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want to play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필리프가 별실에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카를이 반색을 지었다.
“후작, 그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어요.”
“예, 말씀하십시오, 폐하.”
카를이 권하는 자리에 앉은 필리프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사과부터 해야겠군요. 미안해요, 후작. 이번 반란 진압의 제일 공신인 그대에게 원래 공작 위를 주고 싶었는데…… 내 마음대로 결정하긴 힘들었어요.”
카를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마르테즈 공작과 마르켈 후작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외면했다.
‘안 봐도 Y튜브군.’
피식 웃은 필리프는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폐하. 소신은 정말 이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공작 위를 주셨으면 다른 귀족들의 질투심만 커질 뻔했습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지만, 3년도 안 되어서 남작에서 공작까지 작위가 수직 상승하는 걸 보고 배 아파하지 않을 귀족은 없을 것이다.
딱히 높은 작위나 영지에 욕심이 없었던 필리프는 서둘러 영지로 돌아가 바디 체인지의 효과나 ‘황금의 손’ 스킬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것도 제련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박일 텐데 말이야.’
핵폭탄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으면 그걸로 마계를 아주 화끈하게 터트려 주고 싶었다.
‘후후, 아무리 그래도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겠지. 하지만 백린 소이탄이나 독가스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 마신을 강림시킨다고 사람 귀찮게 만드는 마족 놈들을 쉽게 족칠 수 있을 텐데……!’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던 필리프에게 카를이 본론을 꺼냈다.
“후작은 볼자드 공작을 지원한 밀란 공국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볼자드 공작의 저택에서 밀란 공국이 막대한 자금과 용병을 지원해 주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비밀 장부에는 밀란 공국에서 받은 자금과 용병의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이는 명백한 내정간섭이었다.
더구나 밀란 공국은 언데드 사태가 터진 직후 동부에서 도주한 반역자들을 송환하라는 요구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었다.
“폐하, 브란델 후작과 상의하고 말고도 없습니다. 이건 당연히 응징해야 합니다.”
마르켈 후작의 말에 마르테즈 후작이 반대하고 나섰다.
“나도 응징에는 동의하네. 하지만 지금 다시 군대를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아.”
이번 반란과 언데드 사태로 아르트리아 왕국의 국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언데드로 인해 동부는 절반 가까이 폐허가 되었고, 반란을 진압하느라 소모된 군사력과 자금도 적지 않았기 때문.
이를 모두 회복하는 데 10년이 걸려도 모자랄지 모르는데, 다시 전쟁을 한다?
일단 영주들부터 반대할 게 분명했다.
“그럼 이대로 밀란 놈들을 내버려 두잔 말씀입니까?”
“그냥 내버려 두자는 게 아니잖나. 일단 어느 정도 국력을 회복한 뒤에 응징을 하자는 말이네.”
두 사람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자 카를은 필리프를 바라보았다.
항상 번득이는 활약을 해 온 그라면 뭔가 적절한 대책을 내놓을 것 같았으니까.
***
“음, 소신이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필리프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밀란 공국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고 그렇다고 전쟁도 힘들다면, 놈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것을 뜯어내자고.
“특히 동부 지역 재건에는 많은 인력과 물자가 필요합니다. 밀란 공국에서 뜯어낸 보상으로 이를 충당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놈들이 순순히 응하겠나?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협상단을 보냈을 텐데.”
마르테즈 공작의 물음에 필리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놈들도 우리 사정을 알기에 무시로 일관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럴 수 없도록 압박을 가하면 됩니다.”
“압박? 사신을 보내서 으름장을 놓거나 가까운 국경에 군대를 보내 무력시위라도 하자는 건가?”
너희가 반란군을 지원하는 바람에 우리 왕국이 큰 피해를 입었으니, 보상을 하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
이 같은 무력시위는 이미 대신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하지만 밀란 공국은 요새와 성채가 많아서 방어전에 유리하네. 어지간한 무력시위론 어림도 없어.”
