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이온 이올카프는 눈 앞에서 일어난 일들이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고향인 카마이루는 아직도 비단이 지역 특산물이었다.
세계는 10년, 아니 5년마다 전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달라지고 있는데 자신의 고향에는 높다란 빌딩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온은 누에에게 뽕잎을 주는 일을 그만두고 오라즌으로 상경했다.
물론 양잠은 아직도 좋은 사업이었다. 폴리에스테르니 공장 면직물이니 나오더라도 패션 업계가 부흥하며 비단은 여전히 고가의 상품으로 남았으니까. 부모님은 은근히 가업을 잇길 바랐지만 이온이 자신의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응원해주었다.
“천문학처럼 귀한 학문에 관심이 있다니, 이 엄마도 기쁘구나. 과거에 별잡이 님께서 가로시되…”
물론 세속주의자인 이온은 부모님의 그런 응원이 그다지 달갑지 않긴 했지만.
이온은 과학을 공부해 세계에는 신들이 필요 없다는 것, 무엇보다 ‘마법’과 같은 고대의 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야천과 만신전이 과학과 기술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종교적이고 낭만적인 도식화 때문에 선명한 과학적 진실을 밝히는데 있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온이 부푼 마음을 안고 상경해서 보게 된 자성도시 오라즌은 정말 놀라운 도시였다.
자성도시 오라즌은 흑린의 수도인 오라즌과 과거 ‘자동성’이라고 불렸던 지역이 합쳐진 광대한 메가폴리스였다.
자동성은 세계 각지에 있는 고대 유적 중 하나로, 라스다실 폐허 공방 때 큰 역할을 맡았던 이동성과 과거 추락했으나 수 십년 동안 학자들이 매달린 끝에 복구에 성공한 구 연합왕국의 천공성과 동급의 가치를 지니는 성이었다.
자동성의 특징은 바로 ‘자동인형’이었다.
자동성의 성주들은 대대로 자동인형에 명령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흙인형에 불과하고 흙인형들이 할 수 있는 일도 토성이었던 자동성을 복구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과 마법사들은 자동성에 더 거대한 힘이 잠재되어 있음을 찾아냈다.
자동성은 일종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했고, 흙인형과 토성은 가장 기초적인 입력값에 불과했다.
자동성주들은 나름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인형들과 건축 자재들을 통해서 자동성을 성장시키고 연장시켰다.
흙에 이어서 나무가, 나무에 이어서 돌이, 돌에 이어서 시멘트가 쓰였고 스스로 성장하는 도시라는 의미로 자성도시라는 이름이 불릴쯤 해서는 당시의 첨단 재료였고 아직까지도 최고의 건축 자재인 철근과 콘크리트가 쓰였다.
수도 오라즌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복합 자재로 만들어진 인형들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빌딩을 쌓아올리기 시작했고 오라즌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마천루의 대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대도시에는 세계의 온갖 종족들이 몰려들어 살았고 끊임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며칠마다 도시의 끝에서 끝으로 유행이 번졌다가 사라지고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예인이 등장했다가도 외부의 조직 범죄가 뒷골목에 횡행하고 그러면서 각종 옛 귀족들과 신진 사업가들이 이권을 다투며 마법사들이 흑막을 꾸미거나 사도가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고 사라지는 등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생물과 같았다.
오라즌 중앙 천문대학에 입학한 이온은 시골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온갖 사건들에 눈이 돌아갔다.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한 가십들은 물론이고 즐길거리도 놀거리도 너무 많았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보내준 돈으로 새로 사귄 친구들과 클럽을 나돌고 술을 퍼마시고 뒷골목에서 토를 하고 시비에 걸리고 경찰서에서 깨어나고 다음날 수업에 급하게 달려가거나 오락에 심취해 몇 개월을 거기에만 몰두하다가 학사 경고를 받거나 불같은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고 우울감에 남대륙으로 도보 여행을 떠나는 등 이온은 빛나는 청춘을 보내고나서 이렇다할 학점도 따내지 못하고 꿈꾸었던 제대로 된 논문 한 편 쓰지 못하고 졸업했다. 오라즌 천문대학원은 결코 시시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막 대학을 졸업할 당시의 이온의 수준으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이온이 정신을 차린 때는 막 졸업을 했을 때였다.
