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98
298화
라민 솔로스트 무엘이 말했다.
“저, 그러니까… 아니, 우주복 안에서 말해봤자 …안 들리나?”
헤게모니아는 몸을 기울여 라민을 내려다보았다.
-들린다. 말해라.
라민은 어색하게 웃었다.
우주복의 헬멧 부분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과 방사선을 막아낼 정도로 깜깜하지만, 헤게모니아는 그런 불투과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라민의 눈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봉신을 해제하는 것만 생각했지,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래도 해야만했다.
당장 여기에 만신전은 멀고, 분노하는 자는 가깝다.
라민은 되도록 분노하는 자가 더는 분노하지 않도록, 자신의 화술을 어떻게든 살려 간결하고 적확하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물론 라민의 노력은 헛되었다.
라민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분노하는 자가 한 마디 씩 끼어들며 화를 냈기 때문이다.
핵폭탄을 가지고도 크라켄을 죽이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아니, 환경주의자들 따위 때문에 크라켄을 놔뒀다고? 악신에게 왜 기회를 준 거지? 환경주의자들도 같이 핵으로 날려버리면 될 텐데?
요정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제국에는 수용소가 없나? 비밀 경찰은? 첩보국은 뭘 한거지? 공안 정국을 만들어서 통제 했으면 될 일 아닌가?
우주선으로 두 번째 달 룸을 상대했다는 이야기에…
-…이건, 음… 그래. 괜찮은… 흠. 괜찮은 방법처럼 보이는데….
“아, 달맞이 계획만큼은 다른 대안이 없었군요? 분노하는 자께서도…”
-조용해라, 뱀파이어.
헤게모니아는 돌로 된 의자의 팔걸이를 후려쳤다.
팔걸이는 부서지면서 라민의 머리통만한 파편이 느릿하게 굴러 떨어졌다.
-난 방금 깨어났다. 나도 놈만큼 오래 깨어 있었으면 다른 방도도 생각해낼 수 있었겠지.
“…네.”
라민은 괜히 분노하는 자의 신경을 긁지 않기로 했다.
라민이 보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성격이 모난 존재는 아니지만, 친구하기에 까다로운 구석이 있어보였다.
이윽고 라민이 타천에 대해서, 그리고 옛신이 다시금 나타나 아바르틴 전역을 뒤덮고 있다는 이야기를 마치자, 어째서인지 분노하는 자는 자신의 뿔투구의 안면부를 손으로 가리곤 등받이에 깊게 누웠다.
‘아니, 왜 저러지?’
라민이 헤게모니아를 부르려는 찰나, 침묵하고 있던 양 옆의 신들이 자세를 바꾸었다.
방독면을 쓴 신, 볼트는 라민을 제지하듯 가볍게 손을 들었다.
-개체, 라민 솔로스트 무엘.
“아, 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어…”
-넌 나의 신도도 아니니 그냥 *볼트*라고 불러라.
“…예. *볼트* 님.”
볼트가 방독면 뒤에서 질문했다.
목소리는 음성배기판을 지나 전달될 수 없는 허상의 매질을 지나쳐 라민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달 되었다.
-*네뷸라*는 우리가 어쩌길 바라지?
라민은 그것이 야천의 이름임을 알았다.
하지만 라민은 야천이 만들어낸 이 모호하고 보이지 않는 끈을 끝까지 따라오기는 했어도, 야천의 의도까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이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였지만 라민이 보기에 그건 자신의 희망에 가깝지 야천의 진정한 의도인지는 불투명했다.
“…글쎄요. 그것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권총 머리의 신, 치스트카가 말했다.
-도움을 구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그러니까, 그저 게임이 끝났기 때문에 절차를 밟고 우리를 되살려 냈단 말인가?
그 말을 듣자 라민은 야천의 뜻을 읽는 것 보다, 그저 상황에 맞는 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라민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야천의 뜻은 모릅니다. 하지만 만신전엔 도움이 필요합니다. 모든 안배는 야천으로부터 비롯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 고개 숙이는 것은 한낯 필멸자이니, 구하소서.”
치스트카가 가로저었다.
