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바센 라크 오라즌이 옆 마을로 가자, 그곳에 붙잡혀 있던 팽골리안들 또한 모두 해방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돌아온 바센이 티오네 이티모에게 말했다.
“다들 어리둥절해 하더군. 하룻밤 사이에 라크샤사들이 모두 죽어 버렸으니.”
“힐로브 님을 보지는 못했던 건가요?”
“일부가 봤었는데 밤중인데다 각자 몸의 부분만 보고 착각을 해서 말의 아귀가 맞지 않았다더군. 아무튼 내가 잘 설명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거야.”
“뭐라고 설명했는데요?”
바센이 말했다.
“위대한 야천의 수호자가 너희를 도왔다고 말했지.”
“그 친구들에게 설명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네요….”
바센과 티오네는 반쯤 지어진 소신전 위에 올라가 가만히 앉아 있는 힐로브를 보았다.
힐로브는 이따금 다리를 움직여 자세를 고쳐 잡을 뿐 별다른 움직임이나 말이 없었다.
바센이 질문했다.
“그나저나 배는 확인해 봤나?”
“네.”
“고칠 수는 있고?”
“일단 여기까지 타고 올 정도는 되었으니 조금 고치면 쓸 수는 있을 거예요. 문제는 그 조금이라도 고칠 수 있는가가 문제인데… 저희 배, 해적의 수치는 북방에서 나는 속이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따뜻한 지역에서 나는 나무를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전문 조선공이 저희 배에 타고 있지도 않고요. 일단은 임시로라도 쓸 수 있을지 팽골리안들에게 알아보고 있어요.”
바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를 고치기까지 오래 걸릴까?”
“네. 별 기대는 하지 마세요. 연락선이 오더라도 그걸 타고 돌아가긴 힘들 테니까요.”
“어찌되었든 여기 누군가는 남아야 된단 말이군.”
티오네가 입술을 비죽였다.
“아마도요?”
해적의 수치는 다행히 침몰하진 않았지만 당장 자력 항행은 어려운 상태였다.
배의 목적이 고대 유적을 발견하기 위한 탐험이었던 만큼, 일부는 장기 체류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본래 배에 타고 있던 인원 중 4분의 1이나 되는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거나 죽었고, 배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물자도 많이 버려야만 했다.
“역시 예상했겠지만, 여기 팽골리안들의 도움을 좀 많이 받아야겠군.”
그 말을 하자마자, 뒤에서 팽골리안 마고가 나타났다.
“에구구, 뭐든 말씀만 하시지요. 저희를 자유롭게 하도록 도와주셨으니.”
바센이 말했다.
“우리는 라크샤사가 아니다. 심지어 라크샤사만큼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라크샤사처럼 굴지는 않았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제대로 값을 치르고 물물교환을 하겠어.”
바센은 마고가 당연히 자신의 말에 응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고는 달리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에게 자유를 주시고 카튜루를 구해 주신 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게다가 큰 손님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음…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마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보여드릴 게 있으니 따라오시지요.”
바센과 티오네는 마고를 따라갔다.
마고가 안내한 곳은 팽골리안들이 지어 올린 소신전의 지하였다.
“지하 공간까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걸 만들려면 단순히 돌을 쌓아 신전을 짓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했어야겠군.”
“아닙니다.”
“그럼?”
“이 지하 공간은 저희가 이 땅에 자리 잡기 이전부터 있던 곳입니다.”
“아, 그럼…”
“고대 유적이죠.”
하지만 바센이 기대한, 야천과 만신전의 신들이 기뻐할 만큼의 고대 유적은 아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리 길지 않았고, 도착한 공간도 넓지는 않았다.
“저희들은 이 공간이 그리 중요하다고 여기진 않았는데, 라크샤사들은 이 공간을 숨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위에 소사원을 만든 다음 여길 폐쇄해 버리고 싶어 했죠.”
“왜 그런 거지?”
“에구구, 처음에는 저희도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고대 유적 지하의 벽면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마고가 벽면을 차례대로 횃불로 비추며 설명했다.
“여기 그림들은 과거에 벌어진 일과, 미래에 일어난 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마 여기가 처음 시작인 것으로 보이는데, 신들이 떠나가고 필멸자들이 땅에 남아 있는 모습이 보이지요. 필멸자들은 쇠락하고 가지고 있던 지식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흠.”
“그 다음이 중요하죠. 여기 있는 것들이 저희인데, 라크샤사들과 아슈라다가 저희를 깔고 앉지요. 지배한다는 겁니다.”
