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526
◈ 526화. 진정한 재앙 (4)
저항할 수 없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헬리콥터.
남철민은 태블릿을 꽉 붙잡고 제주도를 내려다봤다.
파이몬이 등장한 순간부터 제주도와는 거리를 벌렸거늘.
딸깍.
쉴 새 없이 카메라를 조작하던 분석관이 외친다.
“적외선 모드를 사용해도, 호크아이 렌즈를 사용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 검은 에너지가 모든 관측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분석관님……!”
빠득.
남철민은 이를 악물었다.
검은 에너지의 정체?
‘……모두가 지켜봤어.’
총대장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파이몬이 등장하기 전까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주도 상공을 비행하던 헬리콥터와 관측 드론들이다.
당연하게도 모든 경과는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중계되었겠지.
남철민은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신 총대장님이시다.’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우려를 억누르고 생각을 이어 나갔다. 그래, 설령 흔들리실지라도 총대장님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실 터.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야.’
기이의 땅이 된 서울.
덧붙여서 수많은 길드 지부들.
길드 하우스가 좁은 서울 땅에 밀집한 탓.
공성전 시스템이 상시 활성화된 서울이었다.
그 변화의 여파가 어떠했던가?
-기이의 땅이 오직 대한민국의 소유? 논란의 여지 있어…….
-美 상원의원, “서울은 전 세계의 땅이다.” 주장.
-AAU 관계자, “서울의 영주가 될 플레이어는 막대한 권력 가지게 될 것……. 투명하게 선출하는 게 옳아. 그러지 못할 시 끔찍한 일 벌어질 것.”
서울이야말로 플레이어들이, 전 세계가 눈독을 들이는 땅이 됐다는 것이다. 총대장님께서는 물론, 자신조차도 일찍이 알고 계셨던 문제였다.
‘또 한 번 짐을 짊어지시겠다고 선언하셨었다.’
당신께서 서울의 주인이 되겠노라고.
남철민은 그날의 만두 회담 이후.
‘서울의 주인’ 계획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파악하게 됐다.
이 썩어빠진 나라에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사실을.
‘언론에서 견제가 시작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현재 언론은 교묘하게 총대장님을 물어뜯고 있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은 모조리 무시한 채.
총대장님이 이미 서울의 주인이라고 가정한 뒤.
소설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대중의 반발심을 유도할 생각이었겠지.’
물론, 대다수 대중들에겐 식견이 있었다.
쓰레기 같은 기사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는 뜻.
그러나 이번 사태로 여론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물어뜯을 거리가 생겼으니까.’
무려 상위 마왕 파이몬 레이드였다.
균열과는 다른 규칙이 존재하는 신규 업데이트.
그 공략 과정에서 상식적으로 피해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거늘.
남철민이 중얼거렸다.
“……그동안 비상식적인 활약을 펼치셨으니까.”
그 어떤 전투에서도 꼿꼿함을 잊지 않으셨던.
흔들리지 않으셨던 총대장님이셨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런 총대장님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능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난적이었단 뜻이었다. 찰싹. 남철민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두들겼다.
도리도리.
그걸로도 모자라 고개를 털어냈다.
“정신 차려, 남철민.”
그래, 전 세계가 총대장님을 헐뜯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총대장님의 희생이었거늘.
덕분에 멸망의 위기를 극복한 사실도 모른 채.
주제도 모르고 떠들어댈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러나.
‘설령, 총대장님이 괜찮다고 하셔도…….’
남철민, 자신부터가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지켜봐야 한다.’
제주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부를.
남철민이 다시금 제주도로 시선을 옮긴 순간이었다.
그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
그럴 수밖에 없었다.
쌔애애애액.
매서운 속도로 곤두박질치는 신형.
그 나풀거리는 로브가 더없이 익숙했다.
저건 마탑의 선임 마법사.
벤쉬 윌리엄이었다.
스멀스멀.
남철민은 자신의 오감을 의심했다.
곤두박질치는 벤쉬의 육체에서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검은 에너지.
총대장님께서 발현하신 게 분명한 적합한 마력이.
그렇다면 총대장님이 마탑의 선임을 공격하셨다는……?
“……마, 말도 안 돼.”
*
순수마력학 선임, 뱅그릿이 소리쳤다.