취직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학문도 할 수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다. 물론 돌아가면 가업을 이을 수 있으니 자신의 처지가 진정으로 나쁘지는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고, 아직 기회가 있기 때문에 남은 미련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온은 뒤늦게 천문학에 진정한 열정을 가졌다.
전기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시모의 자전적 저서가 이온의 의지를 다잡는데 도움을 주었다. 동대륙의 위대한 발명가이자 공학자, 솔로틀 종족의 시모는 노상 발명가에서 수 십 번의 도전 끝에 투자를 유치 받아 전대륙에 전기를 보급한 것으로 유명했다.
폴리비아에서의 전기 특허권을 두고 벌였던 전쟁은 연합왕국 측의 승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연합왕국이 패배하면서 시모의 후원자였던 이티모 가문이 주도권을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전기는 제국의 것, 만신전의 것이 되었고 시모는 미치광이 툴보를 잇는 위대한 발명가로 알려졌다.
분야가 다르긴 했지만 시모의 이야기는 이온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이온은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이륜차를 이용한 배달음식 임시직에 종사하고, 해가 지면 자신이 흥미를 가졌던 주제들에 대한 논문을 찾아 읽으며 자신의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어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세계 사전 게시판을 들락거리며 쓸데 없는 시간을 소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나았다. 리데 오보렌 같은 유명 학자와의 만남도 그런 노력이 성과로 나타난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당장 목숨을 건사하자 이온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자신은 속은 것이고, 자신의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단 말인가.
“뭐해? 엎드려!”
라민은 빠르게 뒤돌면서 이온의 다리를 걷어찼다. 번개같은 속도였다.
이온은 뒤로 나자빠지면서 생각했다.
‘말로는 엎드리라고 해놓고!’
하지만 라민의 판단이 옳았다.
암습자는 이온과 라민을 둘 다 명중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권총을 연사에 놓고 당긴 것이다.
라민은 이런 상황에서 권총이 연사될 경우, 총알을 베거나 튕겨내기 적절하지는 않지만, 권총 슬라이드가 몇 번이고 후퇴하길 반복하면서 총구를 위로 들어올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 모델은 알고 있어. 연사가 가능하면 더 좁혀지지. 탄창에 총알을 모두 채웠으면 열 일곱 발.’
몸을 한껏 숙인 라민이 암습자에게 쇄도했다.
중간에는 몸을 굴렸고, 암습자가 총구를 들이댔다.
라민이 더 빨랐다.
-쩍!
라민의 칼날이 암습자의 손을 비스듬히 베면서 손가락과 손바닥이 총과 함께 허공에 떴다.
“크허… 컥!”
비명을 지르는 암습자의 턱으로 라민의 발차기가 들어갔다.
암습자가 그대로 기절하자 라민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밧줄 하나를 풀어서 암습자의 잘린 손을 묶어 지혈했다.
라민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상황 끝.”
이온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누, 누구시죠?”
“‘착하게살자.'”
“네?”
“아니, 나름 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나…”
이온은 그 반응을 보고도 세계 사전 게시판의 망나니 같은 게시판 사용자를 연결 짓지는 못했다. 애초에 자랑할 거리가 아닌데, 라민은 스스로 그것이 나름의 명성이라고 생각했다. 이온이 연결 짓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라민은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제복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이온의 입이 벌어지며 중얼거렸다.
“처, 첩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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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전 회의에서, 이 안건에 대해 성운은 모르고 알 수 없는 문제임을 인정했다.
“그럼 원점에서 다시 보자고.”
세계는 복잡해졌고 더 없이 다양해졌다.
만신전에 의해 봉신이 해제된 플레이어 모두가 총동원 되어도 들여다볼 수 있는 지역에는 한계가 있었다.
“전제가 있어. 첫 번째 전제는, 절요라고 부르는 플레이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야. 이건 시스템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확고부동한 사실이지.”
악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하지 않는 플레이어가 등장해 게임 그 자체와 게임의 룰이 흔들리고 있지만 아직 게임의 근간인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긴 힘들었다.
