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want to play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필리프여,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게냐?’
리베르타는 자신의 도움도 거부한 채 발가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필리프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마린이 외쳤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달이 성화(聖化) 십자성 자리를 지나기 전에 결계를 발동시켜야 한다니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달은 별빛을 받아들여 빛나는데, 특정한 능력을 가진 별빛을 지상으로 뿌려줄 때 결계를 완성하고 발동해야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즉, 때를 놓치면 빙의한 두 여신이 힘을 쓰더라도 신성 결계가 아르트리아 동부를 정화할 만큼 힘을 발동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다들 위험하다. 특히 필리프가…….”
“야, 누군 걱정 안 되는 줄 알아?”
마린도 힘겹게 버티는 헨슨을 보면 금방이라도 결계 구축 따위 때려치우고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언데드 사태를 끝낼 수 없다.
꿋꿋이 싸우고 있는 헨슨도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네 남친이 말했잖아. 믿으라고 말이야.”
그리 말한 마린은 황급히 물의 방어막을 전개했다.
그러자 막 그녀들에게 쇄도하던 잔상들이 튕겨 나갔다.
“빨리 결계를 완성하자. 그게 우리가 이기는, 그리고 동료들을 구하는 길이라고.”
“……알았다.”
어쩌다 보니 천방지축인 바다의 여신 이오라에게 충고를 듣게 될 줄이야.
마음을 다잡은 리베르타는 필리프를 향해 격려를 보냈다.
‘너를 믿겠다, 반드시 이기거라!’
그녀의 강한 염원에 반응한 영능이 날아가 혈투를 벌이고 있는 필리프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
‘뭐지? 갑자기 온몸에 활력이 느껴져.’
쉴 새 없이 발가스의 공격을 받아 내던 필리프.
그는 갑자기 고통이 줄어들고 몸이 가벼워지자 고개를 갸웃했다.
‘리브 녀석이 한 건가? 쳇, 결계에나 신경 쓰라고 했는데…….’
아무튼 그 덕에 전의가 높아진 그는 자신이 생각한 무모하고 위험한 방법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었다.
‘이대로 막기만 해도 죽는 건 마찬가지라고!’
마우의 만류에도 불구, 필리프는 발가스를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카앙! 캉! 캉!
발가스의 공격에 맞은 성갑이 우그러지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구성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 자식이 무슨 속셈이지?’
지금까지 자신의 공격을 막거나 피한다고 물러서던 필리프가 달려들자, 발가스는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생각하는 건 관두자.’
지금은 놈을 죽이는 데만 전념해야 할 때.
그리 마음먹은 발가스는 필리프의 목을 노려 어둠의 칼날을 전력으로 내리쳤다.
그런데 그 순간,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 저건!”
격돌하기 직전, 필리프가 성갑의 아공간에 저장해 둔 화약과 폭탄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거기에는 사용하고 남은 폭탄뿐만 아니라, 나중에 만들기 위해 비축해 놓은 화약과 인화성 물질들까지 포함되었는데, 그 양이 결코 적지 않았다.
‘후후후. 이 정도면 성채 하나를 통째로 날리기에 충분하지!’
그리고 그에게는 폭발력을 증폭시킬 수단도 있었다.
필리프는 불의 성령을 온몸에 두르며 외쳤다.
“날려버려, 브리간티아!”
“이런 미친놈이……!”
황급히 공격을 거둔 발가스가 마기로 방어막을 펼치려 했지만, 그보다 필리프의 몸을 휘감은 브리간티아가 폭탄을 격발시키는 게 더 빨랐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신전 한쪽 벽면이 터져나갔다.
필리프가 폭발력을 한쪽 방향으로 집중했기에, 대신전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다.
“커어억!”
엄청난 폭발력에 발가스는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몸은 폭발에 휘말려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그림자 분신술을 위해 음차원 에너지로 신체 능력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대장장이 새끼! 몸을 회복하는 즉시 뼈까지 씹어먹어 줄 테다!’