공국을 진짜 겁먹게 하려면, 다수의 군대를 동원해야 하고, 그나마도 진짜 쳐들어갈 것처럼 보여야 한다.
마르테즈 후작의 부정적인 말에 필리프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꼭 군사적인 압박만 정답은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압박해도 되고, 비도덕적인 국가임을 지적하며 공왕가에 비난을 가해도 되지요”
필리프의 설명에 무언가를 떠올린 카를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참! 우리에게는 훌륭한 우방국이 있지요. 그들을 통해 외교적인 압박을 가하면 되겠네요! 밀란 공국에 경제적인 압박과 동시에 비난 공세를 퍼붓는 거예요!”
“폐하, 도시 국가 연합이나 신성 제국을 끌어들이자는 겁니까?”
“맞아요, 공작. 두 나라라면 우리를 지지해 줄 거예요.”
일전 신성 제국과 도시 국가 연합의 전면전을 중재해 준 게 아르트리아 왕국이다.
그 아르트리아 왕국이 도움을 요청하는 데 과연 두 나라가 가만히 있을까?
게다가 여기에는 훌륭한 명분도 있다.
밀란 공국이 지원한 볼자드 공작의 배후에 최상급 마족이 있었다는 사실.
‘밀란 공국이 마족과 손을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한마디면, 총통은 몰라도 교황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어쩌면 율리우스 총통도 압박에 나설지 모른다.
수도 폼페이아 인근에 있던 마족 소굴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난 적이 있었기 때문.
두 강국이 나서서 압박하는데도 불구하고 밀란 공국이 계속 거부하면, 마족과 결탁한 ‘악의 축’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폐하, 외교적인 압박은 분명 통할 겁니다. 신성 제국과 도시 국가 연합에 사신을 보내십시오. 그리고 볼자드가 밀란 공국과 결탁한 증거와 최상급 마족이 그의 배후에 있었던 증거들을 보이십시오.”
두 나라가 힘을 합쳐 대륙을 어지럽히려는 불량 국가를 타도하자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면, 다른 국가들도 숟가락을 얹으려고 가세할 가능성이 높았다.
한둘도 아니고 여러 나라가 나서면 밀란 공국은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고, 이를 피하기 위해 결국 아르트리아 왕국에 고개를 숙이고 나올 수밖에 없다.
‘역시 브란델 후작이야! 그에게 물어보길 잘했어!’
예전보다 더 반짝이는 눈이 된 카를은 필리프를 향해 말했다.
“후작은 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그대에겐 서부 같은 변경이 아니라 좀 더 큰 무대가 필요할 거라 봐요. 그러니 이참에 중앙 정계로 들어오도록 해요.”
과거보다 훨씬 강한 권유에 필리프는 내심 한숨짓다가 카를을 설득하고 나섰다.
“폐하, 일전에도 말했지만, 소신은 엘디르 님의 사도입니다. 지하 마족들이 나날이 마각을 드러내고 있는 이때, 사도로서의 사명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그 사명은 중앙 관료로서 병행해도 되지 않나요?”
“폐하께는 이미 훌륭한 측근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이도 젊고 경험도 적은 제가 나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더욱이 지금은 폐하의 걸림돌이 될 세력도 일소되었으니까요.”
필리프의 지적대로 카를의 가장 큰 정적인 공주파와 공작파 양쪽이 모두 소멸했다.
더 이상 왕권을 위협할 세력이 없는 상황이라 카를은 필리프를 붙잡아 둘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있을 것 같은데…….”
“폐하께서는 소신 없이도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필리프는 카를이 일부러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이미 이번 반란과 언데드 사태를 훌륭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소신이 보기에 폐하는 명군으로서 자질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그래야 소신도 안심하고 사명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필리프에게 몇 번 더 권해 본 카를은 그가 계속 사양하자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신이 주신 사명이 중요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죠. 대신 승전 축하 연회에는 꼭 참석해 주길 바라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담판을 지은 필리프는 정중히 예를 취한 뒤 물러났다.