-무릎 꿇지 마라. 넌 나의 신도가 아니다.
볼트가 말했다.
-뱀파이어, 우리는 다른 문제도 있다.
라민이 고개를 들었다.
볼트가 자신의 방호장갑에 쌓인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가볍게 손을 흔들어 시스템을 호출한다.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된다.
볼트는 능숙하게 시스템을 위와 아래로, 새로운 창을 띄웠다가 지우고 또 새로운 창을 띄우며 확인한다.
볼트는 몇 초 뒤 모든 시스템창을 끄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 막 깨어났다. 패배는 결정적이었고, 너무 약해졌다.
아직 시스템 창을 확인 중인 치스트카가 말했다.
-아직, 조금의 신도들이 남아있긴 하군. 하지만 느리다. 우리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면 신앙을 좀더 가질 수 있긴 하겠지.
치스트카는 신들의 정원의 석주들 위, 한가운데 뚫려있는 천장으로 보이는 아바르틴을 올려다본다.
치스트카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은 이 장소가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이 장소는 모든 것이 시작 되었던,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그림자를 확인했던 그 장소였다.
치스트카는 아바르틴을 바라보았다.
레벨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플레이어 개인이 가진 능력치를 감안하면, 필멸자의 눈에는 아바르틴이 그저 주먹만하게 보일 따름이지만 치스트카는 아바르틴을 세세하게 꿰뚫어볼 수 있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바르틴에서 보이지 않던 거대한 도시들이나, 치스트카가 찾는 것은 옛신들이었다.
치스트카는 허공에 떠있는 천공성들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치스트카가 말했다.
-옛신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는 이상 이대로 싸우는 건 전략적으로 옳지 않다.
라민이 급히 말했다.
“하지만… 제국은 싸우고 있습니다.”
-*네뷸라*가 싸워야지. 우릴 패배 시킨건 만신전이었어. 제국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
볼트가 말한다.
-기다리면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
라민은 당황스러웠다.
모든 것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보다는 더 나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 되는 건가?’
하지만 라민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볼트와 치스트카는 나름의 판단으로 공격에 나서는 것을 저어하고 있었지만, 라민의 정면, 가운데 있는 이는 그러한 판단과 별개로 나름의 고민 때문에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두 플레이어가 라민에게 하는 대화를 듣고는 있었지만 분노하는 자의 의식 안으로 들어올만큼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분노하는 자가 더 관심을 가지는 주제가 있었다.
분노하는 자가 다시 한 번 팔걸이를 후려쳤다.
금이 가다못해 부서진 팔걸이가 그대로 내려앉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 씨발.
라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실 신들의 말은 귀로 들려온다기 보다 머리속에 꽂혀 들어오기 때문에, 의심할만한 어휘는 아니었다. 게다가 분노하는 자의 말은 너무 명료했다.
-날 이겼는데, 게임을 못 끝냈다고? 이게 안 끝나?
라민은 질문이 아닌 것을 알고 잠자코 있었다.
분노하는 자는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는 라민을 향해 허리를 폈다.
그리고 발을 굴렀다.
분명 대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희박할 텐데도 신들의 정원이 크게 울린다.
-말이 되냐고! …날 이겼잖아! 근데 뭐? 옛신이 어쩌고? 타천? 날 이겼는데 겨우 저딴 것들에 휘말렸다고?
분노하는 자가 이제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라민을 내려다보았다.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날 놀리는 건가?
라민은 분노하는 자가 정확히 무엇에 분노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양옆에 있는 볼트와 치스트카도 헤게모니아와 네뷸라 사이의 오랜 관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아마 만신전의 플레이어들만이 헤게모니아의 말을 들었을 때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며, 당사자인 성운은 평소에는 흔히 볼 수 없을 웃음을 터트릴 터였다.
잔뜩 겁먹은 라민이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싶으시거든…”
겁을 먹은 탓인지 입이 평소 버릇대로 움직였다.
“직접 야천을 만나 뵈어야겠네요.”
분노하는 자가 웃었다.
-하! 당연하지. 저 같잖은 것들을 치워버리고 다시 결판을 짓겠다.