발가스는 뒤로 날아가며 원한을 터트렸다.
그런데 전신 발리안을 모시는 아미엥의 대신전 정원 한쪽 구석에 발리안의 석상이 서 있었다.
용맹스럽게 창을 앞으로 치켜들고 있는 석상을 향해 발가스의 몸이 속절없이 날아갔다.
푸우욱―!
“이런…… 제…… 길!”
하필 급소인 심장이 관통당하는 바람에 발가스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의 숨이 멎자, 사방에서 날뛰던 잔상 역시 사라졌다.
“어? 달링, 끝난 거야?”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테리는 시리아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황급히 필리프에게 달려갔다.
발가스를 날려버린 폭발에 필리프도 날려가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기 때문.
“필리프여, 정신 차리거라! 얼른 눈을 뜨거라!”
테리보다 앞서 필리프에게 달려온 리베르타는 황급히 필리프의 상태를 살폈다.
필리프가 폭발력을 한쪽 방향으로 제한했지만, 그 후폭풍이 작지 않았다.
성갑은 완전히 부서진 데다 전신은 으스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만약 리베르타가 좀 전에 걸어준 영능이 아니었다면 그 역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으그그…… 진짜 말 안 듣네…… 결계나 빨리 완성하라니까…….”
“닥치거라, 바보 녀석! 결계는 이미 완성했다!”
“그. 그러냐?”
“만약 또다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면 용서치 않겠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인 리베르타는 필리프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눈이 동그래졌던 필리프는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가신들의 입가에는 그보다 더 진한 웃음이 걸렸다.
***
리베르타와 마린은 필리프를 비롯한 부상자들을 응급처치한 뒤에 서둘러 결계를 발동시켰다.
어느새 달이 성화 십자성 자리를 반 이상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
‘부디 늦지 않았기를!’
결계의 중앙에 자리한 두 성녀가 고대의 성가를 부르며 영능을 발현했다.
그런데 성가가 한참 이어졌음에도 결계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연히 일행의 마음은 불안해졌다.
“왜 발동하지 않지? 결계를 뭔가 잘못 만든 건가?”
“므하핫! 리브 아가씨가 그런 실수를 하실 것 같나.”
“그래도 발가스란 마족 녀석이 심하게 방해했으니까…….”
부디 제대로 발동하기를!
이런 모두의 염원이 통했는지 잠시 후 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결계에서 솟구쳐나온 성스러운 빛이 반쯤 무너져 내린 신전의 천장을 지나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 빛은 일정한 높이에 도달하자 방향을 바꾸어 북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와아아! 성공했다!”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동료들을 보며 필리프는 리베르타에게 물었다.
“저 빛이 다른 신전과 이어진다고 했지?”
“그렇다. 성스러운 빛이 신전 여섯 군데를 거쳐 다시 돌아오는 순간 신성 결계가 완성될 것이다.”
리베르타의 말을 들은 필리프는 부디 다른 신전에서도 결계 구축이 성공했길 빌었다.
그리고…….
“주군! 성스러운 빛이 돌아옵니다!”
“다들 성공했구나!”
어둠을 꿰뚫고 돌아오는 성스러운 빛을 본 일행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만세를 불렀다.
그렇게 아미엥에서 뻗어나간 성스러운 빛이 브레트아를 포함한 여섯 군데의 신전을 거쳐 아미엥의 신전으로 돌아오자, 하늘에 거대한 빛의 육망성이 완성되었다.
바다 건너 바르디아 공국에서도 목격된 이 육망성에서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욕심으로 마기와 음차원 에너지가 넘치던 죽음의 땅에 서서히 생명의 기운이 일어났다.
***
“달려! 언데드가 되기 싫으면 죽기 살기로 달리라고!”
“여기서 뒤처지는 놈은 절대 용서 안 한다!”
