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96)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96화
이건, 이전에도 느껴 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
귀 안에 솜뭉치를 쑤셔 넣은 것처럼 먹먹하고,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그런.
“――?”
그러니까, 이걸 낫게 하려면….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면 됐던 거 같은데.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이 맞았다.
백광으로 가려졌던 시야가 천천히 돌아오면서, 마치 물고기가 뻐끔거리는 것 같았던 소리들이 점차 정확하게 들려 오기 시작했다.
“…용 연습생, 김춘용 연습생!”
“허억, 네, 네!”
어느새 내 앞으로 불쑥 다가온 MC, 최가온 선배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꽃다발을 안겨 줬다.
“―데뷔를 축하합니다! 6위예요!”
그리고 그 순간.
괜찮아질 듯 말 듯. 억눌려 있던 감각들이 활짝 열리며, 선명한 현실감이 나를 반겼다.
…아, 나다.
두 번째로 맞이한 [타겟팅 스타>에서 또, 내가 6위로 데뷔를 했다.
“하, 하하….”
결국에는, 엑스와 나눈 계약의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한 번 현실을 인지하고 나니, 주변 모습이 명확히 눈에 들어왔다.
“진우야. 고생 많았다, 정말….”
내 옆에서 함께 결과 발표를 듣기 위해 서 있던 진우를 위로하는 연습생들.
“뭘요. 우리 빨리 춘용 형이나 축하해 줘요!”
그리고, 개운하다는 듯 씩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진우.
와아아아아!!
무대 아래 스탠딩석에서, 내 슬로건을 들고 기쁜 얼굴로 마구 흔드는 팬들.
“춘용아! 여기, 여기 봐 줘!”
그리고 그중 제일 앞에 서서, 나를 향해 카메라 렌즈와 함께 말을 거는 슈팅 렉스 누나.
“어….”
찌릿할 정도로 기분 좋은 자극들이었다. 그 자극의 향연 속에서 나는 두 눈을 느리게 끔뻑이며 정확히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큰일이었다.
분명, 지금 표정 진짜 바보 같아 보일 텐데. 데뷔하게 된 애가 이런 얼굴을 하면 안 되는데.
적어도, 슈팅 렉스 누나가 제일 좋아해 주는, 약간은 삐죽거리고 건방진 얼굴을 보여 줘야 하는데.
“와아아악!”
그리고 내 그런 생각을 막기라도 하려는 건지, 주변에서 와르르 쏟아지듯이 나를 끌어안는 팔들이 느껴졌다.
“진짜 축하해, 춘용!”
“형, 축하해요. 제 몫까지 열심히 활동해 주셔야 해요!”
“춘용 아니키이이!”
“봐라! 또 가오옌이 맞았다! 암, 가오옌은 틀리는 법이 없지! 세상의 법칙이 가오옌을 따르는 거다!”
“Holy, 춘용 형! Jesus, 정말― 너무 기뻐요!”
료타, 가오옌, 단상에서 넘어질 기세로 달려온 로건. 원협 형, 리밍쉔.
“와 씨, 용용 형!”
“우왓, 춘용아! 우리 이제 진짜 한 팀이야!”
그리고, 이제 애로우즈가 아닌 티오제, 그러니까… 제논으로 활동할 나의 멤버들까지.
“그러니까….”
무어라고 대답을 해 주고 싶은데, 말이 잘 안 나왔다.
기쁘고, 당혹스럽고, 어지러웠다.
아, 제기랄.
이 빌어먹을 몸이 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이러면 안 된다고. 이 다음에는….
“여러분! 축하해 주고 싶은 건 알겠지만, 우리 그전에 김춘용 연습생의 데뷔 소감부터 들어 보도록 할까요!?”
6위로 데뷔하게 된 소감을 얘기해야 한단 말이다.
“어, 네. 아, 안녕하세요, 스타 슈터 여러분. 김, 춘용… 입니다!”
나는 얼떨결에 넘겨받은 마이크에 대고 짧은 인사를 먼저 전했다.
“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이후로는 쉽게 문장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이런 순간이 올까 싶어 어쨌든 소감 비스무리한 걸 준비하긴 했는데, 한 마디도 떠오르지 않다니.
기분 좋은 낭패감이 밀물처럼 머릿 속을 밀고 들어왔다.
이전의 나는 무슨 말을 했더라?
아마 그때는… 데뷔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던 중에 된 거라, 엄청 울었던 거 같은데.
