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첫 번째 심상 세계에서, 알딘의 왼쪽 팔목에 붉은 벨벳천이 휘감긴다.
이미 두 개의 세계에서 집중을 이어나가고 있는 알딘이기에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알딘은 팔을 빼내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벨벳천에 담긴 마성이 알딘의 신경 체계에 혼선을 준다. 이완 되어야할 근육이 뻣뻣하게 당겨진다. 만약 이대로 왼쪽 팔이 봉인된다면 다음 수순은 간단히 그려진다. 마성의 정령들은 옛신에게 지금껏 쌓인 제 악의를 드러낼 것이다. 알딘은 어금니를 악문다.
다행히 지금 휘감긴 것은 지팡이를 쥐고 있지 않은 팔이다.
알딘은 몸을 비틀면서 팔목을 빗겨 당긴다. 빠드득 소리가 나면서 인대와 정중 신경, 장저를 이루는 뼈뭉치들이 제 위치에서 벗어난다. 알딘은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다.
고통 학파에선 고통이야말로 힘의 근간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다른 종족에 비해 육체적으로 연약했기에, 마법을 통해 그 길을 찾고자했고, 많은 인간들이 고통 학파의 마법을 배웠다. 그리고 고통 학파는 다른 마법사들로부터의 싸움에서 끝내 승리해냈다. 그것이 옛신들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이유이다.
통증 때문에 고조된 신경계와 조건 반사에 따른 떨림이 알딘의 어깨로부터 타고 오르고, 입안에 침이 고인다. 알딘은 쇠맛이 나는 침을 내뱉는다. 고통은 힘이다.
알딘의 예상치 못한 동작 덕분에 마성의 정령들의 벨벳천들이 한순간 꼬이거나 허공을 맴돈다.
알딘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까전부터 보였던 이 붉은 장막들 사이로 미끄러진다.
알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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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심상 세계에서, 알딘은 호흡을 거칠게 내뱉는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로브는 땀으로 흠뻑 젖어 몸에 불쾌하게 휘감긴다.
각각의 방은 그리 넓지 않지만, 수 십, 수 백 개의 방을 내달리는 것은 이 심상 세계에서는 버거운 일이다. 게다가 알딘을 뒤쫓는 존재들에게 내쫓기느라 방을 옮겨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알딘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괴물을 마주한 적이 없어.’
운이 좋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알딘 자신이 잘 도망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알딘을 쫓는 괴물들은 발소리와 문을 여는 소리로만 존재하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그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을 알아차리는 건 어려웠다.
알딘은 도망치고 있었으며, 동시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성운에게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좌표계를 암산해야했기 때문이다.
숨을 돌린 알딘은 정면의 방에서, 괴물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여기선 돌아가야 하는데.’
알딘은 괴물이 없을 수도 있지만, 역시나 있을 수도 있는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한다.
알딘을 몰아넣을 심상 세계를 굳이 허상으로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면? 네뷸라가 조율을 이룬 마법사라지만, 그 능력이 정말로 뛰어난진 의문이야. 그렇다면 두 번째 심상 세계에 비중을 줄여야만 할지도 모르지.
알딘은 도박을 하기로 한다.
정면의 방을 지나치면 성운에게 도달하는 최단 경로가 된다.
이번에 괴물을 피해 도망치게 되면, 좌표계를 풀고 괴물이 없는 경로를 잡아 다시 접근하기까지 기약이 없다.
‘도망치기만 해선 방법이 없어.’
알딘은 앞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발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면의 문을 열어젖힌다.
방 안엔 아무것도 없다.
알딘은 숨겨진 적이 있는지 탐색하지만 빈 방이다.
괴물은 허구가 맞았다.
적어도, 방금 알딘을 향해 달려오던 괴물은 허구였다.
알딘은 ‘속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성운에게 도달할 최단 경로로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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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심상 세계에서, 알딘은 동굴 구석에 몸을 숨긴다.
알딘 또한 드래곤이라면 몇이나 죽여본 적 있었다.
그러므로 마즈다리 또한 어떻게든 대적해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마즈다리는 달랐다.
