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30
030화
“지금 자동성을 공격하겠다고 한 겁니까?”
휘가 분노를 억눌렀다.
“아니. 그저 질문했을 뿐이야. 그 외교라는 거래를 하는 것보다, 그냥 그게 우리에게 더 낫지 않겠냐는 말이지.”
“인간은 당신들 생각처럼 나약하지 않습니다.”
“나약하다고 한 적 없다.”
“그럼 자동성을 공격했을 때 당신의 전사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아니, 자동성을 점령할 수는 있을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한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라크락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대에게 자세히 말해 줄 수는 없지만… 내 산수가 맞다면 자동성을 공격해서 우리 전사들이 피해를 보긴 해도 점령할 수는 있을 거야. 확실히.”
“장담하는 겁니까?”
“자동성 안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좀 더 있다는 건 알아. 그러니 꽤 오랜 시간 인간이 자동성을 빼앗기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지. 그 비밀 때문에 자동성을 점령할 때 우리 전사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게 될지 걱정이 되긴 하는군. 하지만 점령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겠지.”
“왜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겁니까?”
휘는 라크락의 확신이 궁금했다.
라크락이 말했다.
“우리는 푸른 벌레신을 따른다. 신께서 도우신다면 그 높은 성벽도, 진흙 병정들도 한 줌 부스러기가 되겠지.”
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휘는 ‘스라티스’라는 수호자에 대해서도 들어 본 적 있었다.
검은 비늘 부족이 어려운 싸움에 들면 그들을 도와 싸우고 홀연히 사라진다는 거대한 사마귀 괴물이었다.
그것은 푸른 벌레신의 모습 중 하나로 여겨져 그 목상을 자동성 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스라티스가 아니더라도 문제는 많다. 코카투 전사는 물론이고 저들에겐 선택받은 자가 있지. 그 힘을 얼마나 많이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단 한 명만 한 번만 그 힘을 드러내도 병사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 눈앞에서 터지는 천둥 번개에 오금이 저리지 않을 이는 많지 않으니까.’
그런 변수들을 모두 제외하더라도 문제는 많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금 당장 있는 라크락의 전사만 해도 그 숫자가 80은 될 거야. 그리고 이게 전부도 아니겠지…’
당장 황야에서는 ‘검은 비늘 리자드맨’ 또는 ‘검은 비늘 부족’으로 부르고 있지만 라크락이 휘하에 두고 있는 리자드맨은 하나의 단일한 무리가 아닌 여러 무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난 9년 동안 반도의 위쪽을 정복했던 라크락은 발견하는 리자드맨 부족을 모조리 규합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 지도력으로 말미암아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는 정주 부족으로 남았지만, 대부분은 목축 부족으로 필요하다면 라크락의 부름을 받고 하나의 무리 전체가 이동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잘린 귀 부족을 견제하기 위해서 라크락이 서둘러 올라왔을 뿐이겠지. 라크락은 이미 이들을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황야는 곧 우기를 맞이한다. 황야에도 잠깐이나마 풀이 잔뜩 자라는 시기지. 물소를 치는 부족은 그리 멀리 있지도 않을 것이다. 전사들 일부만 차출해서 보낸다면 더 빨리 모이겠지.’
휘는 자동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인구는 많지만 싸울 이는 적다.’
성주에게 충성하고 봉사하는 네 가문의 사병들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병사가 있지도 않았다. 이 병사들은 당장에야 검은 비늘 리자드맨 전사들 보다야 숫자가 많겠지만, 신의 축복은 받지 못했다.
‘더 중요한 문제도 있다.’
싸움이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들리면 꽤 많은 이들이 줄행랑을 칠 것이다.
성벽 안의 많은 이들이 자동성의 성벽을 믿고 그 몸을 의탁한 농사꾼과 행상인, 광부, 그리고 그 가족이다. 그들이 자동성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재물만으로는 자동성을 지킬 수 없었다.