오늘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나사가 하나 빠진 로봇처럼 자꾸만 바보처럼 굴 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려, 내가 다시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아.”
내 어깨에 닿는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예의 그 서글서글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 띄운 유찬 형이 어딘가로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저기 봐, 춘용아.’
형의 그 기다란 손가락의 끝에는, 관계자석이 걸려 있었다.
무대를 하는 내내 그쪽을 봤던 나는, 거기에 누가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경!! 우리 집 둘째 (김춘용, 20) 데뷔함 !!축]엄마와 아빠가 위쪽을, 누나와 나리가 아래쪽을.
아마 나리가 미술 입시 학원에 비치된 재료들로 만들었을 게 분명한 그 자그마한 종이 슬로건이, 어찌나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던지.
그때부터, 내 입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제가 이렇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 주신 스타 슈터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슈팅 렉스 누나가 빠르게 셔터를 눌렀다.
나는 슬며시 그쪽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제 빨간 머리는 처음이죠, 누나?
아, 그러고 보니까 슈팅 렉스 누나 닉네임도 바꿨던데.
아직까지는 슈팅 렉스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지만, 새로운 그룹명으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누나의 새로운 이름에도 적응해야 할 터였다.
슈팅 렉스 누나가 그렇게 바랐던 것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후부터 말을 꺼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뭐든, 처음이 제일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 그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이렇게 데뷔를 하는 게 두 번째라고.
“이렇게, 꿈을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쁩니다.”
엑스와 나의 계약 조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케이팝 역사상 최고의 아이돌이 되는 것.
거기까지 가기에, 지금은 그저 정말 한 발짝에 불과했다.
글쎄.
지금 엑스가 나한테 말을 걸 수 있다면 ‘한 발짝은 무슨 반 발짝도 안 됨 ㅉㅉ’이라면서 글자로 코웃음 쳤으려나.
그렇지만, 당장 녀석은 여기에 없으니까.
이 현장에 있는 건, 텍스트로 나를 선택한 이유가 실패할 가능성이 제일 높아서라고 킬킬대는 녀석이 아니라….
“그리고, 언제나 저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준 가족들!”
아직도, 손수 제작한 슬로건을 흔들고 있는 우리 집 사람들이었다.
공부도 지지리 못했던 둘째의 말도 안 되는 꿈을 응원해 준 엄마, 아빠.
그리고, 그 꿈을 이어 나갈 수 있게끔 따끔한 말로 나를 일으켜 세워 주던 보미 누나.
시답잖은 말로 나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동생, 나리까지.
나 때문에 희생하고, 고생하고. 너무 많은 일들을 겪은 저 사람들에게 뭐라고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사랑해요.”
이 순간에는 꼭, 이 말을 하고 싶었다고.
와아아아아!!
관객석을 잡고 있던 카메라가 우리 가족을 향하고, 나리가 헛구역질 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바람에 작은 웃음이 장내를 돌았다.
그럼에도,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이 지금 김나리의 행동이 장난이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어서 앞선 데뷔 멤버들이 언급한 것과 비슷한 말들을 늘여 놓았다.
[타겟팅 스타> 제작진들, 헤메코 선생님들.계속해서 디렉팅을 봐주셨던 멘토분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이 프로그램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줬던 퀸스의 실장님까지.
그렇게 모두를 나열하니, 남는 건 딱 하나였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천천히 말문을 다시 열었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함께 해 준 [타겟팅 스타> 연습생 친구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꺼내며, 나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떠날 연습생들을 한 번씩 눈에 담았다.
나와 함께 자고, 떠들고, 간식을 먹고, 카드 게임을 했던 다국적 룸메이트들을 조금 더 오래 봤다는 건 굳이 숨길 필요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미 너희가 나보다 더 빛났던 날들을 다 보고 왔으니까.
“…기다리고 있을게.”
다시 보자.
“…김춘용 연습생의 감동적인 소감을 마지막으로! 오늘로서! [타겟팅 스타>의 긴 여정이 끝났습니다! 함께 해 주신 스타 슈터 여러분, 그리고 모든 출연진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생방송 파이널 무대가 끝남을 알리는 마지막 멘트와 함께, 우리의 오리지널곡.
‘Aiming’이 편곡된 버전으로 흘러나왔다.
그 익숙한 박자에 맞춰, 나는 뒤로 돌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재하 형, 유찬 형. 화성이, 시우. 그리고 로건.
“후와, 이제 우리가 한 팀이구나? 와, 나 데뷔는 진짜 상상을 안 해 봐서 떨리는데….”