“벤쉬 선임!!”
이 수석님이 심상치 않으시다.
벤쉬와 뱅그릿, 두 선임이 낌새를 알아차린 건.
이 수석님께서 제주도에 모습을 드러낸 직후부터였다.
-“어째서 마법을 사용하시지 않는 걸까요?”
-“그럴 필요가 없으셔서요?”
-“그럴 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뱅그릿? 이 수석님의 마력은 격이 다릅니다. 물론, 당신의 마력 친화력도 수준급이지만…….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르다는 겁니다.”
벤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수석님의 마력은 황혼의 마력보다도 뛰어난 마력 효율을 자랑했으니까. 그러니까 두 선임은 경계를 풀 수 없었다.
-“제가 아는 이 수석님은 소 잡는 칼을 두고, 닭 잡는 칼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특히나 악마를 사냥할 때는 더더욱 말이죠.”
-“……그런데도 진심을 다하지 않으신 거라고요?”
-“어허, 큰일 날 소릴. 그게 아닙니다, 뱅그릿.”
벤쉬는 조금의 장난기도 없이 그렇게 말을 이었다.
-“격이 다른 마력을 두고, 굳이 위험부담이 심한 적합한 마력을 사용하실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마티스 선임 덕분에 알고 있지 않습니까, 뱅그릿? 『흑화』의 위험성을.”
그렇다, 두 선임 마법사에겐 지식이 있었다.
-“단지 적합한 마력밖에 사용하실 수 없는 상태에 처하신 거라면……. 그렇습니다. 흑마도학의 변수, 마티스 선임이 경고했던 흑화밖에 없겠죠.”
덕분에 이 수석님이 ‘흑화’에 빠지신 것이라고 확신.
그러한 이 수석님을 돕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린 것이었다.
특히나 벤쉬는 윌리엄 가문의 비전 마법을 발현.
진정한 염제로 각성한 상태였다.
뱅그릿은 그런 벤쉬에게 말했었다.
-“그건 과한 게 아닐까요?”
-“머리로는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뱅그릿. 그런데 이 직감이 말하고 있습니다. 경고하고 있습니다.”
-“……?”
벤쉬는 말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저건 제가 아는 이 수석님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닙니다.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요, 뱅그릿.”
그 말의 뜻을 뱅그릿은 뒤늦게나마 이해했다.
벤쉬 선임이 이 수석님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지금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역시, 뭔가 달라.”
뱅그릿은 벅찬 감정을 추스르고 주변을 바라봤다.
이 자리에 더 이상 거물급 악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주에서 쏟아져 나온 악마들이 곳곳에서 날뛰고 있긴 했지만, 주인을 잃었기에 위협적이지 않았다.
원시의 사탄도.
존귀한 파이몬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손아귀도.
더는 제주도에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 주체할 수 없는 공포와 혼란은 바로.
오롯이 이 수석님에게서 비롯되고 있단 뜻이었다.
뱅그릿은 이를 악물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수석님.”
이내, 체내의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간섭의 내용은 실로 간단하다.
오로지 방출.
마도 가문 출신도 아니면서.
마탑의 선임 자리를 차지한 뱅그릿의 초월적인 재능.
그 찬란한 재능이 마력과 함께 발광하기 시작한다.
고오오오.
곱슬머리가 일직선으로 펴질 정도로.
방대하고, 정순한 마력이 육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상태로 이 수석님을 향해 나아간다.
스멀스멀.
벤쉬 선임을 나가떨어지게 한 적합한 마력이 엄습한다.
그러나 뱅그릿은 더욱더 방대한 마력을 방출했다.
……쿵.
그 여파로 형성되지 못한 서클이 욱신거렸지만, 괜찮았다.
이 수석님에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다가가서.
반드시 물어야 할 게 있었으니까.
문득, 이 수석님의 조언이 스쳐 간다.
-“반드시 단점을 보완할 필요는 없다. 장점이 단점조차 상쇄할 수 있도록. 그대의 장점을 극대화하면 되는 일이다. 그대는 그러한 장점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뱅그릿 선임 마법사.”
결과적으로 이 수석님의 조언은 옳았다.