그가 떠난 후, 카를은 마르테즈 공작에게 물었다.
“후작의 말이 사실일까요? 마족들의 준동이 심해지고 있단 이야기 말이에요.”
카를은 필리프가 중앙 정계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고 핑계를 댄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마르테즈의 생각은 달랐다.
“왕국 역사에 없던 언데드 사태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합니다. 그리고 정보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요즘 브란델 후작과 동행하는 두 성녀의 표정이 어둡다고 합니다.”
“뭔가 상황이 안 좋은 건 사실이라 이거군요. 하, 정말 대륙의 운명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성녀들이 침울한 진짜 이유.
이를 모르는 그들은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하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
‘이젠 더 이상 영입하려고 안 하겠지.’
왕의 구애(?)를 뿌리치는 데 성공한 필리프가 만족한 얼굴로 숙소로 배정받은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어? 저건 리베르타잖아.”
리베르타는 저택 정원의 연못 앞에 우두커니 앉아 멍하니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필리프와 테리는 이 모습을 저도 모르게 숨어서 지켜보았다.
“혹시 어디 아픈가? 요즘 계속 낯빛이 안 좋은데…….”
“신성 결계를 발동하느라 신성력을 많이 소모한 후유증이 아닐지요? 요즘 마린의 상태도 썩 좋지 않아 헨슨 경의 걱정이 큽니다.”
“하긴, 그 까불이가 요즘 잠잠하더만.”
그래도 쓰러진 것은 아니어서 며칠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리베르타의 우울한 기색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우야, 리베르타가 왜 저런지 알고 있냐?’
‘왜 짜증 내고 난리냐?’
하악질을 더한 마우의 비난에 필리프가 어리둥절할 때, 녀석과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게 다 후작 나리 탓이오!”
옆에 있는 바위 뒤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 누군가가 한 말이었다.
“엥? 드레이크 선장이 여긴 왜……?”
“그야 아가씨가 걱정되어 지켜보고 있었지!”
누구보다 먼저 리베르타의 변화를 발견했던 드레이크는 필리프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리브 아가씨는 원래 소극적이고, 수줍음이 많아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투르셨소. 성녀가 되신 후로 꽤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런 점에선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아 보였소.”
하지만 필리프에게는 달랐다.
조금씩 마음을 열더니 좋아한다는 표현을 했으니까.
아미엥 대신전에서 최상급 마족과의 싸움이 끝난 직후 그녀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필리프를 부둥켜안은 게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솔직히 아가씨 입장에선 진짜 많이 섭섭하실 거요. 그동안 좋아하는 사내를 위해 헌신했음에도 돌아오는 보상이 개뿔도 없으니!”
투덜대던 드레이크는 필리프를 째려보며 물었다.
“혹시 후작 나리는 우리 아가씨가 싫은 거요? 돈 많은 귀쟁이 여자가 더 낫다고 본다거나…….”
“아니, 그렇지 않소. 리브는 내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오.”
“므하핫, 근데 왜 그 소중한 사람에게 감정 표현을 똑바로 하지 않는 거요?”
드레이크의 비난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필리프의 가슴에 쿡 박혔다.
사실 생각해 보면 비난이 아니라 그의 칼이 목으로 떨어져도 할 말이 없었다.
브란델 영지가 이만큼 커질 수 있었던 데에는 리베르타의 공이 컸다. 괜히 가신들이 사실상 그녀를 영지의 안주인으로 대접하는 게 아니다.
그런 그녀에게 본인은 어떻게 대했는가.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면서 이리저리 미루고, 감정을 감추기만 했다.
‘쩝, 나란 놈은 진짜…….’
몰려드는 자괴감에 깊은 반성을 한 필리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더 이상 피하거나 감춰서는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