“상상할 필요가 있어요? 이미 현실인데.”
“…마, 맞아요. 이제, 같은 팀이에요.”
“Mate, 우리 hug 한 번 해요! 저는 이럴 때 꼭 hug를 해야 한다고 배웠, 헉, 춘용 형?!”
“…춘용이가 많이 힘들었나 봐. 나도 그래.”
재하 형의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나는 여전하고도 새로운 멤버들을 힘껏 부둥켜 안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비로소, 내 속죄행 열차가 첫 번째 정차역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 * *
적지 않은 잡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성공적으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날 밤.
긴 촬영을 마친 제작진이 찾는 곳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법인 카드를 마구 긁을 수 있는 날인데, 아무렴.
“불 들어갑니다, 조심하세요.”
술이라면 환장을 하는 방송 업계 종사자들이, 어디 회식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여기, 8번 테이블 파채 하나만 더 주세요!”
“무조건 소고기만 시켜. 미국산 말고 한우로. 오늘 우리 테이블은 비싼 거 한 놈만 패고 돌아간다.”
“술! 술이다! 소맥 말아! 숙취 알 바 아냐! 마시고 죽어!”
[타겟팅 스타>의 촬영팀, 편집팀, 연출팀, 제작팀.너나 가릴 것 없이 섞여 앉은 그들은, 오늘이 고깃집의 고기를 모두 동 내겠다는 생각에 눈이 불타고 있었다.
“어, 준민이 형. 여기 비어 있는데, 그냥 앉죠?”
“야, 이 새끼야. 눈치 챙겨. 여기 주 피디님 테이블이야. 피디님 안주 안 드시고 술만 드시잖아. 오늘 우린 고기 먹으러 온 거라고.”
“저도 그건 아는데. 어쨌든… 여기만 덩그러니 비워 놓으면 또 그림이 이상하잖아요. 가위바위보해서 지는 사람이 앉죠.”
“응, 너나 앉아. 나는 오늘 3일은 굶어도 될 정도로 끝내주게 고기 먹고 들어갈.”
빡!
“커흑!”
“준민이 너는 꼭 매를 번다, 벌어. 인마,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
이 회식이 열릴 수 있도록 가장 힘쓴 당사자 중 하나.
주철영은 오늘도 입을 가볍게 놀리는 편집팀 준민의 머리를 후려치며 혀를 끌끌 찼다.
“나도 니들 내 자리에서 같이 먹는 거 안 바란다. 저리 멀리 가, 이 자식들아.”
“어, 감사하긴 한데요. 그럼 피디님께서는 누구랑 식사하시는…?”
“불행하게도, 당연히 나지.”
어느새 다가온 이현정은 복잡한 얼굴로 준민과 편집팀 막내의 등을 떠밀었다.
“빨리 가서 다른 테이블 앉아. 여기 앉을 사람들 다 있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앉는다는 …아.”
주철영이 후려친 뒤통수를 슥슥 문지르며 불평하던 준민은, 어느새 내려가 있는 고깃집의 블라인드를 보고 눈썹을 까딱였다.
일반인들만 있는 곳에서 굳이 블라인드를 내릴 이유는 없었다.
그 말인 즉슨, 일반인이 아닌 사람도 온다는 소리.
“…데뷔하는 애들도 와요?”
“뭐, 성인은 다 와도 된다고 말했는데… 오는 녀석들이 없더라고. 대신 멘토들만 오지.”
“어후, 저는 피하겠습니다. 문윤하 디렉터님이랑은 술 마시기 싫어요.”
“그래그래. 얼른 꺼져. 나도 네 얼굴 보면 화딱지가 난다, 인마.”
“쳇!”
그렇게 후다닥 도망가는 편집팀 녀석들의 꽁무니를 보며, 이현정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애들이 지금 술이 필요하겠나요. 술 안 마셔도 달콤한 꿈을 꿀 텐데.”
데뷔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물론 아직 곡도, 컨셉도, 모르고 있겠지만….
그 가혹한 서바이벌이 이제야 끝났으니, 충분히 행복할 터였다.
“흠, 글쎄….”
그런 이현정을 향해서, 주철영은 평소와 같은 미소를 얼굴에 띄며 어깨를 으쓱였다.
“과연 그럴지는 모르겠고.”
“또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세요, 피디님은?”
“아니, 이 작가. 들어 봐. 뜬구름 잡는 게 아니야. 내 입봉작이 처음으로 공개됐던 날에 말이야. 나는….”
악몽을 꿨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