그 가르침 덕분에 효율은 떨어지지만, 당신의 적합한 마력에 저항할 수 있는 순수한 마력을 방출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뱅그릿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수석님, 기억하십니까?”
당신께서는 보잘것없던 저를 위해서.
“설령 기억하지 못하신다고 하더라도 저는 평생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이 수석님과 마르셀로 탑주님께서 절 위해서 목숨을 거셨던 그날을…….”
뱅그릿이 쓰게 웃었다.
“제가 뭐라고. 가진 거라곤 잠재력밖에 없는 제가 뭐라고. 절 위해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신 건지. 악마 숭배자를 처단하기 위해 함께 마탑 최상층에 쳐들어가는 순간까지. 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 수석님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뱅그릿의 눈빛은 또렷하게 빛났다.
“내가 특별했던 게 아니라 이 수석님께서는 원래 그러신 분이었다고. 애초에 누구의 어려움도 그냥 지나치시지 않는 그런 분이셨다고…….”
그렇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죠?”
뱅그릿이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순간이었다.
살랑.
긴 은빛 머리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칼과 함께 자신을 등지고 있던 고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드러나는 눈빛.
그 무정한 눈빛과 마주한 뱅그릿은 알아차렸다.
“역시.”
동시에 안도할 수 있었다.
“아니었구나……?”
설령.
그 외관이 같을지언정.
저건 내가 아는 이 수석님이 아니었으니까.
……털썩.
확인한 뱅그릿에게 더 이상의 미련은 남아있지 않았다.
억지로 유지하던 마력 방출이 끝나자마자.
의식을 끈을 놓아버린 뱅그릿.
스멀스멀.
그런 뱅그릿을 향해서.
일대의 적합한 마력에 뻗어 나갔다.
그 광경을 제주도에 고립된 이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뱅그릿 선임님……!”
제시가 입을 틀어막았다.
고깔모자 속 탑주, 그의 식견으로도.
지금의 상황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경고하는 게 고작이었다.
-저 작자를 말릴 생각은 하지 말거라, 제시.
“그치만…….”
-저건 네가 아는 이 수석도, 내가 아는 이 수석도 아니다. 더욱 직설적으로 말해줘야 알아듣는 게냐? 그렇다면 저건 이 수석의 탈을 뒤집어쓴 ‘무언가’다.
제시의 고집을 꺾기 위해 고깔모자가 덧붙였다.
-너라고 벤쉬와 뱅그릿과 다를 것 같으냐?
탑주는 속이 쓰렸다.
벤쉬가 나가떨어지고 뱅그릿이 위기에 처해서?
아니, 마탑의 마법사란 그러한 족속이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
그 사실은 벤쉬와 뱅그릿.
저 아이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각오가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자리니까.
선임이라는 자리는.
그러니까 이 순간.
이젠 존재하지도 않는 나의 속이 쓰린 이유는 전부 자네 때문이라는 것이네, 이 수석이 아닌 무언가여. 탑주가 고깔모자 속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적합한 마력이 고유의 영역을 형성했다.
마치 마탑의 지하, 무간(無間)처럼.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외부에서 내부에 간섭할 수도.
내부에서 외부로 빠져나갈 수단도 없다.
이곳에 갇힌 이들의 목숨이 이 수석.
아니, 이 수석의 탈을 뒤집어쓴 무언가에 달렸다는 뜻이다.
탑주가 냉정한 판단을 내린 순간이었다.
고오오.
제시의 몸에서 보랏빛이 일렁였다.
-제시…….
뻗어가는 황혼의 마력.
추락하는 뱅그릿을 구하기 위한 발현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시선에 거슬렸단 말인가.
무언가의 시선이 정확하게 제시를 향했다.
스멀스멀.
그 즉시, 적합한 마력이 제시를 향해 뻗어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누구도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진 건.
일순간.
파아앗.
허공으로 흩어지는 적합한 마력.
그랑펠이 멈춰선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그랑펠 속 ‘한 줄기 빛’이 깨어난 것이었다.
그 순간.
인류는 파이몬의 예언에서 빗겨나갔다.
그건 어떤 강력한 스킬도 마법도 주술도 아닌.
고작 가슴팍, 재킷 안주머니에서.
울리는 작은 고동 덕분이었다.
지이잉.
[발신자 : 큰누나]“……!”