이들이 떠나기 시작하면, 정확히는 떠나려는 조짐을 보이기만 하더라도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질 것이다.
‘잘린 귀 부족의 흉포함도 이제 퍼지기 시작했지만… 검은 비늘 리자드맨들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알려져 있다. 오웬 같은 이들 때문이지. 진작에 경계했어야 하건만.’
휘는 인정해야만 했다.
이 전쟁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한 셈이었다.
라크락은 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 번째 이유를 말했다.
“게다가 소금! 소금이 귀한 재산이긴 하지. 값비싼 것이기도 하다. 오만 곳에 다 필요하지. 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다들 그것을 찾아다니고, 어디에선가는 구할 수 있다. 꼭 자동성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좋습니다. 성주님께서 검은 비늘 부족이 생각보다 소금 거래를 할 수단과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걸 간과하셨군요. 이게 끝입니까?”
“아니, 제일 중요한 네 번째가 남았지.”
“좋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라크락이 네 번째 이유를 말했다.
“나는 거짓말쟁이를 신뢰하지 않는다.”
“저는 거짓말한 적이 없습니다.”
“했다. 너는 자동성의 심부름꾼이 아니다.”
“그럼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라크락이 답했다.
“자동성의 성주, 휘서.”
휘는 부정도 긍정도 않았다.
라크락이 그 이유를 말했다.
“‘휘’라는 이름을 드러냈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드러낸 이유는 아마 리자드맨이 자동성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맞나?”
휘는 대답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현재 자동성 성주는 모습은 물론 이름마저 숨긴 채 그저 ‘성주’라고 불리고 있다고 하지. 하지만 이건 자동성 밖에서의 이야기. 자동성 내부에, 성주에게 충성하고 봉사하는 네 가문이 있다더군. 그들은 성주의 손과 발이 되어 따르는데 이들 중에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주의 이름을 알고 있다더군. 그중 ‘휘’는 성주의 핏줄을 이어 받은 이들이 공유하는 이름인데, 성주에게는 네 명의 아들과 세 명의 딸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너는 아낙이 아니고 손의 주름을 봐선 인간치고 젊지도 않지. 따라서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다. 휘서.”
“…대단하군.”
예를 갖춘 자세로 라크락을 향해 앉아 있던 사내는, 가죽 두건을 벗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거짓놀음은 끝났으므로, 이제 그는 하나의 무리를 이끄는 책임을 진 이로서, 라크락과 대등한 관계로 마주해야만 했다.
“…그렇소. 내가 자동성의 성주 휘서요.”
가죽 두건이 벗겨지자 휘서의 얼굴이 드러났다.
덥수룩한 턱수염 위로 사납게 생긴 눈주름을 가진 중년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다소 메말랐고, 콧등 위로 크게 베였다 아문 흉터가 있었다.
라크락은 얼굴을 읽었다.
‘주름. 손등에서부터 알아봤지. 인간들은 늙으면 주름이 진다. 나이는 있지만 허리가 굽지 않고 눈동자가 선명하다. 거짓말을 했다지만 신분을 숨긴 것이 더 위험할 수 있지. 겁이 없지만 멍청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흉터. 자동성 뒤에서 암약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이 자는 모든 걸 제 손으로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다. 자동성의 많은 문제들이 이 자의 손으로 직접 해결되었겠지. 위험을 자처하지만 그는 꽤 오래 살아남았다. 그것이 강함의 증거지. …나는 인간이 나약하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분명 인간 스스로가 퍼트린 이야기일 것이다.’
휘서가 말했다.
“어떻게 알게 되었소? 내가 가까이 있는 이들 중에 리자드맨은 없는데.”
“그런가? 그럼 인간 내통자가 있는 모양이지.”
“음. 자신 있다는 말이군.”
“글쎄, 어떨 것 같나?”
휘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리자드맨은 내게 과제를 남기는군. 한번 찾아볼 테면 찾아보라는 것인가.’
