다.
“철도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첫 번째 노선을 만들 줄은 몰랐어요. 따로 비결이 있었나요?”
“유입된 인구가 많아서 철도 건설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하기 쉬웠습니다. 거기다 드워프 기술자들 덕분에 철강 생산량도 늘었고, 증기기관의 개량도 빨랐지요.”
거기다 철도 프로젝트를 진행한 빌레펠트나 드워프들의 의욕도 상당히 강했다.
그들은 틈만 나면 기차 모형을 만들 정도로 철도 덕후가 된 상태였다.
“무엇보다 상단주께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준 덕분이지요.”
“호호호, 그렇게 절 추켜세워 주실 줄은 몰랐네요.”
“사실인데요, 뭐.”
아무리 인력이 넘쳐나고, 기술이 있으며, 담당자의 의욕이 강해도 돈이 없으면 못 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4,000만 달란트라는 거금을 투자한 프란체스카 공로를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개발된 기관차의 이름을 프란체스카 호라고 지었습니다.”
“네? 정말인가요?”
필리프는 기관실 문에 달린 청동 명패를 가리켰다.
거기엔 ‘001 프란체스카’라는 글자뿐만 아니라 엘프 여성의 옆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
이를 본 프란체스카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어머나! 정말 영광이에요. 라테란 최초의 기차에 제 이름이 붙다니!”
그녀는 진심으로 감격했다.
미래를 보고 투자를 했지만, 필리프가 이렇게 마음을 써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으니까.
“자, 이제 시승식을 할 겁니다. 객차에 타시죠.”
이미 객차의 문은 열려서 귀빈들이 차례로 탑승하고 있었다.
초청한 귀족들뿐만 아니라, 가신들이나 영지에서 가장 장수한 노인, 마탑의 영재로 뽑힌 아이들, 영지군에서 복무했던 퇴역병 등 일부 영민들도 시승객으로 탑승했다.
프란체스카도 객차로 가다 문득 돌아서 필리프에게 물었다.
“영주님은 같이 안 타시나요?”
“저는 오늘 기관사라서요.”
“네? 직접 모신다고요?”
“당연하죠. 훗날 역사에 길이 남을 행사가 될 테니까요.”
프란체스카를 객차에 태운 필리프는 미리 만들어둔 기관사 모자까지 눌러쓰며 기관차에 올랐다.
곁에서 이를 보고 있던 마우가 혀를 찼다.
‘취향이니 존중해 달라고! 그리고 우리 세계엔 왕이 직접 기차를 몰기도 했단 말이야!’
20세기 초 불가리아 왕국을 다스렸던 차르 보리스 3세.
웬만한 기차 덕후들이 모형 기차를 갖고 놀고 있을 때, 이 사람은 직접 실물 기관차를 모는 취미 생활을 했다.
그것도 보통 기차가 아니라 당대 유럽에서 최고급 기차였던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몰았다.
‘이 프란체스카 호가 오리엔트 특급 열차보단 못할지 몰라도 스티븐슨 부자가 만든 로켓 호보다는 나을걸.’
영국에서 최초로 만든 상업용 증기기관차가 로켓 호다.
그보다 크기도 훨씬 크거니와 출력도 더 높다.
전날 한 기관차 시운전에서 속도가 50∼60킬로미터가량 나왔다.
“빌레펠트! 출발 신호 올려!”
“알겠습니다, 사도님!”
기관이 식지 않도록 화로에 석탄을 퍼 넣던 빌레펠트가 줄을 당겨 기적을 요란하게 울렸다.
빠아아아앙!
치이익! 칙! 칙칙폭폭!
증기압에 피스톤이 돌면서 기관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출발한 라테란 최초의 기차 프란체스카 호는 실론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
엘디르의 사도를 찾아 마침내 브란델 영지에 당도한 샤루크 일행.
예상보다 늦었는데, 귀찮게 추적하는 붉은 방패 기사단 놈들을 따돌리느라 시간이 걸린 탓이었다.
“응? 저게 뭐지?”
마왕은 가도 옆에 있는 이상한 길을 발견했다.
길 위에 올라가서 보니, 단단히 다져진 자갈 위에 두꺼운 나무를 깔고 그 위에 긴 쇳덩이를 올려 말뚝을 박아 놓았다.
“아버님, 이건 광산에서 광석을 옮기기 위해 깔아놓는 궤도 같습니다.”
카라의 말에 마왕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 광산 같은 건 안 보이는데? 더구나 나무나 돌이 아니고 비싼 철을 깐다고? 그것도 저기 멀리까지?”
“엘디르의 사도는 상당히 부유하고 드워프들도 마음대로 부린다고 하더군요.”
“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척 봐도 질 좋은 강철.
쇳덩이 하나만 뜯어내도 질 좋은 강철 검 서른 자루는 너끈히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엘디르의 사도는 이런 걸 왜 허허벌판에다가 깔아놓았을까?
무언가 목적이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한 돈지랄인지?
샤루크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말리크시여, 저쪽에서 뭔가 오고 있나이다!”
주변을 경계하던 부하가 영주성 쪽을 가리켰다.
머리가 시커먼 거대한 뱀(?)이 검은 연기와 괴성을 토하며 쇠로 된 길을 따라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응? 저게 뭐지?”