“아니, 그 이야기는 아닌데.”
-이번에는 반드시 이기겠다.
“우선은 옛신부터…”
뒤에 있던 볼트가 말했다.
-괜찮겠나?
헤게모니아가 돌아보았다.
-무슨 말이지?
-너도 우리와 마찬가지일텐데. 우리는 전과 같은 전력이 아니다. 너도 충분하다고 할만큼의 신성 레벨을 갖추진 못했을텐데.
헤게모니아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듯 잠시 볼트를 바라보았다.
-충분? 충분하다는 게 뭐지?
-그러니까, 어느 정도 신앙이 차오르고 레벨이 되어야 저 옛신들과 싸울 수 있을텐데…
-현신할 정도의 신성 레벨과 신앙은 있다. 그래도 제국이 연합왕국을 깨끗하게 지워버리진 않은 모양인데. 어… 왜지? 왜일까. 아니, 아니지. 이런 걸 궁금해하는 버릇을 들이면 안되지. 또 놈 의도대로 흘러가니까.
혼자 중얼거리는 헤게모니아 옆에서 볼트가 말했다.
-현신할 정도? 아니, 그걸로 충분하지는…
헤게모니아는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듯 손사레를 쳤다.
-그럼 넌 겁쟁이처럼 처박혀 있던가.
-…
-난 신경 안 쓴다.
치스트카가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전략을 짜야지 않겠나?
-무슨 전략?
-옛신들은 사방에 천공성을 깔아뒀다. 제국군들과 합을 맞추려면…
-공격 목표를 말하는 건가?
헤게모니아는 검을 뽑았다.
라민이 칼끝이 만들어내는 유려한 곡선과 날카로운 검세를 확인한다.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분노하는 자는 이미 무예의 극의에 다다랐다. 신이 아니더라도, 라민은 이 존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헤게모니아가 검으로 아바르틴을 가리켰다.
-저거잖아?
하지만 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보지 못한다.
헤게모니아가 무엇을 가리켰는지 알아차린 것은 다른 두 플레이어다.
치스트카가 경악한다.
-저건…
볼트가 말한다.
-…저기에 뛰어들겠단 건가?
헤게모니아는 검을 제 어깨와 목에 가볍게 걸친다.
헤게모니아는 그런 반응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는듯 말한다.
-게임을 이기는 법은 언제나 간단하지.
헤게모니아는 검을 들지 않은 왼쪽 손날을 자신의 목을 향해 가볍게 휘두른다.
-모가지를 따는 거다.
헤게모니아는 검을 꽂아넣는다.
그리고 아바르틴을 향해,
정확히는 아바르틴의 창공,
스물 두 개의 서로 성글게 엮인 옛신들의 천공성을 향해,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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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다고?’
알딘은 의아함을 느낀다.
바우스탄 성소로 보낸 천사가 네뷸라를 죽이는데 실패했다.
‘천사’는 완성된 존재다.
옛신들이 심심풀이로 만든 흉물이나 더 나은 것을 만들려다 실패한 흉신 같이 되먹지 못한 존재가 아니라, 몇 번의 시도 끝에 공을 들여 제대로 만들어낸 존재다.
천사 하나는 드래곤과 맞먹는 힘을 가졌다.
바우스탄 성소에 혁명군인가 하는 변변찮은 부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당연히 역부족일 터였다. 알딘으로서는 충분히 과한 전투 자원을 투입했다.
‘뭔가 더 있었던건가?’
하지만 시스템을 빌려 보았을 때 알딘은 그런 것이 있다고 확인하지 못했다.
‘천사를 막을만한 존재라면 보여야 했었는데? 왜 못 봤지?’
천사가 사망하던 순간을 확인하려고했지만, 전투 자체도 시스템의 내부 오류 때문에 확인이 되지 않았다.
시스템은 침식이 시작된 이후부터 꾸준히 오류를 자아내고 있었으므로, 특별한 문제는 아니다.
후에 마계로 내려가 저장된 장치들을 확인하고 고치면 된다.
‘하지만 역시 이상해. 이 순간에 오류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