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비크는 황급히 벗어났으나 드릴의 회전이 금을 내놓았다.
-뭐, 이런…!
하지만 툴보는 비크가 당황할 틈도 주지 않았다.
작은 손상이지만 껍데기를 꿰뚫는 충격은 비크에게 데미지를 주었고, 그것이 분명한 틈을 만들어냈다.
성운은 헤게모니아가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통칭 ‘템플릿’으로 불리는 이미 만들어진 모습의 창조물을 사용한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템플릿은 언제나 훌륭했다.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어들은 최고의 파괴자, 최고의 섬멸자, 최고의 기생자 등이 대부분의 템플릿에 존재한다고 말했고 성운 또한 인정했다.
당장 지금만 보더라도 성운은 평균적인 창조물의 역량에서 만신전보다 헤게모니아가 앞설 거라고 장담했다.
그도 그럴것이 템플릿은 단순히 시스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플레이어들이 ‘피조물 창조 도우미’ 에셋을 통해 만들어낸 창조물 중 특히 인기 있었던 상위의 창조물들, 그리고 그 창조물 중 오랜 시간 사용 되어 가장 범용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창조물들이었다.
승리를 위해서 성능이 떨어지는 창조물들은 플레이어들의 손에 선택되지 못하고 도태되었고, 오직 뛰어난 창조물들만이 플레이어에게 선택 받는다.
물론 게임의 메타에 따라 순위가 다소 변경되긴 했지만 헤게모니아는 각 상황에 맞는 최적의 템플릿을 선택해내긴 했다.
헤게모니아의 플레이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겠지. 틀린 부분이 없으니까.’
성운은 헤게모니아가 들었다면 역정을 낼 생각을 했다.
어째서인지 성운은 헤게모니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분명 무슨 헛소리냐고 하겠지.’
하지만 별로 그런 건 아니었다.
성운보다 실력은 떨어지지만 성운과 비슷한 플레이를 해내는 플레이어들은 많다.
카운터 플레이.
상대가 언제나 최상의 선택을 해낼 것이므로 당연히 그에 대한 대응도 가능하다. 최고의 창조물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카운터는 존재한다.
단단하다지만 외피에 손상을 받으면 돌이킬 수 없고, 재빠르다지만 방향 전환이 자유롭지 못하며, 수 많은 촉수라는 말은 결국 하나하나의 힘은 모자르다는 말이다.
생물은 언제나 물리적인 한계를 가지며, 물리계에서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운은 헤게모니아가 사용할 템플릿 창조물이 뭔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헤게모니아처럼 이에 대항해 창조물을 만들 수도 있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만신전의 사도 중엔 마치 플레이어처럼 창조나 다름 없는 능력을 지닌 사도가 있었던 것이다.
성운이 나타날 적에 대해 말하자 미치광이 툴보는 곧장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성운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했다.
기능적일뿐만 아니라, 멋있기도 했다.
“흐읍!”
툴보는 조종석에서 레버 두 개를 힘차게 당겼다.
그러자 보행 기갑의 거대한 오른손이 비크의 촉수들을 움켜쥐었다.
본래 미끌거리는 촉수 다발이지만 두두바 고무로 코팅된 보행 기갑 손바닥의 마찰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비크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이, 이럴 수는…!
“…있어! 대물 1호의 주먹을 받아라!”
다시금 왼팔의 드릴이 세차게 회전하면서 비크의 껍데기에 드릴을 박아넣었다.
피거품과 깨진 껍데기가 드릴이 만들어내는 회오리에 휘감겼다.
‘끝냈나?’
성운은 헤게모니아의 플레이를 긍정했다.
헤게모니아는 상대적으로 올바른 플레이를 한다. 보다 높은 승률을 위해, 언제나 보장된 방식을 택한다. 확률로만 따진다면 헤게모니아의 승률이 더 높아야 한다.
하지만 게임의 메타, 즉 전술의 유행이나 빌드는 매일같이 바뀐다.
누군가가 이미 나와 있는 전략의 가장 높은 확률을 찾아 그 전략을 택하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는 그 전략의 파훼법을 찾고 있다.
물론 카운터 플레이는 단지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에도 성운은 수긍했다.