라크락이 말했다.
“나도 궁금한 점이 있군. 우리가 중립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있긴 하지만, 혼자 이렇게 들어오는 건 두렵지 않은가?”
“두렵소.”
“그런데?”
“그대가 자동성을 힘으로 빼앗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정체가 들키거나 말거나, 그대가 나를 곱게 보내줄 것을 알고 있소.”
“정체가 들키지 않았다면?”
“검은 비늘 부족이 객에게 친절하단 걸 알고 있소.”
“…흠.”
라크락은 그런 문화를 고쳐야 할 것인지 생각해 봤지만 그럴 이유도 없거니와 잘 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정체를 들켰으니, 이제 내가 휘서 그대의 생각대로 움직여야겠군? 내가 어떻게 움직일 것 같나?”
“날 그냥 보내줄 거요.”
“이유는?”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당신은 별잡이란 자를 떠나보낸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하고 싶어 하오. 그래서 이 대화가 끝나면 내가 돌아가길 바라고 있지.”
“그건 맞다. 하지만 자네를 사라지게 만들 방법이 그것만은 아닌데.”
라크락은 위협적으로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나는 자동성을 공격하면 검은 비늘 리자드맨들에게 이익이 될 거라고 말했고, 내 생각에 성주가 죽으면 자동성에 있다는 네 가문도 혼란스러워하겠지. 지휘관이 없는 전투는 쉽게 이길 수 있고. 자네가 틀렸다면 어떻게 할 건가?”
“아니, 난 틀리지 않았소.”
휘서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날 죽이게 되면, 나의 다음 후계자가 누가 될지 알 수 없으니까.”
라크락은 흥미로운 대답을 들었다는 듯, 허리를 펴고 꼬리 끝을 살짝 말았다.
“재미있군. 그런데 우리 검은 비늘 리자드맨에게 외딴 성에 사는 성주의 다음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아무런 관계없는 일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 …라크락, ‘바둑’에 대해 알고 계시오?”
“…바둑?”
“자동성에서 유행하는 놀이요. 흙바닥이나 반상 위에서 즐기지.”
“잘 모르겠군.”
휘서가 바둑에 대해 설명했다.
“바닥에 줄을 교차해서 여러 줄 그어 두고 흰 돌과 검정 돌을 모아서, 서로 차례대로 놓기 시작하오. 교차된 줄 위에 놓는데, 네 개의 돌이 상대의 돌 하나를 완전히 감싸면, 그 돌은 죽은 것이 되오. 끄집어내어지지. 그렇게 계속 두다 더는 돌을 둘 곳이 없으면 끝을 내는데 그때 내가 가진 상대의 돌과 돌이 들어내진 자리가 상대보다 많으면 이긴 것이 되오.”
“설명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는걸.”
“미안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소.”
“그럼 왜 설명한 건가?”
“내가 돌멩이이기 때문이지.”
라크락은 뭔가 깨달은 듯, 동공이 작게 수축했고, 그 때문에 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보다 먼 곳을 보고 있었다.
휘서가 덧붙여 말했다.
“나는 이미 놀이판이 시작된 걸 알고 있소. …황야를 끼고 두 신이 두 부족을 가지고 벌이는 놀이지. 한 신은 놀을 데려왔고 한 신은 리자드맨을 데려왔소. 그리고 그 판 위에 앉아 놀과 리자드맨이 또 놀이판을 벌렸소. 그 놀이판의 이름은 자동성이지.”
라크락은 침묵으로서 긍정했다.
“…좋소. 그대들이 나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나도 그대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고 있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후계자를 정해야 하고, 그대들은 내 자식들에게 접근했지. 어느 사이에 내 자식들은 분노로 가득한 이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창백하게 푸른 나비에 대해서 말하더군. 내 자식들이 신을 믿기 시작한 거요…”
라크락은 웃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않나? 그게 자동성을 공격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피해가 덜 가는 일이니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