시스템을 신용한다면, 시스템이 표기하는 ‘癤욧렇?⑤?’, 쉽게 불러 ‘절요’라고 부를 수 있는 플레이어는 반드시 존재한다.
“두 번째 전제는 악신은 반드시 새로운 종족과 함께 온다는 거지.”
제3 대륙의 절우비도, 제1 대륙의 벨도, 남부 대양의 샤차도 지금까지 나온 악신들은 새로운 종족과 함께 나타났다. 이것이 절대적인 규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전제가 깔리지 않는다면 절요를 찾기는 너무 어렵다. 이 전제를 포기한다면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야하므로, 아직은 이것을 전제해야만 했다.
“세 번째 전제는 우리는 세계를 모두 뒤졌음에도, 아직 절요의 종족을 찾지 못했어.”
신규 종족에 대한 조사는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탐험가 집단들은 아직까지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미 수 십년 전에도 사람의 발이 닫지 않은 땅은 사실상 없었다.
플레이어들의 봉신을 해제할 수 있는 수단을 찾기 위해 고대 유적들을 찾아다녔기에 더이상 그런 유적들도 찾기 힘들 거라는 건 만신전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위즈덤이 답했다.
“네뷸라. 절요가 존재하고, 절요의 종족이 존재하고,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모든 땅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그 전제들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항상 빠른 답변 고마워.”
위즈덤은 ‘별말씀을’의 의도가 담긴 격식 있는 인사를 한 뒤, 답했다.
“절요의 종족은 우리의 눈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종족이다.”
“시스템적으로?”
“그럴수도.”
“생물학적으로?”
“그럴수도.”
잠시 생각에 빠진 위즈덤이 중얼거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종족’이라는 한계를 넘었을 수도 있지.”
“상상력이 필요한데.”
이제 안건은 제1 회의장에 빽빽하게 앉은, 성운과 위즈덤을 제외한 스물 세 명의 플레이어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플레이어들은 각자 절요의 종족들을 상상했다.
아이디어는 대부분 수용되었고, 절요의 종족 후보 명단에 올랐다.
이야기가 나올만큼 나오자 성운이 말했다.
“이 숨을 수 있는 종족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방법을 알아보자고. 좋은 방법이 있을까?”
플레이어 인간따개가 손을 들었다.
인간따개는 사립탐정이라는 독특한 직업으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목을 끌었는데, 말수가 적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으로 직업을 밝힌 이후에 반향이 있진 않았다.
인간따개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완전 보안이 가능하다는 채팅 어플이 팔린 적이 있다. 정식으로 구매한 스마트폰에서는 설치가 불가능해서, 제작사가 암시장에 파는 스마트폰에서만 설치가 가능했지. 어플을 사용하면 서버에 어떤 기록도 남지 않기 때문에 마약 밀매나 인신매매, 불법 무기 수입상 등 수 많은 범죄자들이 고가의 이용료를 주면서 그 어플을 사용했다. 대략 2년 정도 그 어플이 판매되었고 어플 제작사는 고수익을 올렸지. 그런데 그 어플의 제작사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나?”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어차피 답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인간따개가 이어 말했다.
“제작사는 인터폴이었다. 국제 공조 수사를 하는 경찰들이 해당 스마트폰 어플을 제작해서 판매한 것이었지. 덕분에 꽤 많은 범죄자들을 명백한 증거로 체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을 이해하나?”
성운이 웃었다.
“마음에 드는데?”
성운이 화면을 띄웠다.
“스마트폰은 아직 없지만, 우리도 비밀스런 이야기를 할만한 공간을 가지고 있으니까.”
성운이 가리킨 것은 한 건물이다.
제3 대륙,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거대한 건물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데이터 센터가 존재한다. 이 데이터 센터의 목적은 ‘천라망’이라고 불리는 세계를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망을 유지하는데 있다.
세계를 아우르는만큼 중립성을 띄고 있지만, 천라망이라는 이름이 붙은만큼 종교적 색채도 적지 않다. 이온에게는 유감이지만, 아직 세계에는 세속주의자 과학자 보다 만신전 교도인 과학자가 더 많았다.
성운이 말했다.
“그럼, 제국 첩보국이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해낼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