본래라면 고대의 드래곤들이 필연적인 약점으로 가지고 있었을 오만함도, 편견과 착각도 없었다.
신의 존재 앞에 겸허했으며 자신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았다.
알딘이 알고 있던 드래곤에 대한 모든 공략 방법이 쓸모가 없었다.
알딘이 알고 있는 모든 마법적 수단과 시스템이 제공하는 가호가 알딘을 지켰으나, 마즈다리는 너무나 강대했다.
알딘은 이미 폐허가 된 동굴 내부에서 마즈다리의 그림자를 확인했다.
알딘이 숨자, 저 드래곤 또한 숨었다.
백색의 몸에 저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도 기도비닉 능력은 알딘과 다름없다.
‘꼭 대적할 필요는 없어.’
알딘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몸을 마법으로 기워낸다.
팔다리가 이제야 겨우 제자리를 찾는다.
찢겨 부숴진 날개는 포기한다. 마법적 능력이 하강하지만 생명에 치명적이지 않으니 우선도가 낮다.
‘이런 심상 세계에서 드래곤을 꼭 상대할 필요는 없어. 어떻게든 지나치기만 하면 되는데…’
드래곤은 동굴의 파수꾼이다.
그리고 파수꾼을 상대하는 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에서, 파수꾼을 지혜롭게 상대한 마법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술을 잔뜩 먹이고 재우거나, 아름다운 노래로 의식을 빼앗거나, 상대의 심계를 가로채는 거래를 해내거나.
하지만 마즈다리는 이야기 속의 존재가 아니다.
그런 드래곤들과는 모두 절연한 사이가 되기로 마음 먹은 것 같다.
저 드래곤은 약점이 없다.
알딘은 이제 순순히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마즈다리는 자신보다 강했다.
수 만년을 살아남은 고통 학파 마법사이면서 동시에 시스템의 가호를 받고 있는 옛신인 자신보다도.
알딘은 남은 방법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네 번째… 뿐인가.’
기회는 당장 마즈다리가 모습을 숨긴 지금 뿐이었다.
‘내게 몇 초나 남아있을까?’
이 교활한 드래곤은 모습을 숨겼다지만 그저 관망하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이미 알딘은 예상 조차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알딘을 공격할 마지막 몇 가지 수를 고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네 번째까지 내려가는 심상 세계는 알딘으로서도 몇 번 겪어보지 못한 일이지만, 알딘은 망설이지 않는다.
시간이 그리 남지 않았다면, 다음 심상 세계로 내려가 시간의 흐름을 상대적으로 늦출 수 밖에 없다.
알딘은 즉시 네 번째 심상 세계를 구상한다.
그리고 침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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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희 가게는 처음이신가요?”
네 번째 심상 세계에서, 알딘은 작은 건물의 현관에 서 있다.
돌아보자 밖은 대낮의 햇빛 때문인지 눈부셔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번 네 번째 심상 세계는 건물의 안으로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알딘은 이런 심상 세계를 구상한적이 없다.
건물의 현관은 수 많은 미학적 유행을 지나쳤던 풍부한 문화 예술의 가치를 지닌 아바르틴이 아니라, 처음으로 문명의 여명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과거의 유산을 모조리 부정한 지구의 ‘모던’이라고 부를만한 납작한 예술 양식으로 꾸며져있다.
알딘의 복장 또한 이에 맞춰 포멀한 정장 차림이다.
알딘은 반사적으로 얼굴에 손을 가져가는데, 얼굴을 가리던 후드 대신 가면이 씌워져있다.
“손님?”
알딘은 자신을 부른 종업원을 바라본다.
인간 남자고, 단정한 제복을 입었다. 검은 조끼에 검은 나비 넥타이가 눈에 띈다.
다만 얼굴의 인상은 희미하기만 하다.
돌아서면 잊을 것 같다.
‘심상 세계인 건 확실해. 해상도가 낮아. 이것은 만들어진 존재다.’
알딘이 말한다.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텐데.”
알딘은 운을 띄워본다.
이 심상 세계는 즉각 반응했다.