사실 메타를 따라가는 사람들만큼이나 그에 반대되는 전략, 난데없는 전략, 황당한 전략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카운터 플레이를 제외하고, 모조리 메타에 잡아먹힌다.
‘메타를 따라가지 않는 건 바보짓이지.’
헤게모니아는 그런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메타를 가장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상황 파악과 판단이 빠른데다 멀티태스킹에 능하고 소규모 전술에서 패배를 모른다.
모두가 같은 전략을 쓴다면 헤게모니아가 실력으로 찍어누를 수 있다.
솔직하게 생각해서 성운조차도 헤게모니아와 똑같은 방법으로 싸운다면 헤게모니아가 유리할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럼에도, 정확히는 그렇기 때문에 성운은 독자적으로 카운터 플레이를 찾는 게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무수한 플레이어가 메타를 무시하는 독자적인 플레이를 만들어내지만 결국 메타를 바꾸는 것도, 메타만 따라가는 상위권 플레이어들에게서 승리를 따내는 것도 그런 변칙적인 전략들이었다.
성운은 기꺼이 바보짓에 도전했고 그 때문에 다른 독창적인 플레이를 만드는 플레이어들처럼 더 높았을지도 모를 승률을 깎았다.
다만 성운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랐다.
성운은 미완성인 전략을 완성으로 이끌어낼 능력이 있었으며, 승률이 깎이더라도 여전히 1위였다.
툴보가 탄 보행 기갑의 등에서 스크류가 뿜어지더니 수면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툴보는 비크에 의해서 잠시 보호받았던 목조 수송선 갑판 위로 뛰어내렸다.
-쾅!
자신들의 수호자가 사라지고 잠시 새로운 거대 보행 기갑의 등장에 갑판 위의 연합왕국 해병들이 침묵했다.
“…적이다! 쏴라!”
총탄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툴보의 보행 기갑 대물 1호가 회전하는 드릴로 갑판을 한 차례 휩쓸었지만, 총탄 세례가 거세지자 툴보는 조종석을 가리며 주춤했다.
수송선 내부에 대기하고 있던 연합왕국 육군이 닥치는대로 뛰어올라온 것이다.
“이것 참, 드릴로는 한계가 있는데…”
그때 하늘 위의 구름 사이로 빛이 번쩍였다.
툴보는 눈을 번뜩이며 그 빛을 시야에 잡아냈다.
“됐다!”
뭔가 거대한 쇳덩이가 목조 수송선 위로 떨어졌다.
-쿵!
어찌나 무거운지 낙하만으로 거대한 배가 출렁이며, 난간에 서 있던 연합왕국 병사들이 밖으로 떨어져나갔다.
툴보는 잠시 총성이 멈춘 틈을 타, 보행 기갑으로 떨어진 쇳덩이를 주워올려 번쩍 들었다.
그것은 칼이었다.
보행 기갑의 10미터에 가까운 키에 맞먹는 아주 거대한 칼이었다.
“이 친구가 왜 ‘대물’인지 보여주지!”
툴보는 그대로 대물 1호의 오른팔로 갑판을 내려쳤다.
─┼
라스다실 해안.
다행히 연합왕국의 수도가 희생되며 가장 위협적인 방어선이었던 해안 요새가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연합왕국 상륙군이 안전하다는 말은 아니다.
양국의 전함 포격전이 이어지는데다, 저 멀리 제국의 참호 진지로부터 계속해서 포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거리 때문에 그 화망이 옅지만, 멍하니 뜸을 들이고 있을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천공성이 추락한 저 남쪽 해안에선 횡행하는 회오리 바람들이 쉴새 없이 돌고 있었다.
‘저긴 안카르데가 있을텐데.’
분노하는 자의 여섯 번째 사도 도깨비 보운다는 눈쌀을 찌푸리며 천공성 쪽을 바라보다가, 안전하다고 확인된 수평선 쪽의 수송선들이 느닷없이 격침되는 걸 보았다.
‘난리군.’
보운다는 집중하기 위해 도리질을 한 번 치고는 자신의 가슴께 밖에 오지 않는 병사들의 등을 밀면서 독려했다.
“뭐하나? 뛰어! 여기 있다간 죽는다!”
그리고 보운다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듯, 또는 실제로 만신전의 신 중 하나가 보운다를 노린 포탄 하나를 떨궜다.