바센이 보기에는 너무 단순화 되어서 딱히 팽골리안이나 라크샤사처럼 보이지 않는 그림이긴 했다. 아슈라다라고 가리킨 것 또한 그냥 큰 도마뱀처럼 보였다 하지만 구태여 그 사실을 지적하진 않았다.
‘어차피 아주 오래전 지식이 온전히 남아 있을 리 없으니 읽는 대로 읽힐 뿐 아닌가? 고대인들이 정말 그렇게나 현명했다면, 이렇게 해석되도록 의도했을지도 모르고.’
마고가 이야기했다.
“여기부터가 중요하지요. 여기 바다 건너에서 여러분이 건너오고, 거기다 아주 거대한 존재가, 아마도 여러분이 믿는다고 하는 그 야천이신 것 같은데, 그분의 손에서 흰 거미가 나옵니다. 여기, 이게 힐로브 님이죠.”
“어, 정말 그렇게 보이는군.”
이번에는 무신경하게 듣고 있던 바센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흰 거미가 벽면에 그려져 있었다. 단순화된 도상이긴 하지만, 바센이 알고 있기에 둥근 몸통에 다리가 여덟 달린 것은 거미 말곤 딱히 없기도 했다.
그 뒤로 거미가 라크샤사와 아슈라다를 물리치고 팽골리안들을 구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바센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언 속에 나타난 신들의 군대라는 건가?”
“예.”
“힐로브 님이 너희를 돕는 건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그렇지요…!”
마고가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옛날이야기라서 전혀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라크샤사들이 이 동굴을 틀어막은 뒤에는 잊어버리기도 했고요. 하지만 힐로브 님을 봤을 때 곧장 알아차렸습니다. 이분들은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바로 약속의 그분들이라고요. 여러분은 분명 라크샤사와 아슈라다를 물리치고 저희 모두를 구원해 주실 겁니다.”
바센은 다소 당황했다.
‘이것 또한 야천의 안배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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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센만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크람푸스가 성운에게 말했다.
“알고 있었어?”
성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다르가 말하는데, 구원자 서사는 흔한 편이라더군.”
엘다르가 설명했다.
“그렇죠. 사실 잘 생각해보면 지구에서도 구원자 서사는 일상적이었어요. 예를 들어서 성경을 보면 세상이 멸망할 테지만, 재림한 예수가 올 거라고 하잖아요? 불교에서도 비슷한 도식이 있어요. 누구나 석가모니처럼 열반에 들 수 있으니, 새로운 석가모니도 올 수 있죠.”
크람푸스가 손가락으로 벽면에 그려진 흰 거미를 가리켰다.
“저건?”
성운이 말했다.
“간단한 트릭이지. 마고가 바센에게 설명하기 전에 발견했을 뿐, 나도 저 그림을 발견한 건 사원 내부를 확인 할 때였어. 하지만 그림을 보아하니 써먹을 수 있겠더라고. 그러니 저 그림에 맞춰서 흰 거미인 힐로브를 보낸 거고.”
“흰 거미인 창조물이 없었으면?”
“새로 하나 만들었겠지. 아니면… 이미 있는 친구들한테 저 문양을 박아 넣어서 보낼 수도 있고.”
크람푸스는 이제서야 알겠다는 듯 탄성을 자아냈다.
하지만 성운은 스스로도 조금 의문이 들었다.
단순한 그림들이므로 무엇으로 해석하든 문제는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방법론도 아니었다. 흰 거미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핍박받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신들이 오리란 이야기는 제3 대륙에도 드문드문 있었다.
하지만 저 그림이 아니었더라도 성운은 높은 확률로 자신이 가진 가장 효율 좋은 섬멸자인 힐로브를 선택했을 거라는 점에서, 성운은 마음이 걸렸다.
‘게다가 이 네 번째 대륙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대륙이었지. 지금까지는 다른 대륙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악신들과 마찬가지로 숨겨졌던 어떤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
당장은 알 수 없었다.
성운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팽골리안들의 이야기는 써먹어야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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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센은 팽골리안들이 남부 대륙 북동부 해안 지역에 넓게 퍼져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을이 몇 개 더 있지요.”
“다른 마을에는?”
“에구, 다른 종족들이 노예로 부림당하고 있지요.”
“그 아슈라다니 라크샤사니 하는 부족들이 지배하고 있고?”
“예에.”
바센은 잠시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티오네가 말했다.
“다른 마을은 왜요?”