“아, 지배인 님의 친구분이시군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알딘은 종업원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가게 안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1층에서는 넓은 로비에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물론이고 2층과 3층 난간 옆 테이블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각자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카드를 펼치거나 주사위를 던지거나 알딘이 지구의 게임이라고 알고 있는 몇 가지 도박들을 즐기고 있다.
‘카지노인가?’
알딘은 이들을 모두 지나쳐,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섰다.
“그럼 재미있게 즐겨주시길.”
종업원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인사했고, 내리지 않았다.
알딘은 종업원을 힐끗 보았다가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나왔다.
방은 하나 뿐이었다.
가운데에 큰 원형 테이블이 놓여져 있고, 맞은편에 인간 남자가 앉아 있다.
자신과 같은 정장에다, 가면의 모습도 민무늬의 백색이다. 알딘 자신의 것과 같다.
알딘은 그것이 성운이라고 직감한다.
그리고 알딘은 곧장 지팡이를 찾기 위해 자신의 품에 손을 가져갔다.
‘…없어? 아니, 아니야. 다른 존재의 심상 세계라고해도 내 물건에 손을 댈 수는 없어.’
알딘은 성운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제 몸을 더듬어가려다, 바지 종아리 아래에 숨겨져 있는 권총을 감지한다.
알딘은 안심한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제 역할을 하는덴 문제 없다.
다만 성운이 보는 자리에서 그것을 뽑아드는 것도 문제였다.
알딘은 여유롭게 성운 앞으로 걸어갔다.
성운이 말했다.
“유감스럽겠군.”
“뭐?”
“유감스럽겠다고 말했다.”
성운은 포장 되어 있던 트럼프 카드 뭉치를 까면서 말했다.
“넌 여기 ‘네 번째’까지 내려오는데 힘을 너무 소비했지. 그래서 나한테 주도권을 빼앗겼고.”
알딘은 즉각 대꾸하진 않는다.
성운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알딘은 성운의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알딘이 자못 여유를 위장한다.
“하지만 넌 내 앞에 있지. 내가 널 따라잡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나? 여긴 내 공간이야. 내 심상 세계지.”
성운이 허공으로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지금껏 2층 난간과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무장한 호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호위들이 알딘을 겨누고 있다.
젼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알딘은 작게 혀를 찼다.
성운이 테이블을 검지로 두드리자 호위들은 다시 모습을 숨긴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는 심상 세계고, 인과율이 허락하는한 공평을 기해야하겠지. 그것이 마법의 원리니까. …알딘.”
성운은 포장을 뜯은 트럼프 카드들을 능숙하게 뒤섞고 바닥에 펼쳐낸다.
“게임을 할 줄 아나?”
알딘은 다리를 꼬아 앉는다.
왼쪽 다리를 오른쪽 무릎 위로 올리는데, 그 이유는 숨겨진 권총이 왼쪽 종아리 안쪽에 체결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딘은 언제든지 권총을 뽑아둘 수 있도록 준비한다.
알딘이 말했다.
“게임에서 이기면?”
“서로 원하는 걸 하나씩 들어주는 것으로 하지.”
알딘은 초조해진다.
과거, 알딘에게는 임무가 있었다.
인과율을 속이고 문명을 재건하며 악신들에게 대항해 옛신들 대신 싸워줄 대전사들, 즉 플레이어를 찾아야만 했다.
그들이 얼마나 게임을 잘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알딘 또한 그만큼 게임에 대해 잘 알아야만 했다.
덕분에 알딘은 수 많은 시간을 들여서 게임을 익혔다.
알딘은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지구와 수 없이 많은 무한한 가능세계가 아니더라도, 아바르틴에도 게임이 있었고 알딘은 다른 옛신들보다도 더 게임을 즐기는 존재였다.
물론 아바르틴 최고의 플레이어였던 도래자만큼은 아니었으나, 7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게임을 해왔으므로.
하지만 얼마나 오랜시간 게임을 즐겨왔는가는 게임의 실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알딘은 게임을 즐길줄 알고, 잘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더 잘알고 있었다.
자신이 찾은 플레이어 중 단연 최고는 네뷸라, 즉 성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