몽세나 자작이 이끄는 유인 부대는 현재 거대한 언데드 군단에 쫓기고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 정예 전력이라 해도 십만이 넘는 언데드를 유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언데드들의 어그로를 계속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인간들과 일정 이상 거리가 멀어지거나 시간이 지나면 어그로가 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인 부대들은 자주 언데드들을 공격해 어그로를 유지해줘야 했다.
다음으로 어려운 것은 자칫 방심하는 순간 언데드들에 포위되기 십상이라는 거다.
돌파하다 낙오되는 경우도 있지만, 언데드 무리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기에 정말 잘 피해 다녀야 했다.
“지금쯤이면 신성 결계가 발동해야 하는데…….”
“그런 거 생각할 시간에 달리기나 하라고!”
그렇게 유인 부대가 몇 시간 동안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을 때였다.
“으악! 앞에 또 언데드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꼬? 할 수 없구마. 정면 돌파한데이! 보병 전차로 길을 뚫어라!”
몽세나 자작의 명령에 보병 전차들이 일제히 앞에 나타난 언데드 무리를 향해 달려갔다.
퍼어엉! 펑! 화르르륵!
쿵! 우드득!
선두에 선 몽세나의 1호차가 포탄과 화염을 내뿜고, 언데드들을 말 그대로 깔아뭉개며 활로를 열었다.
그런데 그때 관측수의 다급한 보고가 날아들었다.
“3호차와 4호차가 고장 났습니다!”
“뭐?”
깜짝 놀란 몽세나는 해치를 열고 올라가 뒤를 바라보았다.
관측수의 말대로 두 대의 보병 전차가 멈춰 서 있었는데, 캐터펄트가 끊어졌는지 한 자리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니기미! 3호차와 4호차는 버린다! 빨리 옮겨 타레이!”
몽세나의 지시에 3호와 4호 보병 전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내려서 다른 전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차병들이 탑승하자마자 몽세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번 돌격을 멈춘 게 실수였던 걸까.
언데드들이 앞뒤로 유인 부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언데드 무리의 쇄도에 모두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쏴라! 아끼지 말고 다 쏴삐라!”
퍼엉! 펑! 타타타탕!
화르르륵!
좌충우돌 3대의 보병 전차와 서부 연합 기사단은 전력을 다해 포위망을 뚫고 나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포위망을 뚫는 과정에서 3분의 1가량의 병사들이 따라오지 못하고 그만 포위망에 갇혀버린 것이다.
“저, 저런! 쟈들 우야노!”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가야 합니다!”
부관이 그냥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몽세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동안 반란군을 진압하며 함께 사선을 넘나든 이들을 나 몰라라 팽개칠 수 없었기 때문.
“전차 선회해라!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사는 기다!”
몽세나는 보병 전차들을 돌려 아군을 구하러 나섰다.
그런데 몽세나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가 탄 1호차 역시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지난 이틀 동안 아미엥까지 오느라 보일러를 계속 돌린 데다, 지난 몇 시간은 언데드를 유인하느라 전력으로 가동하는 바람에 증기기관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퍼엉! 펑!
“아악!”
“내 눈! 내 누우운!”
보일러가 터지며 불과 수증기를 뒤집어쓴 병사들이 해치를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몽세나도 등에 화상을 입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보병전차가 멈추자 수많은 언데드들에 포위되고 만 것.
그그그그그!
키이이이이!
언데드 물결이 다가오는 걸 보며 몽세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서 이리 죽는 긴가.’
그런데 바로 그때.
하늘 위로 빛이 가로지르더니 거대한 육망성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신성력의 눈송이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크오오오오!
눈송이에 맞은 언데드들은 불길에 닿은 것처럼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었다.
그러다 재가 되어 소멸하기도 했고, 언데드가 된 지 얼마 안 된 이들은 다시 이성을 되찾아 인간으로 돌아왔다.
“살았다! 신성 결계가 발동했어!”
“으하핫! 해냈어! 작전이 성공했다고!”
다들 환호하고 얼싸안는 가운데, 긴장이 풀린 몽세나 자작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 진짜 십년감수했구마. 더 이상 이런 흉한 일이 없어야 할 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