“내 생각엔 이대론 우리가 위험하기 때문이야. 이 근방 라크샤사들을 모두 물리치긴 했지. 하지만 마고의 말에 따르면, 팽골리안들이야 상관없지만 라크샤사들은 정기적인 연락망은 당연하거니와, 비정기적인 연락망도 두고 있어. 게다가 옆 마을은 힐로브 님이 암습을 해냈지만, 이 마을에서 최초로 싸움을 벌일 때 도망간 놈들도 있었을 거란 말이지.”
“음… 그렇겠죠. 제대로 된 보고 체계는 아니겠지만 절차상 확인을 하러 오긴 하겠죠.”
“그래. 다행히 옆 마을을 제외하면 다음 마을은 이틀은 넘는 거리에 있다고 하니, 그리고 도망자들이 길을 헤매지 않고 제대로 도착해도 무작정 군대를 보내진 않을 거야.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무기를 사용한 데다, 그렇게 빨리 도망쳤다면 이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를 테니.”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죠?”
바센이 말했다.
“다행히 이 지하 고대 유적에 대한 이야기는 팽골리안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다는군. 그러니 팽골리안들에게 우리는 약속된 구원자라는 말이지.”
“아하.”
“다른 노예 종족들이 있어서 이야기가 많이 퍼지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팽골리안들만이라도 그 이야기를 믿고 있는 건 다행인 거지. 팽골리안들이 다른 팽골리안들에게 소문을 퍼트릴 수 있을 테니까.”
바센의 말대로였다.
라크샤사들은 북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감지했다.
도망자들이 생겼고, 천둥 같은 소리가 나는 막대를 든 리자드맨들이 라크샤사들을 모두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동시에 아슈라다 부족 북동부의 팽골리안들에게 비밀스런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전설 속 흰 거미가 팽골리안들을 구원하러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팽골리안 사회가 술렁이자 노예 감독관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팽골리안들의 이야기는 그저 옛날이야기에 불과했지만, 북동부 끄트머리에서 들려오는 소식과 함께 불안을 조성한 것이다.
너무 허황된 이야기였기에 아슈라다 부족 중 북부를 담당하는 총독 아쿨다는 상부에 보고를 올리면서도, 일단은 군대를 보내는 대신 조사대를 보냈다.
군대를 편성하지 못한 이유는 노예 감독관과 병사들이 팽골리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며 불안을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이야기라지만 노예들의 단속이 흩어지게 둘 수는 없지. 만약 북동부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한들, 팽골리안들의 반란 정도. 고작 마을 한둘 정도에서 터져 봤자 큰일은 아니다. 라크샤사 전사 하나면 팽골리안 열은 상대할 수 있지.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돼.’
그것이 북부 총독 아쿨다의 오판이었다.
바센은 팽골리안들을 재빠르게 군대로 훈련시키는 동시에, 팽골리안들로부터 정글에 대한 정보와 지형을 습득해 나갔다.
나흘 뒤 고작 스무 명 정도의 정찰대가 나타나자 급습해서 몰살시켰다.
‘놈들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군.’
바센은 이제 시간이 여유롭게 남았음을 알았다.
정찰대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이상이 생겼음을 깨달아도, 군대를 정비해서 보내려고 하면 들뜬 분위기의 팽골리안이 거슬릴 것이다.
바센은 탐험단과 힐로브, 그리고 훈련시킨 팽골리안 부대를 이끌고 북동부 지역 해안선 마을들을 차례대로 탈환했다.
닷새 동안 두 개의 마을이 탈환되었고, 몸을 숨기고 있던 탐험단의 난파선 생존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번 난파선 생존자들은 그 숫자도 많지 않았고, 배도 반파되어 물속에 반쯤 잠겨 있어 화물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볼 지점이 있었다.
탐험단의 다섯 번째 배, 연락선을 3일 일찍 만난 것이다.
바센은 연락선에 타고 마고의 마을로 돌아왔다.
바센은 연락선에 있는 모든 화약과 총을 내리도록 하면서, 서둘러 돌탄섬으로 떠나 섬에 있는 모든 황과 총을 가져오도록 했다.
티오네가 질문했다.
“화약이 아니라 황은 왜요?’
“초석 산지를 발견했어. 화약은 이곳에서 만들 거야. 황만 실으면 더 많이 실을 수 있겠지.”
“그럼 총은요? 저희는 그렇게 많지 않은데요?”
“앞으로 더 필요해질 거거든.”
“왜요?”
바센이 말했다.
“이제 팽골리안들도 총을 쏠 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