“엎드려!”
보운다는 눈을 부릅뜨고는 자신이 들고 있던 육모 방망이를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힘껏 휘둘렀다.
-깡!
보운다의 육모 방망이에 맞은 포탄은 내부 신관이 충격에 밀려났다가 십여미터를 날아가기도 전에 허공에서 터졌다.
그 모습을 보고 보운다는 호탕하게 웃었다.
“안 죽었으면 달려!”
상륙군의 목표는 곡사포를 조금이나마 막아낼 수 있는 서편 언덕 지형 아래였다.
정비할 시간도 없이 그저 숨만 한 번 돌리고 나면 후속으로 실려오는 보행 기갑, 전차들과 함께 진격해 각 부대는 그대로 제국군 참호 진지를 향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이만큼 병력을 안존하고 있다면…’
보운다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쓸데 없는 생각이라고 단정했다.
전쟁을 하는 것은 분노하는 자였다.
자신은 그저 분노하는 자의 분노 그 자체인 것으로 충분했다.
로스트 월드에서 도깨비 종족은 라크샤사처럼 트롤의 한 종류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종족들은 한데 묶이는 다른 종족들과 큰 차이가 없는 편인지라,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얼굴이 다소 우악스럽게 생겼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다만 트롤들에게 거친 부분이 존재하고, 라크샤사들이 잔인한 면모가 있는 것처럼, 도깨비들에게도 성격적 특징이 있었다.
도깨비들은 공포와 불안이 적었다.
그래서 마치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웃음이 많았다.
헤게모니아는 그런 면에서 도깨비를 좋아했다.
도깨비는 그런 특성 덕분에 전쟁에서 최후까지 부대에 남아 전쟁을 치르는 종족 중 하나였다. 특별히 거칠거나 잔인한 것 보다도, 그런 감정을 둔하게 느낀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보운다는 그런 도깨비들 중에서도 유난히 더 이상했다. 보운다는 공포와 불안이 적다기 보다는, 그런 상황 속에서 일종의 쾌락을 느꼈고, 남들이라면 꺼릴만한 상황 속으로 끼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개체는 보운다 말고도 은근히 찾아볼 수 있으므로 놀라운 부분은 아니다.
단지 보운다는 그런 상황 속에 자신을 집어던지고도, 유유히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
성운이 판을 깨거나 뒤집기 위해 툴보를 사용한다면, 헤게모니아의 변수 창출기는 바로 보운다였다.
그때였다.
보운다의 귀에 폭음이 들렸다.
-쿠웅…!
연합왕국 상륙군들이 달려간 서편 언덕에서 폭발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솟아올랐다.
검은 흙더미나 돌, 한때 상륙군이었던 것들이 보운다의 몸을 때리며 떨어져 내렸다.
“…무슨!”
연합왕국군 모두가 주춤하자 보운다는 그대로 삼단뛰기를 하더니 허공을 가로질렀다.
수 십 미터를 날아간 보운다는 폭발 현장 아래 몸을 기면서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서 도망치는 병사를 보았다.
보운다가 병사의 멱살을 쥐어 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매, 매복입니다!”
“흠!”
보운다는 병사를 내버려두곤 아직 연기가 솟고 있는 쪽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대로 작은 언덕을 넘자, 돌무더기 뒤에 숨어 있던 일련의 제국군 병사들이 보였다.
모두 갑작스럽게 나타난 분노하는 자의 사도에 놀란듯 보였다.
“너희는 특전대군!”
복장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연합왕국 또한 마찬가지지만, 제국은 후방 침투나 특별한 전투를 위해 일반 병사들과는 다른 특수전 부대를 상비하고 있었다.
이 훈련받은 제국 병사들은 보운다를 보자마자 산개하며 흩어졌다.
“소용 없다!”
보운다는 하나씩 머리통을 깨버릴 작정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느닷없이 눈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에 눈을 질끔 감으며 한손으로 총탄을 막아낼 수 밖에 없었다.
잠깐 사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은 내가 막겠다! 작전 이행을 서두르도록!”
보운다는 눈을 뜨며 실루엣을 알아보았다.
“흠, 늙은 여우새끼였나.”
만신전의 여섯 번째 사도 특공대 오빈 마브루가 소총을 겨누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덩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