“아버님, 일단은 피하시지요.”
처음 보는 괴물에 경계심을 느낀 카라와 부하는 서둘러 철도 옆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마왕 샤루크는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질주해오는 괴물을 바라볼 뿐.
‘인간들의 기척이 다수 느껴지는군. 근데 인간들은 어디에 있지? 괴물에게 잡아먹힌 건가?’
빠아앙! 빠아아앙!
괴물은 비키라는 듯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샤루크는 코웃음을 쳤다.
‘훗, 건방지군. 마하트바탄을 다스리는 말레크이자, 인간들에게 공포의 화신인 이 몸에게 비키라는 것이냐?’
샤루크는 마기를 끌어 올렸다.
소싯적 지하 마계에 갔을 때, 저것보다 큰 마수도 여럿 보았다.
포악한 그놈들도 자신의 강력한 마기를 감지하면 어쩔 줄을 모르고 꼬리를 말곤 했다.
그러니 이 검은 머리 큰 뱀도 깜짝 놀라 멈춰 설 게 틀림없다.
빠아아아앙!
“크억!”
“아버님!”
질주하는 괴물, 아니, 열차에 부딪혀 튕겨 난 마왕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땅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깜짝 놀란 카라와 부하가 황급히 달려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아버님, 괜찮으십니까?”
잠시 꿈틀거리다가 벌떡 일어난 마왕이 광소를 터트렸다.
“크크크…… 크하하하핫!”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아주 당돌하고 거친 놈이구나! 마음에 들어! 아주 마음에 든다! 크하핫!”
기뻐하는 샤루크의 모습에 카라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내 저었다.
마왕은 예전부터 그랬다.
그는 비굴하기보다 용감히 맞서는 자들을 좋아했는데, 이는 부하뿐만 아니라 적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강하고 용감한 적과 싸울 때 느끼는 흥분과 승리의 쾌감이 무엇보다 달콤하다나?
“좋아, 엘디르의 사도를 눌러주고 돌아갈 때 저 괴물을 잡아가야겠다.”
마하트바탄으로 끌고 가서 길들여 타고 다니리라.
그런 생각으로 샤루크는 열차가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반짝이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
“아, 방금 뭐였지? 설마 사람은 아니겠지?”
기관차 밖으로 고개를 내민 필리프는 방금 지나친 철길을 바라보았다.
뭔가 시커먼 인영 같은 게 철로 가운데 서 있기에 기적을 요란하게 울렸는데,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부딪쳤다.
“역사적인 첫 운행이 사고로 얼룩지면 곤란한데…….”
필리프의 우려에 부기관사를 맡고 있던 빌레펠트가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십쇼, 사도님. 사람이었다면 기적 소리를 듣고 멍청하게 서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겠지?”
“예, 분명히 길 잃은 곰이나 오크 같은 놈일 겁니다.”
아니면 지구의 고라니 같은 놈이거나.
두 사람이 별일 아닐 거라 낙관할 때 마우가 나타나 물었다.
‘어? 너 방금 벌어진 일 못 봤어?’
‘아, 그게…….’
필리프는 좀 전에 검은 인영을 쳤는데, 사람인지 곰인지 알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슬쩍 열차의 앞부분을 살피고 온 마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안심한 필리프는 계속 기차를 몰았다.
얼마 후, 프란체스카 호가 실론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메시지 창이 펼쳐졌다.
[엘디르 님께서 혁명적인 문명의 이기를 개발한 사도에게 50,000포인트를 하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활약을 기대하겠다고 하십니다.]‘오, 공짜 포인트다. 개꿀!’
필리프가 좋아할 때 슬그머니 메시지 창이 하나 더 올라왔다.
‘어, 음. 두 번째 기차에 붙여드리지요.’
[내가 명색에 신인데 두 번째로 취급될 순 없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은하철도를 만들면 거기에 붙여달라 하십니다.]‘헉! 디르 형, 그건 죽었다 깨도 못 만들어!’
필리프가 이렇게 메시지 창을 보고 있을 때 시승객들은 객차에서 내리며 찬사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와, 벌써 도착하다니!”
“2시간도 안 걸렸어! 마차를 타면 한나절은 걸렸을 텐데 말이야!”
일부 승객들은 멀미 때문에 고생했지만, 그럼에도 기차의 빠른 속도에 대해서는 호평했다.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다가온 프란체스카 역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백작님, 왜 이것을 철마라고 하는지 알겠어요. 단지 쇠로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쉬지 않고 빠르게 달리는 굳센 모습 때문인 거죠?”
“네, 맞습니다.”
단단한 성질 때문에 철은 강하고 굳센 이미지의 대상을 표현하는 접두사로 쓰이곤 했다.
철인, 철옹성, 철기병 등등의 단어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 노선을 계속 만드실 계획이시죠?”
“그렇습니다. 지금 2개 노선을 더 건설 중입니다.”
1번 노선이 영주성에서 실론 마을을 잇는다면, 2번 노선은 프릴 요새와 영주성을 연결한다.
그리고 마지막 3번 노선은 영주성에서 구 미라보 영주성인 미라보빌레를 잇기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프란체스카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백작님, 혹시 캄파니아까지 노선을 이으실 계획은 없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